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P 애증의 정치사, 빈소에서 풀다

JP 애증의 정치사, 빈소에서 풀다

2015.02.24. 오후 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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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박근혜 대통령이 어제 김종필 전 국무총리의 부인이자 사촌언니인 고 박영옥 여사의 빈소를 찾아 조문했습니다.

박 대통령은 고인의 빈소를 조문한 뒤 김 전 총리와 유족들에게 위로의 뜻을 전했는데요.

이 자리에서 박대통령은 정성을 다해 보내는 모습에 감동을 받았다 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과 고 박영옥 여사는 사촌 형제 지간인데요.

특히 박정희 전 대통령이 친형을 특히 잘 따랐고 조카인 고 박영옥 여사를 무척이나 아꼈다고 합니다.

그래서 김종필 전 국무총리와 자신의 조카와 이어줄 정도로 두 사람에 대해 각별했다고 합니다.

가족관계로 보면, 김종필 전 총리는 박 대통령의 사촌 형부가 되는 셈입니다.

하지만 두 사람 사이에, 좋은일만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박근혜 대통령과 김종필 전 총재는 정치적으로 애증의 관계를 맺기도 했었죠.

두 사람의 정치사엔 어떤 애증의 역사가 있었던 걸까요?

한번 짚어보겠습니다.

사촌 형부 김종필 전 총재는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의 정치적 동지였지만 박근혜 대통령이 영부인 역할을 했던 집권 후반기에는 내내 아버지와 껄끄러운 관계였습니다.

JP는 1963년 자의반 타의반이라며 외유를 떠난 이래 내내 견제에 시달린다고 생각했고, 박정희 대통령은 '종필이가 어차피 다음 대통령인데 자꾸 욕심을 낸다'며
못마땅해 했다고 전해지기도 합니다.

박 대통령이 세상을 떠나고 군부가 집권한 뒤 두 사람은 모두 야인이 됐습니다.

또 두 사람에게는 어두운 시간들이 지나갔지만 1987년 민주화 이후 운명이 엇갈리게 되죠.

박정희의 조카사위 JP는 3김의 복귀를 통해 87년 체제의 한 축이 됩니다.

박정희 대통령의 공화당의 후신이라는 의미로 신민주공화당을 창당했지만 당시 박근혜 대통령은 합류를 거절하고 칩거를 계속합니다.

그리고 JP는 1990년 3당 합당으로 여당으로 편입됩니다.

생전 박정희 대통령의 총애를 받았지만 집권 후 박대통령 시대를 인정하는데 인색했던 육사 후배 노태우 대통령, 그리고 박정희의 정적 YS와 손을 잡은 것입니다.

그러나 3당 합당의 승자는 결국 YS였습니다. 1992년 대선에서 정권을 잡은 YS와의 갈등으로 JP는 1995년 민자당 총재직을 던지고 충청권 야당 자민련을 창당합니다.

그리고 다음해인 1996년 박근혜는 자민련의 총선 공천 제의를 다시 거부합니다.

그런데 어쩌면 JP가 진짜 서운했던 건 1997년이었을지도 모릅니다.

DJP 연합으로 공동정권 창출에 정치적 명운을 걸었던 JP는 18년째 칩거 중인 사촌 처제에게 다시 러브콜을 보내지만 사촌 처제는 오히려 맞수인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 지지를 선언한 것입니다.

2007년 마침내 사촌 처제가 대권에 도전하지만 JP는 이명박 후보의 손을 들어줍니다.

2010년 세종시 수정안을 놓고 이명박-박근혜 두 사람이 맞붙었을 때도 JP는 이명박 대통령의 편을 들어주며 갈등은 최고조로 치닿았을지도 모릅니다.

[인터뷰:김성수, 시사평론가]
"많은 사람들이 그런 얘기를 하는데 김종필 전 자민련 총재와 박근혜 대통령 사이의 관계가 안 좋은 것 아니냐 그런 이야기를 하시는데 가장 대표적인 거는 2007년에 대선 당시에 이명박 후보를 밀었던 그런 전례 때문에 그런 것 같아요. 그리고 또 처음에 정치를 시작할 때도 사실은 정치에 대한 권유는 87년도에 신민주공화당 만들면서 김종필 총재가 먼저 요청을 하기는 했지만 나중에 또 독자적으로 정치를 하겠다고 나설 때는 부정적인 코멘트를 해서 계속 남기도 했었는데 굉장히 긴장관계가 있는 거 아니냐, 이렇게 봤었는데 기본적으로 대통령에 당선되고 난 다음에 대부분의 문제들이 풀렸다고 볼 수 있기 때문에 당연히 조문할 수 있는 자리였고 분위기도 분위기도 굉장히 좋은 것으로 보여졌습니다."

이렇듯 과거 정치적 애증의 역사를 건너온 두 사람이지만, 박 대통령이 사촌형부인 김종필 전 총리의 두 손을 잡은 모습과 내실 밖으로 나오지 않던 김전 총리가 상주 자리까지 나오고 엘리베이터 입구까지 나가 말없이 눈물을 흘리는 모습에서 그 동안의 응어리가 풀리는 것은 아닌가 예측해 볼 수 있습니다.

두 사람의 정치적 애증에서도 보았듯 대한민국 근대 정치사의 빼놓을 수 없는 것은 바로 삼김 이라는 이름입니다.

김종필·김영삼·김대중 일명 '3김 시대'는 한국 정치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상징적인 표현이죠.

고 박영옥 여사의 빈소에서는 삼김시대의 주역이었던 인물들이 서로 다른 입장에서 노년을 맞이한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먼저 김대중 전 대통령은 이미 고인이 되어 부인인 이희호 여사가 박지원 의원과 함께 빈소를 찾았는데요, 그 모습 먼저 보시죠.

[인터뷰:이희호, 김대중 전 대통령 부인]
"(박영옥 여사와) 선거때는 같이 다니기도 했고…."

[인터뷰:김종필, 전 국무총리]
"건강하셔야 돼요 가신 어른 분까지 더 오래 사셔야 돼요."

삼김시절, 남편을 내조하며 함께 선거운동을 했던 고 박영옥 여사와 이희호 여사의 인연도 참으로 각별해 보입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현재 건강이 좋지 않아 바깥 활동을 하지 못하는 상황인데요.

대신 차남 현철 씨가 조문을 하기도 했습니다.

한때는 정치적 동지 혹은 적이었던 관계였지만 지금은 힘없는 노인이 된 두 사람, JP는 YS를 걱정하며 현철씨에게 와병중인 아버지에게 더 잘해드리라고 부탁하기도 했습니다.

DJP 연대의 위력 탓에 1997년 대선의 패배자가 됐던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도 10여 분간 빈소에 머물며 김종필 전 총재를 위로했는데요.

[인터뷰:김종필, 전 국무총리]
"건강은 뭐 더 나빠지지도 좋아지지도 않고…. 그렇게 두드려 맞고 이정도 사는 것도 괜찮은 거지요."

[인터뷰:이회창, 전 자유선진당 총재]
"뵙기는 참 강건해 보입니다. 정치에서 만나뵙고 여러가지 있었지만 정치라는 것은 지나면 다 남가일몽이지."

과거 두 사람의 관계도 애증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요.

일예로 2002년 당시 대선에서 김종필 전 총리는 이회창 전 총재를 지지하지 않았습니다.

이회창 전 총재는 빈소를 나서며 남가일몽이라는 말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남가일몽, 인생의 덧없음을 말하는 고사성어인데요.

김종필 전 총리가 조문객들을 만나는 자리에서 정치는 허업이라고 말한 것과 비슷한 맥락일 겁니다.

흔히들 과거는 현재를 비추는 거울이라고 하죠?

고 박영옥 여사의 빈소 모습이 이토록 주목을 받고 있는 이유 역시 빈소를 찾는 조문객들의 모습에서 현재와 미래를 볼 수 있기 때문일 겁니다.

파란만장한 삼김의 역사와 애증의 정치사는 끝났지만 아직도 우리 정치가 풀어야 할 과제는 산너머 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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