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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지난 5일 울산에서 규모 5의 지진이 일어났지만 국민안전처의 긴급재난문자는 18분이 지나서야 울산 시민들에게 도착했습니다.
만약 큰 지진이었을 경우모든 상황이 끝난 뒤 지진 문자가 도착한 셈인데 지진에 대한 정부의 대응은 이번 뿐만이 아니었습니다.
홍상희 기자의 보도입니다.
[기자]
울산에 사는 주부 김주연 씨.
그날의 공포를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떨립니다.
[김주연 : 여태 살면서 제일 무서운 날이었어요. 정말 그 공포심이 자연재해처럼 지진으로 인한 공포심은 말도 못해요. 정말 무서웠어요. 그날 밤에 잠도 못 잤어요.]
거실에 있던 아이들도 건물이 휘청거릴 정도의 진동을 느꼈습니다.
[이재용 : 흰색 문이 첫 번째부터 저기까지 위에만 흔들리고 창문도 흔들리고 벽도 흔들렸어요. 무서웠어요.]
[이수진 : 나가야 하는데, 너무 높으니까 어떻게 나가야 하지... 이런 생각.]
지진이 멈추고 가까스로 안정을 되찾은 김 씨.
하지만 휴대전화를 본 후 할 말을 잃었다고 합니다.
바로 국민안전처의 긴급재난 문자 때문이었습니다.
지진이 일어난 지 20분이 지나서야 도착한 문자.
심지어 날짜도 전날인 4일로 적혀 있었던 겁니다.
[김주연 :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하죠. 심지어 날짜까지도 오류로 돼서 믿음이 안 가고, 어떻게 해야 할지.]
울산 시내에서 영화를 보다가 갑자기 전기가 꺼지면서 큰 진동을 느낀 한민희 씨도 어둠 속을 빠져나오는 내내 공포감에 떨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대피하는 30분간 어떤 문자도 받지 못했다며 허탈해했습니다.
[한민희 : 너무 대처가 느리다고, 이래서 살겠냐고. 아 이렇게 지진 때문에 죽고 다치고 하는구나.]
18분이나 늦은 긴급재난 문자.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
기상청에서는 지진계에 지진이 감지된 지 27초 만에 국민안전처에 지진 사실을 통보했습니다.
하지만 국민안전처에서는 진도 분석을 하는데 5분, 진도 4 이상 지역을 추출해 상황실에서 해당 시군구를 분류해 내보내는데 또 다시 10분이 넘게 걸렸습니다.
게다가 이 과정이 자동화가 아니라 수작업으로 일일이 입력을 하다 보니 지진 문자가 휴대전화에 도착하는 데 18분이나 걸리고 날짜도 틀렸던 겁니다.
[국민안전처 : 현재는 수동으로 하고 있어요. 그런 부분 때문에 아마 큰 지진이 나고, 이것저것 해야 할 일은 많고 담당자 혼자서...]
[기자 : 만약에 더 큰 진도 지진이 느껴졌을 경우, 늦은 거 아니에요?]
[국민안전처 : 그렇죠. 한계가 좀 있습니다.]
지진이 일어난 뒤, 정부의 안일한 대응은 이번 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취재진은 지난해 12월, 규모 3.9의 지진이 발생했던 전북 익산의 한 농촌 마을을 찾았습니다.
12월 22일 새벽 4시 30분.
손주 두 명을 데리고 곤히 잠들었던 배흥혹 할머니는 뭔가 폭발하는 소리에 소스라치게 놀라 일어났다고 합니다.
[배흥혹 : 여기서 쿵쿵하더니 불이 번쩍 난 거예요. 그래서 내가 깜짝 놀라서 애를 덮쳤어. 이렇게 구르는 채로. 무너지는 줄 알고, 애는 살려야 할 것 아니야 나 하나 죽더라도 괜찮은데 손자는 살려야지.]
고요한 새벽에 들이닥친 지진은 조용했던 마을을 쑥대밭으로 만들었습니다.
[배흥혹 : 나는 어디서 미사일 터진 줄 알았어요. 왜냐하면 여기 익산 폭발사고 났을 때 쿵쿵했는데, 그건 아무것도 아니야. 10분의 1도 안 돼요. 이건 막 집이 무너지는가 해서 문 열고 나와 본거지.]
마을을 할퀴고 지나간 지진의 흔적은 집집마다 고스란히 남아 있습니다.
벽이 갈라지고, 타일이 떨어지고 바닥마저 기울었습니다.
지진이 났던 그 날 겨울, 놀란 가슴을 안고 삼삼오오 찾았던 노인회관에 어르신들이 다시 모였습니다.
불안한 마음에 평생을 살아온 고향을 떠나고 싶지만 그럴 수도 없습니다.
[이상진 : 다시 지진이 재발하면 생명의 위험을 느끼니까 이사가고픈 마음이 있다니까.]
[이석구 : 지진을 일본에서만 나는 줄 알았다니까. 내 나이 80이 다 되어 가는데 여태껏 지진이라는 걸모르고 살았으니까. 내가 태어나서 지진을 처음 느껴본 거예요.]
분명히 눈에 보이는 지진 피해가 있지만, 지진이 일어난 지 7달이 넘도록 정부에서는 지진 피해 조사도 설명도 없었습니다.
항의가 잇따르자 시 공무원들이 한 번 나와 보고 간 게 전붑니다.
[김영옥 : 우리나라 정세가, 죽든가 뭔 사고가 나야 소 잃고 외양간을 고치지. 죽고 사건이 터져야 이렇게 해야겠다, 이런 식이지, 항상 그래요. 앞으로라도 지진이 없다는 보장도 없잖아요. 안 온다는 보장이 없다고. 그럼 지진에 대해서 어떤 교육을 한다든지 대피요령이라든가, 교육이나 방법, 피해 방법을 해야 하는데 그러고 저러고 아무...]
50여 세대, 노인 100여 명이 남아있는 간성마을.
사람들은 오늘도 언제 다시 올지 모르는 지진의 공포 속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기자 : 또 (지진이) 올 것 같으세요?]
[백영환 : 오죠, 또 올 것 같아요. 틀림없이 전 온다고 봐요.]
[기자 : 또 오면 어떻게 하실 거예요?]
[백영환 : 어떻게 하긴, 어떻게 하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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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일 울산에서 규모 5의 지진이 일어났지만 국민안전처의 긴급재난문자는 18분이 지나서야 울산 시민들에게 도착했습니다.
만약 큰 지진이었을 경우모든 상황이 끝난 뒤 지진 문자가 도착한 셈인데 지진에 대한 정부의 대응은 이번 뿐만이 아니었습니다.
홍상희 기자의 보도입니다.
[기자]
울산에 사는 주부 김주연 씨.
그날의 공포를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떨립니다.
[김주연 : 여태 살면서 제일 무서운 날이었어요. 정말 그 공포심이 자연재해처럼 지진으로 인한 공포심은 말도 못해요. 정말 무서웠어요. 그날 밤에 잠도 못 잤어요.]
거실에 있던 아이들도 건물이 휘청거릴 정도의 진동을 느꼈습니다.
[이재용 : 흰색 문이 첫 번째부터 저기까지 위에만 흔들리고 창문도 흔들리고 벽도 흔들렸어요. 무서웠어요.]
[이수진 : 나가야 하는데, 너무 높으니까 어떻게 나가야 하지... 이런 생각.]
지진이 멈추고 가까스로 안정을 되찾은 김 씨.
하지만 휴대전화를 본 후 할 말을 잃었다고 합니다.
바로 국민안전처의 긴급재난 문자 때문이었습니다.
지진이 일어난 지 20분이 지나서야 도착한 문자.
심지어 날짜도 전날인 4일로 적혀 있었던 겁니다.
[김주연 :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하죠. 심지어 날짜까지도 오류로 돼서 믿음이 안 가고, 어떻게 해야 할지.]
울산 시내에서 영화를 보다가 갑자기 전기가 꺼지면서 큰 진동을 느낀 한민희 씨도 어둠 속을 빠져나오는 내내 공포감에 떨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대피하는 30분간 어떤 문자도 받지 못했다며 허탈해했습니다.
[한민희 : 너무 대처가 느리다고, 이래서 살겠냐고. 아 이렇게 지진 때문에 죽고 다치고 하는구나.]
18분이나 늦은 긴급재난 문자.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
기상청에서는 지진계에 지진이 감지된 지 27초 만에 국민안전처에 지진 사실을 통보했습니다.
하지만 국민안전처에서는 진도 분석을 하는데 5분, 진도 4 이상 지역을 추출해 상황실에서 해당 시군구를 분류해 내보내는데 또 다시 10분이 넘게 걸렸습니다.
게다가 이 과정이 자동화가 아니라 수작업으로 일일이 입력을 하다 보니 지진 문자가 휴대전화에 도착하는 데 18분이나 걸리고 날짜도 틀렸던 겁니다.
[국민안전처 : 현재는 수동으로 하고 있어요. 그런 부분 때문에 아마 큰 지진이 나고, 이것저것 해야 할 일은 많고 담당자 혼자서...]
[기자 : 만약에 더 큰 진도 지진이 느껴졌을 경우, 늦은 거 아니에요?]
[국민안전처 : 그렇죠. 한계가 좀 있습니다.]
지진이 일어난 뒤, 정부의 안일한 대응은 이번 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취재진은 지난해 12월, 규모 3.9의 지진이 발생했던 전북 익산의 한 농촌 마을을 찾았습니다.
12월 22일 새벽 4시 30분.
손주 두 명을 데리고 곤히 잠들었던 배흥혹 할머니는 뭔가 폭발하는 소리에 소스라치게 놀라 일어났다고 합니다.
[배흥혹 : 여기서 쿵쿵하더니 불이 번쩍 난 거예요. 그래서 내가 깜짝 놀라서 애를 덮쳤어. 이렇게 구르는 채로. 무너지는 줄 알고, 애는 살려야 할 것 아니야 나 하나 죽더라도 괜찮은데 손자는 살려야지.]
고요한 새벽에 들이닥친 지진은 조용했던 마을을 쑥대밭으로 만들었습니다.
[배흥혹 : 나는 어디서 미사일 터진 줄 알았어요. 왜냐하면 여기 익산 폭발사고 났을 때 쿵쿵했는데, 그건 아무것도 아니야. 10분의 1도 안 돼요. 이건 막 집이 무너지는가 해서 문 열고 나와 본거지.]
마을을 할퀴고 지나간 지진의 흔적은 집집마다 고스란히 남아 있습니다.
벽이 갈라지고, 타일이 떨어지고 바닥마저 기울었습니다.
지진이 났던 그 날 겨울, 놀란 가슴을 안고 삼삼오오 찾았던 노인회관에 어르신들이 다시 모였습니다.
불안한 마음에 평생을 살아온 고향을 떠나고 싶지만 그럴 수도 없습니다.
[이상진 : 다시 지진이 재발하면 생명의 위험을 느끼니까 이사가고픈 마음이 있다니까.]
[이석구 : 지진을 일본에서만 나는 줄 알았다니까. 내 나이 80이 다 되어 가는데 여태껏 지진이라는 걸모르고 살았으니까. 내가 태어나서 지진을 처음 느껴본 거예요.]
분명히 눈에 보이는 지진 피해가 있지만, 지진이 일어난 지 7달이 넘도록 정부에서는 지진 피해 조사도 설명도 없었습니다.
항의가 잇따르자 시 공무원들이 한 번 나와 보고 간 게 전붑니다.
[김영옥 : 우리나라 정세가, 죽든가 뭔 사고가 나야 소 잃고 외양간을 고치지. 죽고 사건이 터져야 이렇게 해야겠다, 이런 식이지, 항상 그래요. 앞으로라도 지진이 없다는 보장도 없잖아요. 안 온다는 보장이 없다고. 그럼 지진에 대해서 어떤 교육을 한다든지 대피요령이라든가, 교육이나 방법, 피해 방법을 해야 하는데 그러고 저러고 아무...]
50여 세대, 노인 100여 명이 남아있는 간성마을.
사람들은 오늘도 언제 다시 올지 모르는 지진의 공포 속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기자 : 또 (지진이) 올 것 같으세요?]
[백영환 : 오죠, 또 올 것 같아요. 틀림없이 전 온다고 봐요.]
[기자 : 또 오면 어떻게 하실 거예요?]
[백영환 : 어떻게 하긴, 어떻게 하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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