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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김종필 전 총리의 부인이자 박근혜 대통령의 사촌언니인 박영옥 여사가 지난 21일 향년 86세를 일기로 별세했습니다. 빈소는 휴일인데도 보기 드물게 여야 정치권 인사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아 마치 현대정치사의 축소판을 보는 듯 했는데요.
현대사의 영원한 2인자! 그러나 부부금실 만큼은 그 누구 못지않았던 김 전 총리의 조문객과의 대화 내용, 먼저 들어보고 이야기를 나누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인터뷰:김종필, 전 국무총리]
"65년 같이 살면서 한 번도 큰 병 앓은 일이 없었어요. 아주 못된 병에 걸려서. 그런데 아주 편안하게 숨을 거뒀어요…이제 나도 갈 때니까 몇 발짝 앞서서 간 거지.난 마누라하고 같은 자리에 눕고 싶어서 국립묘지 선택은 안했다. (가족묘지) 거기에 나하고 같이 (아내가) 나란히 눕게 돼"
이렇게 들으신 대로 김 전 총리와 박 여사 사이는 상당히 금실이 좋았던 것 같습니다.
[기자]
네. 21일 오후 8시43분께 돌아가셨는데요. 돌아가실 때 의료진이 임종이 가까웠다고 알려지자 김 전 총리는 모두 물러가달라고 얘기를 하면서 마지막까지 임종을 지켰다고 합니다. 부인에게 마지막으로 입맞춤한 이후에 부인이 숨졌고 그 이후에도 그 자리를 계속 지키면서 64년 전이죠, 선물했던 반지를 목걸이에 걸어서 부인에게 걸어준 뒤에 지금까지 일화 등을 생각하시면서 눈물을 흘리면서 허무하다, 앞으로 나도 곧 갈 거다, 외로워서 일찍 가야겠다는 말씀을 남겼다고 합니다.
[앵커]
64년 동안 두 사람이 동거동락을 했는데 정치적 행보를 떠나서 우리나라의 원로의 어떤 사별, 이런 모습은 상당히 감동을 주기에는 충분하지 않았나 이런 생각이 드는데요. 이 두 분의 지극한 금술, 김 전 총리가 미리 세워둔 묘비 비문에도 그대로 드러난다고 합니다.
일부를 살펴보면 수다한 물음에 소이부답 하던 자, 내조의 덕을 베풀어준 영세반려와함께 이곳에 누웠노라라는 비문이 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내조를 본다면 김종필 전 총리가 이런 저런 이야기를 자꾸 해도 웃으면서 대답을 안 했다, 그만큼 우리나라의 정치의 한 획을 그은 남편에 대해서 부인인데고 불구하고 아꼈다고 볼 수 있겠군요.
[인터뷰]
그렇습니다. 끝까지 한 60여 년을 함께 했기 때문에 특이한 것은 김종필 전 총리 같으면 나머지 양김과 더불어 한국의 정치의 쥐락펴락을 하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나머지 두 분은 여성 문제 스캔들 문제가 있었어요. JP는 그런 스캔들이 나오지 않을 정도로 부인하고만 쭉 부부생활을 하면서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줬었습니다.
[앵커]
앞서 말씀을 드린 대로 박영옥 여사는 박근혜 대통령의 사촌언니인데 김기춘 비서실장편으로 조화를 보내기는 했습니다마는 직접 조문을 아직까지는 하고 있지 않습니다.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요?
[인터뷰]
저는 가셔야 한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래도 사촌언니 아닙니까? 그리고 국민들은 그러한 박근혜 대통령의 어떤 인간적인 모습을 보고 싶어하실 것 같습니다. 저는 박근혜 대통령께서 아마 조문을 직접 하시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앵커]
조문을 할 것 같다고 말씀을 하셨는데요. 어쨌든 두 분 중매를 한 것도 박정희 대통령 아니겠습니까? 어떤 사연이 있죠?
[인터뷰]
실제로는 사실 그 당시에 화면에도 나옵니다마는 조카가 어떠냐, 이렇게 먼저 박정희 대통령이 제안을 했다고 하는데요. 김종필 전 총리도 당시에 당사자가, 본인만 좋다면 기꺼이 맞이하겠다고 했고 그 후에도 실제로 정말 인연이 돼서 부부의 연을 맺었는데요. 그 후로 65년 동안 이렇게 정말 해로를 하고 이렇게 마지막까지 따뜻한 모습을 보여주는 걸 보니까 저도 많은 것을 느끼게 되고 본받을 점이 많은 그런 부부가 아닌가 생각이 듭니다.
[인터뷰]
박정희 대통령이 내조카가 어떠냐고 말하기 전에 두 사람이 사실 미리 만나고 있었거든요. 그러니까 박 대통령이 당시에 한국전쟁이 났을 때 혹시 내가 잘못되면 내 조카를 책임질 수 있는 그런 사람을 찾다가 박영옥 여사에게 말을 했다가 합니다. 내가 아프거나 그러면 김종필을 찾아가라고 했거든요.
당시 말라리아에 걸렸었습니다, 박 여사가. 그래서 박 여사랑 같이 살던 친구가 대신 찾아가서 김종필 전 총리를 모셔와서 그때 간호를 하면서 사랑이 싹텄다, 그래서 지금까지 오게 된 아주 재미있는 인연이 있던 것 같습니다.
[앵커]
김종필 전 총리 같은 경우에는 남들도 한번 하기 힘들다는 국회의원을 9번 했고, 총재는 4번 그리고 국무총리는 2번을 했고요. 파란만장한 정치인생을 살았다고 이렇게 볼 수밖에 없는데요. 그런 이유 때문인지 빈소에는 전직 대통령을 포함해서 여야 정치인들이 많이 찾았습니다.
여기에서 오간 내용들이 많이 관심이 가는 부분들도 있는데 내각제에 대한 미련을 아직도 버리고 있지 못한 듯한 그런 분위기입니다. 김종필 전 총리는 내각제에 대해서 주장을 하고 있었죠?
[인터뷰]
그렇습니다. 특히 1993년 삼당이 합당을 할 때 김종필 전 총리는 내각제를 고리로 해서 합당한 거예요. 그런데 YS가 오케이를 해 놓고는 나중에 대통령도 이것을 엎었습니다.
신당을 창당을 하면서 JP을 내몬 거죠. 그때 YS가 모르고 했느냐면 JP는 2인자기 때문에 사고를 못칠 거다 이런 얘기를 했어요. 그런데 그 사고를 못 친다는 JP로 자민련을 만들어서 뒤통수를 치는 YS가 그때 자민련을 만들고 나서 지방선거에서 참패를 해서 JP에게 망신을 망했던 모습입니다.
그렇게 보는 거죠. 그러니까 한쪽에서는 영원한 2인자라는 소리를 들으면서 권모술수의 화신이라는 말을 들을 정도니까요. 사실 이분이 정계에 처음 들어올 때 30대 중반이었습니다. 그리고 국무총리를 할 때 40대 중반이었어요. 반평생이 아니고 거의 모든 평생을 정치하고 같이했다고 봐야 되겠죠.
[앵커]
김 전 총리가 빈소에서 내각제에 대한 소신을 이야기를 했습니다. 한번 들어보시죠.
[인터뷰:김종필, 전 국무총리]
"대통령 단임제 대통령 책임제 해가지고는 큰 일 못해, 시간이 부족해, 여건이 그렇게 안돼. 내각 책임제를 해야, 잘하면 17년도 (할 수 있어요.) 그러면 하고 싶은 것 다 할 수 있어요. 대처가 영국에 툭하면 데모들을 하고 파업을 하는거 고쳤잖아요? 12년하면서 고쳤죠. 그래서 내각 책임제 하면 소신껏 그런 일을 할 수 있을거다, 그렇게 했는데 한 사람도 동의하는 사람이 없어."
[앵커]
여야 정치인 그리고 이명박 전 대통령에게 내각제에 대한 소신을 밝히기는 했는데요. 정치인은 정치인인가 봅니다. 부인 빈소에서도 정치 얘기를 할 수밖에 없는 그런 현실이네요.
[인터뷰]
그렇습니다. 물론 또 다른 점은 일단 내각제, 대통령 책임제 둘 중 어떤 것이 더 좋냐, 우리나라의 현실에서 어떤 게 더 맞느냐 이거에 대한 논의는 다양할 수 있고 개인마다 다를 수 있는데요.
제가 주목하고 싶은 점은 굉장히 긴 시간 동안 본인의 분석에 따른 소신을 지켜오면서 내각제에 대한 그런 의견을 쭉 밝혀왔다는 점, 그 점은 좋은 것 같아요. 왜냐하면 그동안 우리 정치인들이 권력구조, 정치체제뿐만 아니라 다른 점에서도 자주 입장이 바뀌고 그런 걸 많이 봐왔는데 적어도 이런 내각책임제가 좋다라는 점에 대해서는 김종필 전 총리가 꾸준히 입장을 지켜오고 보였다는 점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시사하는 점이 정치인들에게 있다고 그렇게 생각이 듭니다.
[인터뷰]
그런데 재미있고 아이러니한 점은 김종필 전 총리가 우리나라의 내각제를 없앴습니다. 나중에 와서 내각제를 이렇게 주장을 하는데 DJ, YS 대통령을 만든 1등 공신이 JP 아니였습니까?
그런데 그때 항상 연결고리는 내각제였거든요, 대통령이 되면 내각제를 하자, 그런데 어떻게 보면 두 번 다 약속이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에 거기에 대한 한은 지금까지 계속 갖고 있는 것 같습니다.
[앵커]
앞서 말씀을 드린 대로 김기춘 비서실장도 빈소를 방문해서 김종필 전 총리와 대통령에 대해서 이야기가 오갔는데 상당히, 그런 의미있는 대화가 오갔습니다. 어떤 대화를 했는지 들어보시죠.
[인터뷰:김종필, 전 국무총리]
"그만 두셨지만 가끔 찾아가 뵙고 외롭지 않게 해주세요. 외로운 자리예요. 그게. 모셔보니까 어떤 인격입디까?"
[인터뷰: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
"제가, 감히. 마음은 최선을 다해서 모시려는 그런 마음이지만"
[인터뷰:김종필, 전 국무총리]
"아버지 어머니의 성격 좋은 것 반씩 다 차지해서 결단력도 있고, 판단력도 있고,"
[인터뷰: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
"애국심 그 자체라고 할까요? 나라 생각밖에 없는 분이십니다."
[앵커]
청와대 비서실장이니까 당연히 대통령 이야기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인데 대통령에 대해서 어떤 인격이냐고 물어본 김종필 전 총리를 의도가 특별히 있을까요?
[인터뷰]
아무래도 외롭다고 느껴지는 거겠죠. 그리고 가족간의 교류가 잘 없던 것 같습니다. 김종필 전 총리가 안타깝게 생각을 한 게 설날에 박지만 씨의 부인이 지금 쌍둥이를 임신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러면 청와대에 들어가서 위로도 해 주고 가족 간의 따뜻한 모습, 이런 걸 보여야 되는데 너무 자기관리에 철두철미하다 보니까 좀 그런 외로운 모습을 보이지 않았겠느냐, 그러니까 김기춘 비서실장한테도 당신이 비록 그만둔다고 하더라도 가끔씩 청와대에 들러서 외롭지 않게 돌아가는 얘기라든가 이런 것을 좀 들려줘라는 정치 9단의 조언인 것 같습니다.
[앵커]
한 가지 더 여쭤보면 이완구 국무총리도 빈소를 찾았는데 지역적인 이야기를 하기가 어렵기는 하지만 지역적으로는 관계가 있다고 봐야 되겠죠?
[인터뷰]
그럼요. 지금 김종필 총재를 구선으로 만들어 준 것이 충남 부여거든요. 이완구 총리의 지역구가 부여 청양입니다. 그래서 김종필 총리의 선산도 부여에 있고요. 묘자리도 같이 봐줬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부여에서 9선을 만들어줬는데 백제 옛 수도였는데 부여처럼 발전이 못 된 곳이 없습니다. 그러니까 경주와 부여하고 비교를 해 보면 경주는 상당히 발전을 했는데요.
9선을 만들어준 부여에 대해서는 별로 발전이 된 것이 없어요. 그래서 항상 JP가 나를 9선으로 만들어준 곳이 부여인데 부여 구민들에게 항상 미안하다는 그런 느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앵커]
한 가지만 더 짚어보면 이완구 총리가 빈소를 찾았는데 뼈있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어떤 이야기를 했는지 한번 들어볼 텐데요. 대통령에게 직언과 관련해서 이야기를 했습니다.
[인터뷰:김종필, 전 국무총리]
"(이완구 총리가)'대통령한테 직언하겠다. 잘 못한다. 잘한다. 비판하겠다' 이런 얘기하는데 그 소리 일체 입에 담지말라. 그런 얘기를 국무총리가 자꾸하고 그런 얘기를 했다고 국민들에게 자꾸 얘기하고...이제 입을 다물고 할 말이 있으면 조용히 건의 드려라. 그리고 밖에 나와서 내가 대통령한테 이런 얘기를 대통령한테 했다고 이렇게 자랑하지 말아라. 그렇게 한다고 했는데."
[앵커]
이명박 전 대통령에게 이완구 국무총리에게 한 이야기를 했습니다, 취재인이 지켜보는 가운데. 저 이야기만큼은 언론에 꼭 공개를 하고 싶다는 이런 의미 같아요.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인터뷰]
저것이 이제 JP의 2인자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JP는 2인자를 굉장히 오래해서 끝까지 2인자였는데 본인이 2인자 역할을 하면서 많이 당했어요, 수모도. 박정희 대통령 밑에서도 9번이나 가택수사를 당했어요.
쉽게 믿어지지 않았던 거죠. 그렇게 하면서도 계속 권력의 징벌이 있었던 것은 바로 저런 모습. 그러니까 1인자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고 국민들한테 두 사람의 1인자와 2인자의 부딪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아야 되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 겁니다.
12. 12쿠데타 이후에 노태우 사령관이 김종필 총리를 찾아갑니다. 내가 어떻게 했으면 좋겠느냐, 그래서 전두환 대통령의 심기를 건드리지 말고 그림자도 밟지 마라. 그래야 당신이 클 수 있다, 전두환 정도 7년 내내 노태우 전 대통령이 JP의 추모를 받아들여서 대통령이 됐어요. 그래서 2인자의 이완구 총리에게 이런 얘기를 하지 않았나 보고 있습니다.
[앵커]
고인의 죽음에 대해서 안타까운 면도 있지만 어쨌든 저희가 주목했던 점은 김종필 전 총리, 현대정치사에서 2인자로서 주도를 했던 그런 분으로서 전, 현직 대통령에게 전하는 훈수정치라고 해야 될까요, 이런 게 의미가 있지 않을까 싶어서 짚어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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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필 전 총리의 부인이자 박근혜 대통령의 사촌언니인 박영옥 여사가 지난 21일 향년 86세를 일기로 별세했습니다. 빈소는 휴일인데도 보기 드물게 여야 정치권 인사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아 마치 현대정치사의 축소판을 보는 듯 했는데요.
현대사의 영원한 2인자! 그러나 부부금실 만큼은 그 누구 못지않았던 김 전 총리의 조문객과의 대화 내용, 먼저 들어보고 이야기를 나누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인터뷰:김종필, 전 국무총리]
"65년 같이 살면서 한 번도 큰 병 앓은 일이 없었어요. 아주 못된 병에 걸려서. 그런데 아주 편안하게 숨을 거뒀어요…이제 나도 갈 때니까 몇 발짝 앞서서 간 거지.난 마누라하고 같은 자리에 눕고 싶어서 국립묘지 선택은 안했다. (가족묘지) 거기에 나하고 같이 (아내가) 나란히 눕게 돼"
이렇게 들으신 대로 김 전 총리와 박 여사 사이는 상당히 금실이 좋았던 것 같습니다.
[기자]
네. 21일 오후 8시43분께 돌아가셨는데요. 돌아가실 때 의료진이 임종이 가까웠다고 알려지자 김 전 총리는 모두 물러가달라고 얘기를 하면서 마지막까지 임종을 지켰다고 합니다. 부인에게 마지막으로 입맞춤한 이후에 부인이 숨졌고 그 이후에도 그 자리를 계속 지키면서 64년 전이죠, 선물했던 반지를 목걸이에 걸어서 부인에게 걸어준 뒤에 지금까지 일화 등을 생각하시면서 눈물을 흘리면서 허무하다, 앞으로 나도 곧 갈 거다, 외로워서 일찍 가야겠다는 말씀을 남겼다고 합니다.
[앵커]
64년 동안 두 사람이 동거동락을 했는데 정치적 행보를 떠나서 우리나라의 원로의 어떤 사별, 이런 모습은 상당히 감동을 주기에는 충분하지 않았나 이런 생각이 드는데요. 이 두 분의 지극한 금술, 김 전 총리가 미리 세워둔 묘비 비문에도 그대로 드러난다고 합니다.
일부를 살펴보면 수다한 물음에 소이부답 하던 자, 내조의 덕을 베풀어준 영세반려와함께 이곳에 누웠노라라는 비문이 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내조를 본다면 김종필 전 총리가 이런 저런 이야기를 자꾸 해도 웃으면서 대답을 안 했다, 그만큼 우리나라의 정치의 한 획을 그은 남편에 대해서 부인인데고 불구하고 아꼈다고 볼 수 있겠군요.
[인터뷰]
그렇습니다. 끝까지 한 60여 년을 함께 했기 때문에 특이한 것은 김종필 전 총리 같으면 나머지 양김과 더불어 한국의 정치의 쥐락펴락을 하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나머지 두 분은 여성 문제 스캔들 문제가 있었어요. JP는 그런 스캔들이 나오지 않을 정도로 부인하고만 쭉 부부생활을 하면서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줬었습니다.
[앵커]
앞서 말씀을 드린 대로 박영옥 여사는 박근혜 대통령의 사촌언니인데 김기춘 비서실장편으로 조화를 보내기는 했습니다마는 직접 조문을 아직까지는 하고 있지 않습니다.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요?
[인터뷰]
저는 가셔야 한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래도 사촌언니 아닙니까? 그리고 국민들은 그러한 박근혜 대통령의 어떤 인간적인 모습을 보고 싶어하실 것 같습니다. 저는 박근혜 대통령께서 아마 조문을 직접 하시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앵커]
조문을 할 것 같다고 말씀을 하셨는데요. 어쨌든 두 분 중매를 한 것도 박정희 대통령 아니겠습니까? 어떤 사연이 있죠?
[인터뷰]
실제로는 사실 그 당시에 화면에도 나옵니다마는 조카가 어떠냐, 이렇게 먼저 박정희 대통령이 제안을 했다고 하는데요. 김종필 전 총리도 당시에 당사자가, 본인만 좋다면 기꺼이 맞이하겠다고 했고 그 후에도 실제로 정말 인연이 돼서 부부의 연을 맺었는데요. 그 후로 65년 동안 이렇게 정말 해로를 하고 이렇게 마지막까지 따뜻한 모습을 보여주는 걸 보니까 저도 많은 것을 느끼게 되고 본받을 점이 많은 그런 부부가 아닌가 생각이 듭니다.
[인터뷰]
박정희 대통령이 내조카가 어떠냐고 말하기 전에 두 사람이 사실 미리 만나고 있었거든요. 그러니까 박 대통령이 당시에 한국전쟁이 났을 때 혹시 내가 잘못되면 내 조카를 책임질 수 있는 그런 사람을 찾다가 박영옥 여사에게 말을 했다가 합니다. 내가 아프거나 그러면 김종필을 찾아가라고 했거든요.
당시 말라리아에 걸렸었습니다, 박 여사가. 그래서 박 여사랑 같이 살던 친구가 대신 찾아가서 김종필 전 총리를 모셔와서 그때 간호를 하면서 사랑이 싹텄다, 그래서 지금까지 오게 된 아주 재미있는 인연이 있던 것 같습니다.
[앵커]
김종필 전 총리 같은 경우에는 남들도 한번 하기 힘들다는 국회의원을 9번 했고, 총재는 4번 그리고 국무총리는 2번을 했고요. 파란만장한 정치인생을 살았다고 이렇게 볼 수밖에 없는데요. 그런 이유 때문인지 빈소에는 전직 대통령을 포함해서 여야 정치인들이 많이 찾았습니다.
여기에서 오간 내용들이 많이 관심이 가는 부분들도 있는데 내각제에 대한 미련을 아직도 버리고 있지 못한 듯한 그런 분위기입니다. 김종필 전 총리는 내각제에 대해서 주장을 하고 있었죠?
[인터뷰]
그렇습니다. 특히 1993년 삼당이 합당을 할 때 김종필 전 총리는 내각제를 고리로 해서 합당한 거예요. 그런데 YS가 오케이를 해 놓고는 나중에 대통령도 이것을 엎었습니다.
신당을 창당을 하면서 JP을 내몬 거죠. 그때 YS가 모르고 했느냐면 JP는 2인자기 때문에 사고를 못칠 거다 이런 얘기를 했어요. 그런데 그 사고를 못 친다는 JP로 자민련을 만들어서 뒤통수를 치는 YS가 그때 자민련을 만들고 나서 지방선거에서 참패를 해서 JP에게 망신을 망했던 모습입니다.
그렇게 보는 거죠. 그러니까 한쪽에서는 영원한 2인자라는 소리를 들으면서 권모술수의 화신이라는 말을 들을 정도니까요. 사실 이분이 정계에 처음 들어올 때 30대 중반이었습니다. 그리고 국무총리를 할 때 40대 중반이었어요. 반평생이 아니고 거의 모든 평생을 정치하고 같이했다고 봐야 되겠죠.
[앵커]
김 전 총리가 빈소에서 내각제에 대한 소신을 이야기를 했습니다. 한번 들어보시죠.
[인터뷰:김종필, 전 국무총리]
"대통령 단임제 대통령 책임제 해가지고는 큰 일 못해, 시간이 부족해, 여건이 그렇게 안돼. 내각 책임제를 해야, 잘하면 17년도 (할 수 있어요.) 그러면 하고 싶은 것 다 할 수 있어요. 대처가 영국에 툭하면 데모들을 하고 파업을 하는거 고쳤잖아요? 12년하면서 고쳤죠. 그래서 내각 책임제 하면 소신껏 그런 일을 할 수 있을거다, 그렇게 했는데 한 사람도 동의하는 사람이 없어."
[앵커]
여야 정치인 그리고 이명박 전 대통령에게 내각제에 대한 소신을 밝히기는 했는데요. 정치인은 정치인인가 봅니다. 부인 빈소에서도 정치 얘기를 할 수밖에 없는 그런 현실이네요.
[인터뷰]
그렇습니다. 물론 또 다른 점은 일단 내각제, 대통령 책임제 둘 중 어떤 것이 더 좋냐, 우리나라의 현실에서 어떤 게 더 맞느냐 이거에 대한 논의는 다양할 수 있고 개인마다 다를 수 있는데요.
제가 주목하고 싶은 점은 굉장히 긴 시간 동안 본인의 분석에 따른 소신을 지켜오면서 내각제에 대한 그런 의견을 쭉 밝혀왔다는 점, 그 점은 좋은 것 같아요. 왜냐하면 그동안 우리 정치인들이 권력구조, 정치체제뿐만 아니라 다른 점에서도 자주 입장이 바뀌고 그런 걸 많이 봐왔는데 적어도 이런 내각책임제가 좋다라는 점에 대해서는 김종필 전 총리가 꾸준히 입장을 지켜오고 보였다는 점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시사하는 점이 정치인들에게 있다고 그렇게 생각이 듭니다.
[인터뷰]
그런데 재미있고 아이러니한 점은 김종필 전 총리가 우리나라의 내각제를 없앴습니다. 나중에 와서 내각제를 이렇게 주장을 하는데 DJ, YS 대통령을 만든 1등 공신이 JP 아니였습니까?
그런데 그때 항상 연결고리는 내각제였거든요, 대통령이 되면 내각제를 하자, 그런데 어떻게 보면 두 번 다 약속이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에 거기에 대한 한은 지금까지 계속 갖고 있는 것 같습니다.
[앵커]
앞서 말씀을 드린 대로 김기춘 비서실장도 빈소를 방문해서 김종필 전 총리와 대통령에 대해서 이야기가 오갔는데 상당히, 그런 의미있는 대화가 오갔습니다. 어떤 대화를 했는지 들어보시죠.
[인터뷰:김종필, 전 국무총리]
"그만 두셨지만 가끔 찾아가 뵙고 외롭지 않게 해주세요. 외로운 자리예요. 그게. 모셔보니까 어떤 인격입디까?"
[인터뷰: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
"제가, 감히. 마음은 최선을 다해서 모시려는 그런 마음이지만"
[인터뷰:김종필, 전 국무총리]
"아버지 어머니의 성격 좋은 것 반씩 다 차지해서 결단력도 있고, 판단력도 있고,"
[인터뷰: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
"애국심 그 자체라고 할까요? 나라 생각밖에 없는 분이십니다."
[앵커]
청와대 비서실장이니까 당연히 대통령 이야기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인데 대통령에 대해서 어떤 인격이냐고 물어본 김종필 전 총리를 의도가 특별히 있을까요?
[인터뷰]
아무래도 외롭다고 느껴지는 거겠죠. 그리고 가족간의 교류가 잘 없던 것 같습니다. 김종필 전 총리가 안타깝게 생각을 한 게 설날에 박지만 씨의 부인이 지금 쌍둥이를 임신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러면 청와대에 들어가서 위로도 해 주고 가족 간의 따뜻한 모습, 이런 걸 보여야 되는데 너무 자기관리에 철두철미하다 보니까 좀 그런 외로운 모습을 보이지 않았겠느냐, 그러니까 김기춘 비서실장한테도 당신이 비록 그만둔다고 하더라도 가끔씩 청와대에 들러서 외롭지 않게 돌아가는 얘기라든가 이런 것을 좀 들려줘라는 정치 9단의 조언인 것 같습니다.
[앵커]
한 가지 더 여쭤보면 이완구 국무총리도 빈소를 찾았는데 지역적인 이야기를 하기가 어렵기는 하지만 지역적으로는 관계가 있다고 봐야 되겠죠?
[인터뷰]
그럼요. 지금 김종필 총재를 구선으로 만들어 준 것이 충남 부여거든요. 이완구 총리의 지역구가 부여 청양입니다. 그래서 김종필 총리의 선산도 부여에 있고요. 묘자리도 같이 봐줬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부여에서 9선을 만들어줬는데 백제 옛 수도였는데 부여처럼 발전이 못 된 곳이 없습니다. 그러니까 경주와 부여하고 비교를 해 보면 경주는 상당히 발전을 했는데요.
9선을 만들어준 부여에 대해서는 별로 발전이 된 것이 없어요. 그래서 항상 JP가 나를 9선으로 만들어준 곳이 부여인데 부여 구민들에게 항상 미안하다는 그런 느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앵커]
한 가지만 더 짚어보면 이완구 총리가 빈소를 찾았는데 뼈있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어떤 이야기를 했는지 한번 들어볼 텐데요. 대통령에게 직언과 관련해서 이야기를 했습니다.
[인터뷰:김종필, 전 국무총리]
"(이완구 총리가)'대통령한테 직언하겠다. 잘 못한다. 잘한다. 비판하겠다' 이런 얘기하는데 그 소리 일체 입에 담지말라. 그런 얘기를 국무총리가 자꾸하고 그런 얘기를 했다고 국민들에게 자꾸 얘기하고...이제 입을 다물고 할 말이 있으면 조용히 건의 드려라. 그리고 밖에 나와서 내가 대통령한테 이런 얘기를 대통령한테 했다고 이렇게 자랑하지 말아라. 그렇게 한다고 했는데."
[앵커]
이명박 전 대통령에게 이완구 국무총리에게 한 이야기를 했습니다, 취재인이 지켜보는 가운데. 저 이야기만큼은 언론에 꼭 공개를 하고 싶다는 이런 의미 같아요.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인터뷰]
저것이 이제 JP의 2인자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JP는 2인자를 굉장히 오래해서 끝까지 2인자였는데 본인이 2인자 역할을 하면서 많이 당했어요, 수모도. 박정희 대통령 밑에서도 9번이나 가택수사를 당했어요.
쉽게 믿어지지 않았던 거죠. 그렇게 하면서도 계속 권력의 징벌이 있었던 것은 바로 저런 모습. 그러니까 1인자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고 국민들한테 두 사람의 1인자와 2인자의 부딪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아야 되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 겁니다.
12. 12쿠데타 이후에 노태우 사령관이 김종필 총리를 찾아갑니다. 내가 어떻게 했으면 좋겠느냐, 그래서 전두환 대통령의 심기를 건드리지 말고 그림자도 밟지 마라. 그래야 당신이 클 수 있다, 전두환 정도 7년 내내 노태우 전 대통령이 JP의 추모를 받아들여서 대통령이 됐어요. 그래서 2인자의 이완구 총리에게 이런 얘기를 하지 않았나 보고 있습니다.
[앵커]
고인의 죽음에 대해서 안타까운 면도 있지만 어쨌든 저희가 주목했던 점은 김종필 전 총리, 현대정치사에서 2인자로서 주도를 했던 그런 분으로서 전, 현직 대통령에게 전하는 훈수정치라고 해야 될까요, 이런 게 의미가 있지 않을까 싶어서 짚어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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