되풀이 되는 대형참사...뭘 배웠나?

되풀이 되는 대형참사...뭘 배웠나?

2014.04.18. 오전 0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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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이번 세월호 침몰 사고 소식 보면서 20년 전, 서해 페리호 사건 떠올리신 분들 많으실 겁니다.

사고 발생부터 피해 상황까지 너무나 닮았기 때문입니다.

정원초과와 무리한 운항, 미흡한 사고 대처 등 당시에도 후진국형 인재였다는 비난이 높았는데, 20년 전이 흐른 뒤에도 크게 달라진 건 없었습니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것도 한심한 노릇인데, 외양간도 제대로 못 고친 격입니다.

그동안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여객선 사고 일지를 김선희 기자가 정리했습니다.

[기자]

부안 위도 주민 등 292명의 소중한 목숨을 한순간에 앗아간 서해 페리호 침몰 참사.

승선 정원인 221명보다 무려 141명이나 많은 사람을 태운 데다 강풍과 높은 파도를 무시한 채 출항한 게 사고 원인이었습니다.

안전 관리 실태도 엉망이었습니다.

기관실에서 화재 등 긴급한 상황이 발생 했을 때 기관사는 비상벨을 울려 조타실에 알려야 하지만 비상벨은 작동하지 않았습니다.

[인터뷰:이윤성, 군산해양수산청 선박검사관]
"기관실에서 화재가 나도 이게 작동하지 않으면 알 수가 없습니다."

1970년 12월에 발생한 남영호 침몰사고도 끔찍한 여객선 참사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제주 서귀포항을 출항해 부산항으로 항해하던 중 침몰해 326명이라는 사상 최악의 인명 피해를 냈습니다.

적재량을 초과한데다 긴급신호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는등 미숙한 항해가 원인이었습니다.

여객선과 해군 구축함이 충돌하며 여객선이 좌초되는 사고도 있었습니다.

1967년 1월 여수항을 출발해 부산항으로 가던 여객선 한일호가 기지로 복귀하던 진해 해군기지 구축함과 충돌하며 94명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폭풍주의보 발효 직전의 강한 악천후 속에서 무리하게 항해하며 탑승객 140명 전원이 사망한 사고도 일어났습니다.

1963년 1월 전남 해남군 황산면 연호리간을 운행하는 정기여객선이 정원을 50명 가까이 초과하고 악천후까지 만나 끝내 침몰했습니다.

한국전쟁이 채 끝나기도 전인 1953년 1월에는 전남 여수항에서 출발해 부산항으로 가던 정기 여객선 창경호가 강풍을 만나 좌초됩니다.

승선 인원 236명 가운데 선장과 선원 등 7명을 제외하고 229명이 사망했습니다.

만든지 20년이 넘은 낡은 화물용 범선을 개조한것이 사고 원인이었습니다.

YTN 김선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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