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찾기' 기록의 사나이 [YTN FM]

'가족 찾기' 기록의 사나이 [YTN FM]

2012.07.03. 오후 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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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3일(화)10년간 3742명… '가족 찾기' 기록의 사나이 (기네스북 등재 예정)- 이건수 경위 (경기 남양주 경찰서)

[YTN FM 94.5 '출발 새아침'] (오전 07:00~09:00)

김갑수 앵커 (이하 앵커) : 오늘 미니인터뷰에서는 좀 색다른 '달인' 을 모셔봤습니다. 바로 '가족찾기'의 달인 경기 남양주 경찰서의 이건수 경위인데요. 얼마나 많이 찾으셨는지 확인했더니 10년간 3742명이라고 합니다. 한국기록원은 이건수 경위의 기록에 대해 기네스북 절차도 밟을 예정이라고 하더라고요.
이건수 경위님과 전화 연결됐습니다. 이 경위님?

☎ 경기 남양주 경찰서 이건수 경위 (이하 이건수) : 네, 안녕하세요.

앵커 : 반갑습니다. 제가 인터넷으로 이건수 경위님를 치니까 제일 먼저 뜨는 문장이 이거군요, 정치권과 경찰 수뇌부는 이건수 경위에게 배워라, 하하. 자기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이건수 : 현재 저는 남양주 경찰서 민원실장으로 근무하고 있습니다.

앵커 : 경찰 경력이 몇 년 쯤 되셨어요?

이건수 : 올해 17년째에 들어가고 있습니다.

앵커 : 그 중에 10년간 주선한 가족상봉이 3,742건 인데요. 이게 다 어떻게 이루어진 겁니까?

이건수 : 실은 제가 민원실 업무를 민원실 발령받아서 왔어요. 가족이라는 개념 없이 업무적으로 일을 했는데 그분 가족을 찾고 보니 너무 보람이 크고 한 분 한 분 이산가족의 아픔을 조금씩 배워나가는 과정이었습니다.

앵커 : 가족과 떨어지는 여러 가지 사정이 있는데 어떤 방법으로 찾으셨나요?

이건수 : 저는 다양하게 조사를 하는데, 가족들 입장을 많이 고려를 했고요. 저희 나름대로 가족을 찾다보니까 방법이 생겼는데요. 특히 어린 시절에 자기 이름을 알 경우에는 그 이름을 가지고 몇 천 명 중에 가족을 뽑아내는 방법이 있고요. 그런 이름 관련수사도 했고요. 환경수사라고 제 나름대로 지었는데 그런 경우에는 그분의 가족관계나 어린 시절 기억나는 주변 건물, 지리여건 이런 환경을 조사하는 방법입니다. 그리고 추적조사는 이런 것을 단서로 연결고리를 만들어서 계속 조사하는 방법이고요. 또 하나는 가족의 경우 자기 이름은 모르지만 어렴풋이 어떤 이름을 알 경우 동명인에게 편지를 보내서 찾는 방법도 있고요. 이런 경우로 나오지 않을 경우에는 유전자 검사나 방송섭외를 통해서 가족을 찾고 있습니다.

앵커 : 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하신 거네요.

이건수 : 그럼요.

앵커 : 사실은 저도 북한에 형님이 있어요. 찾는 과정이 복잡했는데 찾아서 편지도 주고받고 그랬었는데 별별 애절한 사연이 다 많으셨을 겁니다. 기억에 남는 의뢰인 이야기를 해주시면 어떨까요?

이건수 : 특히 입양인의 경우 주로 하는 얘기가 내 눈이 누구를 닮았나요, 내 손이 누구를 닮았나요, 라는 말을 합니다. 이런 이산입양인의 아픔을 우리가 기억해야 하고 또 하나는 60년대 70년대에 남의 집에 보내지면서 헤어진 아기들, 미아아기가 있는데요. 제가 소개하고 싶은 분은 허 모씬데요. 이분은 60세가 다 됐는데 어머님을 너무 그리워해서 결혼을 안 한 겁니다. 저를 찾아오셨기에 어머니에 대한 정보를 물어보니까 어머님 이름도 모르고 단지 어머님이 재혼했던 그 집안의 자녀 이름을 어렴풋이 안다고 하더라고요. 너무 단서가 없는 거예요. 그래서 한 6개월 넘게 조사를 하면서 어머니를 찾았거든요. 그래서 이분 같은 경우 전남 광주에 가서 90세가 되는 어머님을 만나 뵙고 많이 울고 어머님이 끓여주신 흰 죽을 눈물을 흘리면서 먹었다고 합니다. 내가 태어나서 이렇게 맛있는 밥은 처음 먹어봤다고 하면서 어머님 앞에서 재롱도 피우고 아기처럼 끌어안고 왔는데 너무 행복했다고 말을 하더라고요.

앵커 : 그런 막연한 단서로도 찾아지는 군요?

이건수 : 저도 믿기지 않는 현장이 많이 있는데요. 저도 이분들 가족 상봉에 가면 정말 제가 어떻게 이분을 찾았지 하는 그런 경험이 너무 많습니다. 그래서 어느 날은 제가 제 살을 꼬집어 봤어요. 제 앞에 부모님과 자녀가 만났는데 단서가 없는데 어떻게 만났나 하는 의구심이 들어서 제 살을 꼬집어보기도 하고 합니다.

앵커 : 앞에서 처음에 업무로 일을 했는데 만나는 사람들 모습보고 가족의 의미를 생각하고 열심히 하게 됐다고 하는데, 사람이 그런다고 꼭 열심히 하게 되지는 않거든요. 혹시 개인적인 배경이 있나요?

이건수 : 실은 제가 중학교 1학년 때부터 부산에 유학을 떠났습니다. 어린 나이에 배도 많이 곯고 어머님을 늘 그리워하면서 학교를 다녔습니다. 저희 어머님이 저희들을 아껴주셔서 늘 어머님을 그리워하면서 학교를 다녔던 그런 영향도 있었다고 봅니다.

앵커 : 중학교 1학년 시절이었으면 년도 80년대 후반쯤 되나요?

이건수 : 70년대 후반...

앵커 : 능히 짐작이 갑니다. 먹는 것도 시원치 않았을 거라고 생각이 드는데 이 경위님의 기록이 기네스북 등재 절차도 밟을 예정이라고 들었습니다. 구체적인 것을 알고 계십니까?

이건수 : 제가 개인적으로 추진한 것은 아니고요. 제가 열심히 하다 보니 경찰서장님이 한번 해보라고 해서 저는 웃고 넘겼는데 자꾸 말씀을 하셔서 경찰은 계급사회고 해서 지시명령도 있어서 제출을 했습니다. 그래서 한국기록원 인증도 나오고 제가 이것을 하면서 개인적인 목표나 영광은 없고요 단지 이산가족의 아픔을 알리는 현실을 바라보고 우리나라의 이산가족에 대해 많이 깨닫게 되는 계기가 됐으면 하는 게 목푭니다.

앵커 : 이산가족을 남북으로만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것과 무관하게 살기 힘들어서 일가가 뿔뿔이 흩어져서 어디는 보육원에 보내고 어디는 식모살이 맡기고 이러면서 흩어졌는데 나이 들고 보니 그립고 방법은 없고 이런 사람들이 많거든요. 어떻게 해야 되는 겁니까? 전 국민이 이건수 경위님을 찾아갈 수 없는 거고...

이건수 : 많은 분들이 신청이 들어오는데요. 제 나름대로 준비를 하면서 공무원 제한도 많이 줄였었는데요. 우리나라도 미국이나 캐나다, 영국, 호주처럼 실종자를 찾아주는 센터가 있어야 되지 않겠나, 그런 생각도 합니다. 특히나 우리나라는 남북 이산가족이라든지...

앵커 : 해외사례처럼 실종가족찾기 전문센터가 세워졌으면 좋겠다는 말씀이시죠?

이건수 : 네, 그렇습니다.

앵커 : 이렇게 방송을 하고 자꾸 촉구하다보면 위에서도 하겠죠. 가족찾기가 뜨겁고 보람 있는 일 아니겠습니까. 앞으로 이 경위님 더 많은 활동하시고요. 기네스북에서도 이름을 찾게 됐으면 좋겠습니다. 이건수 경위와 함께 한 미니인터뷰였습니다.

[YTN FM 94.5 '출발 새아침'] (오전 07:00~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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