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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윤일 / 천안함 참전 장병
[앵커]
북한의 천안함 폭침으로 전사한 우리 장병들이 46명입니다. 46용사라고 하죠. 그리고 58명의 전우들이 있습니다. 지금 생존해 있는 천안함 장병들입니다. 나라를 위해서 목숨을 걸었었고 또 지금도 많은 고통을 겪고 있는 장병들입니다. 이 가운데 오늘 저희가 김윤일 씨를 전화로 연결했습니다. 안녕하십니까?
[인터뷰]
안녕하십니까.
[앵커]
전화 연결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인터뷰]
감사합니다.
[앵커]
그 당시, 6년 전에 피격을 당했을 때 그때 어떤 직책을 맡고 계셨고 그 당시에 상황이 어땠는지를 말씀 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인터뷰]
저는 그때 상병이었고요. 전탐병이라는 직책에서 레이더를 보고 있었습니다.
[앵커]
그러다가 어떤 상황이었습니까?
[인터뷰]
상황은 그냥 갑자기 폭음과 함께 암전이 돼서 아무것도 안 보이는 상황이었고요. 자세한 것은 지금까지 저희 인터뷰한 게 많이 있으니까 참고하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앵커]
지금은 직장을 잘 다니고 계시고요?
[인터뷰]
네, 잘 다니고 있습니다.
[앵커]
오늘 서해수호의 날이 처음으로 제정됐고 대통령이 기념식에 참석을 했는데 제정됐다는 소식을 듣고 어떤 생각을 하셨습니까?
[인터뷰]
그래도 아직까지 저희 천안함을 포함해서 여러 서해를 지키다가 돌아가신 장병들을 기억해 주는 게 나라 차원에서 고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앵커]
그때 그 전우들, 장병들을 지금도 가끔 만나시나요?
[인터뷰]
네, 만납니다. 주기적으로 만나고 있습니다.
[앵커]
주기적으로 1년에 한두 번씩 만나시나요?
[인터뷰]
네.
[앵커]
만나시면 서로 위로가 됩니까?
[인터뷰]
그럼요.
[앵커]
어떤 얘기들을 나누시나요?
[인터뷰]
살아가는 얘기들도 하고 앞으로에 대한 얘기도 하고 이것저것 많은 얘기를 하고 있습니다. 힘들었을 때 서로 의지가 되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앵커]
모임 이름이 천우회라면서요?
[인터뷰]
네, 맞습니다.
[앵커]
6년이 지나긴 했습니다마는 아직도 그때 일이 생각이 많이 나십니까, 어떻습니까?
[인터뷰]
1년 내내 계속 떠나지 않는다고 하면 저는 개인적으로 거짓말일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데 드문드문 갑자기 사로잡힐 때는 있죠.
[앵커]
전우들 만나서 얘기해보면 어떻습니까? 그분들도 좀 비슷하게 그런 것들이 생각이 난다고 하시던가요?
[인터뷰]
그러시는 분들도 당연히 있으시죠.
[앵커]
최근의 조사를 스물 두 분 대상으로 해 보니까 그 중 열여섯 분은 최근 6개월 이내에 외상후 스트레스 증후군을 아직도 겪고 있다고 답을 하셨더라고요. 그리고 극단적인 것을 생각한 적이 있다는 분도 그중에 절반 가까이 10명이나 됐고요. 자해를 한 적이 있다는 분도 5분이 있고 어떤 분들은 전등이나 TV를 켜야 잠을 주무실 수 있다는 분도 있고 천둥번개치면 외출 못하시는 분들도 있다고 하는데 실제로 주위에 가까운 분들 중에도 이런 고통을 겪고 있는 분들이 있던가요?
[인터뷰]
네, 계십니다.
[앵커]
김윤일 씨는 이 정도는 아니시고요?
[인터뷰]
저는 그래도 운이 좋은 편이라서 그렇게까지 심하게 겪고 있지는 않습니다.
[앵커]
이런 것들을 좀 국가에서 또 사회에서 도와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이런 아직도 겪고 있는 고통이나 피해들을 줄이기 위해서요?
[인터뷰]
물론입니다.
[앵커]
어떤 도움을 드리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하십니까?
[인터뷰]
제가 생각할 때 가장 큰 도움이 될 수 있는 길은 돌아가신 저희 전우분들이나 살아 있는 참전장병들에 대한 인식이 바뀌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앵커]
지금은 인식이 어떤 것 같고 어떻게 바뀌었으면 좋겠습니까?
[인터뷰]
그렇게 생각해 주시지 않는 분들도 계신데 저희를 아직까지 패잔병이라고 매도하는 분위기가 아직 있는 게 사실이거든요. 그런 분위기에서 저희가 사회를 대하다 보면 아무래도 그렇게 크지 않은 상처도 커질 수 있고 금방 아물 수 있는 상처도 아무는 데 오래걸리는 경우가 생길 수 있습니다. 주위에서 조금만 더 따뜻하게 봐주신다면 저희가 상처를 극복하는 데 더 빨리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앵커]
천안함에 당시에 근무했었다고 하면 주위 사람들이 어떤 얘기들을 제일 많이 하던가요?
[인터뷰]
원래 제 지인들이 아니면 딱히 얘기를 하지 않는 편이기는 한데 신기해 하시는 분들도 있고 안타까워 하시는 분들도 있고 여러 가지 경우가 있습니다.
[앵커]
그런데 패잔병이다라고 그렇게 사람들이 인식을 한다고 느끼시는군요?
[인터뷰]
네, 없지 않죠.
[앵커]
일부입니다마는 아직도 그걸 못 믿겠다, 그때 여러 가지 괴담들 있지 않았습니까? 지금도 정부의 발표를 못 믿겠다는 분들도 있거든요. 그분들한테는 어떤 얘기를 하고 싶으십니까?
[인터뷰]
사람들은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보지 않습니까? 그렇게 사시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텐데 그래도 진실은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계셨으면 좋겠습니다.
[앵커]
패잔병 말씀하셨으니까 오늘 저도 기사를 봤는데요. 1982년 영국의 셰필드함과 1945년에 인디애나 폴리스함이 격침이 됐지만 그당시에 마땅한 탐지대응 수단이 없었다는 점이 인정됐고 그래서 군에서 거기에 대한 어떤 문책을 하지 않았고요. 천안함도 음파탐지기나 사전경보 성능이 미흡했고 그런 기습을 당할 것이라고 누구도 예측을 하지 못했었고 거기에 대응할 수 있는 시스템이 다 갖춰지지 않았었고 그런 점을 정당하게 평가를 해야 된다는 목소리들이 많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분들이 아마 많을 겁니다.
[인터뷰]
감사드릴 따름입니다.
[앵커]
마지막으로 아까 말씀하셨지만 좀더 이런 것은 생각을 해줬으면 좋겠다라든지 부탁하고 싶다라든지, 사회나 국가 대해서. 그런 게 더 있으면 말씀을 해 주시죠.
[인터뷰]
먼저 저희는 기습을 당한 것이기 때문에, 정당한 전투에서 패배를 하고 돌아온 사람들이 아니고 기습을 당해서 정당한 임무 수행 중에 상처를 당한 사람들입니다. 그 부분을 많은 국민들이 알아 주셨으면 좋겠고. 그리고 지금 군에 남아 있으신 분들도 계신데 지금 이런 전투경험을 가진 분들이 정말 소중한 전시 상황인데 그런 분들을 홀대하지 말고 군에서 좀더 보듬어 안아주고 크게 사랑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앵커]
제가 모두에도 말씀드렸지만 국가를 위해서 목숨을 걸었던 분들이고요. 지금도 적잖게 고통을 겪고 있는 분들입니다. 이분들에 대해서 마땅히 명예를 지키고 지원을 해야 되는 것은 우리 대한민국 그리고 우리 사회의 책임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늘 힘든 얘기일 텐데 전화 연결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잘 들었습니다.
[인터뷰]
감사합니다.
[저작권자(c) YTN 무단전재, 재배포 및 AI 데이터 활용 금지]
[앵커]
북한의 천안함 폭침으로 전사한 우리 장병들이 46명입니다. 46용사라고 하죠. 그리고 58명의 전우들이 있습니다. 지금 생존해 있는 천안함 장병들입니다. 나라를 위해서 목숨을 걸었었고 또 지금도 많은 고통을 겪고 있는 장병들입니다. 이 가운데 오늘 저희가 김윤일 씨를 전화로 연결했습니다. 안녕하십니까?
[인터뷰]
안녕하십니까.
[앵커]
전화 연결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인터뷰]
감사합니다.
[앵커]
그 당시, 6년 전에 피격을 당했을 때 그때 어떤 직책을 맡고 계셨고 그 당시에 상황이 어땠는지를 말씀 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인터뷰]
저는 그때 상병이었고요. 전탐병이라는 직책에서 레이더를 보고 있었습니다.
[앵커]
그러다가 어떤 상황이었습니까?
[인터뷰]
상황은 그냥 갑자기 폭음과 함께 암전이 돼서 아무것도 안 보이는 상황이었고요. 자세한 것은 지금까지 저희 인터뷰한 게 많이 있으니까 참고하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앵커]
지금은 직장을 잘 다니고 계시고요?
[인터뷰]
네, 잘 다니고 있습니다.
[앵커]
오늘 서해수호의 날이 처음으로 제정됐고 대통령이 기념식에 참석을 했는데 제정됐다는 소식을 듣고 어떤 생각을 하셨습니까?
[인터뷰]
그래도 아직까지 저희 천안함을 포함해서 여러 서해를 지키다가 돌아가신 장병들을 기억해 주는 게 나라 차원에서 고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앵커]
그때 그 전우들, 장병들을 지금도 가끔 만나시나요?
[인터뷰]
네, 만납니다. 주기적으로 만나고 있습니다.
[앵커]
주기적으로 1년에 한두 번씩 만나시나요?
[인터뷰]
네.
[앵커]
만나시면 서로 위로가 됩니까?
[인터뷰]
그럼요.
[앵커]
어떤 얘기들을 나누시나요?
[인터뷰]
살아가는 얘기들도 하고 앞으로에 대한 얘기도 하고 이것저것 많은 얘기를 하고 있습니다. 힘들었을 때 서로 의지가 되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앵커]
모임 이름이 천우회라면서요?
[인터뷰]
네, 맞습니다.
[앵커]
6년이 지나긴 했습니다마는 아직도 그때 일이 생각이 많이 나십니까, 어떻습니까?
[인터뷰]
1년 내내 계속 떠나지 않는다고 하면 저는 개인적으로 거짓말일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데 드문드문 갑자기 사로잡힐 때는 있죠.
[앵커]
전우들 만나서 얘기해보면 어떻습니까? 그분들도 좀 비슷하게 그런 것들이 생각이 난다고 하시던가요?
[인터뷰]
그러시는 분들도 당연히 있으시죠.
[앵커]
최근의 조사를 스물 두 분 대상으로 해 보니까 그 중 열여섯 분은 최근 6개월 이내에 외상후 스트레스 증후군을 아직도 겪고 있다고 답을 하셨더라고요. 그리고 극단적인 것을 생각한 적이 있다는 분도 그중에 절반 가까이 10명이나 됐고요. 자해를 한 적이 있다는 분도 5분이 있고 어떤 분들은 전등이나 TV를 켜야 잠을 주무실 수 있다는 분도 있고 천둥번개치면 외출 못하시는 분들도 있다고 하는데 실제로 주위에 가까운 분들 중에도 이런 고통을 겪고 있는 분들이 있던가요?
[인터뷰]
네, 계십니다.
[앵커]
김윤일 씨는 이 정도는 아니시고요?
[인터뷰]
저는 그래도 운이 좋은 편이라서 그렇게까지 심하게 겪고 있지는 않습니다.
[앵커]
이런 것들을 좀 국가에서 또 사회에서 도와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이런 아직도 겪고 있는 고통이나 피해들을 줄이기 위해서요?
[인터뷰]
물론입니다.
[앵커]
어떤 도움을 드리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하십니까?
[인터뷰]
제가 생각할 때 가장 큰 도움이 될 수 있는 길은 돌아가신 저희 전우분들이나 살아 있는 참전장병들에 대한 인식이 바뀌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앵커]
지금은 인식이 어떤 것 같고 어떻게 바뀌었으면 좋겠습니까?
[인터뷰]
그렇게 생각해 주시지 않는 분들도 계신데 저희를 아직까지 패잔병이라고 매도하는 분위기가 아직 있는 게 사실이거든요. 그런 분위기에서 저희가 사회를 대하다 보면 아무래도 그렇게 크지 않은 상처도 커질 수 있고 금방 아물 수 있는 상처도 아무는 데 오래걸리는 경우가 생길 수 있습니다. 주위에서 조금만 더 따뜻하게 봐주신다면 저희가 상처를 극복하는 데 더 빨리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앵커]
천안함에 당시에 근무했었다고 하면 주위 사람들이 어떤 얘기들을 제일 많이 하던가요?
[인터뷰]
원래 제 지인들이 아니면 딱히 얘기를 하지 않는 편이기는 한데 신기해 하시는 분들도 있고 안타까워 하시는 분들도 있고 여러 가지 경우가 있습니다.
[앵커]
그런데 패잔병이다라고 그렇게 사람들이 인식을 한다고 느끼시는군요?
[인터뷰]
네, 없지 않죠.
[앵커]
일부입니다마는 아직도 그걸 못 믿겠다, 그때 여러 가지 괴담들 있지 않았습니까? 지금도 정부의 발표를 못 믿겠다는 분들도 있거든요. 그분들한테는 어떤 얘기를 하고 싶으십니까?
[인터뷰]
사람들은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보지 않습니까? 그렇게 사시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텐데 그래도 진실은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계셨으면 좋겠습니다.
[앵커]
패잔병 말씀하셨으니까 오늘 저도 기사를 봤는데요. 1982년 영국의 셰필드함과 1945년에 인디애나 폴리스함이 격침이 됐지만 그당시에 마땅한 탐지대응 수단이 없었다는 점이 인정됐고 그래서 군에서 거기에 대한 어떤 문책을 하지 않았고요. 천안함도 음파탐지기나 사전경보 성능이 미흡했고 그런 기습을 당할 것이라고 누구도 예측을 하지 못했었고 거기에 대응할 수 있는 시스템이 다 갖춰지지 않았었고 그런 점을 정당하게 평가를 해야 된다는 목소리들이 많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분들이 아마 많을 겁니다.
[인터뷰]
감사드릴 따름입니다.
[앵커]
마지막으로 아까 말씀하셨지만 좀더 이런 것은 생각을 해줬으면 좋겠다라든지 부탁하고 싶다라든지, 사회나 국가 대해서. 그런 게 더 있으면 말씀을 해 주시죠.
[인터뷰]
먼저 저희는 기습을 당한 것이기 때문에, 정당한 전투에서 패배를 하고 돌아온 사람들이 아니고 기습을 당해서 정당한 임무 수행 중에 상처를 당한 사람들입니다. 그 부분을 많은 국민들이 알아 주셨으면 좋겠고. 그리고 지금 군에 남아 있으신 분들도 계신데 지금 이런 전투경험을 가진 분들이 정말 소중한 전시 상황인데 그런 분들을 홀대하지 말고 군에서 좀더 보듬어 안아주고 크게 사랑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앵커]
제가 모두에도 말씀드렸지만 국가를 위해서 목숨을 걸었던 분들이고요. 지금도 적잖게 고통을 겪고 있는 분들입니다. 이분들에 대해서 마땅히 명예를 지키고 지원을 해야 되는 것은 우리 대한민국 그리고 우리 사회의 책임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늘 힘든 얘기일 텐데 전화 연결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잘 들었습니다.
[인터뷰]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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