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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상희, 심리상담 전문가 / 김경진, 변호사 / 신지호, 전 새누리당 의원 / 김복준, 한국범죄학연구소장
[앵커]
이번에도 가족 이야기입니다. 원래 가족 이야기는 5월에 해야 되는데요.
그런데 지금 10월달인데. 지금 8년간 자녀 교육을 위해서 아내와 딸을 미국에 보내고 뒷바라지를 한 남편이 이혼을 요구를 했습니다. 그렇죠? 이런 경우들 혹시 김 변호사님 검사 시절에는 이런 경우 다뤄보신 적이 있으세요?
[인터뷰]
검사와는 직접적으로 상관은 없고요.
[앵커]
그렇죠. 이거는 민사니까요. 죄송합니다.
[인터뷰]
가정법원의 사건인데요. 그러니까 2006년.
[앵커]
여상원 변호사님이었으면 아마 그런 것까지 알 필요가 없다고 할 겁니다.
[인터뷰]
그런데 2006년도에 지금 13살짜리 딸 하고 부인을 외국으로 딸하고 이렇게 같이해서 교육을 위해서 보냈는데요. 그러니까 떨어져 있는 기간이 8년 정도 됐는데 이 부부가 그 사이에 만난 경우는 두 번밖에 없다고 합니다.
한국에 있는 아빠인 남편이 딱 2번 현지로 찾아간 것 외에는 외국에 나가있는 경우 빼고 한국에 들어온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리고 이 남편은 태권도 도장을 해서 돈을 벌어서 계속해서 송금을 해 왔는데 한 3년, 4년 지나고 나니까 본인이 여러 가지로 정서적으로도 힘들고 돈을 마련해서 보내는 것도 쉽지 않고 그래서 돌아와줬으면 좋겠다. 나 많이 힘들다, 돈 부치려면 힘들다. 이런 의사표시를 했는데 어쨌든 안 들어오겠다. 그런 게 있었고요.
그러다가 중간에 한 6년쯤 지나니까 그러면 이혼이라도 해 줄 수 있느냐. 이런 이야기가 서로 오갔던 것 같아요. 그래서 최근 직전에는 한 8000만원 정도 외국에 있는 부인이 보내면 이혼을 해 주겠다. 이혼에 동의를 해 주겠다고 해서 남자쪽에서 5000만원 정도 보냈다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어쨌든 3000이 부족해서 그랬는지 몰라도 최종적으로는 동의는 안 해 줬고. 그래서 남편이 부인을 상대로 해서 이혼소송을 냈는데 이게 우리나라 지금 법은 이혼이 파탄주의가 아니고 유책주의거든요.
누군가가 잘못을 명확하게 했어야만 이 이혼이 인정이 되는 것인데요. 이 경우는 큰 틀에서 보면 부인이 잘못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니까 서로 나가서 안 들어오고 8년간이나 떨어져 있던 이런 상황이라면 정서적 유대관계가 깨졌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파탄이 났고 그다음에 어느 정도 잘못은 조금이라도 있다고 볼 수 있는 여지가 있어서 이혼을 허용한다고 지금 1심판결이 나온 상황입니다.
[앵커]
그런데 신 박사님, 주위에도 기러기 아빠 많잖아요. 저도 많잖아요.
그래서 심지어 제가 아는 기러기 아빠 한 분은 특수대학원에 계신 분인데 이분은 주로 식사는 어디에서 하냐면 상갓집 이런 곳에 돌아다니면서 식사를 하시고. 진짜로 그런 분들 많아요.
어디에서 사냐면 자기가 있는 소속한 대학 기숙사에 가서 주무세요. 그렇게 하면서 뒷바라지를 하시는 분을 제가 알고 있습니다. 많으실 거 아닙니까?
[인터뷰]
그런데 이분이 태권도 도장을 운영하셨다고 하는데요. 태권도 도장도 잘 될 때는 잘되겠지만요. 저도 주변에서 그렇게 태권도 도장을 하시는 분들 봤는데 굉장히 어렵거든요.
그러면 이게 8년 동안 이나 미국이거든요. 그러니까 미국에 유학비랑 생활비를 붙이려면 아마 가랑이가 찢어질 정도로 그만큼 힘들었을 텐데 옆에 같이라도 있으면 정신적인 고통을 같이 하면서 자기가 위로도 받고 또 힘이 날 텐데요.
그런데 나중에 이혼소송을 거니까 부인쪽에서는 우리 남편이 외로워서 바람이 난 것 같다. 그래서 오히려 남편쪽의 책임이 있다라고 이렇게 소송 과정에서 말을 한 것 같은데 결국 이렇게 남편의 손을 들어준 걸 보니까요. 하여튼 저는 기러기는 하면 안 된다는 이런 생각이 다시 한 번 드네요.
[인터뷰]
그러니까 이게 아빠로서, 아버지로서 또는 남편으로서 보면 기러기 생활은 삶에 있어서 최악의 선택인 것 같아요. 왜냐하면 자식을 미국에 보내놓잖아요, 어린 나이에요.
그러면 저게 한국인입니까, 미국인입니까? 나중에 크고 나면 결국은 대학교육까지 받고 나면 저거는 완벽한 미국인으로 자라죠. 한국인이 아니거든요.
더 이상 대한민국의 국민이 아니고 부자지간 서로 10년이상 떨어져 있으면 부자지간에 정이 있겠습니까?
아버지는 더 이상 아버지가 아니고 그저 돈을 주는 기계로 보여지고 말거든요. 그렇다고 본다면 저는 사실은 기러기의 삶을 선택한다고 하는 것은 스스로 어떻게 보면 자식을 키워야겠다는 큰 명제에 집착해서 자식과의 부자지간의 인연도 포기한 것이고 대한민국의 아들도 외국으로 날려보낸 것이고. 지금 큰틀에서 생각을 해 보면 대한민국의 학문수준이나 이런 것들이 결코 외국에 뒤지지 않거든요.
그래서 과거 지금까지 기러기 삶을 선택했던 패턴들이 일부 있었다면 지금 이 순간 현명하게 생각해 보면 저런 기러기 선택은 더 이상 할 필요가 없는 것 같아요.
[인터뷰]
신 교수님, 대학에서 제자들을 많이 가르치시니까 다 느끼실 텐데 이전하고 달리 요즘은 한국에서 취업하는 데 있잖아요, 미국이나 영국에서 유학을 했다는 게 큰 이점으로 작용을 안 하고요.
정말 교환학생 제도 같은 게 많잖아요, 요즘은. 그런데 공부를 진짜 잘 하는 아이들은 놀러 배낭여행으로는 가도 거기로는 안 가려고 합니다.
그러니까 이제 더 이상 이렇게 정말 고생고생 해서 해 봤자 본인을 위해서도 불행하지만 자식의 장래를 위한 보탬이 되는 일이 아니다. 그런 새로운 현실이 우리 앞에 온 겁니다.
[인터뷰]
그래도 우리가 이렇게 이야기를 하면 안 됩니다. 절대다수의 성공적인 기러기 아빠들도 많으니까요.
[앵커]
기러기의 명예를 생각해야죠.
[인터뷰]
그렇죠. 그러니까 그렇게 얘기를 하면 안 되고요. 제가 볼 때는 이 집 딸이 13살에 가서 8년이면 지금 21살이에요. 딸이 성인 나이가 됐으면 엄마, 아빠 간에 중재하는 역할이 필요한데 아마 그쪽 교육을 받다 보니까 아무래도 우리보다 개인주의가 발달이 돼 있잖아요. 그래서 중재를 못하고 그러는 것 같은데요.
두 번 정도 아버지가 미국에 찾아가서 만날 때는 독수리 아빠였어요. 그때는 날라서 훅 갔는데요. 그런데 지금 기러기로 살다가 그나마도 안 돼서 펭귄 아빠가 되어 버렸는데요. 아까 말씀하신 게 맞습니다.
가능하면 제 주변 친구들도 너무 많아서 부부는 사실 지지고 볶아도 붙어 있을 때 빛이 나고 또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지거든요. 그래서 기러기는 될 수 있으면 안 했으면 좋겠는데요. 이왕 가신 기러기 아빠는 용기를 내려서 이런 일이 없었으면 좋겠어요.
[앵커]
그런데 한 가지. 8년 동안 어떻게 두 번만 봅니까? 이 기러기는 아주 독특한 기러기에요.
[인터뷰]
그러니까 지금 잘 지적을 해 주셨는데요. 문제는 8년 중에 딱 두 번 봤다는 것, 8년. 사실은 기러기 아빠들의 고통은 너무 많이 언론을 통해서 사망한 사례도 있고 우울증이나 자살시도 이런 것도 많잖아요. 맨 처음에는 자유로움도 느끼고 기대도 있고 이별에 대한 애틋함도 있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고독감, 우울함, 고립감 이런 걸로 병이 들기 시작하는 거죠. 그리고 아까 말씀하신 것처럼 잠도, 먹는 것도 모두 부실하다 보니까 실질적으로 병도 많이 생기고요.
그리고 따로 떨어져 있다보니까 마음도 식고 이런 여러 가지 문제가 일어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학적인 조사는 아니지만 많은 분들이 한 2년에서 3년까지는 그래도 가정이 깨지지는 않더라, 이렇게 많이 이야기를 하세요.
그런데 딱히 3년이라기보다는 그 정도가 지나면 가정이나 아니면 엄마, 아빠, 아이들 사이도 다 금이 가기 시작하더라는 거예요.
그래서 만약에 떨어졌다고 하더라도 8년 동안 이 아빠를 혼자 둔 건 너무 가혹하고 이 아빠가 병이 안 날 수 없었다는 거죠. 그러면 이 엄마는 어떻게 8년 동안 고국에 한 번도 안 올 수 있었을까. 그러니까 두 개 중 하나일 것 같습니다.
하나는 이미 기러기를 가기 전에 부부관계가 많이 금이 가 있어서 이혼 대신 선택한 그 선택일 수도 있고요.
또 하나는 미국에 갔더니 한국에 들어오기 싫은 어떤 이유가 있는 거죠. 너무 거기가 좋다던가, 거기에서 직장을 잡았다든가 아니면 경제적으로 도저히 올 수 없는 비행기표를 못 산다든가. 그렇지만 이 아빠로서는 이렇게 이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 것은 여자가 봤을 때도 당연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앵커]
신 박사님은 일본에서 학위를 받으셨고 저는 독일에서 했는데. 제가 유학할 때만 해도 끝내서 오든지 아니면 죽어서 오든지 둘 중 하나였어요. 그래서 요새는 방학 때마다 오고 그러는데요. 그때는 진짜 자주 못 나왔었거든요.
그런데 이분은 유학을 지금 하는 것도 아니고 조금 자주 나왔으면 이 정도까지 사태가 되지는 않지 않았을까 하는 안타까움이 굉장히 많습니다. 굉장히 씁쓸한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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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이번에도 가족 이야기입니다. 원래 가족 이야기는 5월에 해야 되는데요.
그런데 지금 10월달인데. 지금 8년간 자녀 교육을 위해서 아내와 딸을 미국에 보내고 뒷바라지를 한 남편이 이혼을 요구를 했습니다. 그렇죠? 이런 경우들 혹시 김 변호사님 검사 시절에는 이런 경우 다뤄보신 적이 있으세요?
[인터뷰]
검사와는 직접적으로 상관은 없고요.
[앵커]
그렇죠. 이거는 민사니까요. 죄송합니다.
[인터뷰]
가정법원의 사건인데요. 그러니까 2006년.
[앵커]
여상원 변호사님이었으면 아마 그런 것까지 알 필요가 없다고 할 겁니다.
[인터뷰]
그런데 2006년도에 지금 13살짜리 딸 하고 부인을 외국으로 딸하고 이렇게 같이해서 교육을 위해서 보냈는데요. 그러니까 떨어져 있는 기간이 8년 정도 됐는데 이 부부가 그 사이에 만난 경우는 두 번밖에 없다고 합니다.
한국에 있는 아빠인 남편이 딱 2번 현지로 찾아간 것 외에는 외국에 나가있는 경우 빼고 한국에 들어온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리고 이 남편은 태권도 도장을 해서 돈을 벌어서 계속해서 송금을 해 왔는데 한 3년, 4년 지나고 나니까 본인이 여러 가지로 정서적으로도 힘들고 돈을 마련해서 보내는 것도 쉽지 않고 그래서 돌아와줬으면 좋겠다. 나 많이 힘들다, 돈 부치려면 힘들다. 이런 의사표시를 했는데 어쨌든 안 들어오겠다. 그런 게 있었고요.
그러다가 중간에 한 6년쯤 지나니까 그러면 이혼이라도 해 줄 수 있느냐. 이런 이야기가 서로 오갔던 것 같아요. 그래서 최근 직전에는 한 8000만원 정도 외국에 있는 부인이 보내면 이혼을 해 주겠다. 이혼에 동의를 해 주겠다고 해서 남자쪽에서 5000만원 정도 보냈다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어쨌든 3000이 부족해서 그랬는지 몰라도 최종적으로는 동의는 안 해 줬고. 그래서 남편이 부인을 상대로 해서 이혼소송을 냈는데 이게 우리나라 지금 법은 이혼이 파탄주의가 아니고 유책주의거든요.
누군가가 잘못을 명확하게 했어야만 이 이혼이 인정이 되는 것인데요. 이 경우는 큰 틀에서 보면 부인이 잘못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니까 서로 나가서 안 들어오고 8년간이나 떨어져 있던 이런 상황이라면 정서적 유대관계가 깨졌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파탄이 났고 그다음에 어느 정도 잘못은 조금이라도 있다고 볼 수 있는 여지가 있어서 이혼을 허용한다고 지금 1심판결이 나온 상황입니다.
[앵커]
그런데 신 박사님, 주위에도 기러기 아빠 많잖아요. 저도 많잖아요.
그래서 심지어 제가 아는 기러기 아빠 한 분은 특수대학원에 계신 분인데 이분은 주로 식사는 어디에서 하냐면 상갓집 이런 곳에 돌아다니면서 식사를 하시고. 진짜로 그런 분들 많아요.
어디에서 사냐면 자기가 있는 소속한 대학 기숙사에 가서 주무세요. 그렇게 하면서 뒷바라지를 하시는 분을 제가 알고 있습니다. 많으실 거 아닙니까?
[인터뷰]
그런데 이분이 태권도 도장을 운영하셨다고 하는데요. 태권도 도장도 잘 될 때는 잘되겠지만요. 저도 주변에서 그렇게 태권도 도장을 하시는 분들 봤는데 굉장히 어렵거든요.
그러면 이게 8년 동안 이나 미국이거든요. 그러니까 미국에 유학비랑 생활비를 붙이려면 아마 가랑이가 찢어질 정도로 그만큼 힘들었을 텐데 옆에 같이라도 있으면 정신적인 고통을 같이 하면서 자기가 위로도 받고 또 힘이 날 텐데요.
그런데 나중에 이혼소송을 거니까 부인쪽에서는 우리 남편이 외로워서 바람이 난 것 같다. 그래서 오히려 남편쪽의 책임이 있다라고 이렇게 소송 과정에서 말을 한 것 같은데 결국 이렇게 남편의 손을 들어준 걸 보니까요. 하여튼 저는 기러기는 하면 안 된다는 이런 생각이 다시 한 번 드네요.
[인터뷰]
그러니까 이게 아빠로서, 아버지로서 또는 남편으로서 보면 기러기 생활은 삶에 있어서 최악의 선택인 것 같아요. 왜냐하면 자식을 미국에 보내놓잖아요, 어린 나이에요.
그러면 저게 한국인입니까, 미국인입니까? 나중에 크고 나면 결국은 대학교육까지 받고 나면 저거는 완벽한 미국인으로 자라죠. 한국인이 아니거든요.
더 이상 대한민국의 국민이 아니고 부자지간 서로 10년이상 떨어져 있으면 부자지간에 정이 있겠습니까?
아버지는 더 이상 아버지가 아니고 그저 돈을 주는 기계로 보여지고 말거든요. 그렇다고 본다면 저는 사실은 기러기의 삶을 선택한다고 하는 것은 스스로 어떻게 보면 자식을 키워야겠다는 큰 명제에 집착해서 자식과의 부자지간의 인연도 포기한 것이고 대한민국의 아들도 외국으로 날려보낸 것이고. 지금 큰틀에서 생각을 해 보면 대한민국의 학문수준이나 이런 것들이 결코 외국에 뒤지지 않거든요.
그래서 과거 지금까지 기러기 삶을 선택했던 패턴들이 일부 있었다면 지금 이 순간 현명하게 생각해 보면 저런 기러기 선택은 더 이상 할 필요가 없는 것 같아요.
[인터뷰]
신 교수님, 대학에서 제자들을 많이 가르치시니까 다 느끼실 텐데 이전하고 달리 요즘은 한국에서 취업하는 데 있잖아요, 미국이나 영국에서 유학을 했다는 게 큰 이점으로 작용을 안 하고요.
정말 교환학생 제도 같은 게 많잖아요, 요즘은. 그런데 공부를 진짜 잘 하는 아이들은 놀러 배낭여행으로는 가도 거기로는 안 가려고 합니다.
그러니까 이제 더 이상 이렇게 정말 고생고생 해서 해 봤자 본인을 위해서도 불행하지만 자식의 장래를 위한 보탬이 되는 일이 아니다. 그런 새로운 현실이 우리 앞에 온 겁니다.
[인터뷰]
그래도 우리가 이렇게 이야기를 하면 안 됩니다. 절대다수의 성공적인 기러기 아빠들도 많으니까요.
[앵커]
기러기의 명예를 생각해야죠.
[인터뷰]
그렇죠. 그러니까 그렇게 얘기를 하면 안 되고요. 제가 볼 때는 이 집 딸이 13살에 가서 8년이면 지금 21살이에요. 딸이 성인 나이가 됐으면 엄마, 아빠 간에 중재하는 역할이 필요한데 아마 그쪽 교육을 받다 보니까 아무래도 우리보다 개인주의가 발달이 돼 있잖아요. 그래서 중재를 못하고 그러는 것 같은데요.
두 번 정도 아버지가 미국에 찾아가서 만날 때는 독수리 아빠였어요. 그때는 날라서 훅 갔는데요. 그런데 지금 기러기로 살다가 그나마도 안 돼서 펭귄 아빠가 되어 버렸는데요. 아까 말씀하신 게 맞습니다.
가능하면 제 주변 친구들도 너무 많아서 부부는 사실 지지고 볶아도 붙어 있을 때 빛이 나고 또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지거든요. 그래서 기러기는 될 수 있으면 안 했으면 좋겠는데요. 이왕 가신 기러기 아빠는 용기를 내려서 이런 일이 없었으면 좋겠어요.
[앵커]
그런데 한 가지. 8년 동안 어떻게 두 번만 봅니까? 이 기러기는 아주 독특한 기러기에요.
[인터뷰]
그러니까 지금 잘 지적을 해 주셨는데요. 문제는 8년 중에 딱 두 번 봤다는 것, 8년. 사실은 기러기 아빠들의 고통은 너무 많이 언론을 통해서 사망한 사례도 있고 우울증이나 자살시도 이런 것도 많잖아요. 맨 처음에는 자유로움도 느끼고 기대도 있고 이별에 대한 애틋함도 있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고독감, 우울함, 고립감 이런 걸로 병이 들기 시작하는 거죠. 그리고 아까 말씀하신 것처럼 잠도, 먹는 것도 모두 부실하다 보니까 실질적으로 병도 많이 생기고요.
그리고 따로 떨어져 있다보니까 마음도 식고 이런 여러 가지 문제가 일어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학적인 조사는 아니지만 많은 분들이 한 2년에서 3년까지는 그래도 가정이 깨지지는 않더라, 이렇게 많이 이야기를 하세요.
그런데 딱히 3년이라기보다는 그 정도가 지나면 가정이나 아니면 엄마, 아빠, 아이들 사이도 다 금이 가기 시작하더라는 거예요.
그래서 만약에 떨어졌다고 하더라도 8년 동안 이 아빠를 혼자 둔 건 너무 가혹하고 이 아빠가 병이 안 날 수 없었다는 거죠. 그러면 이 엄마는 어떻게 8년 동안 고국에 한 번도 안 올 수 있었을까. 그러니까 두 개 중 하나일 것 같습니다.
하나는 이미 기러기를 가기 전에 부부관계가 많이 금이 가 있어서 이혼 대신 선택한 그 선택일 수도 있고요.
또 하나는 미국에 갔더니 한국에 들어오기 싫은 어떤 이유가 있는 거죠. 너무 거기가 좋다던가, 거기에서 직장을 잡았다든가 아니면 경제적으로 도저히 올 수 없는 비행기표를 못 산다든가. 그렇지만 이 아빠로서는 이렇게 이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 것은 여자가 봤을 때도 당연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앵커]
신 박사님은 일본에서 학위를 받으셨고 저는 독일에서 했는데. 제가 유학할 때만 해도 끝내서 오든지 아니면 죽어서 오든지 둘 중 하나였어요. 그래서 요새는 방학 때마다 오고 그러는데요. 그때는 진짜 자주 못 나왔었거든요.
그런데 이분은 유학을 지금 하는 것도 아니고 조금 자주 나왔으면 이 정도까지 사태가 되지는 않지 않았을까 하는 안타까움이 굉장히 많습니다. 굉장히 씁쓸한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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