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의 큰 별 지다...노회찬 대표

진보의 큰 별 지다...노회찬 대표

2018.07.24. 오후 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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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진봉 성공회대 교수, 이종근 데일리안 논설실장

[앵커]
진보정치의 큰 별, 노회찬 정의당 의원이 어제 오전 스스로 목숨을 끊으면서 대한민국을 큰 충격에 빠뜨렸습니다.

고인의 빈소에는 애도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자세한 얘기 최진봉 성공회대 교수, 그리고 이종근 데일리안 논설실장과 나눠보겠습니다. 두 분 어서 오십시오.

[인터뷰]
안녕하십니까?

[앵커]
신촌 세브란스병원에 차려진 고인의 빈소에 애도의 발길이 계속 이어지고 있는데요. 영결식은 27일, 애초에는 정당장으로 치르기로 했었는데요.

지금 국회장으로 바뀌었습니다.

[인터뷰]
그렇습니다. 처음에는 아마도 가족장 얘기가 제일 먼저 가족들끼리 나왔던 것으로 저는 압니다.

그런데 정의당이 비공개 회의를 계속하고 비공개 회의 끝난 다음에 정당장으로 하겠다고 가족들을 설득을 했고 그래서 공식적으로 발표도 나왔습니다.

5일 동안 정당장으로 하는 것. 정의당이 주최가 돼서는 하는 것으로 돼 있는데 사실 현역 국회의원이 이렇게 별세를 하면 대개는 국회장으로 하잖아요.

그런데 오늘 국회장으로 설득을 했습니다. 그러니까 정의당...

[앵커]
유족의 동의가 있어야 되는군요?

[인터뷰]
그리고 마지막에 유족의 동의를 받아서 주관은 정의당이 하되 문희상 국회의장이 직접 얘기를 했던 걸로 알아요.

그래서 국회장으로 하는 것으로 결정이 됐습니다.

[앵커]
밤새 조문객들 발길이 끊이지 않아서 지금까지 3000명 넘게 빈소를 다녀갔다, 전해지고 있는데 정치권, 여야를 막론하고 지금 믿고 싶지 않은 현실에 침통함을 드러내고 있는 분위기입니다.

빈소를 찾은 의원들의 발언들 들어보시죠.

[문희상 / 국회의장 : 항상 시대를 선도했고, 그리고 진보정치의 상징이었습니다.]

[홍영표 /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 (노회찬 원내대표는) 일하는 사람들, 그리고 사회적 약자들을 위해서 온몸을 던져서 일해온 정치인으로 저는 생각하고 있고, 함께 해왔습니다.]

[김성태 / 자유한국당 원내대표 : 어려움에 처한 노동자들의 애환과 고충을 늘 대변하고자 했던 진정성을 어떻게 해서 이렇게 비통한 죽음으로 고하는지….]

[김관영 / 바른미래당 원내대표 : 무엇에 대한 좀 압박을 굉장히…. 정의를 부르짖으며 사신 분이니까…. 그런 부분에서 굉장히 고민이 있지 않았겠어요.]

[장병완 / 민주평화당 원내대표 : 고인께서 마지막까지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문제는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포함한 선거구제도 개편, 이 문제에 대해서 가장 많은 관심을 가지고 애착을 보였던 과제입니다.]

[앵커]
동료 정치인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얘기를 들어보면 노동자들의 애환을 대변한 정치인이었다, 정의로운 정치인이었다, 이런 얘기들을 지금 공통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인터뷰]
3000명이 왔다고 하는데 거기에 정치인뿐만 아니라 일반인들도 오시는 거예요.

제가 볼 때는 보수, 진보 가리지 않고 노회찬 의원이 보여줬던 생전의 정치의 행적, 또 본인이 노동운동 하시면서 실제 노동현장에서 겪었던 아픔들, 그리고 항상 노동자의 편, 힘든 사람의 편, 힘 없는 사람의 편에 항상 섰잖아요.

본인이 사실은 이번 일도 그래요.

이번 일 같은 경우도 본인이 도덕적으로 너무 힘들 수 있지만 어찌 보면, 법적으로 보면 그렇게 큰 문제가 안 될 수도 있는 문제였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선택을 했다고 하는 것은 그만큼 본인의 삶이 청렴하고 결백하고 도덕적으로 깨끗한 삶을 살아왔다는 반증이라고 보여지거든요.

그런 점에서 본다고 하면 노회찬 의원이 걸어왔던 이 길들은 우리 국민들 모두의 마음속에 깊이 남을 수 있는 길이라고 저는 생각을 합니다.

어제 정말 마음이 먹먹할 정도로 저 소식을 듣고 정말 저게 실화일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어요.

너무 충격이 커서 많은 사람들이 말을 잇지 못하고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보여줬는데 그만큼 노회찬 의원이 우리가 볼 때 사이다 발언이라고 할 만큼 우리 사회의 나쁜 일하고 또 비리를 저지르고 갑질하는 사람들을 향해서 시원하게 한마디해 주고 또 본인이 갖고 있는 국회의원으로서의 권력을 이용해서 그 사람들을 혼내주는 모습이 사실 을의 입장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얼마나 고맙겠습니까?

어느 누구도 자기 편 들어주지 않는데 노회찬 의원이 저런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결국 그런 국민들, 소위 을의 입장에 서 있고 항상 핍박 받았던 국민들 입장에서는 참 좋은 정치인 한 명을 잃었다.

그래서 제가 볼 때는 여야 정치인 모두 다 존경하는 분이 아닌가 생각이 들어요.

반대 입장에 섰더라도 명확하게 자기 입장을 가지고 국민을 위해서 일했던 한 분, 그분이 바로 노회찬 의원이기 때문에 아마 여야, 진보, 보수를 가리지 않고 모두 다 안타까운 마음을 갖는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앵커]
저도 어제 이 속보가 전해졌는데 정말 언론에 종사를 합니다마는 오보이기를 굉장히 마음속으로 바랐었는데요.

말씀하신 대로 도덕적 기준이 너무 높았기 때문에 이런 안타까운 선택을 하지 않았나 이런 분석들이 많이 나오고 있습니다.

어쨌든 노회찬 의원 하면 서민들의 가려운 곳을 긁어주고 노동자층을 대변한 대표적인 진보정치의 상징적인 인물 아니겠습니까?

관련해서 노회찬 의원이 생전에 신었던 구두 사진이 굉장히 화제가 되고 있더라고요.

[인터뷰]
그렇습니다. 노회찬 의원의 삶이 아까 교수님께서 말씀하셨듯이 노동자에 맞춰서, 평생을 노동자에 맞춰서 살았다 이렇게 말씀하셨는데 사실은 삶 자체도 풍족하지 않으셨어요.

인민노련이라고 해서 인천지역에서 노동자들의 지하 조직을 만듭니다. 그 지하 조직을 만들고 사실은 인민노련의 지하조직을 이제는 우리가 제도권 정당으로 가야 된다.

그러니까 이런 지하 운동을 더 이상 해서는 우리의 의사, 그러니까 사회주의를 표방하는 그런 우리들의 의사를 실행할 수가 없다.

제도권 내에서 제도권 정당으로 가자라고 주장했던 첫 번째 정치인이었고요. 그 실현을 위해서 제도권 정당을 만드는데 아시다시피 모두 다 실패를 합니다.

국민승리21부터 시작해서, 민중당부터 해서. 그런데 그 과정에서 매일 노동뉴스라는 노동소식지.

예를 들어서 그걸 언론이라고 한다면 언론일 수도 있겠지만 그 소식지를 몇 년간 거의 자신의 사재를 다 털어서 만들거든요.

그때 참 빚을 많이 져요. 제가 기자 시절에 초선으로 있을 때 집을 한번 찾아간 적이 있는데 집이 너무... 국회의원의 집이 이렇게 작을 수 있을까.

방 두 칸짜리 집이었는데. 그럴 정도로 사실은 그 이후에도 풍족한 삶을 한 번도 살아보시지 못했어요.

빚도 빚이거니와 그 이후에도 굉장히 청렴한 삶을 살아오셨기 때문에 아마도 저 구두가 대변하듯이 자신을 위해서 무엇인가를 사거나 자신을 위하는 무언가를 치장하는 삶을 살아보지 못한 그런 정치인이었다라고 기억합니다.

[앵커]
구두의 주름을 보고 계시지만 정말 얼마나 오래 신었을까 이런 생각이 듭니다.

소신 정치를 해왔던 그런 역경이 구두 한 장의 사진에 다 담겨 있는 것 같은데요.

앞서 화면에서도 보셨지만 진보 정당을 함께 일궜었던 유시민 작가. 정말 분향하면서 오열을 하는 모습 우리가 볼 수 있었는데 지금 유시민 작가가 진행하던 시사 예능 프로그램 이거 노회찬 의원 바통을 이어받았었잖아요.
이걸 볼 수 없게 된 거예요.

[인터뷰]
그래서 너무 안타깝고 유시민 전 장관같이 정치를 했던 분이고 사실 정의당에서 같이 활동도 했던 분이에요.

그러다 보니까 아마 마음이 너무너무 아플 거예요.

정말 국민들을 위해서 일하는 그런 모습이 국민들한테 큰 감동을 줬고 또 촌철살인으로 국민들을 시원하게 해 줬던 그분이 이제는 더 이상 볼 수 없는 분이 됐다고 했을 때 얼마나 가슴이 아프겠습니까?

또 어제까지만 해도 멀쩡하게 살아계셨는데 저런 안타까운 일을 통해서 저렇게 우리 곁을 떠난 모습을 보고 아마도 너무너무 가슴이 아팠을 거예요.

동지잖아요, 사실은. 정치적 동지일뿐만 아니라 정말 힘든 사람의 입을 대변했던 그런 정치인으로서 본인도 그랬고, 유시민 작가도 그런 입장에 있는 것이고 그다음에 노회찬 의원도 그런 입장에 있었던 분인데 그런 같은 곳에서 같은 곳을 바라보고 같은 일을 했던 사람 한 사람이 없어졌다고 하면 그 자체가 사실은 한쪽 날개를 잃은 것 같은 아픔이라고 저는 생각이 들어요.

우리가 나중에 얘기하지만 심상정 의원도 같은 마음이라고 생각이 들거든요. 정말 동지적 관계예요.

노동 현장에서 일했던 사람들은,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정치권에서 만나서 정치적 동지라고 얘기하는데 그거하고는 차원이 다르다고 봅니다.

힘들고 어려운 사람들과 함께 땀 흘리고 정말 어려운 핍박을 받으면서 일을 했던 그 현장을 기억할 것 아니겠습니까?

거기에서 만나서 같이 일하고 노동현장을 하나의 정당으로 만들어내고 이 모든 과정을 함께했던 사람들이기 때문에 그 모든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가지 않겠습니까?

그런 차원에서 본다면 유승민 전 장관이 울음이 터지는 것은 당연하다고 봐요.

무릎 꿇고 그 사진을 보는 순간 저는 정말 너무너무 슬픈 감정이 들었을 거라고 봅니다.

제가 만약에 그 자리에 있었다면 저도 울었을 것 같은데 그만큼 두 사람이 동지적 관계로 함께해왔고 노동계가 정말 정치권 하나의 부분을 차지하고 노동자를 대변할 수 있는 정당으로까지 갈 수 있었던 힘이 사실은 노회찬 의원, 유시민 전 장관 그리고 심상정 의원에 의해서 이뤄졌다는 점, 이런 동지적 관계가 그런 아픔들을 더 많이 표현할 수밖에 없는 그런 요인이 되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앵커]
그러니까요. 동지적 관계 하면 심상정 의원, 말씀하신 대로 빼놓을 수가 없는데 어제 기자들 질문하니까 처음에는 아무 말도 못하시더라고요.

계속 굳게 입을 다물다가 그래도 빈소를 가장 먼저 찾아서 유족들을 위로하고 했었는데 워낙 정치적 동반자를 넘어서 국민들 사이에서는 정치적으로 두 분이 너무 가까이 같은 일을 하다 보니까 부부다 이렇게 오해하시는 분들도 사실 있었어요.

[인터뷰]
그렇습니다. 노동운동에서도 두 분이 함께 역경을 거쳐왔지만 정치판에 같이 두 분이 오신 다음에 굉장히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두 분만 거의 뭐랄까요, 같은 길을 걸었다고 할까요.

기억하시는 게 통진당 사태입니다. 통진당에서 사실 그 내부를 들여다보면 NL과 PD의 노선 싸움같이 됐거든요.

그러니까 이정희 당시 당대표를 중심으로 하는 NL 계열의 친북적 성향이라고 할까요.

그래서 당내에서 심상정 의원이나 노회찬 의원은 노동자를 위해서 더 중심이 돼야 되는 게 아니냐.

그게 PD 계열이고 해서 노선투쟁과 함께 당내 어떤 갈등이 있을 때 그때도 노회찬 의원과 그다음에 심상정 의원 두 사람이 앞장서서 통진당의 사태에서 당원들의 비판을 받아가면서 끝내 분당돼서 나와서 노심초사라는 말 기억하시죠?

노회찬 의원과 심상정 의원과 초선의원 4명이 만든 정의당이라는 정의당을 만들면서 사실 거의 아무도 주목받지 않았는데 그 정의당을 끝내 이렇게 10%가 넘는 두 자릿수의 지지율을 받는 정당으로, 진보 정당이 그렇게 두 자릿수의 지지를 받는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거든요. 그렇게 되기까지 정말 숱한 역경을 이 두 사람이 함께했었다.

나이는 3년 차, 심상정 의원이 아래지만 정말 동지적 관계였다라고 할 수 있겠죠.

[앵커]
지금의 국민의 지지를 받는 정의당이 있기까지 이 두 사람의 공로가 굉장히 컸는데 어제 심상정 의원, 억장이 무너져내리는 하루다, 이런 글을 SNS에 올리기도 했습니다.

맏형 잃은 정의당 슬픔은 말로 할 수 없을 텐데 왜 이런 안타까운 선택을 했을까, 정말 아쉽습니다. 유서 세 통을 남겼는데요.

그 가운데서 가족들한테 보낸 것 말고 정의당에 보낸 유서가 공개가 됐습니다. 내용을 보시면 2016년 3월 두 차례에 걸쳐서 경공모로부터 4000만원을 받았다.

그러니까 돈을 받았다는 것은 인정을 했고요. 어떤 청탁도 그렇지만 없었다.

다수 회원의 자발적 모금이었기 때문에 마땅히 정상적인 후원 절차를 밟아야 했었는데 그러지 못했다, 이 부분에 대해서 굉장히 아쉬움이 남는 것 같습니다.

또 보시면 누구를 원망하겠느냐, 참으로 어리석은 선택이었고 부끄러운 판단이었다.

내가 책임을 져야 한다. 무엇보다 여기까지 온 당의 앞길에 큰 누를 끼쳤다.

사랑하는 당원들 앞에 얼굴을 들 수 없고 법정형으로도 , 당의 징계로도 부족하다. 사랑하는 당원들에게 마지막으로 당부한다.

나는 여기서 멈추지만 당은 앞으로 나가기를 바란다. 국민 여러분께서도 제 허물 탓다고 정의당은 계속 아껴주십사 이렇게 당부를 하면서 유서를 마칩니다.

금품은 받았지만 대가나 청탁은 없었다. 그러니까 정상적으로 처리하지 못한 부분에 굉장히 책임감이 느껴지는 심정이 묻어나는데요.

특히 보면 정의당에 돌아갈 화살, 이 화살에 대한 고민이 굉장히 많았던 것 같습니다.

[인터뷰]
그러니까요. 아무래도 심상정 의원과 노회찬 의원은 정의당의 상징이지 않습니까.

그리고 이 두 분을 정의당의 거의 이미지라고 봐도 되는 건데 이번 사건 때문에 노회찬 의원이 타격을 받을 뿐만 아니라 정의당에 대한 이미지까지도 문제가 발생할 수 있는 상황까지 온 것 아니겠습니까?

물론 지금 노회찬 의원이 마지막 본인의 유서에 쓰신 것처럼 대가성으로 돈을 받은 것 같지는 않아요.

이 돈을 한꺼번에 받아서 문제가 된 것 같고 소액으로 해서 개인들이 기부하도록 해서 절차를 잘 밟았으면 문제가 없는데 아마 한꺼번에 돈을 받아서 문제가 된 것 같은데 그 절차를 지키지 못한 것이 본인한테는 너무너무 안타까운 부분이라고 보여지고요.

다만 저는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던 것도 본인에게 화살이 돌아오는 것 그것보다도 정의당이나 진보 정치, 특히 노동자를 대변하는 정당의 이미지에 타격이 오는 것에 대한 두려움, 안타까움이 더 컸다고 생각을 해요.

본인이 정의당의 상징으로 인식이 돼 있고 노동계의 정당의 상징으로 인식이 돼 있는데 본인한테 다가오는 화살이 본인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그 자체가 곧 노동 정당 또는 정의당에 나쁜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데 영향을 미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저는 훨씬 더 이 결정을 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미쳤을 거라고 보고요.

왜냐하면 유서 내용을 보면 전부 그런 내용들이에요. 그러니까 본인한테 모든 걸 돌리고 제발 정의당에 대해서는 묻지 말아달라고 하는 것은 이건 정의당과 관계없는 것이고 내가 개인적으로 잘못 선택한 방법 때문에 이렇게 된 거다.

그렇기 때문에 나한테 돌아올 화살을 정의당에 돌리지 말라고 얘기했던 것은 본인이 이 선택을 통해서 천국으로 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의당만은 살아서 끝까지 지지를 받았으면 좋겠다, 이건 본인 개인적인 문제지 정의당과 절대 관계없는 문제다.

그런데 문제는 정의당과 노회찬 의원을 하나로 보는 이미지 때문에 그런 걱정과 고민이 결국에는 이런 선택까지 가지 않았나 생각을 합니다.

[인터뷰]
실질적으로 법률형을 언급을 하신 것을 따져보면 4000만 원이라고 본인이 이야기했는데 처음에는 검찰에서 5000만 원이라고 했다가 지금 4600만 원이거든요.

그러니까 특검 쪽의 이야기대로 하면 2000만 원은 직접 느릅나무 출판사에 가서 직접 받았고 2600만 원은 부인의 운전기사라고 표현되는데 확실히 개인 전용 운전기사라고 얘기할 수는 없지만 어쨌든 2600만 원을 받았다 했는데 그렇다면 첫 번째 것이 강연을 여러 번 했기 때문에 그것이 누적돼서 만약에 그걸 입증할 수만 있다면 나중에 받은 2600만 원이 법률적으로 더 문제가 클 수도 있다.

그런데 대가성이 만약에 없다고 한다면 뇌물죄는 특가법상의 뇌물죄가 아니기 때문에 대가성의 뇌물죄는 5년형에서 무기징역이거든요.

그런데 이쪽으로 2600만 원만 만약에 문제가 된다고 한다면 최근에 대법원 판결을 보면 5000만 원의 정치자금법 관련해서 2년형을 받고 집행유예를 받은 상황이 있었어요, 실형에서.

실형을 받기는 했지만. 그래서 2600만 원을 만약에 맨 처음에 인정했더라면 내가 이런 상황에서 이렇게 돈을 받았다라도 인정했더라면 사실상 법리적으로...

그러니까 도덕적으로는 사실 조금의 비판은 받을 수 있지만 법리적으로는 크게 형을 받거나 이러지 않을 수도 있었다.

그런데 제가 어제 저도 사실은 충격을 많이 받아서 지인분들한테 전화를 해서 취재를 했습니다.

왜 도대체 어떠한 벌어진 일이냐 했을 때 가장 정치적인 지인들이 아니라 지인들이 하는 말은 진짜 툭 터놓고 정말 자신의 상황을 이야기할 사람이 없었던 게 아니냐.

만약에 이것은 정말 법률적으로나 혹은 이렇게 이야기해서 상의를 했다면 이것은 큰 문제가 아니다, 처음부터 시인을 하자라고 조언을 해 줄 사람은 많았다.

그런데 가까운 게 어제 우석훈 씨도 인터뷰에서 최근 2년간 외로웠던 게 아니냐, 이렇게 표현도 했거든요.

그러니까 정말로 안타까운 것은 이걸 터놓고 누군가한테 상의를 했다면 올바른 길로, 우리 시인하자, 시인해서 그냥 이것을 드러내자라고 이끌 수 있었던 게 아니냐라고 안타까워하는 분들이 많더라고요.

[앵커]
그러니까요. 시간을 되돌린다면 참 아쉬운 점점들이 굉장히 많은데 마지막 공식 일정이 미국 3박 5일 출장 일정 아니었겠습니까?

이때 원내대표들에게도 노동운동을 같이한 두 분의 원내대표도 있습니다마는 아무 언급을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분들 심정도 황망할 것 같은데 이분들이 기억하는 노회찬 의원의 마지막 모습은 어땠을지, 직접 들어보시겠습니다.

[김성태 / 자유한국당 원내대표 : 18개의 공식일정을 다 마치고, 안도감을 가지고 워싱턴에서 마지막 이별주를 기울인 것 같아요. (개인적인 심경에 대한 이야기는) 전혀 없었고, 다 동료 의원이면서 고인의 인격과 지금까지 살아온 삶을 볼때 우리는 어떤 이야기도 할 수 없었습니다.]

[김관영 / 바른미래당 원내대표 : 홍영표 대표하고 박경미 의원하고 두 분이서 아침 일찍 식사하고 자전거를 탄다고 그랬는데 노 대표께서 식사를 하고 같이 자전거를 타러 가셨나… 했는데 자전거도 안 타시고 식사도 안 하시고….그런 이야기를 불편해 하셨죠.같이 모여 있는 자리에서는 그런 이야기는 서로 일절 안 했거든요.]

[장병완 / 민주평화당 원내대표 : 사실 방미 두 가지 목적 이외에 이야기를 나눌 시간적인 여유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런 문제를 토요일 하루 정도 시간을 가지고 이야기를 해보려고 했었는데 저희들이 하루 일찍 귀국을 하는 바람에 그런 시간을 갖지 못했습니다.]

[앵커]
특히 노동운동을 함께했었던 김성태 한국당 원내대표, 고인이 살아온 길을 볼 때 관련해서 어떤 얘기도 할 수 없었다, 이렇게 얘기하지 않습니까?

묻지도 않고 말할 수도 없는 모두의 심정이 어땠을까 싶습니다.

[인터뷰]
그러니까요. 저는 이분들이 어쨌든 마지막을 함께한 분이잖아요.

사실은 노회찬 의원이 공식적으로 다른 사람과 대화하고 얘기할 수 사람이 가족 빼고는 원내대표분들 뿐인데 그분들과 함께 마지막 술 한잔 하면서 웃는 모습을 봤다고 얘기했어요.

예전에 본인이 노동현장에서 고생하면서 용접공으로 시작해서 노동 현장에 오래 있었잖아요. 또 홍영표 원내대표나 김성태 원내대표도 노동계 출신입니다.

세 분이 함께 80년대 있었던 노동계의 일들, 본인들이 함께했던 노동현장에서 그런 아픔들을 함께 나누었지 않겠어요?

사람들이 과거로 돌아가서 옛날의 모습을 돌아보면서 얘기를 나누는 게 본인한테 위로도 되고 기쁨도 되거든요.

그런 모습을 봤다고 생각해요.

김성태 원내대표가 그 이별주가 되어 버렸다고 얘기했는데 그때 마지막으로 웃는 모습 보여주고 그때 잠깐이나마 본인의 옛날 고생했지만 좋은 추억으로 남아 있는 그 아픔들을 다시 한 번 되새기면서 다른 사람과 얘기를 나눴을 때 그런 모습을 보여줬다고 하니까 노회찬 의원이 갖고 있었던 그 마음이 더 짠하게 다가와요.

무슨 말이냐면 노동현장에 대한 그리움과 아픔이 얼마나 있었으면 그 옛날을 추억하면서 웃음이 나왔을까요?

그러니까 미소를 띄웠다는 말은 아픔이 아니라 그런 자신의 삶이 결국 본인한테 그렇게 부끄러운 삶도 아니고 힘든 삶도 아니었다.

돌아보니 결국 그런 사람이 내게는 훈장처럼 의미있고 또 내가 뭔가 내 인생에서 보람 있는 일을 했다고 하는 느낌이었다고 저는 생각이 들거든요.

그래서 세 분이 함께 그 얘기를 나누면서 그래도 즐거운 마음으로 웃고 술을 마셨는데 그리고 나서 결국 이렇게 그다음 날 이런 일이 벌어지니까 사실 이분들 입장에서는 엄청난 충격일 거예요.

예컨대 이종근 실장님이나 저나 밤에 있다가 그다음날 누구 한 사람이 그런 일을 당하게 되면 얼마나 큰 실장이 되겠습니까?

충격이 엄청나게 클 것 같은데 저분들도 말로 할 수 없는 충격이 될 거라고 보고 다만 저는 그렇게 예전에 같이 일했던 사람과 마지막으로 얘기를 나눌 수 있었다는 것도 노회찬 의원한테는 또 한 번의 마지막 즐거움이었지 않나 생각합니다.

[앵커]
국내에서의 미국 가기 전부터 관련한 의혹 보도가 쏟아졌었는데 미국에 가기 전에 단골로 가던 이발소죠. 이용원을 들렀다, 이런 보도가 나왔습니다.

보통은 한 20일에 한 번씩 오는데 일찍 왔다는 거죠?

[인터뷰]
그렇습니다. 사실 두 가지 다 생각이 들 수 있는 게 첫 번째는 미국의 일정이라는 게 쉬운 일정은 아니잖아요.

당시에 많은 미국의 정계 인사들과 만나야 되는 자리니까 더 단정하게 하고 가려고 했나 보다라고 다들 생각을 했는데 막상 결과가 이렇게 되다 보니까 혹시나 마지막 결과까지도 생각을 하면서 단골 이용원에 마지막으로 간 게 아니냐 이렇게 또 해석도 나오는데 저는 또 개인적으로는 돌아오신 날, 그러니까 22일 일요일 오후에 어떠한 심경 변화가 있었을까라는 생각도 듭니다.

왜냐하면 두 가지인데 하나는 우리가 원내대표들이 미국에 가서 여러 가지 일정 속에 사진 하나가 저는 굉장히 아직도 인상에 남아요.

국회의사당을 뒤의 배경으로 해서 다섯 명의 원내대표가 점프를 한 사진이에요.

거기에서 노회찬 의원은 맨 왼쪽, 그러니까 사진으로 우리가 봤을 때는 맨 왼쪽에 노란 넥타이를 매고 너무나 환하게 웃는 얼굴이었어요.

그래서 그걸 지켜본 국민들은 전부 다 그래, 여기에서는 그렇게 싸우지만 미국에 가서 저렇게 즐거운 표정, 재미있는 표정으로 5명의 원내대표들이 찍으니까 돌아와서 정치를 좀 더 잘할 수 있지 않느냐, 이런 생각도 갖게 만들었는데 어쨌든 제가 지금 드린 말씀은 뭐냐 하면 그런 사진을 찍는 현장에서도 밝았고 또 특파원들이 보내오는 이야기는 기자간담회를 했잖아요.

기자간담회에서도 이 질문이 나왔고, 관련한. 드루킹 관련한 질문이 나왔고 그 자리에서도 아주 담담하게 이야기를 했다는 거예요, 기자들 앞에서. 또 김관영 의원 말고 김성태 의원이 술을 밤에 늦게까지 워싱턴 돌아오기 직전 전날 먹었는데도 사실은 이것저것 심경이 흔들리지 않았다고 처음에는 얘기를 했거든요.

그래서 저는 그때까지도 사실은 흔들리지 않은 게 아니냐. 그런데 돌아와서 어떤 일이 있었지 않았는가, 괜히 제 유추인데. 왜냐하면 너무나 평온했다는 거예요.

많은 분들의 증언은, 미국에서. 물론 감추고 자신의 마음을 다스렸을 수도 있겠지만 너무나 그래서 저는 충격적이었죠, 어쨌든 월요일에.

[앵커]
이제는 모든 순간이 아쉬움과 그리움으로 남게 됐는데요. 노회찬 의원의 트레이드마크 하면 바로 핵심을 찌르는 촌철살인 말입니다.

비유의 달인이다 이런 별칭도 있었는데요. 많은 사람들의 갈증을 해소해 주던 그의 그리운 어록들 다시 돌아보겠습니다.

장민정 앵커가 정리해봤습니다.

[앵커]
재치 있는 입담의 故 노회찬 정의당 원내대표.대중의 가려운 곳을 시원하게 긁어주는 수많은 어록을 남겼지요.

그중에서도 정치인 노회찬을 대중에게 확실히 각인시켰던 건, 바로 이 발언일 겁니다.

[노회찬 : 지난번 판보다는 괜찮은데 보니까 세척 덜 된 곳도 군데군데 있고, 완전 새 판은 아닙니다. (고기는 그대로입니까?) 고기는 굽다만 고기도 남아있고, 새 고기도 다시 온 것 같은데….]

[앵커]
17대 총선에 민주노동당 비례대표로 출사표를 던졌을 때죠.

거대 양당인 한나라당과 민주당을 오래된 '삼겹살 불판'에 비유하면서 이제는 판을 갈 때가 됐다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노회찬 : 폐암 환자를 수술한다더니암 걸린 폐는 그냥 두고 멀쩡한 위를 들어낸 의료사고와 무엇이 다릅니까.]

[앵커]
'삼성 X 파일' 속 떡값 검사 실명을 폭로한 뒤 징역형을 선고받았던 고인.

정작 금품을 주고받은 사람은 처벌받지 않고 자신만 의원직을 내려놓아야 했던 상황을 '의료 사고'에 비유하기도 했습니다.

고인은 국정감사장이나 대정부질문에선 논리적이면서도 날카로운 질문으로 상대의 진땀을 빼기도 했습니다.

[노회찬 : 전직 부장검사가 전화 두 통으로 서민들이 평생 벌어도 못 벌 돈을 벌어들이는 '전관예우의 법정'에서 과연 법 앞에 만인은 평등합니까? 만 명만 평등할 뿐입니다. 오늘날 대한민국 정의의 여신상은 한 손에는 전화기, 다른 한 손에는 돈다발을 들고 있을 뿐이에요.]

[노회찬 : 대한민국의 실세 총리가 있었다면 최순실이에요.나머지는 다 껍데기예요. 잘 알고 계시잖아요.]

[황교안 : 그렇게 속단할 일 아닙니다. 국정 그렇게 돌아가지 않습니다.]

[노회찬 : 속단이 아니라 뒤늦게 저도 깨달았어요. 지단이에요.]

[앵커]
서두른 판단, '속단'이라는 말을 늦은 판단, '지단'으로 맞받아치는 여유는 탁월한 순발력과 통찰력이 없었다면 불가능했겠죠.

[노회찬 : 제가 한 번 누워보겠습니다.]

[앵커]
2017년 국감장에선 신문지를 깔고 드러누워 화제가 됐습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구치소 독방에서 인권침해를 당하고 있다는 주장을 펴니, 신문지 두 장 반만 한 훨씬 좁은 공간에서 어렵게 생활하는 일반 재소자들과 비교하면 호텔 스위트룸에 묵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며 보여준 행동이었습니다.

고인의 과거 인터뷰를 보면 이런 촌철살인 언변은 노동운동을 하면서 익힌 거라고 합니다.

정치건 경제건 노동자들에게 쉽고 재미있게 설명하다 보니 말솜씨가 늘었다는데요.

이제는 고인의 푸근한 유머를 들을 수 없다고 생각하니 더욱 가슴이 저며옵니다.

[앵커]
장민정 앵커가 여러 가지 그의 어록들을 정리해 주었는데요.

어쩌면 그렇게 상황에 딱 맞는 비유들, 발언들을 찾아낼 수 있을까, 들을 때마다 국민들도 시원하고 저도 들으면서 참 어떻게 저렇게 말을 잘할 수 있을까, 이런 생각 많이 했었거든요.

[인터뷰]
그러니까요. 정말 가슴을 시원하게 하고 사이다 발언이라고도 얘기할 수 있고 정말 국민들이 하고 싶은 말을 대신해 주잖아요.

국회의원이 하는 일이 그런 거거든요. 대정부질문을 할 때도 국민들은 저게 물어보고 싶은데 국회의원들이 자꾸 다른 얘기하고 그러면 답답하잖아요.

그런데 노회찬 의원은 그런 부분에 있어서는 정말 허를 찌르는 그리고 국민들이 궁금해하고 반드시 물어봐줬으면 하는 부분들, 그런 질문들을 전혀 가감없이 질문을 하잖아요.

또 저는 신문지를 깔아놓고 보여준 퍼포먼스도 일부에서는 그게 무슨 보여주기다 이런 식으로 이야기하는데 국민들이 이해하기는 얼마나 이해가 잘 됩니까?

일반인들은 저 정도 좁은 구치소에서 누워 있는데 박근혜 전 대통령은 이렇게 큰 데 누워 있다.

예를 들면 쓰고 있다 이런 부분들을 표현하는데 저만큼 명쾌하고 이해하기 쉽고요.

[앵커]
그때 박근혜 전 대통령 수감에 대해서 인권 침대, 이런 얘기까지 나왔을 때요.

[인터뷰]
그러니까 저런 모습이 어찌 보면 소통하는 모습이라고 저는 생각해요.

자리에 앉아서 말로만 하는 게 아니라 실제 국민들이 체감할 수 있고 이해하기 쉽고 받아들이기 쉽고.

또 정말 국민들에게 뭔가 얘기하고 싶은 메시지를 잘 전달할 수 있는 다양한 형태의 커뮤니케이션 스타일을 갖고 있었다는 점.

이런 점들도 사실은 촌철살인의 대가요, 그다음에 언어의 연금술사라는 별명이 붙을 만큼 사이다 발언도 있었고 연민이 느껴지는 발언도 있었고요.

또 행동도 그래요. 여성의 날을 맞이해서 저분이 200여 개의 장미꽃을 준비해서 국회 출입하는 여성 기자들한테 하나씩 나눠주고.

정현백 여가부 장관한테도 주고 국회의원들 중에 여성 국회의원들한테 전달하고 이런 일도 있었어요.

그러니까 그만큼 여성에 대한, 여성의 인권에 대한 관심도 있었고 우리 사회 소수 그룹, 우리 사회에서 소외된 그룹들, 우리 사회에서 인정받지 못하는 분들 이런 분들을 대변하고 그분들을 위해서 뭔가 하려는 의도를 끊임없이 보여줬던 그런 태도 때문에 그의 말에 무게도 그래서 있었던 것이고요.

국민들이나 일반 유권자들 입장에서 그의 말을 통해서 시원함을 느낄 수 있도록 한 그런 카타르시스를 느껴주게 했던 의원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앵커]
독설 속에서도 따뜻한 연민이 녹아 있었기 때문에 아마 많은 국민들이 더 사랑을 했던 발언들이 아니었나 싶은데요.

저는 법 앞에 평등한 게 만인이 아니라 만 명이 아니냐, 이 발언도 참 기억에 남는 발언이었습니다. 조금 전에 장민정 앵커 정리할 때 봤지만 속단이 아니라 지단이다.

이 얘기하면서 황교안 전 총리하고 언쟁을 벌이지 않았습니까? 동기동창이라면서요? 같은 반도 했었다고요?

[인터뷰]
악연일까요. 40년 인연인데. 이 두 분은 문과예요.

그런데 당시도 이과보다 문과가 적어서 문과 3년 내내 한 반이 아니어도 알 수밖에 없어요, 몇 명 안 돼서. 그리고 3년 내내 같이 문과였고.

두 분이 성격이 굉장히 다르고 노회찬 의원 같은 경우는 부산에서 자랐어요.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를 부산 고등학교를 가려고 하다가 떨어졌어요.

그래서 1년을 재수해서 경기고등학교에 옵니다. 서울로 올라오죠. 그런데 재수를 했기 때문에 한 살이 많잖아요.

그런데도 불구하고 동기, 72회 동기들한테 너무나 인기가 좋았대요.

[앵커]
지금 보시는 황교안 전 총리고요. 가운데가 이종걸 민주당 의원인 거죠. 그리고 노회찬 의원입니다.

[인터뷰]
세 분이 전부 다 문과 반이었어요. 그리고 황교안 총리 같은 경우도 학도호국단, 지금의 총학생회장인데 학도호국단 연대장을 하면서 사실 그때 당시도 수재였고 이종걸 의원이나 노회찬 의원 같은 경우는 당시 유신 반대 시위를 주도를 해서 노회찬 의원의 당시 시위 주동 문구가 귀 있는 자 들어라라는 제목으로 유인물을 돌렸답니다.

[앵커]
이미 이때부터 길이 달랐군요?

[인터뷰]
길이 달랐죠. 그런데 두 분의 악연을 잠깐 소개를 하면 노동운동을 하다가 공안검사한테 붙잡혀왔는데 공안검사가 부르더래요.

그래서 갔더니 황교안 총리가 앉아 있는 거예요. 그래서 포승줄도 다 풀어주고 커피도 한잔 주고 해서 그런 만남이 있었고. 두 사람의 가장 큰 악연은 삼성 X파일입니다.

삼성 X파일 때 그 사건을 담당했던 검사가 황교안 검사예요.

[앵커]
이렇게 인연인가요, 악연인가요.

[인터뷰]
그런데 악연이 됐어요, 그건. 왜 악연이 됐느냐 하면 사실 검사가 수사를 해야 되는데 그거보다는 통신비밀보호법, 국정원 도청 쪽으로 해서 통신비밀보호법을 적용해서 기소를 합니다.

자기의 동기동창인 노회찬 의원을. 그래서 끝내는 실형을 받고 집행유예지만 어쨌든 의원직을 상실하죠. 그게 미안했던지 그 이후에 법무부 정책국장 시절에 10만 원의 정치후원금을 노회찬 전 의원한테 보내요.

그런데 문제는 이게 크게 문제가 돼요. 법무부 장관 청문회에서 공무원이 어떻게 특정 정당한테 이렇게, 더군다나 진보 정당이지만 어쨌든 정당한테 후원금을 내느냐 해서 곤욕을 치르죠.

나중에 총리 청문회 때 노회찬 의원이 등장하는 것으로 어쨌든 인연이 끝나는데 증인으로 등장을 해서 , 왜 증인으로 등장을 했냐면 삼성 X파일 그때 특검 때 기술은 권력형 비리를 감쌌다.

그러므로 이 사람은 총리 자격이 없다라는 증인으로 참석하는 것으로써 이 두 사람의 인연이 돌고 돌아서 그렇게 끝을 맺습니다.

[앵커]
황교안 전 총리가 전임 정부에서 워낙 여러 가지 논란이 있었기 때문에 동기인 점, 죄송하다 이런 발언도 했었습니다.

[인터뷰]
그런데 한 가지 아까 실장님이 얘기했던 것 중의 하나를 말씀드리면 공안검사 시절에 노회찬 의원이 구속돼 있는 상태에서 불렀다고 그랬잖아요, 구치소에 있을 때.

포승줄도 풀어주고 담배도 피게 하고 커피도 줬다 여기까지는 좋아요. 그다음 한 말이 있습니다.

황교안 그 당시의 검사가. 뭐라고 노회찬 의원한테 물어봤느냐 하면 구치소 생활 괜찮나?

그랬더니 노 의원이 그 당시 구속돼 있으니까 서울구치소가 새로 지어져서 그쪽으로 이감이 됐는데 참 새로 지어서 따뜻하고 좋더라, 그렇게 얘기했더니 황교안 그 당시의 검사가 이렇게 따뜻하면 안 된다고 얘기했는데...

그렇게 얘기를 했대요. 그래서 참 황 검사가 그런 얘기를 했다고 하면 구치소에 있는 분들은 추위에 떨어서 그냥 고생 많이 해야 된다, 이런 의미 아니겠습니까?

[앵커]
농담으로 했겠죠?

[인터뷰]
그러기를 바랍니다, 사실.

[앵커]
어쨌든 노회찬 의원, 이렇게 촌철살인 발언들, 국민들 가슴을 굉장히 시원하게 해 줬었는데 현 정부, 특히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지지 발언도 많이 했고요.

때로는 현 정부 정책에 쓴소리도 굉장히 많이 했습니다.

아까운 정치인 그리고 진보 정치의 동지를 잃은 문재인 대통령 슬픔도 굉장히 큰 것 같은데요. 문 대통령 어제 비보를 전해듣고 애도의 뜻을 나타냈습니다. 이 얘기 들어보시죠.

[문재인 / 대통령 : 아주 안타까운 비보가 전해졌습니다. 노회찬 의원의 사망 소식에 정말 가슴이 아프고 비통한 그런 심정입니다. 노회찬 의원은 당을 함께하지는 않았지만 같은 시대에 정치를 하면서 우리 한국사회를 보다 더 진보적인 그런 사회로 만들기 위해서 함께 노력을 해왔습니다. 우리 한국의 진보 정치를 이끌면서 우리 정치에 폭을 넓히는 데 큰 기여를 해왔다고 생각합니다. 한편으로 아주 삭막한 우리 정치판에서 또 말의 품격을 높이는 그런 면에서도 많은 역할을 했습니다. 노회찬 의원의 사망에 대해서도 깊이 애도합니다. 뿐만 아니라 유족들과 정의당에도 위로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앵커]
정치판에서 말의 품격을 높였다 이런 얘기도 했고요. 사실 대통령과 노회찬 의원. 진보 정치를 해 왔다는 큰 틀에서는 맥을 같이할 수도 있는 정치적 동지 아니겠습니까?

큰 정치인 한 명을 잃었다는 슬픔이 굉장히 이 말에서 묻어나는 것 같습니다.

[인터뷰]
저는 노회찬 의원과 문재인 대통령이 함께 있었던 장면 중에 떠오르는 게 지난 총선이에요.

지난 총선 때 지금은 시장이 된 허성무 창원시장이 당시 민주당 쪽 후보였고 또 정의당 쪽 후보가 노회찬 의원이었어요.

그런데 두 사람이 다 함께 나가니까 문재인 당시 대표가 직접 가서 단일화를 이뤄내요.

그러니까 허성무 후보랑 노회찬, 상대당이지만 어쨌든 정의당 후보를. 그래서 정의당 노회찬 후보가 후보가 되죠, 단일화가 돼서. 단일화가 됐죠.

그때 문재인 당대표한테 노회찬 의원이 한 말이 있어요.

우리가 정권을 함께 바꿔서 30년 동안 한번 같이 살아보자, 같이 잘 살아보자 이렇게 표현을 해서 박장대소를 했던 장면인데.

그만큼 문재인 대통령이 달려가서 어쨌든 후보 단일화를 이뤄내고 또 사실 정의당한테 양보하러 간 거거든요.

허성무 후보를 설득하러 자기가 간 거거든요.

그래서 정의당을 한 석이라도, 또 노회찬 의원을 끌어들이기 위해서 또 함께 품기 위해서 간 것이기 때문에 거기에 화답을 또 노회찬 의원이 했던 것이고요.

[앵커]
어쨌든 대통령뿐 아니라 민주당도 큰 틀에서는 같은 진보 정치의 궤를 같이 했었는데 노회찬 의원 하면 같은 진보 진영뿐만이 아니라 보수당에서도 비판을 별로 하지 않았던 이런 아주 드문 정치인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하태경 바른미래당 의원, 자신의 노회찬 키즈다, 이런 발언을 했습니다. 들어보시죠.

[하태경 / 바른미래당 의원 : 그분은 전경련에서도 좋아했어요. 인간적으로뿐만 아니라 유연하고 개방적이고 전경련이라고 100% 틀린 이야기만 하지는 않을 거 아니에요. 가끔씩 일리 있는 이야기도 할 거고 그런 부분도 수용 해 주고 그래서 뭐라고 그래야 하나요. 진영 전선적인 사고, 이걸 뛰어넘었죠. 그래서 포옹하는 진보.사실 저도 정치에 입문하면서 이제 닮고 싶은 정치인, 선배 정치인이 솔직히 그렇게 많지 않거든요. 그런데 우리 노회찬 선배, 어떻게 정말 저는 볼 때마다. 저는 토론도 같이 해 본 적도 있지만. (토론을 이기신 적은 없는 걸로 압니다.) 제가 감히 이기려고 안 하죠. 제가 따라 배우려고. 사실 저는 보수진영의 노회찬이 되고 싶은 노회찬 키즈죠.]

[앵커]
보수 진영의 노회찬이 되고 싶은 노회찬 키즈다. 하태경 의원이 이런 얘기를 했는데 이렇게 쓴소리를 참 많이 하면서도 비판을 안 받기가 쉽지는 않잖아요.

[인터뷰]
그렇죠. 그게 만약에 진영 논리에 빠지면 그렇습니다. 그런데 노회찬 의원 같은 경우에 진영 논리에 빠지지 않아요. 원칙을 얘기하거든요.

국민의 입장에서 원칙을 얘기하니까 어느 누구도 거기에 반박할 수 없는 거예요.

만약에 정치적 진영 논리에 빠져서 본인이 몸을 담고 있는 정당을 변호하고 보호하려는 정신으로 했다면 비판을 받았을 거예요.

그런데 국민의 입장에서 얘기하거든요. 그러니까 사실 다른 정당의 의원들이 들어도 이 사람 말은 국민의 입장에서 말이 되네라고 들릴 수밖에 없어요.

그러니까 하태경 의원도 그렇게 얘기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본인도 정말 보수 진영의 노회찬이 되고 싶다, 그 말은 진영 논리에 빠지지 않고 국민만 바라보고 국민의 아픔을 해결해 줄 수 있는 그런 발언, 그런 얘기, 그런 촌철살인을 하고 싶다는 얘기라고 저는 보여지거든요.

그래서 노회찬 의원이 보여줬던 그런 모습은 결국 국민만 생각하고 어려운 사람들을 생각하는 그런 마음 때문에 그 누구도 그 분에 대해서 비판적인 입장을 갖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인터뷰]
저도 한 말씀만 보태고 싶습니다. 보수 정치인들이 노회찬 의원을 평가할 때 어떻게 평가를 해왔냐 하면 다름을 틀림으로 돌리지 않고 보수의 이야기를 경청할 수 있는 정치인이었다라고, 그러니까 보수의 이야기를 틀려, 너는 틀렸어라고 되치지 않고 들어주고, 그러나 나는 생각이 다르다라고 이야기해 줄 수 있는 정치인이었다라고 평가를 하니까 사실 보수 정치인들도 굉장히 슬퍼할 수밖에 없고요.

한말씀만 더 드리면 노회찬 의원은 서민의 언어로 정치를 이야기한 첫 번째 정치인었다. 즉 그 이전의 정치인들은 언어가 정치인들의 언어였어요.

굉장히 고답적이었고 권위적이었고. 그런데 왜 저 불판 발언에 서민들이 또 국민들이 열광을 했냐면 처음으로 정치가 들리기 시작하는 거예요.

노회찬 의원의 입을 통해서. 그래서 지금 인터넷 보시면 알겠지만 정치인들이 아니라 아주 일반적인 국민들, 정치에 관심 없는 국민들까지 내가 가겠다, 빈소에 가겠다라고 이야기하는 분들이 굉장히 많아요.

어제 제가 버스 안에서나 아니면 식당에서나 전부 다 노회찬 의원 얘기를 해요.

그건 이념의 문제가 아니라 그만큼 내 옆에 있었던 사람이다, 나랑 가까이 있었던 사람이다라고 느끼게 해 준 정치인이었거든요.

그래서 그런 의미로 첫 번째 정치인이었다라고 얘기하고 싶습니다.

[앵커]
두 분 말씀하신 대로 반박을 하려고 해도 할 수 없는 원칙을 말했던 그런 정치인이었고 다름과 틀림을 구별할 줄 아는 이런 정치인이었기 때문에 말씀하신 대로 많은 국민들이 애도를 표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지금 그런데 어쨌든 노회찬 의원이 사망을 했기 때문에 특검 수사도 불가피한데 정의당에서 어제 표적수사에 대한 불만을 드러냈습니다.

사실 특검 수사, 이 수사가 댓글 공작에 대한 수사가 본류였잖아요.

그런데 노회찬 의원 금품수수 사건이 중간에 너무 커지는 바람에 초반에 너무 수사가 확대된 거 아니냐, 이런 지적도 있습니다.

[인터뷰]
두 가지를 지적할 수 있었어요, 처음에는. 왜냐하면 말씀하셨듯이 댓글 수사를 통해서 사실은 정치적인 개입 그다음에 김경수 도지사를 향한 그 흐름이었는데 갑작스럽게 5000만 원 받았다, 그리고 구체적으로 그 증거들을 제시하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첫 번째 드는 생각은 혹시나 곁가지를 완전히 크게 부풀려서 마지막으로 안 가려는 거 느끼냐, 그러니까 90일 동안 뭔가 해낸 게 없으면 비판을 받을 수밖에 없는데.

[앵커]
이미 절반 정도의 시간을 썼습니다.

[인터뷰]
이것으로써 갈음하려고 하는 것 아니냐라고 하는 시각이 하나 있었고요.

두 번째는 김경수 도지사를 소환해서 사실 여죄 여부를 따지자면 도 변호사의 역할이 굉장히 크다.

그런데 도 변호사의 신병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현재까지 드러난 증거는 노회찬 의원에 대한 정치 자금 흐름이 가장 증거가 크므로 이것을 통해서 어쨌든 노회찬 의원에 대한 것을 도 변호사의 신병을 확보하기 위한 것으로, 그래서 신병을 확보해서 더 많은 증언들을 이끌어내려고 했던 것이 아니냐.

이 두 가지 목적으로 사실 분석을 했었는데 결과적으로 이렇게 되고 보니까 많은 사람들이 곁가지를 그렇게 증폭을 시켜서 하나의 아까운 정치인을 이렇게 매도하는 게 아니냐 이런 비판을 특검에 보내는 형국이 되어 버렸죠.

[앵커]
노회찬 의원의 사망 소식이 전해지면서 민주평화당 박지원 의원, 수사 방향에 대한 일침을 놨는데요. 한번 들어보시죠.

[박지원 / 민주평화당 의원 : 특검의 본질적인 목표는 노회찬 의원이 아니었습니다. 여기에서 파생된 건데 그렇기 때문에 흔히 우리가 별건 수사 아닌가 할 정도로 특검의 방향이 과연 옳았는가. 도 변호사와의 그런 정치권과의 커넥션이 문제가 됐던 것은 정의당 노회찬 의원과는 관계가 없었거든요. 그래서 유감스러운 일이지만 아무튼 특검은 특검법대로 지향점을 향해서 철저히 수사하는 것이 오히려 국민을 위해서 바람직하다, 이렇게 생각합니다.]

[앵커]
박지원 의원 하면 노회찬 의원과 함께 촌철살인의 또 한 명의 대가로 알려진 이런 의원인데 지금 노회찬 의원에 대한 수사가 별건 수사라 할 정도였다.

이 수사 방향이 옳았냐, 이런 의문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인터뷰]
그러니까 특검의 조급함이죠. 무슨 말이냐면 특검이 지금 시작을 했지만 눈에 띌 만한 국민들이 관심을 가질 만한 수사 결과를 나타내고 못하고 있는 상황이에요.

도 변호사의 구속영장을 청구했지만 기각이 돼버렸잖아요. 그러면서 또 한 번 충격을 받았죠. 그러다 보니까 결국 사람들의 관심을 끌 수 있는 그런 소재를 찾다 보니까 노회찬 의원 사건 같은 경우에는 이게 법적으로는 그렇게 큰 문제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파급력은 엄청나게 크잖아요.

뭔가 특검이 새로운 걸 찾아냈고 그전에 무혐의 처리가 났던 문제거든요. 그걸 다시 또 재수사하고 있다는 부분을 부각을 시켜서 특검이 열심히 하고 있다, 이만큼의 성과를 내고 있다, 이런 부분들을 과장해서 보여주고 싶지 않았나 생각이 드는 거예요.

물론 문제가 있는 게 있다면 조사해야죠. 그건 해야 된다고 봅니다, 저는. 그러나 이 문제를 이렇게 강하게 또는 집중적인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수 있도록 만든 것은 특검으로서 해야 할 일은 아니라고 봐요.

그러니까 특검은 지금 여기 박지원 의원도 얘기했지만 원래 이거는 댓글 사건이 본류잖아요.

수사의 본류, 거기에 대해서 성과를 내서 그걸 강조해서 보여주고 그에 대한 성과를 알려줘야 되는데 그런 부분보다는 도리어 곁가지라고 하는 별건으로 수사하다가 나온 다른 사실을 더 강조해서 얘기하는 것이 과연 특검이 출범한 목적이 아니라는 거죠.

[앵커]
수사는 할 수 있지만 공개적으로 알릴 필요가 있었느냐는 문제가 제기되는 거죠.

[인터뷰]
그러다 보니까 노회찬 의원이 이미지에 큰 타격을 입은 거잖아요. 본인이 정말 어쨌든 본인의 의지와 관계없이 노회찬 의원에 대한 비판이 있을 수밖에 없었고 정말 도덕적으로 누가 봐도 모범적인 삶을 살았다고 생각했는데 그런 부분이 터지니까 국민들이 볼 때는 의문이 생길 수밖에 없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본류인 댓글 조작 사건, 이 사건이 중심이 돼야 되는데 그보다는 도리어 거기에서 드킹이 얼마를 주고 누구한테 얼마를 줬느냐가 중심이 되어 버리니까 이게 과연 무엇 때문에 특검을 시작했는지 하는 부분에 대한 본류가 상실된 게 아닌가, 그것은 결국 특검의 조급함이 이런 결과를 낳았다고 보여진다고 생각합니다.

[앵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지난해 5월에 SNS에 올린 글이 다시 회자가 되고 있는데요.

정의당과 심상정 패거리들, 너희들 민주노총 움직여서 문재인 정부 길들이려고 한다는 소문이 파다한데 내가 경고를 한다.

지난 총선, 심상정, 김종대 커넥션 그리고 노회찬까지 한방에 날려버리겠다, 못 믿겠으면 까불어보든지, 이런 정의당 패거리 이런 표현이 들어간 글.

이게 논란이 되고 있는데 특검이 그렇다면 정의당 특히 노회찬 의원이 협박을 받았을 수도 있는 부분이고요. 이런 부분까지 수사가 확대될 수 있을까요?

[인터뷰]
저는 그래서 아까 일요일날 오후에 돌아오셨을 때 무슨 일이 있었을까, 궁금하다고 표현한 부분이 그런 부분에서 사실은 좀 수사가 필요한 것이 아니냐.

1년 전의 저 이야기는 사실상 경공모 회원들 특히나 드루킹이 정치인들에게 후원금을 미끼로 해서 무엇인가 정치적인 것을 얻어내려고 했던 그런 집단이었다는 것을 지금 보여주고 있거든요.

당시 드루킹은 노회찬 의원이 보건복지부 장관이 될 것이다라고 예언을 하고 다녔다는 겁니다.

그런데 실질적으로 노회찬 의원은 정치적인, 3선이기는 하지만 정치적인 역경이 많았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12년을 국회의원 생활을 한 것이 아니라 다 합쳐도 한 5년, 6년도 안 돼요.

그런데 그 상황 속에서 그대로 되지 못하니까 도리어 내치기 시작했다. 저렇게 한번 굉장히 영웅시하다가 내치면서 보복에 대한 언급을 하고 그런 수순이 굉장히 지금까지 많았다는 거예요.

그래서 첫 번째는 진짜 무엇인가 커넥션을 하려고 했다가 실패했기 때문에 또 거기에 대한 보복이냐, 이것도 수사에 들어가야 된다고 보고요.

또 드루킹이 정의당 내 또 다른 의원들한테 어떤 무엇이 있길래 저렇게 표현했나, 이것까지도 명명백백하게 수사가 들어갔으면 합니다.

[앵커]
평생을 사회적 약자 편에서 그들 입장을 대변해온 정치인이었는데요.

마지막 메시지, 부치지는 못했는데 삼성 백혈병 조정 합의서, 여기에 대한 메시지 그리고 KTX 여승무원들 복직 기사가 나지 않았습니까?

여기에 대한 축하 메시지를 전하려다가 미처 부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이런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너무나 황망한 죽음에 많은 국민들이 애도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노회찬 의원의 이야기는 여기까지 하고요. 이번에는 기무사 문건 소식을 알아보겠습니다.

청와대가 지난 금요일이죠. 67쪽의 세부 문건을 공개를 했었는데 국회가 이것의 전문을 공개하라 이렇게 요구를 했었고 어제 이게 비밀문서 지정이 해제가 됐습니다.

그래서 공개가 됐는데 내용을 보면 생각했던 것보다도 더 충격적입니다.

[인터뷰]
저는 비교를 해야 된다고 봐요. 어제 두 가지 다 나왔어요. 뭘 비교해야 되느냐 하면 기무사 문건 67쪽이 다 전문이 공개됐습니다.

그런데 원래 계엄은 2년마다 한 번씩 합수부 계엄과에서 계엄과 관련된 문건을 만듭니다.

그러면 통상적인 계엄과 관련한 그런 문건이냐, 보고서냐. 아니면 기무사가 무언가 특별하게 이 상황에 맞춰서 한 것이냐, 이 두 가지 를 비교를 해야 되는데 공개를 했어요, 그 문건도. 국방부에서.

[앵커]
계엄 실무편람, 일반적으로 주장하는 편람이고요. 이거하고 기무사가 작성한 계엄령 문건이 어떤 점이 특별히 다른 겁니까?

[인터뷰]
거의 일치합니다. 일치하는데 가장 중요한 건 국회 얘기예요.

국회 얘기가 뭐냐 하면 국회의원들을 첫 번째. 그러니까 여당 의원들은 당정협의를 거쳐서 만약에 국회에서 이걸 표결로 되돌리려고 할 경우 되돌리지 못하게 참석을 못하게 할 것이고 두 번째, 야당 의원들은 체포, 특정 성향을 분석해서 체포하라라는 것이 사실은 국회 통제 부문에서 굉장히 달라요.

이 부분이 앞으로도 이것이 실행이냐 아니면 계획이냐에 대해서 굉장히 논란이 큰 문제입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계엄이 무조건 나쁜 건 아닙니다. 계엄령이라는 건 필요시, 전시라든지 이런 때 해야 돼요.

그러면 거기에 준해서 해야 될 부분들이 있어요.

그런데 헌정질서를 유린하면 그것은 쿠데타가 됩니다. 그런데 지금 국회에 대해서 이렇게 국회의원들을 체포한다거나 혹은 성향을 분석한다거나 이러면 사실 헌정질서를 유린하는 게 돼요.

반헌법적인 부분이 되기 때문에 이 부분만큼은 사실은 해명의 기회가 좀 더 있어야 된다는 부분이고요.

언론 부분은 구체화됐다고 하지만 크게 차이가 저는 없어 보여요, 특별히. 특히나 굉장히 허술하게 저는 보이는 게많습니다.

통신사가 8개고 그런 부분. 통신사 8개 아니거든요. 실질적으로 뉴스를 통제하려고 했다면 포털이 언급이 됐어야죠. 모든 것들이 포털로 집약되고 있는데요.

그런 부분들과 관련해서 허술하긴 하지만 그 부분, 국회 통제 부분이 나중에 논란이 커질 수 있는 부분이라고 봅니다.

[앵커]
그러니까 단순 검토 문건이었느냐, 실행 의도가 있었던 문건이었냐, 이게 밝혀내는 게 관건이잖아요.

조금 전에 그래픽을 다시 주시면 국회의원 신분 보장이라든가 아니면 국회를 통제하는 방법, 언론을 통제하는 방법들에 있어서 차이가 있고요.

계엄사령군을 누가 맡느냐 이 부분에 대해서도 차이가 있는 상황인데 여기에 대해서 미군의 승인을... 미국 대사를 초청해서 계엄을 인정받는 것까지 계획하려고 했다, 국민들 입장에서 어디서 많이 들어본 얘기거든요.

[인터뷰]
잘 아시는 것처럼 1980년대 5.18, 5.17 그때 전두환 계엄사령관이었고 또 보안사령관이었죠. 쿠데타를 일으켜서 정권을 잡지 않습니까?

그 당시에도 이런 일이 있었어요. 그러니까 군인이 정권을 잡으면 항상 미국의 승인을 받으려고 해요.

미국이 용인해 주지 않으면 미국이 어떤 형태로든 개입을 해서 이문제가 잘못됐다라고, 다시 말씀드리면 미국이 국제사회에서 만약에 어떤 쿠데타를 누가 하게 되면 그 쿠데타에 대해서 지원하는 쪽도 있지만 반대하는 쪽도 많이 있었어요, 국제사회에서. 그게 결국은 쿠데타가 성공하려면 미군의 도움이 필요하고 미국의 승인이 필요하다고 봤던 것 같아요.

그래서 국방부 장관에게 미국 대사를 포청해서 계엄령의 정당성을 설명하고 그다음에 현재 군이 이렇게 정권을 이런 형태로 안보를 유지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부분을 설명하려고, 그런 내용들이 세부 내용에 들어있고요.

또 하나 거기를 떠나서 외국 무관단들 있잖아요. 그러니까 외국 대사관마다 무관들이 다 나와 있어요.

예를 들면 태국이든 어느 나라든 우리나라에 있는 대사관마다 무관들이 한두 명씩 와 있거든요. 이 사람들을 초청해서 국제적 지지를 얻도록 만들자는 거예요.

그러니까 다시 말씀드리면 국제사회에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동의를 얻어내기 위한 걸 했다는 거죠.

그게 1980년대 전두환 그 당시의 정치군인들이 했던 행동 이것과 전혀 다르지 않고 똑같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을 본다고 하면 그때 모습을 그대로 따라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고 또 하나는 아까 특정 매체를 구체화시킨 부분에 있어서도 포털을 말씀을 안 했다고 실장님이 말씀하셨는데 거기 내용을 보면 SNS에 포함되어 있어요.

저는 SNS 자체가 포털이라고 봐요. 그러니까 SNS도 통제하겠다고 얘기가 되고 있고. 또 하나는...

[앵커]
단일방송 체제로 언론을 통제한다. 시간도 구체적으로 나와 있습니다.

[인터뷰]
그러니까요. 일반적으로 평상시에 하는 거면 그렇게 구체적으로 통신사나 이런 걸 얘기할 필요가 없는 거예요.

그러니까 여론을 어떻게 하겠다 이렇게 얘기하면 되는 것 아니에요?

그런데 그 당시에 있었던 언론사들을 특정하면서 그 언론사들을 지명한 것도 문제고 지역을 특정해서 여의도와 광화문을 지명한 것도 문제라고 보고.

그 당시 여소야대 국회 구성 자체도 문제가 있다고 저는 보고요. 그런 것들을 분석했다는 말은 그 당시에 실행하려는 의도를 충분히 갖고 있었다고 보여지고요.

또 하나, 합참에서 만든 계엄실무편람이라고 2년마다 수정을 하는 건데 그 안에는 합참의장이 통상적으로 계엄사령관을 맡도록 돼 있어요.

그걸 육군참모총장이 하도록 만들어놨고요. 그다음에 실제 기무사령관이 셀프 추천을 해서 본인이 조사위원장인가요, 그걸 하겠다고 했어요, 셀프 추천을 해서.

그건 결국 육군총장이 중심이 돼서 계엄을 선포하고 또 육군총장과 가까운 육사 동기고 선후배인 그 당시 김관진 안보실장 그리고 한민구 국방부 장관, 이런 사람들과 커넥션을 통해서 실제 실행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만들었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강하게 드는, 그런 세부 계획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앵커]
아까 국회 부분이 가장 문제가 된다고 얘기를 하시지 않았습니까?

그러니까 계엄 해제 못하게 하기 위해서 국회를 어떻게 장악할지, 이런 게 세부적으로 나와 있는데 거기를 보면 국회의원들 성향이 분석돼 있습니다.

진보 대 보수 의원이 160:130여 명 이렇게 분류가 되어 있는데 이건 탄핵 찬성 기준으로 가지고 나눈 겁니까? 당시 민주당이 121명, 정의당이 6명이었거든요.

[인터뷰]
6명이었다가 사실상 합치면 130여 명인데 나머지 30은 숫자가 딱 떨어져요.

그때 탄핵, 이쪽 자유한국당 당시 새누리당에서 탄핵한 복당파로 불리는 이 인원이 약 40-50명 정도 됐는데 거기에 30만 더해도 160이 되거든요.

설득을 하는 과정이나... 그러니까 이것이 구체적으로 성향을, 문건이 더 자세하지 않아서 어떻게 어떤 방법으로 분류했나를 알 수는 없지만 주먹구구로 계산을 하더라도 당시에 탄핵 비율만 따지면 거의 비슷하거든요.

그래서 탄핵 가결이 된 이후니까, 3월 초면 이후니까 충분히 그런 예측이 가능하죠. 그런데 한 가지 저희가 좀 진전된 논의를 하려면 말씀하셨듯이 광화문에 어느 부대가 가고 이것이 실행계획이냐라고 우리가 얘기할 때 실제로 편람 있잖아요, 계엄 편람에는 그 내용이 있었어요.

그러니까 그것 자체를 2년마다 하는 것이 계엄에 있었기 때문에 계엄 그러면 어느 부대가 어떻게 간다라는 것 자체가 실행계획이다라고 우리가 단언할 수는 없는데 말씀하셨듯이 굉장히 구체적인 부분들.

그건 상당히 다른 부분들이죠. 그러니까 비교한다는 게 굉장히 중요한 그런 지금의 상황이 되어 버렸어요.

[앵커]
지금 실행 문건이냐, 검토 문건이냐 이것을 앞으로 밝혀내야 될 부분인데 지금 야당에서는 청와대가 문건을 공개하는 부분, 그리고 대통령이 수사를 지휘하는 부분, 이 부분에 대해서 문제를 보수야당에서 제기하고 있지 않습니까?

박범계 더불어민주당 의원, 이번 기무사 문건이 문재인 대통령을 겨냥했을 수도 있다, 이렇게 발언했습니다. 들어보시죠.

[박범계 / 더불어민주당 의원 : 어쩌면 그 당시 우리 야당 민주당의 지도자였던 지금 대통령이신 문재인 전 대표님을 겨냥했을 수도 있는 문건이거든요. 그렇지 않습니까. 아주 불온한 문서이고 1,700만여 명의 우리 촛불 시민들의 주권자로서의 국민 행동에 대한 전면적인 도전이고 반국가적인 음모인데. 이것에 대해서 군 통수권자인 대통령이 그럼 팔짱만 끼고 지켜보라는 것은 이 부분에 대한 행정을 중단하라는 것이기 때문에 그것은 헌법적인 법률적인 차원에서도 전혀 맞지 않는 이야기십니다.]

[앵커]
대통령을 겨냥했을 수 있다. 그러니까 당시에 민주당 지도부였을 시절에 겨냥했을 수 있다 이런 얘기를 하면서 촛불 국민에 대한 도전인데 통수권자가 그러면 팔짱 끼고 있으란 말이냐 이런 얘기를 하고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인터뷰]
왜 그러냐면 이렇게 생각하시면 돼요. 그 당시의 기무사령부에 있을 때 이런 일을 했던 사람들. 전역한 사람도 있지만 아직도 군인인 사람 많습니다.

송영무 국방부 장관이 혼자서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요? 제가 볼 때는 군 내 엄청난 반발도 있을 것이고 저항도 있을 거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이게 군의 위신을 떨어뜨린다고 생각해서 반발하는 사람도 있을 거라고 보고요. 실제 현재 여기에 이런 일들을 했던 사람들이 주요 직책에 앉아 있는 사람이에요.

이걸 국방부 자체에 맡겨놨을 때 되겠습니까? 저는 불가능하다고 봅니다. 그리고 군 관련된문제는 밖에 있는 검찰이 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에요.

그런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지시하지 않으면 실체를 파악하기 상당히 어렵다고 저는 봐요.

군 내 아주 조직적인 저항이 있을 수 있는 문제이고 그렇다고 하면 국방부 장관 선에서 해결이 안 되고 또 잘 아시는 것처럼 송영무 국방부 장관이 본인은 정무적인 판단을 해서 3개월이나 4개월 동안 이 문서를 그대로 갖고 있었잖아요.

그러면 신뢰가 떨어진 거예요. 대통령 입장에서는 이게심각한 문제라고 판단이 되고 그러면 이 문제의 실체를 파악하려면 청와대가 직접 나서지 않고는 실체가 파악될 수 없다고 판단한 겁니다.

그렇다면 대통령이 나서는 게 맞죠. 실체를 파악하는 게 국민이 원하는 거 아닙니까? 그게 청와대가 월권이라고 얘기하시는데 저는 그렇다고 보지 않아요.

군이라고 하는 조직이 갖고 있는 명령체계나 지휘체계라고 하는 것은 자발적으로 자정하기 상당히 어려운 조직이에요.

그러면 최고통수권자가 그 문제를 강하게 압박하지 않는 이상 이게 실질적으로 되겠습니까?

군 검찰도 마찬가지예요. 대령이잖아요, 지금. 수사단장이. 계급으로 보면 자기보다 훨씬 높은 사람을 조사해야 되는 상황이에요.

대통령의 의지나 청와대의 의지가 거기에 없다고 하면 제대로 수사가 안 된다는 거죠. 그런 차원에서 본다고 하면 청와대가 개입해서 이 문제를 정확하게 알아내려고 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앵커]
군검 합동 수사본부가 차려졌고요. 군과 검찰 투트랙 수사를 하면 수사에 속도를 날지 지켜보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두 분 말씀 여기까지 듣겠습니다.

최진봉 성공회대 교수 그리고 이종근 데일리안 논설실장과 함께했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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