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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윤동주 시인이 눈을 감았던 일본 형무소 터에는 일본 시민들을 중심으로 시비를 세우려는 활동이 일고 있지만, 당국의 허가가 나지 않고 있습니다.
나가사키 평화공원 내에서도 한국인 위령비를 세워야 한다는 목소리가 이어지고 있지만 3년째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습니다.
죽어서도 차별받는 조선인들의 현실을, 최민기 기자가 보도합니다.
[기자]
일제강점기, 조국의 아픔을 노래한 청년 시인 윤동주.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스물여덟 살, 짧은 생을 마감했습니다.
윤동주 시인이 숨을 거둔 옛 형무소 터입니다.
지금은 이렇게 구치소가 들어섰고 주변에도 현대식 건물들이 세워졌습니다.
지난해부터 일본 시민들과 학계가 시비 건립을 추진하고 있지만, 담당 구청은 유명인이 아닌 데다 기여한 것이 없다며 반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미 중국인 문학가 등 개인 추모 기념비가 있어 이 같은 조치는 우익을 의식한 차별이 아니냐는 지적입니다.
피폭 희생자를 기리기 위한 나가사키 평화공원의 위령비 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공원 바깥 화장실 옆에 조선인 위령비가 초라하게 세워져 있습니다.
공원 내에 제대로 세우자는 요구가 3년째 이어지고 있지만 시 측은 응하지 않고 있습니다.
나가사키 원폭 희생자 전체 7만여 명 가운데 조선인만 만여 명.
[하시구치 마이 / 일본 카수이고등학교 2학년 : 일본 정부가 전쟁을 치르면서 한국인들을 강제 징용한 가운데 8월 9일 원폭이 떨어져 많은 이들이 희생을 당했고….]
[오가와 히나코 / 일본 카수이고등학교 2학년 : 한국에도 피폭자가 있는 것을 일본인에게 알리기 위해 한국인 위령비를 평화공원 내 안치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죽어서도 이방인인 조선인.
억울하게 희생된 조선인들을 위로하려는 노력은 여전히 멀기만 합니다.
YTN 최민기입니다.
[저작권자(c) YTN 무단전재, 재배포 및 AI 데이터 활용 금지]
윤동주 시인이 눈을 감았던 일본 형무소 터에는 일본 시민들을 중심으로 시비를 세우려는 활동이 일고 있지만, 당국의 허가가 나지 않고 있습니다.
나가사키 평화공원 내에서도 한국인 위령비를 세워야 한다는 목소리가 이어지고 있지만 3년째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습니다.
죽어서도 차별받는 조선인들의 현실을, 최민기 기자가 보도합니다.
[기자]
일제강점기, 조국의 아픔을 노래한 청년 시인 윤동주.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스물여덟 살, 짧은 생을 마감했습니다.
윤동주 시인이 숨을 거둔 옛 형무소 터입니다.
지금은 이렇게 구치소가 들어섰고 주변에도 현대식 건물들이 세워졌습니다.
지난해부터 일본 시민들과 학계가 시비 건립을 추진하고 있지만, 담당 구청은 유명인이 아닌 데다 기여한 것이 없다며 반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미 중국인 문학가 등 개인 추모 기념비가 있어 이 같은 조치는 우익을 의식한 차별이 아니냐는 지적입니다.
피폭 희생자를 기리기 위한 나가사키 평화공원의 위령비 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공원 바깥 화장실 옆에 조선인 위령비가 초라하게 세워져 있습니다.
공원 내에 제대로 세우자는 요구가 3년째 이어지고 있지만 시 측은 응하지 않고 있습니다.
나가사키 원폭 희생자 전체 7만여 명 가운데 조선인만 만여 명.
[하시구치 마이 / 일본 카수이고등학교 2학년 : 일본 정부가 전쟁을 치르면서 한국인들을 강제 징용한 가운데 8월 9일 원폭이 떨어져 많은 이들이 희생을 당했고….]
[오가와 히나코 / 일본 카수이고등학교 2학년 : 한국에도 피폭자가 있는 것을 일본인에게 알리기 위해 한국인 위령비를 평화공원 내 안치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죽어서도 이방인인 조선인.
억울하게 희생된 조선인들을 위로하려는 노력은 여전히 멀기만 합니다.
YTN 최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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