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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주도의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일명 사드(THAAD, Terminal High Altitude Area Defense)와 중국이 주도하는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Asian Infrastructure Investment Bank)이 동북아 최대 현안으로 급부상했습니다.
적어도 한반도에선 국방과 금융이라는 전혀 다른 조건이 서로 엉키듯 맞붙으면서, G2인 미국과 중국의 자존심 대결로까지 번지는 모양새입니다.
우선 AIIB는 영국을 비롯한 서방 주요국들이 가입을 속속 밝힘으로써 중국이 승기를 잡아가고 있기는 한데, 이 싸움의 한가운데 있는 우리로선 여간 곤혹스러운 게 아닙니다.
지정학적 위치를 애초에 잘못 고른 선조들을 탓해야 할까요? 매번 우리 땅을 강대국들의 각축장으로 내줘버린 스스로를 나무라야 할까요?
이유야 어찌 됐든 지금 우린 또 다시 토끼가 되어버렸습니다. 눈앞에서 맹수 두 마리가 서로 먹겠다고 으르렁대고 있는 가운데 말입니다.
군웅이 할거하던 춘추시대(BC 770~ BC 403). 패권을 두고 다투던 두 강대국 진(晉)과 초(楚). 그 사이에 끼어 우리 못지않게 수없이 토끼가 되었던 국가인 정(鄭)나라는 어느 쪽에 붙는 게 유리한지 항상 고민해야 하는 처지였습니다.
그런 정나라에 다행스럽게도 작은 나라가 나아가야할 길을 슬기롭게 제시해 준 이가 있었으니, 정자산(鄭子産, 정나라 재상 BC 547~BC 522)이란 인물입니다. 자산이 정치가로 활동하던 때는 진과 초가 오랜 전쟁을 휴전하고, 과점체제로 각자의 영향력을 키우던 시기였습니다. 창칼로 싸우던 전쟁이 정치로 대치된 것입니다.
원래 열전보다 냉전이 복잡한 법. 눈에 보이질 않으니, 이합집산의 셈이 더욱 까다로워졌습니다. 공자(孔子, BC 551~ BC 479)를 비롯한 수많은 사상가, 정치가들이 삶의 지표로 삼았던 자산은 이러한 혼란 속에서 조국 정나라를 강대국의 표적이 아닌, 오히려 대우 받는 나라로 만들었습니다.
그 비결은 무엇이었을까요?
그가 재상이 되어 가장 먼저 한 일은 내정을 굳건히 하는 것이었습니다. 내부의 부화뇌동으로 외교를 망치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였죠.
또한 강대국에 예는 갖추되, 그들이 내정에 간섭하지 못하도록 했습니다. 그러면서 주변국과 합심하여 국제적 기준을 만들어냈죠. 이는 패권국이라도 무시하지 못했습니다. 국제정세가 힘의 논리에서 정치의 논리로 이동한 것입니다.
자산은 이론가이자 행동가였습니다. 대개의 위정자들이 시시각각 변하는 현실에 우왕좌왕 합니다. 현실과 이론의 괴리 때문이죠.
그렇다고 이론을 버리면 어떤 결과가 올까요? 정책이 임시방편으로 흐르게 됩니다. 임시방편의 결과는 거의 예외 없이 외침과 굴복으로 귀결됐죠. 수많은 역사가 이를 방증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시시각각 변하는 현실에 이론을 어떻게 적용시켜야 할까요?
예리한 행동가인 자산은 전략적 목표를 명확히 세웠습니다. 약소국의 경우 대외전략의 본질은 국가의 생존입니다. 강대국의 침략은 국가의 생존을 위협하죠. 때문에 제1 목표는 침략을 받지 않는 것입니다. 그 다음은 강대국의 착취를 최대한 줄이는 것이겠죠.
최종 목표는 뭐였을까요? 기존 구조에 조금씩 파열을 내는 것이었습니다. 강대국이 되진 못하더라도 최소한 강소국이 되어 그 안에 새 판을 그리는 것. '호랑이와 곰 같은 나라'가 함부로 할 수 없는 '고슴도치와 같은 나라'를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지금의 한국은 어떨까요? 정나라와 매우 비슷한 조건이긴 한데, 국가 생존을 걱정할 정도로 약소국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고 기존 국제질서에 파열을 낼 정도의 힘이 있는 것도 아니죠. 이 때문에 우린 여전히 선택을 강요받고 있습니다.
그럼 우리의 선택은 어느 쪽이 돼야 할까요? 자산은 선택이 아닌, 설득을 하라고 말합니다.
미국과 중국이 내건 선택지를 고르는 것이 아닌, 우리에게 최선인 것을 그들에게 다시 설득하는 작업. 그것이 '고슴도치의 나라'를 지향했던 자산이 우리에게 해주고픈 말일 것입니다.
이상엽 [sylee24@yt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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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어도 한반도에선 국방과 금융이라는 전혀 다른 조건이 서로 엉키듯 맞붙으면서, G2인 미국과 중국의 자존심 대결로까지 번지는 모양새입니다.
우선 AIIB는 영국을 비롯한 서방 주요국들이 가입을 속속 밝힘으로써 중국이 승기를 잡아가고 있기는 한데, 이 싸움의 한가운데 있는 우리로선 여간 곤혹스러운 게 아닙니다.
지정학적 위치를 애초에 잘못 고른 선조들을 탓해야 할까요? 매번 우리 땅을 강대국들의 각축장으로 내줘버린 스스로를 나무라야 할까요?
이유야 어찌 됐든 지금 우린 또 다시 토끼가 되어버렸습니다. 눈앞에서 맹수 두 마리가 서로 먹겠다고 으르렁대고 있는 가운데 말입니다.
군웅이 할거하던 춘추시대(BC 770~ BC 403). 패권을 두고 다투던 두 강대국 진(晉)과 초(楚). 그 사이에 끼어 우리 못지않게 수없이 토끼가 되었던 국가인 정(鄭)나라는 어느 쪽에 붙는 게 유리한지 항상 고민해야 하는 처지였습니다.
그런 정나라에 다행스럽게도 작은 나라가 나아가야할 길을 슬기롭게 제시해 준 이가 있었으니, 정자산(鄭子産, 정나라 재상 BC 547~BC 522)이란 인물입니다. 자산이 정치가로 활동하던 때는 진과 초가 오랜 전쟁을 휴전하고, 과점체제로 각자의 영향력을 키우던 시기였습니다. 창칼로 싸우던 전쟁이 정치로 대치된 것입니다.
원래 열전보다 냉전이 복잡한 법. 눈에 보이질 않으니, 이합집산의 셈이 더욱 까다로워졌습니다. 공자(孔子, BC 551~ BC 479)를 비롯한 수많은 사상가, 정치가들이 삶의 지표로 삼았던 자산은 이러한 혼란 속에서 조국 정나라를 강대국의 표적이 아닌, 오히려 대우 받는 나라로 만들었습니다.
그 비결은 무엇이었을까요?
그가 재상이 되어 가장 먼저 한 일은 내정을 굳건히 하는 것이었습니다. 내부의 부화뇌동으로 외교를 망치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였죠.
또한 강대국에 예는 갖추되, 그들이 내정에 간섭하지 못하도록 했습니다. 그러면서 주변국과 합심하여 국제적 기준을 만들어냈죠. 이는 패권국이라도 무시하지 못했습니다. 국제정세가 힘의 논리에서 정치의 논리로 이동한 것입니다.
자산은 이론가이자 행동가였습니다. 대개의 위정자들이 시시각각 변하는 현실에 우왕좌왕 합니다. 현실과 이론의 괴리 때문이죠.
그렇다고 이론을 버리면 어떤 결과가 올까요? 정책이 임시방편으로 흐르게 됩니다. 임시방편의 결과는 거의 예외 없이 외침과 굴복으로 귀결됐죠. 수많은 역사가 이를 방증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시시각각 변하는 현실에 이론을 어떻게 적용시켜야 할까요?
예리한 행동가인 자산은 전략적 목표를 명확히 세웠습니다. 약소국의 경우 대외전략의 본질은 국가의 생존입니다. 강대국의 침략은 국가의 생존을 위협하죠. 때문에 제1 목표는 침략을 받지 않는 것입니다. 그 다음은 강대국의 착취를 최대한 줄이는 것이겠죠.
최종 목표는 뭐였을까요? 기존 구조에 조금씩 파열을 내는 것이었습니다. 강대국이 되진 못하더라도 최소한 강소국이 되어 그 안에 새 판을 그리는 것. '호랑이와 곰 같은 나라'가 함부로 할 수 없는 '고슴도치와 같은 나라'를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지금의 한국은 어떨까요? 정나라와 매우 비슷한 조건이긴 한데, 국가 생존을 걱정할 정도로 약소국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고 기존 국제질서에 파열을 낼 정도의 힘이 있는 것도 아니죠. 이 때문에 우린 여전히 선택을 강요받고 있습니다.
그럼 우리의 선택은 어느 쪽이 돼야 할까요? 자산은 선택이 아닌, 설득을 하라고 말합니다.
미국과 중국이 내건 선택지를 고르는 것이 아닌, 우리에게 최선인 것을 그들에게 다시 설득하는 작업. 그것이 '고슴도치의 나라'를 지향했던 자산이 우리에게 해주고픈 말일 것입니다.
이상엽 [sylee24@yt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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