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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어제 일본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 두 분이 끝내 일본의 사과를 받지 못한 채 별세했습니다.
이제 정부에 등록된 위안부 피해자 가운데 생존자는 50명뿐입니다.
최두희 기자가 보도합니다.
[기자]
영정 속 사진은 고운 모습 그대로입니다.
고인을 떠나보낸 유가족과 지인들은 그저 안타까운 마음입니다.
[김만금, 경상북도 포항시 창포동]
"섭섭하고 불쌍한 건 말도 못하지요. 일본 사람들이 너무 저렇게 하니까 억울하니까 우리 언니 같은 사람이 왜 그렇게 억울하게 돌아가셨을까…."
어젯밤 9시 10분쯤 경북 포항에 살던 위안부 피해자 91살 김달선 할머니가 한 많은 생을 마감했습니다.
할머니는 19살이던 1943년 일본 경찰에 의해 미얀마로 끌려가 위안부 생활을 견뎌야 했습니다.
앞서 30분 전인 저녁 8시 40분쯤에는 김외한 할머니도 81세를 일기로 별세했습니다.
1945년 2월, 11살의 나이에 일본에 끌려갔던 김 할머니는 전쟁이 끝난 뒤, 징용을 갔다 온 남편을 만나 4남 1녀를 뒀습니다.
위안부 할머니 가운데 가장 나이가 어렸지만, 일본군의 폭력과 강압적인 성관계로 질환을 얻어 평생 고생했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할머니는 지난 1998년 정부에 위안부 피해자로 등록하고, 일본 정부의 공식 사과와 법적 배상을 요구해왔습니다.
그렇게 바라온 일본의 사과는 끝내 받지 못한 채 같은 날 떠난 두 할머니.
이제 정부에 등록된 위안부 피해자 238명 가운데 생존자는 50명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YTN 최두희입니다.
[저작권자(c) YTN 무단전재, 재배포 및 AI 데이터 활용 금지]
어제 일본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 두 분이 끝내 일본의 사과를 받지 못한 채 별세했습니다.
이제 정부에 등록된 위안부 피해자 가운데 생존자는 50명뿐입니다.
최두희 기자가 보도합니다.
[기자]
영정 속 사진은 고운 모습 그대로입니다.
고인을 떠나보낸 유가족과 지인들은 그저 안타까운 마음입니다.
[김만금, 경상북도 포항시 창포동]
"섭섭하고 불쌍한 건 말도 못하지요. 일본 사람들이 너무 저렇게 하니까 억울하니까 우리 언니 같은 사람이 왜 그렇게 억울하게 돌아가셨을까…."
어젯밤 9시 10분쯤 경북 포항에 살던 위안부 피해자 91살 김달선 할머니가 한 많은 생을 마감했습니다.
할머니는 19살이던 1943년 일본 경찰에 의해 미얀마로 끌려가 위안부 생활을 견뎌야 했습니다.
앞서 30분 전인 저녁 8시 40분쯤에는 김외한 할머니도 81세를 일기로 별세했습니다.
1945년 2월, 11살의 나이에 일본에 끌려갔던 김 할머니는 전쟁이 끝난 뒤, 징용을 갔다 온 남편을 만나 4남 1녀를 뒀습니다.
위안부 할머니 가운데 가장 나이가 어렸지만, 일본군의 폭력과 강압적인 성관계로 질환을 얻어 평생 고생했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할머니는 지난 1998년 정부에 위안부 피해자로 등록하고, 일본 정부의 공식 사과와 법적 배상을 요구해왔습니다.
그렇게 바라온 일본의 사과는 끝내 받지 못한 채 같은 날 떠난 두 할머니.
이제 정부에 등록된 위안부 피해자 238명 가운데 생존자는 50명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YTN 최두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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