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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을 만드는 법 '희망법',국내 첫 시각 장애인 변호사-김재왕
[YTN FM 94.5 '출발 새아침'] (오전 07:00~09:00)
강지원 앵커 (이하 앵커) : 약자가 존중받는 세상을 위해서 우리 젊은이들이 움직이고 있습니다. 젊은 변호사들이 사회적 약자를 돕기 위한 공익·인권 소송 전문 변호 모임을 만들었다고 하는데요. 이 가운데에는 국내 사법사상 첫 시각장애인 변호사가 될 김재왕 씨가 있어 화제입니다. 오늘 [별별인터뷰'에서는 김재왕 씨 연결합니다. 안녕하세요?
☎ 김재왕 씨 (이하 김재왕) : 네, 안녕하세요. 희망을 만드는 법의 김재왕입니다.
앵커 : 네, 좋습니다. 이번에 서울대학교 로스쿨을 졸업하신다는 거죠? 4월 달에, 그러면 변호사가 되시는 건가요?
김재왕 : 올 4월에 변호사 시험 합격자 발표가 있는데요. 그 시험에서 합격하게 될 경우 변호사가 되는 겁니다.
앵커 : 정확하게 말하면 아직은 변호사가 아니시네요?
김재왕 : 네.
앵커 : 변호사 시험 잘 보셨어요?
김재왕 : 하하. 저는 잘 봤다고 생각하는데 채점자들은 어떻게 하실지 모르겠네요.
앵커 : 김재왕 씨, 자신을 간단히 소개해 주시겠습니까?
김재왕 : 저는 지금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 만드는 법>의 구성원으로 있고요. 이번에 서울대 로스쿨을 졸업하는 김재왕입니다.
앵커 : 네, 조금 전에 희망을 만드는 법이라고 하셨는데요. 그게 무슨 모임이라고요?
김재왕 : 공익인권변호사 모임입니다.
앵커 : 몇 분이나, 누가 이렇게 만들어서 하시는 모임인가요?
김재왕 : 지금 저까지 해서 총 6분이 있는데요. 현직 변호사이신 두 분과 이번에 사법연수원을 수료하신 두 분, 그리고 저와 같이 로스쿨을 졸업하는 친구 1명, 이렇게 해서 여섯 명이 모였습니다.
앵커 : 그렇군요. 현직 변호사는 2명이고 나머지 네 분은 곧 변호사가 되실 분이네요.
김재왕 : 네. 사법연수원 수료하시는 분들은 이번에 되셨고요.
앵커 : 언제 만드셨어요?
김재왕 : 준비하기는 작년 8월부터 준비했고요. 올 2월에 내부적으로 창립총회를 해서 설립을 했고 3월에 정식 개소를 앞두고 있습니다.
앵커 : 이 모임에 대한 설명을 해주시죠. 어떻게 해서 이 모임을 만들게 되셨고, 또 명칭을 <희망을 만드는 법>이렇게 지으셨군요. 어떤 뜻에서 이렇게 만들게 되셨는지 이 얘기를 먼저 해 주시겠습니까?
김재왕 : 공익인권부분에서 활동하고 싶은 변호사나 예비 변호사들은 많았는데요. 정작 그 움직임은 쉽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이런 활동을 해보겠다는 사람들이 모이게 되었고요. 이들이 모여서 얘기를 하면서 준비를 하게 되었습니다. 이름은 법이 절망이 아닌 희망이 되기를 바란다는 의미와 저희가 활동하는 방법이 그 자체로서 희망을 만드는 방법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그렇게 짓게 되었습니다.
앵커 : 공익인권소송을 전문으로 하시겠다는 거죠? 공익인권이라는 것이 주로 어떤 것을 말씀하시는 것인지 저는 물론 잘 알지만, 청취자분들을 위해서 설명을 해 주시겠습니까?
김재왕 : 공익과 인권이라는 범주는 넓은 범주입니다. 저희는 그 중에서도 특히 장애자, 성소수자, 이주 노동자나 난민 문제를 집중적으로 다뤄보고자 합니다. 거기에 덧붙여서 요즘 기업에 의한 인권침해가 심각한 것 같은데 그 부분에 대한 연구도 진행하고자 합니다.
앵커 : 공익 소송을 진행하시겠다고 했는데, 그러려면 수입이 있어야 할 텐데요. 수입은 어떻게 하시려고요?
김재왕 : 개인들의 소액 후원을 바탕으로 한 후원과, 저희 내부의 수익사업으로 재정을 충당하려고 하고 있고요. 수익사업으로 수익 사업은 소송구조나 변협의 법률구조기금을 통한 소송수임, 그리고 교육, 출판 등의 사업을 통한 수익사업을 해보려고 하고 있습니다.
앵커 : 네, 그럼 이곳에 찾아와서 소송 의뢰하시는 분들은 아무 부담이 없으신가요?
김재왕 : 오신다 해도 저희 관련 분야에 맞아야 될 것 같고요. 저희가 찾아오시는 분에게 영리를 취하려고 하지는 않지만, 일정 부분의 실비 정도는 부담하실 수 있겠습니다.
앵커 : 실비 받으셔야죠. 그래야 사무실 유지도 하고 생활도 하시죠. 다른 기존의 변호사들 보다는 저렴하게 실비를 받고 도와 드리겠다 이런 말씀이시군요?
김재왕 : 네. 그리고 소송 자체에서 공익적 의미가 있는 것을 찾겠다는 겁니다.
앵커 : 네, 사건을 선별하게 되겠네요. 알겠습니다. 그런데 로스쿨에 입학하신 게 언제죠?
김재왕 : 2009년에 입학을 했습니다.
앵커 : 그런데 대학을 졸업한지가 언젠가요?
김재왕 : 대학은 2003년에 졸업해서...
앵커 : 지금은 완전히 시력을 잃으신 상태이신가요?
김재왕 : 네, 그렇습니다.
앵커 : 눈이 언제부터 나빠지기 시작하셨는데요?
김재왕 : 대학에서 생물학 전공을 했었는데, 대학을 졸업하고 생물학과 대학원에 진학을 했었어요. 그때 2003년이었는데 그때 시력이 좀 안 좋은 것 같아서 병원에 갔었는데 그때 시신경의 많은 부분이 이미 죽어있었습니다. 아마 그전부터 많이 나빠졌을 것 같은데 그동안 알지 못하다가 그때 그 사실을 알게 되었죠.
앵커 : 그때 알게 되셨는데 그 이후로 점점 시력이 나빠지던가요?
김재왕 : 네, 저는 시신경이 죽는 그런 질환이었는데, 주변부부터 중심부 분야로 점점 시신경이 죽어가서 마지막에 중심 시야 부분의 시신경이 죽었을 때는 안 보이게 된 것이죠
앵커 : 완전히 시력을 잃으신 거네요. 그게 2009년인가요?
김재왕 : 대략 그때쯤인 것 같아요.
앵커 : 제가 알기로는 2009년에 로스쿨이 진학한 것으로 아는데 맞습니까?
김재왕 : 네, 맞습니다.
앵커 : 그러면 시력을 다 잃으신 후에, 점자 같은 것을 통해서 공부를 하셨나요?
김재왕 : 맨 처음 시신경이 많이 죽고 있다는 사실을 안 후에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가 복지관에 상담을 받았는데, 그분이 하신 말씀이 최악의 경우를 대비하는 게 중요하다, 그때 점자나 컴퓨터 보행 등을 배웠습니다.
앵커 : 아, 약간의 시력이 남아있었을 때 준비를 하셨군요. 그리고 국가인권위에서 일을 하셨다는데 그건 언제셨죠?
김재왕 : 2005년부터 일했어요. 로스쿨 들어가기 전까지 4년 동안.
앵커 : 인권위에서는 어떤 일을 하셨는데요?
김재왕 : 상담센터에서 상담 업무를 했습니다.
앵커 : 그때는 시력이 약간은 남아있을 때였습니까?
김재왕 : 네네, 그렇습니다.
앵커 : 그런데, 2009년에 시력을 완전히 잃으셨을 땐데, 로스쿨에 진학하겠다는 이런 어려운 결정을 하게 됐을까요?
김재왕 : 국가 인권 상담도 굉장히 의미 있는 일이었는데요. 상담은 찾아오시는 분들을 상대로 할 수 있었기 때문에 수동적인 측면이 있었어요. 저는 눈도 나빠지고 있는 상황이지만, 좀 더 적극적인 뭔가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다가 로스쿨 진학을 하게 되었습니다.
앵커 : 시력을 완전히 잃게 되셨을 때는 충격을 받았을 것 같은데요.
김재왕 : 아무래도 그렇죠. 막막하더라고요.
앵커 : 그런데도 불구하고 로스쿨에 새롭게 도전하셨군요. 굉장하시네요.
김재왕 : 아닙니다.
앵커 : 앞으로도 큰 계획이 있을 것 같아요. 당장에는 <희망을 만드는 법> 변호사 모임 활동을 하실 것 같고요. 더 큰 포부가 있다면 어떤 말씀을 해 주시겠습니까?
김재왕 : 제가 이렇게 공부를 할 수 있었던 것에는 많은 분들의 도움이 있었어요. 그런 도움에는 저도 모르는 수많은 장애인 분들이나, 많은 활동가 분들이 장애인 차별을 위해서 많이 싸워주셨기 때문에 이렇게 공부를 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되지 않았나 싶고요. 그래서 저도 다른 분들에게 그런 도움을 되돌려주고 싶습니다. 좋은 일도 많이 하고 싶고요.
앵커 : 네, 그렇군요. 앞으로 좋은 일 많이 하시기를 기대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지금까지 올 4월에 로스쿨을 졸업하고 <희망을 만드는 법>이라는 변호사 모임에 참여하는 김재왕 씨와 함께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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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지원 앵커 (이하 앵커) : 약자가 존중받는 세상을 위해서 우리 젊은이들이 움직이고 있습니다. 젊은 변호사들이 사회적 약자를 돕기 위한 공익·인권 소송 전문 변호 모임을 만들었다고 하는데요. 이 가운데에는 국내 사법사상 첫 시각장애인 변호사가 될 김재왕 씨가 있어 화제입니다. 오늘 [별별인터뷰'에서는 김재왕 씨 연결합니다. 안녕하세요?
☎ 김재왕 씨 (이하 김재왕) : 네, 안녕하세요. 희망을 만드는 법의 김재왕입니다.
앵커 : 네, 좋습니다. 이번에 서울대학교 로스쿨을 졸업하신다는 거죠? 4월 달에, 그러면 변호사가 되시는 건가요?
김재왕 : 올 4월에 변호사 시험 합격자 발표가 있는데요. 그 시험에서 합격하게 될 경우 변호사가 되는 겁니다.
앵커 : 정확하게 말하면 아직은 변호사가 아니시네요?
김재왕 : 네.
앵커 : 변호사 시험 잘 보셨어요?
김재왕 : 하하. 저는 잘 봤다고 생각하는데 채점자들은 어떻게 하실지 모르겠네요.
앵커 : 김재왕 씨, 자신을 간단히 소개해 주시겠습니까?
김재왕 : 저는 지금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 만드는 법>의 구성원으로 있고요. 이번에 서울대 로스쿨을 졸업하는 김재왕입니다.
앵커 : 네, 조금 전에 희망을 만드는 법이라고 하셨는데요. 그게 무슨 모임이라고요?
김재왕 : 공익인권변호사 모임입니다.
앵커 : 몇 분이나, 누가 이렇게 만들어서 하시는 모임인가요?
김재왕 : 지금 저까지 해서 총 6분이 있는데요. 현직 변호사이신 두 분과 이번에 사법연수원을 수료하신 두 분, 그리고 저와 같이 로스쿨을 졸업하는 친구 1명, 이렇게 해서 여섯 명이 모였습니다.
앵커 : 그렇군요. 현직 변호사는 2명이고 나머지 네 분은 곧 변호사가 되실 분이네요.
김재왕 : 네. 사법연수원 수료하시는 분들은 이번에 되셨고요.
앵커 : 언제 만드셨어요?
김재왕 : 준비하기는 작년 8월부터 준비했고요. 올 2월에 내부적으로 창립총회를 해서 설립을 했고 3월에 정식 개소를 앞두고 있습니다.
앵커 : 이 모임에 대한 설명을 해주시죠. 어떻게 해서 이 모임을 만들게 되셨고, 또 명칭을 <희망을 만드는 법>이렇게 지으셨군요. 어떤 뜻에서 이렇게 만들게 되셨는지 이 얘기를 먼저 해 주시겠습니까?
김재왕 : 공익인권부분에서 활동하고 싶은 변호사나 예비 변호사들은 많았는데요. 정작 그 움직임은 쉽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이런 활동을 해보겠다는 사람들이 모이게 되었고요. 이들이 모여서 얘기를 하면서 준비를 하게 되었습니다. 이름은 법이 절망이 아닌 희망이 되기를 바란다는 의미와 저희가 활동하는 방법이 그 자체로서 희망을 만드는 방법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그렇게 짓게 되었습니다.
앵커 : 공익인권소송을 전문으로 하시겠다는 거죠? 공익인권이라는 것이 주로 어떤 것을 말씀하시는 것인지 저는 물론 잘 알지만, 청취자분들을 위해서 설명을 해 주시겠습니까?
김재왕 : 공익과 인권이라는 범주는 넓은 범주입니다. 저희는 그 중에서도 특히 장애자, 성소수자, 이주 노동자나 난민 문제를 집중적으로 다뤄보고자 합니다. 거기에 덧붙여서 요즘 기업에 의한 인권침해가 심각한 것 같은데 그 부분에 대한 연구도 진행하고자 합니다.
앵커 : 공익 소송을 진행하시겠다고 했는데, 그러려면 수입이 있어야 할 텐데요. 수입은 어떻게 하시려고요?
김재왕 : 개인들의 소액 후원을 바탕으로 한 후원과, 저희 내부의 수익사업으로 재정을 충당하려고 하고 있고요. 수익사업으로 수익 사업은 소송구조나 변협의 법률구조기금을 통한 소송수임, 그리고 교육, 출판 등의 사업을 통한 수익사업을 해보려고 하고 있습니다.
앵커 : 네, 그럼 이곳에 찾아와서 소송 의뢰하시는 분들은 아무 부담이 없으신가요?
김재왕 : 오신다 해도 저희 관련 분야에 맞아야 될 것 같고요. 저희가 찾아오시는 분에게 영리를 취하려고 하지는 않지만, 일정 부분의 실비 정도는 부담하실 수 있겠습니다.
앵커 : 실비 받으셔야죠. 그래야 사무실 유지도 하고 생활도 하시죠. 다른 기존의 변호사들 보다는 저렴하게 실비를 받고 도와 드리겠다 이런 말씀이시군요?
김재왕 : 네. 그리고 소송 자체에서 공익적 의미가 있는 것을 찾겠다는 겁니다.
앵커 : 네, 사건을 선별하게 되겠네요. 알겠습니다. 그런데 로스쿨에 입학하신 게 언제죠?
김재왕 : 2009년에 입학을 했습니다.
앵커 : 그런데 대학을 졸업한지가 언젠가요?
김재왕 : 대학은 2003년에 졸업해서...
앵커 : 지금은 완전히 시력을 잃으신 상태이신가요?
김재왕 : 네, 그렇습니다.
앵커 : 눈이 언제부터 나빠지기 시작하셨는데요?
김재왕 : 대학에서 생물학 전공을 했었는데, 대학을 졸업하고 생물학과 대학원에 진학을 했었어요. 그때 2003년이었는데 그때 시력이 좀 안 좋은 것 같아서 병원에 갔었는데 그때 시신경의 많은 부분이 이미 죽어있었습니다. 아마 그전부터 많이 나빠졌을 것 같은데 그동안 알지 못하다가 그때 그 사실을 알게 되었죠.
앵커 : 그때 알게 되셨는데 그 이후로 점점 시력이 나빠지던가요?
김재왕 : 네, 저는 시신경이 죽는 그런 질환이었는데, 주변부부터 중심부 분야로 점점 시신경이 죽어가서 마지막에 중심 시야 부분의 시신경이 죽었을 때는 안 보이게 된 것이죠
앵커 : 완전히 시력을 잃으신 거네요. 그게 2009년인가요?
김재왕 : 대략 그때쯤인 것 같아요.
앵커 : 제가 알기로는 2009년에 로스쿨이 진학한 것으로 아는데 맞습니까?
김재왕 : 네, 맞습니다.
앵커 : 그러면 시력을 다 잃으신 후에, 점자 같은 것을 통해서 공부를 하셨나요?
김재왕 : 맨 처음 시신경이 많이 죽고 있다는 사실을 안 후에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가 복지관에 상담을 받았는데, 그분이 하신 말씀이 최악의 경우를 대비하는 게 중요하다, 그때 점자나 컴퓨터 보행 등을 배웠습니다.
앵커 : 아, 약간의 시력이 남아있었을 때 준비를 하셨군요. 그리고 국가인권위에서 일을 하셨다는데 그건 언제셨죠?
김재왕 : 2005년부터 일했어요. 로스쿨 들어가기 전까지 4년 동안.
앵커 : 인권위에서는 어떤 일을 하셨는데요?
김재왕 : 상담센터에서 상담 업무를 했습니다.
앵커 : 그때는 시력이 약간은 남아있을 때였습니까?
김재왕 : 네네, 그렇습니다.
앵커 : 그런데, 2009년에 시력을 완전히 잃으셨을 땐데, 로스쿨에 진학하겠다는 이런 어려운 결정을 하게 됐을까요?
김재왕 : 국가 인권 상담도 굉장히 의미 있는 일이었는데요. 상담은 찾아오시는 분들을 상대로 할 수 있었기 때문에 수동적인 측면이 있었어요. 저는 눈도 나빠지고 있는 상황이지만, 좀 더 적극적인 뭔가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다가 로스쿨 진학을 하게 되었습니다.
앵커 : 시력을 완전히 잃게 되셨을 때는 충격을 받았을 것 같은데요.
김재왕 : 아무래도 그렇죠. 막막하더라고요.
앵커 : 그런데도 불구하고 로스쿨에 새롭게 도전하셨군요. 굉장하시네요.
김재왕 : 아닙니다.
앵커 : 앞으로도 큰 계획이 있을 것 같아요. 당장에는 <희망을 만드는 법> 변호사 모임 활동을 하실 것 같고요. 더 큰 포부가 있다면 어떤 말씀을 해 주시겠습니까?
김재왕 : 제가 이렇게 공부를 할 수 있었던 것에는 많은 분들의 도움이 있었어요. 그런 도움에는 저도 모르는 수많은 장애인 분들이나, 많은 활동가 분들이 장애인 차별을 위해서 많이 싸워주셨기 때문에 이렇게 공부를 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되지 않았나 싶고요. 그래서 저도 다른 분들에게 그런 도움을 되돌려주고 싶습니다. 좋은 일도 많이 하고 싶고요.
앵커 : 네, 그렇군요. 앞으로 좋은 일 많이 하시기를 기대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지금까지 올 4월에 로스쿨을 졸업하고 <희망을 만드는 법>이라는 변호사 모임에 참여하는 김재왕 씨와 함께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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