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포르 '국부' 리콴유 타계...전 세계 애도

싱가포르 '국부' 리콴유 타계...전 세계 애도

2015.03.23. 오후 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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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중국 CCTV 앵커, 지난 18일 오보]
"싱가포르의 '국부' 리콴유 전 총리가 타계했습니다. 지병인 폐렴 때문입니다."

지난주 리콴유 전 총리가 사망했다는 루머가 돌면서 중국 CCTV와 미국 CNN 등 세계 주요 언론들이 희대의 오보를 내는 소동을 빚었죠.

그런데 이번에는 진짜가 됐습니다.

전 세계에서 가장 오랫동안 총리로 재직했던 리콴유 전 싱가포르 총리가 오늘 새벽 향년 91세를 일기로 타계했습니다.

[인터뷰:싱가포르 총리실]
"리 전 총리는 오늘 새벽 3시 18분 싱가포르 종합병원에서 평화롭게 눈을 감았습니다."

리콴유 전 총리는 지난달 5일 심한 폐렴으로 병원에 입원한 뒤 중환자실에서 인공호흡기에 의존해왔습니다.

리콴유 전 총리의 첫째 아들 리센룽 총리는 지난 2004년 아버지의 뒤를 이어 싱가포르 총리로 취임했는데요.

'아버지가 곧 싱가포르였다'며 울먹였습니다.

[인터뷰:리센룽, 싱가포르 총리 (리콴유 전 총리의 아들)]
"국부께서 더 이상 안 계십니다. 아버지는 우리에게 영감을 주었고, 용기를 북돋아 주었으며, 우리를 하나 되게 했고, 여기까지 오게 했습니다. 독립을 위해 싸웠고, 아무 것도 없던 곳에 나라를 세웠으며 우리에게 싱가포르 국민이라는 자부심을 주었습니다. 우리는 앞으로 그와 같은 분을 더 이상 볼 수 없을 겁니다. 많은 싱가포르 국민뿐 아니라 다른 나라 사람들에게도 리 전 총리는 곧 싱가포르였습니다."

리콴유 전 총리는 싱가포르가 영국의 식민지였던 1959년부터 자치정부 총리를 지냈는데요.

이후 1965년 말레이시아 연방에서 독립한 싱가포르의 초대 총리에 올라 1990년 퇴임할 때까지 무려 31년간 총리를 지냈습니다.

도시국가 싱가포르를 아시아에서 최고로 잘사는 나라로 만들었을 뿐 아니라 부정부패가 드문 깨끗한 사회로 건설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싱가포르의 국부로 존경받던 리콴유 전 총리의 타계 소식에 싱가포르 국민은 오열했습니다.

[인터뷰:루아 수이엔, 싱가포르 주민]
"굉장히 슬픕니다. 리콴유 총리는 정말 좋은 분이었고 싱가포르 최고의 총리였기 때문에 많이 슬퍼요."

[인터뷰:로젤리나, 싱가포르 주민]
"우리 가족 모두 깊은 슬픔에 잠겨 있어요. 사실 어제 병문안을 가고 꽃을 보내 드리려 생각했는데 늦어버렸네요. 하느님께서 그분의 영혼을 축복해주시길 바랍니다. 그분이 없었다면 지금의 우리도 없었을 겁니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슬퍼하는 것은 아닙니다.

장기 집권 때문에 '개발 독재자'라는 비판에 시달리는가 하면, 껌만 뱉어도 벌금을 부과하며 '아시아의 히틀러'로 불리기도 했습니다.

또한 장남의 총리 취임으로 권력 세습이라는 지적도 받고 있습니다.

전준형 기자가 보도합니다.

[기자]
리콴유 전 총리는 영국 식민통치 시기인 1923년 싱가포르의 부유한 화교 이민자 집안에서 태어났습니다.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법학을 공부한 뒤 고국으로 돌아와 노동 인권 변호사로 활동하다 32살에 국회의원에 당선됐습니다.

이후 영국 식민지이던 1959년부터 1990년까지 31년 간 총리로 재직하며, 경제 기적의 초석을 닦았습니다.

해외에서는 투자를 적극 유치하고, 내부적으로는 가혹할만큼 강력한 반부패 정책으로 싱가포르를 '아시아의 네 마리 용', 그 중에서도 최대 부국으로 만드는 데 성공했습니다.

하지만 독재에 가까운 권위주의적 통치 방식에 따른 폐해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벌금과 태형 같은 엄격한 통제를 통해 국가경영의 효율성을 강조한 탓에 물질적으로는 부유해졌지만 국민행복지수는 한때 전 세계 최하위 수준을 기록하기도 했습니다.

권력 쟁취를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않아도 된다는 마키아벨리 신봉자로 '국민의 사랑을 받기보다는 두려움의 대상이 되는 게 더 중요하다'고 단언하기도 했습니다.

[인터뷰:리콴유, 홍콩 중문대학교 (2000년 7월)]
"홍콩은 시위와 저항을 너무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마치 영국 식민지일 때처럼 홍콩은 민주적이라고 증명하려고 하는 것 같아요."

시대 배경과 통치 스타일이 비슷해 박정희 전 대통령과 자주 비교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선거를 통해 총리에 올랐고, 강력한 반부패 정책을 펼쳤다는 점에서 차이가 크다는 평가도 있습니다.

[인터뷰:리콴유, 전경련 국제자문단회의 (1999년 10월)]
"한국 재벌은 고작 2%의 지분으로 30조 원에 달하는 자산을 통제하고 있습니다. 이건 불공정합니다. 잘못된 거죠."

우리나라에서 박 전 대통령의 딸 박근혜 대통령이 국가수반에 오른 것처럼 싱가포르에서는 리콴유의 첫째 아들인 리셴룽 총리가 2004년부터 지금까지 총리직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리콴유 전 총리는 박 전 대통령이 사망하기 전 마지막으로 정상회담을 했는데, 이 때 청와대 만찬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통역을 맡기도 했습니다.

YTN 전준형입니다.

서울시만한 면적에 자원과 인구가 부족한 도시국가였던 싱가포르가 홀로 성장하기엔 역부족이란 생각했던 리콴유 전 총리는 말레이시아 연방 가입을 결단했는데요.

하지만 중국계가 다수인 싱가포르와 말레이계 사이에 인종 갈등이 번지자, 말레이시아는 싱가포르를 연방에서 추방해 버렸습니다.

싱가포르가 억지 독립을 하자 리콴유는 나라 걱정에 말문을 잇지 못하며 눈물을 흘리기도 했습니다.

[인터뷰:리콴유, 싱가포르 분리 독립에 대해 (1959년 5월)]
"지금 이 순간은 제게 굉장히 비통한 순간입니다. 왜냐하면, 제 평생을...제가 성년이 되고 나서부터 말레이시아를 믿어왔고, 말레이시아와의 합병과 통합에 대해 믿어왔습니다. 아시다시피 말레이시아와 싱가포르 국민은 지리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엮여있고 혈연관계에 있습니다."

그러나 리콴유는 좌절하지 않고 특유의 리더십으로 싱가포르를 이끌며 오늘날 세계 8위 경제대국으로 세웠습니다.

때문에 그는 전 세계 지도자의 존경을 받고 있는데요.

박근혜 대통령은 리콴유 전 총리 국장에 참석하기 위해 싱가포르를 방문하기로 했습니다.

박 대통령은 애통함을 금치 못하며, 유족과 싱가포르 국민에게 깊은 애도와 위로의 뜻을 전한다고 밝혔습니다.

또 고인은 한-싱가포르 관계 발전을 위해 귀중한 지혜를 주신 우리 국민의 친구였다며 애도를 표했는데요.

박 대통령이 취임 이후 외국 정상급 지도자의 서거에 대해 성명을 낸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세계 각국 정상들도 연이어 애도 성명을 발표하고 있습니다.

[인터뷰:아베신조, 일본 총리]
"리콴유 전 총리는 싱가포르를 세운 국부로서 싱가포르가 현재 누리고 있는 번영의 토대를 세운 분이었습니다. 그분은 아시아의 위대한 리더입니다."

[인터뷰:홍레이, 중국 외교부 대변인]
"중국과 싱가포르 관계를 창립하고 세운 분입니다. 중국과 싱가포르 양국의 상호 발전을 위한 협력을 위해 헌신하셨습니다."

[인터뷰:줄리 비숍, 호주 외무장관]
"그분은 지역의 거인이자 존경받는 정치가였습니다. 굉장히 그리울 것입니다."

[인터뷰:아난드 파냐라춘, 전 태국 총리]
"그분의 지혜와 충고와 통찰력은 다른 나라 지도자에게 인기가 많았습니다. 같은 동남아인으로서 매우 큰 별을 잃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리콴유 전 총리는 한국에 대한 관심도 많았습니다.

지난 1999년 전경련 국제자문단회의에 참석해 재벌의 문제를 조목조목 짚었는데요.

전경련 관계자는 '세계의 가장 위대한 지도자인 동시에 한국의 경제개발과 외환위기 극복 과정에서도 많은 교훈과 영감을 제시한 분의 타계에 경제계를 대표해 애도를 표한다'고 말했습니다.

[인터뷰:리콴유, 전경련 국제자문단회의 (1999년 10월)]
"재벌의 핵심 사업, 주력 사업이 어떤 건지 구분하기가 어렵습니다. 사실 이것이 한국이 안고 있는 핵심적인 문제입니다. 한국은 5~6개 큰 재벌과 20~30개의 작은 재벌들이 나타났는데요. 그들은 문어발 같습니다. 수익성이 있는 모든 사업에 뛰어든 것입니다. 지난 20년간 거의 모든 사업이 수익을 창출했죠."

한국과 리콴유 전 총리의 인연도 깊습니다.

리 전 총리는 6번 방한하며 박정희 대통령부터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대통령을 모두 만났는데요.

박근혜 대통령은 1979년 1월 부친 박 대통령이 리 전 총리와 면담할 때 통역을 맡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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