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체실험' 731부대, 반성 대신 업적으로 평가

'생체실험' 731부대, 반성 대신 업적으로 평가

2014.01.22. 오전 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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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과거 2차대전 당시 731부대의 생체실험 만행이 중국을 비롯한 점령지역에서는 물론 일본 내에서도 자행됐다는 사실이 놀라운 일인데요.

특히 731부대에 가담했던 이들이 생체실험 데이터를 이용해 의학박사 학위를 취득한 뒤 종전 후에도 반성 없이 일본 의학계에서 승승장구했던 일에 대해선 분노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도쿄 박철원 특파원 연결해 이번 취재의 뒷얘기를 나눠보겠습니다.

731부대의 생체실험 관련 사실이 담긴 극비 보고서와 논문들이 일본 국회도서관에 대량으로 보관되고 있다는 것인데요.

731부대가 어떤 곳이었는지 먼저 설명해주시죠?

[기자]

만주사변과 중일전쟁, 태평양전쟁 등 15년 동안 끊임없이 침략 전쟁을 치렀던 일본 육군은 1938년 18개의 사단급 방역급수부를 발족시켰습니다.

이후 생체실험을 진두지휘했던 이시이 시로가 하얼빈에 731부대인 관동군 방역급수부를 두는 등 모두 5개의 고정 방역부대를 설치했습니다.

중국 전역에 산재했던 방역부대에 소속됐던 전체 인원은 만 명을 넘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전쟁터에서 일본 병사들을 치료하고 질병을 예방하기 위해 설치됐던 이들 부대 안에서는 사실 극비리에 세균에 의한 대량 살상과 생체실험을 자행했던 것입니다.

포로로 잡힌 팔로군 병사와 우리 독립투사 등 모두 3천여 명이 생체실험으로 희생된 것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생체실험을 바탕으로 한 연구는 각종 세균 등의 기초 연구와 세균의 독성 강화, 대량 생산과 보존법, 세균의 매개체로서의 쥐나 벼룩에 관한 연구 등 다양합니다.

이 같은 사실은 중국 전선에 각 지부를 두고 있었던 방역급수부 소속 군의장교나 의료진들의 논문이 일본 국회도서관에 극비 문서로 지금도 대량 보관되고 있다는 사실로 알 수 있습니다.

[앵커]

이번 취재로 알려진 새로운 사실은 생체실험을 한 것은 731부대 만이 아니었다는 사실이 밝혀진 거죠?

[기자]

지금까지 생체실험은 731부대에서만 한 것으로 알려져왔습니다.

하지만 이번 취재를 통해 해군군의학교와 일본 내 일부 의과대학에서도 생체실험이 자행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해군군의학교에서는 1차 세계대전 당시 사용됐던 겨자 가스를 인체에 실험했다는 내용이 담긴 관련자의 논문이 이번에 처음으로 발견됐습니다.

또 규슈제국대 의학부에서도 1945년 5월 B-29 폭격기가 추락하면서 포로가 됐던 미군 8명을 모두 생체실험으로 살해했다는 사실도 밝혀졌습니다.

당시 생체실험을 주도했던 이시야마 교수와 가담 학생 등 14명은 포로학대로 구속됐지만 한국전쟁 발발과 함께 슬그머니 풀려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앵커]
"731부대 가담자들 상당수가 생체실험 데이터를 이용해 의학박사 학위를 모두 받았다는 것도충격적인 일인데요 아무리 전쟁시기였지만 의사로서의 도덕적 해이가 극에 달했군요?

[기자]

바로 그 점이 이번 취재에서 가장 주안점을 두었던 부분이라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이번 연구 결과를 내놓은 니시야마 카쓰오 시가대 의대 명예교수는 전후 일본 의학계에서 731부대는 업적으로 평가받고 있다는 사실이 문제라고 비판했습니다.

생체실험을 토대로 한 731부대의 연구보고가 일본 내 각 의과대학에 박사학위 논문으로 제출됐다는 사실이 이번에 드러났습니다.

전쟁 당시는 물론 전쟁이 끝난 후인 1960년까지 731부대 가담자와 가담한 것으로 추정되는 이들에게 의학박사 학위가 수여된 것입니다.

교토대 의학부만 하더라도 15년 전쟁 기간 중 23명의 731부대 가담자에게 박사 학위를 수여한 사실이 확인됐습니다.

심지어 서울대 의대 전신인, 경성제국대학 의학부에서도 731부대의 말라리아 생체실험 결과를 토대로 731부대원에게 박사 학위를 수여한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앵커]

당시 일본 정부의 박사 학위 수여 제도가 궁금한데요…정부의 관여는 없었다고 할 수 있나요?

[기자]

당시 일본의 박사 학위 수여 제도는 문부성이 승인해야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 점에서 일본 정부가 731부대 관련 연구를 극비리에 모두 승인했다는 것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습니다.

731부대와 관련 생체실험 또는 세균전 관련 문서들의 표지에는 모두 극비 글씨가 선명하게 새겨져 있습니다.

심지어 의학 학위 논문에 군사기밀이라는 글씨도 기재돼있는 것으로 볼 때 일본 육군은 페스트균 등 세균을 대량 살상 무기로 개발했다는 점이 드러난 것입니다.

하지만 1999년 노로 방위청 장관은 국회에서 "생체실험 부대의 구체적인 활동 상황에 대해 확인할 수 있는 자료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발뺌했습니다.

일본 정부는 731부대의 존재는 인정하지만 만행 자체는 종전 69년이 되는 지금도 은폐와 부인으로 일관하고 있습니다.

자국 국회도서관에 보관돼있는 다량의 극비 문서에는 731부대가 자행했던 만행이 구체적으로 기록돼있는데도 말입니다.

[앵커]

이번에 연구 결과를 내놓은 니시야마 카쓰오 명예교수는 어떻게 이 같은 연구를 하게 된 거죠?

[기자]

2011년 가을 일본 시민단체가 731부대원이었던 가네코 준이치의 도쿄대 의학부 박사 학위 논문을 발견한 게 연구에 착수한 동기였습니다.

니시야마 명예교수는 그 논문의 소재가 종전 67년이 지난 2011년도에서야 밝혀졌는지 의문을 갖게 됐다는 것입니다.

니시야마 교수 본인이 교토대 의대 출신인 관계로 도쿄의대 못지 않게 연구 중심의 의학부로 유명한 교토대 의학부의 과거사를 샅샅이 뒤지기 시작한 것입니다.

니시야마 교수는 관동군 방역급수부대, 이른바 731부대에 가담했거나 또는 가담한 것으로 추정되는 교토대 의학부 졸업생 등의 의학 박사 학위 논문을 규명하고 싶었다고 말했습니다.

실제로 논문을 찾는 과정에서 졸업생뿐만 아니라 731부대 관련자들은 교토대에 논문만을 제출하고 학위를 취득한 이들이 많았다는 사실도 밝혀냈습니다.

니시야마 명예교수는 독일의 예를 들며 뉘른베르크 재판에 회부된 23명의 전범 중 20명이 의사였다는 점에서 일본의 전쟁의학범죄에 대한 단죄도 있어야했지만 그럴 기회를 놓쳤다고 아쉬워했습니다.

내년 종전 70년을 맞아 교토대 의대에서는 일본 의사회 주최 대규모 행사가 열릴 예정입니다.

니시야마 교수는 의사회 측에 전쟁 가담 의사들의 반성을 촉구하고 있지만 의사회는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도쿄에서 YTN 박철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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