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
[앵커멘트]
오늘은 입양의 날인데요, 한국전쟁 이후 해외로 나간 입양인이 정부 통계로 16만 명에 이릅니다.
이 가운데 많은 사람들이 뿌리를 찾으러 속속 고국을 방문하고 있지만, 체계적인 정보가 없어 대부분 눈물을 삼키며 돌아서고 있습니다.
박조은 기자가 보도합니다.
[리포트]
생모를 찾으러 2년 전 어렵게 고국 땅을 밟은 벨기에 입양인 드니 성호 씨.
곳곳을 찾아 헤맸지만 아직도 부모가 누군지 전혀 알 수가 없습니다.
정보가 없다는 말만 되풀이하는 입양기관이 그래서 원망스럽기도 합니다.
[인터뷰:드니 성호, 1975년 벨기에 입양]
"입양기관이 때때로 진실을 숨기려 했기 때문에 우리는 계속해서 내 입양 파일에 있는 내용들을 알기 위해 노력해야 했다. 나는 입양인 연대외에 나에게 도움을 줄수 있는 곳을 찾지 못했습니다."
생모의 친필 서류를 갖고 23년 만에 부모의 나라를 찾은 김수임 씨.
나라가 입양만 보내놓고는 나몰라라 한다는 사실을 깨닫는데 꼬박 반 년이 걸렸습니다.
[인터뷰:김수임, 1986년 호주 입양]
"내가 한국에 처음 왔을 때 이름·생일을 알고 있었는데 내가 도와달라고 입양기관에 의뢰했습니다. 하지만 그 사람들은 어렵다고 말했고 적어도 6개월이 지나도록 아무것도 못 찾았았죠..."
네덜란드 입양인 이용주 씨도 뿌리를 찾으려고 TV출연을 비롯해 안해본 일이 없지만 혼자 힘으로는 역부족입니다.
[인터뷰:이용주, 1989년 네덜란드 입양]
"지난해 왔을 때 입양기관에서도 시간을 많이 투자했다고 생각했지만 그 쪽에서도 많이 바빠서 제대로 못 도와 주신 것 같아요..."
지난해 한국을 찾은 입양인은 모두 1,500명.
이 가운데 3분의 1 정도가 부모 찾기에 나섰지만, 뜻을 이룬 경우는 10%에 불과합니다.
상봉은 고사하고 부모의 생사 여부라도 알고 싶지만, 정보의 벽을 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나마 정보를 갖고 있는 입양기관도 인력과 시간, 비용 등의 현실적 어려움을 이유로 나서기를 꺼립니다.
[녹취:입양기관 관계자]
"(관련 서류를)경찰에서 떼듯이 뗄 수 있는 권한이 없기 때문에 우선은 접근하기까지 시간이 걸려요."
전문적인 수사력이나 종합적인 정보도 절실하지만, 관련 기관이 협조할 수 있는 환경도 제대로 마련돼 있지 않습니다.
[인터뷰:김대원, 해외입양인연대(GOAL) 사무총장]
"입양기관에서 자기 정책있고, 우리도 어디까지 권리 있는지 없는지 모르니까 앞으로는 정부에서 정해서 정책 만들어야 될 것 같아요."
어려웠던 시기에 자기 의지와는 상관없이 먼 이국으로 떠나야 했던 해외 입양인들.
이제라도 뿌리를 찾으려는 그들의 노력은 고국의 무관심 앞에서 좌절의 눈물로 바뀌고 있습니다.
YTN 박조은[joeun@ytn.co.kr]입니다.
[저작권자(c) YTN 무단전재, 재배포 및 AI 데이터 활용 금지]
오늘은 입양의 날인데요, 한국전쟁 이후 해외로 나간 입양인이 정부 통계로 16만 명에 이릅니다.
이 가운데 많은 사람들이 뿌리를 찾으러 속속 고국을 방문하고 있지만, 체계적인 정보가 없어 대부분 눈물을 삼키며 돌아서고 있습니다.
박조은 기자가 보도합니다.
[리포트]
생모를 찾으러 2년 전 어렵게 고국 땅을 밟은 벨기에 입양인 드니 성호 씨.
곳곳을 찾아 헤맸지만 아직도 부모가 누군지 전혀 알 수가 없습니다.
정보가 없다는 말만 되풀이하는 입양기관이 그래서 원망스럽기도 합니다.
[인터뷰:드니 성호, 1975년 벨기에 입양]
"입양기관이 때때로 진실을 숨기려 했기 때문에 우리는 계속해서 내 입양 파일에 있는 내용들을 알기 위해 노력해야 했다. 나는 입양인 연대외에 나에게 도움을 줄수 있는 곳을 찾지 못했습니다."
생모의 친필 서류를 갖고 23년 만에 부모의 나라를 찾은 김수임 씨.
나라가 입양만 보내놓고는 나몰라라 한다는 사실을 깨닫는데 꼬박 반 년이 걸렸습니다.
[인터뷰:김수임, 1986년 호주 입양]
"내가 한국에 처음 왔을 때 이름·생일을 알고 있었는데 내가 도와달라고 입양기관에 의뢰했습니다. 하지만 그 사람들은 어렵다고 말했고 적어도 6개월이 지나도록 아무것도 못 찾았았죠..."
네덜란드 입양인 이용주 씨도 뿌리를 찾으려고 TV출연을 비롯해 안해본 일이 없지만 혼자 힘으로는 역부족입니다.
[인터뷰:이용주, 1989년 네덜란드 입양]
"지난해 왔을 때 입양기관에서도 시간을 많이 투자했다고 생각했지만 그 쪽에서도 많이 바빠서 제대로 못 도와 주신 것 같아요..."
지난해 한국을 찾은 입양인은 모두 1,500명.
이 가운데 3분의 1 정도가 부모 찾기에 나섰지만, 뜻을 이룬 경우는 10%에 불과합니다.
상봉은 고사하고 부모의 생사 여부라도 알고 싶지만, 정보의 벽을 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나마 정보를 갖고 있는 입양기관도 인력과 시간, 비용 등의 현실적 어려움을 이유로 나서기를 꺼립니다.
[녹취:입양기관 관계자]
"(관련 서류를)경찰에서 떼듯이 뗄 수 있는 권한이 없기 때문에 우선은 접근하기까지 시간이 걸려요."
전문적인 수사력이나 종합적인 정보도 절실하지만, 관련 기관이 협조할 수 있는 환경도 제대로 마련돼 있지 않습니다.
[인터뷰:김대원, 해외입양인연대(GOAL) 사무총장]
"입양기관에서 자기 정책있고, 우리도 어디까지 권리 있는지 없는지 모르니까 앞으로는 정부에서 정해서 정책 만들어야 될 것 같아요."
어려웠던 시기에 자기 의지와는 상관없이 먼 이국으로 떠나야 했던 해외 입양인들.
이제라도 뿌리를 찾으려는 그들의 노력은 고국의 무관심 앞에서 좌절의 눈물로 바뀌고 있습니다.
YTN 박조은[joeun@ytn.co.kr]입니다.
[저작권자(c) YTN 무단전재, 재배포 및 AI 데이터 활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