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한 해일 같았다"...산악인 엄홍길이 말하는 에베레스트 눈사태

"거대한 해일 같았다"...산악인 엄홍길이 말하는 에베레스트 눈사태

2015.04.27. 오후 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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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엄홍길 대장이 1988년에 직접 히말라야에서 눈사태를 경험했었다고 합니다. 저희가 엄홍길 대장 오늘 초대했습니다. 어서오십시오. 나와주셔서 감사합니다. 남의 일같이 여겨지지 않으시죠, 저 소식 들으시고요.

[인터뷰]
그렇습니다. 너무나 안타깝고 가슴 아프고 또 제 개인으로는 제2의 고향이나 마찬가지인데, 너무 너무 사랑하는 곳인데요. 엄청난 큰 피해를 입어서 너무 가슴이 아픕니다.

[앵커]
최근에 네팔을 가셨던 건 언제인가요?

[인터뷰]
2주전에 엄홍길 휴먼재단에서 5월 28일날 설립해서 현재 네팔 히말라야 오지지역에 학교를 만들고 있거든요. 8개 학교 완공해서 4개 공사가 진행이 되고 있고 13번째 학교를 짓기 위해서 제가 이번에 2주 전에 다녀왔거든요.

[앵커]
2주 전에 다녀왔군요.

[인터뷰]
지금이 가장 진원지에서 인근 지역이어서 고르카주 만드레 지역이 상당히 피해가 엄청나게 큽니다.

[앵커]
지금 다니는 학생들의 그 안위를 확인할 수 없는 건가요?

[인터뷰]
그쪽 지부장님께서 현지에서 체크를 하고 있는데요. 그쪽 지역은 통신이 두절됐다고 합니다.

[앵커]
잠이 안 오시겠군요, 대장님.

[인터뷰]
그렇습니다. 지금요.

[앵커]
얼굴도 안 좋으시네요. 1988년도에는 눈사태를 경험하셨다고요?

[인터뷰]
88년도 그때 가을이거든요. 그때 우리나라 서울올림픽할 때 그때가 우리나라에 큰 의미있는 해였죠. 저도 에베레스트 오르는 것을 88년도 두 번을 실패하고 세 번째 도전할 때예요. 그때 가을에 등반을 했는데 베이스캠프에 상당히 많은 외국인들이 해발 4400m 이상 되는데 텐트를 치고 있었거든요.

새벽에 갑자기 자고 있는데 제 몸이 좌우로 왔다갔다하는 겁니다, 자고 있는데요. 순간적으로 벌떡 눈을 뜨고서 이거 큰 눈사태가 일어났나보다 하고 베이스캠프가 눈사태라든가 이런 사태지역으로부터 안전한 지역이거든요, 빙하지대인데요. 그래서 이제 딱 텐트 문을 열고 보니까 에베레스트쪽에서 어마어마한 얼음덩어리가 떨어지면서 눈사태가 일어나서 그 후폭풍이 몰려오는데요.

아까 화면에 보셨겠지만 어마어마한 눈폭풍, 후폭풍이 몰려오더라고요. 큰일났다 하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새벽에 곤히 자고 있을 상황이니까. 눈사태가 났다고 해서 사람들이 텐트 안에 자고 있다가 뛰어나와서 새벽에 우왕좌왕하는데 솔직히 그때 상황에서 우왕좌왕 한다고 해서 그 눈사태를 얼마나 피할 수 있겠습니까?

어쨌든 나름대로 큰 바위 밑에 숨고 몸을 숨겼는데 저는 순간적으로 나가봤자 오히려 더 큰 피해를 당하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어쨌든 후폭풍이니까 1차적인 눈사태는 지나간 거고 후폭풍이 몰려오니까 얼음가루와 눈가루와 같이 섞여서 날아가거든요. 빨리 텐트 안에 들어가서 대원들끼리 텐트에서 버티자 이래서 3명 정도 버텼는데 결국에는 쓰러졌어요.

그래서 겨우 끝나고 나왔는데 베이스캠프 그 넓은 데 날아가고 찢어지고 초토화가 됐었습니다. 그때 당시에 강도가 6. 1이였습니다. 그때 당시만 해도 인근 지역 마을에는 한 700여 명 사상자가 났다고 합니다. 그 이후로도 여지진이 나서 한 차례 더 눈사태가 일어나서 현지 외국인들 다치고 골절되고 그랬습니다.

[앵커]
이번 규모지만 7. 8입니다.

[인터뷰]
베이스캠프 현장을 보니까. 화면을 보니까.

[앵커]
다시 한 번 보여주세요. 그때 6. 6이었는데 그때 보니까 일부 목격자는 눈사태가 고층건물이 몰려오는 정도의 크더라고 하셨는데 대장님께서 보셨을 때도 그렇게 컸나요?

[인터뷰]
새벽에 보는데 해일처럼 막 몰려오는데 지금도 굉장히 긴박한 상황인 것 같습니다.

[앵커]
저런 식이었군요.

[인터뷰]
순식간입니다. 저게 낮에, 저게 12시경인가 낮에 일어난 거거든요. 그런데 새벽에 그랬으니까 그때는 더 아비규환이였죠.

[앵커]
대장님이 보신 것은 후폭풍이였기 때문에 지장이 없었다는 거였죠?

[인터뷰]
그렇죠. 저기는 1차적인 거에 눈까지 쓸린 것 같습니다. 저 묻힌 거 보니까 인사사고를 난 것을 보니까 눈사태가 베이스캠프까지 출입구까지 덮친 것 같습니다. 그리고 사면에서 계속 산사태가 일어나고요.

[앵커]
만약에 눈사태를 직접 맞았다면 생명 구하기 어려운 것이죠.

[인터뷰]
그럼요. 크기에 따라서 혹은 규모에 따라서 틀리겠지만 거의 지형이 바뀔 정도로 어마어마한 겁니다.

[앵커]
수백명이 고립돼 있는 것으로 지금 추정되는 겁니다. 정확하게 파악이 안 되고요너무나 사랑하는 . 수백명이 고립된 것으로 추정된다는 것은 대략 이 시기쯤에는 거기에 올라가 있는 산악인들이 그 정도된다라고 보는 겁니까?

[인터뷰]
현지 베이스 캠프라든가 등반 중에 캠프에 올라가 있는 대원이라든가 그런데 현재 연락이 두절된 상태고. 그래도 일부는 그 밑에 5000여 미터 되는 곳이 있는데 마지막 숙박시설이 갖춰져있는 지역이 있는데 그쪽은 안전합니다. 빙하지역이 아니고 산사태라든가 눈사태 지역으로부터 안전한 지대이기 때문에 거기까지는 일부러 산악인들은 거기로 내려와서 철수했다고 합니다.

[앵커]
그러면 어떻습니까? 후폭풍이 아니라 직접 눈사태를 맞았으면 생명에 지정이 있었을 것 같고 만약에 후폭풍처럼, 대장님이 만나신 것처럼 그래도 그나마 생명에는 지장이 없고 지금 고립된 분이 있다면 어떤 상황일 것이라고 추정을 할 수 있을까요?

[인터뷰]
글쎄요, 지금 보시다시피 텐트가 다 부서지고 헬리콥터가 들어와서 사고난 시신들과 부상자들 후송하는 것 같은데 지금 화면을 보니까 굉장히 상황이 긴박하고 최악의 상황인 것 같은데요. 어쨌든.

[앵커]
만약에 눈 속에 묻히면요?

[인터뷰]
파묻혀 있다면 시간이 꽤 지났으니까 숨을 거두었을 겁니다. 그리고 어디에 묻힌 것인지 알 수도 없습니다.

[앵커]
그러니까 눈 속에 완전히 파묻혀 있지 않더라도 어떻게 통로가 없이 지금 어딘가에 고립됐다고 한다면 비상식량 같은 기본 비상식량은 있나요?

[인터뷰]
현재 베이스캠프는 등반할 때 필요한 저희가 장기간 동안 보통 1~2달 동안 필요한 식량이나 연료, 장비 이런 부분이 베이스캠프에는 다 저장이 돼 있습니다. 그러니까 그런 베이스캠프에서 저런 눈사태라든가 산사태 같은 위험한 상황일 때 어쨌든 거기서 식량 같은 걸 파낸다든가 있는 기존의 식량으로 거기에서 버틴다라든가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제가 말씀드린 안전한 지대, 거기까지는 특별한 진짜 움직이지 못하는 중상을 입거나 그렇지 않을 이상에는 걸어서는 거기로 충분히 내려오는, 한 2시간이면 내려오거든요, 거기서. 그러니까 거기까지는 안전한 지대로 우선 피신하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앵커]
그러니까 네팔이 워낙 큰 지진이 아니더라도 발생을 자주 하는 곳이고 그래서 산악인들도 그럴 수 있겠구나라는 가능성은 늘 염두해 두고 계시나요?

[인터뷰]
그럼요. 저희가 등반을 하면서 원래 네팔의 히말라야 지역은 지진대가 항상 형성돼 있기 때문에 인도판하고 유라시아판이 항상 계속 맞물리면서 서로 부딪치면서 히말라야가 조금씩 지형이 높아지고 있거든요. 에베레스트도 원래는 8840m였는데 2001년도인가 그때 내셔널지오그래픽인가에서 인공위성으로 체크를 해 보니까 4m가 올라갔습니다, 에베레스트가 조금조금씩 높아지고 있습니다. 그만큼 계속 지각이 변동을 일으키고 있는데요.

그러니까 그런 어떤 지진이 항시라도 수시로 일어날 수 있는 그런 상황입니다. 위험한 지대의 상황에 놓인 거고. 또 저희의 경우에는 그런 지진이 아니더라도 큰 산을 오르더라도 위험에 노출이 돼 있어서 가장 대표적인 것이 저는 눈사태. 저거는 저희가 언제 어느 때 어느 순간에 어디서 예측을 하고서 미리 사전에 경고를 하고 떠나는 것이 아니라 불시에 떨어지고 쏟아지는 것이기 때문에 제가 산을 오를 때 가장 두려운 대상이 공포의 대상이 바로 저 눈사태죠.

[앵커]
대장님께서는 꼭 산악인으로서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국민들 중에는 네팔에 대해서 제일 많이 아시는 네팔 전문가 중에 한 분일 것 같은데요. 네팔 국민들도 저런 지진에 대비해서 어떤 의식이나 준비를 하고 있습니까?

[인터뷰]
오래 전부터 지진이 가끔씩 여진이 있고 지진이 이렇게 발생되고 했으니까 국민들도 그런 나름대로 인식은 하고 있었을 텐데 이번의 경우에는 워낙 큰 강진이다 보니까 그냥 네팔의 가장 그다음에 포카라 지역 이쪽 에리아가 네팔 전체가 그렇겠지만 피해가 큰 카투만두와 도시도 마찬가지이고 시골 산골 마을의 자체가 건축물이 열악합니다. 건축물을 본다면 흙벽돌을 쌓아서 집을 지었거든요.

[앵커]
골조가 없고요.

[인터뷰]
네. 골조가 거의 없습니다. 목조 같은 걸 해서 집을 짓기 때문에 너무나 어떤 조그마한 흔들림에도 취약한 겁니다. 쓰러질 수도 있고 붕괴될 수도 있고요. 지진에 대비할 수 있는 그런 건축물이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에 더 큰 사고가 일어나고 저런 네팔의 중요한 세계적인 문화유산들이 다 부서지고 그렇게 된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인명피해가 크게 난 겁니다.

[앵커]
지진이 자주 일어난다는 건 알지만 거기에 대비해서 지을 만큼 비용이 없고요. [인터뷰] 그렇죠. 그런 건축물을 지을 수 없는 거죠.여건이 그렇게 좋지 않으니까요. 그리고 또 이번 같은 경우에 사전에 벌써 프랑스에서 지진이 일어날 것이라고 예측을 했다고 그러더라고요.

[앵커]
한 달 전에 예측을 했고.

[인터뷰]
얼마전에 네팔에서 지진과 관련해서 어떤 모임도 갖고 이런 걸 했다고 그러더라고요. 했는데에도 불구하고 그런 것들의 어떤 정부라든가 이런 데서 홍보를 하고 그런 것을 국민에게 말을 했어야 했는데 잘 안 됐던 것 같더라고요.

[앵커]
설마했겠죠. 설마하고 또 당장 그렇다고 하더라도 단기간에 대비할 수 있는 방법도 없었을 거고. [인터뷰] 맞습니다.

[앵커]
대장님이 겪으시고 경험한 네팔 국민들은 어떤 사람들인가요?

[인터뷰]
진짜 보시다시피 워낙 자연환경이 화려하고 아름답고 히말라야라는 곳이 우리들의 영혼이 끌리는, 마음이 끌리는 곳인데 어쨌든 그런 곳에 사는 사람들이라서 그런지 사람들이 굉장히 맑고 순수하고요. 모든 삶의 환경 자체가 굉장히 조건이 열악한데도 불구하고 굉장히 순수하고 사람들이 평화롭고 사람들이 정이 많고 그렇거든요.

이번에 이렇게 엄청난 강진으로 인해서 이렇게 참사가 일어나고 여진이 계속 일어나고 이게 언제끝날지는 모르겠지만 계속적으로 인명사고가 더 늘어난 상황이고 너무나 안타깝니다.

[앵커]
국민들이 좀 낙관적이고 그렇습니까?

[인터뷰]
맞습니다.

[앵커]
아시는 분들도 많겠군요, 네팔에 대해서요.

[인터뷰]
맞습니다. 사고 소식을 듣고 네팔의 지인들한테, 현지에 있는 친구에게 연락을 취하고 네팔지부 지부장하고 연락을 긴밀히 취하고 있는데 사무실과도요. 대체로 제가 연관이 있으신 분들은 그래도 다들 인명사고는 없었고 작은 사고나 집안에 뭐가 부서지고 내려앉았다든가. 다행히 인명 사고는 없더라고요.

[앵커]
직접 가시기로 했다면서요, 대장님도요.

[인터뷰]
네, 제가 수요일 새벽에 대한적십자의 긴급구호팀 대장으로 해서 출국하기로 했습니다. 출국하기로 했습니다.

[앵커]
가시면 어떤 일을 하십니까?

[인터뷰]
가면 카트만두에서 여러 가지 구호활동을 하고 그곳에 의료팀이 들어오거든요. 의료팀이 의료봉사활동하는 부분을 옆에서 도와줘야 하고 구호물자 같은 거 나눠주고 그런 부분을 해야 될 것 같습니다.

[앵커]
빈국이라고 하는데요, 못사는 나라라고 하는데 사실 우리도 불과 몇십 년 전까지만 해도 세계에서 제일 못사는 나라였거든요. 우리도 남의 나라 도움 다 받고요. 그래서 어느 정도입니까? 네팔의 경제상황과 국민들의 생활 형편이요.

[인터뷰]
진짜 너무나 열악합니다, 진짜.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이렇게 공존을 하고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우리나라의 과거로 따지면 60, 70년대 초이고요. 약간 미래가 같이. 굉장히 너무나 열악하고 더구나 하여튼 다시 한 번 말을 드리면 이 네팔의 국가가 산하고 등산, 산쪽 관련하고 그다음에 세계적 문화유산이 많거든요.

유산들이 많은데 문화재들이 이번에 거의 다 파타니, 대표적인 사원들의 탑들이 무너지고 문화재들이 다 파손돼서 관광 수입이 나라의 절대적인 수입인데요. [앵커] 그것도 참 걱정이죠. [인터뷰] 그런 부분도 있고 상당히 앞으로 더 어려워질 것 같습니다.

[앵커]
그래서 지구촌이라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우리가 같은 마을이다, 그리고 인류라는 것도 같은 종류의 사람이고요. 그래서 이럴 때 도와주고. 우리도 선진국으로 들어가고 있으니까 관뿐만 아니라 민간분야에서도 적극적으로 도와주고 같이 고통을 느끼고 그런 것이 필요하겠죠.

[인터뷰]
그런 것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생각을 합니다. 제가 보니까 예전에 6.25전쟁 때 네팔이라는 국가에서 우리나라에 전쟁 당시 쌀을 지원했던 기록들이 있더라고요. 현재도 마찬가지고 네팔의 근로자들이 우리나라에 들어와서 산악 발전하는 데 있어서 어려운 여건 속에서 굉장히 열심히 하고 계시죠.

[앵커]
그분들도 걱정이 많겠네요.

[인터뷰]
열심히 일하고 계십니다.

[앵커]
학교를 많이 지어서 아이들도 다 눈에 밟히실 거 아닙니까?

[인터뷰]
네, 그렇습니다.

[앵커]
아이들의 이름과 얼굴이 기억나세요?

[인터뷰]
그럼요, 학교 지을 때마다 가서 좋아하는 모습과 마을사람들이 행복해 하는 모습을 보면 제 자신도 오히려 더 행복하고 기쁘고 그렇죠.

[앵커]
그 아이들 무사하겠죠. 무사할 텐데요.

[인터뷰]
저는 다 무사할 거라고 생각을 합니다.

[앵커]
그 아이들에게 지금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영상으로 말씀하실 메시지가 있으면 좀.

[인터뷰]
네팔의 엄홍길휴먼재단에 다니는 학생 여러분들, 항상 제가 말씀을 드렸지 않습니까? 여러분들은 네팔의 미래이고 꿈이고 희망입니다. 이렇게 힘들고 어려울 때일수록 여러분들 항상 용기를 잃지 마시고 희망을 가지고 여태까지 어려운 여건에서 여러분들 공부를 하기 위해서 이렇게 고생을 하고 있는데 이제 좋은 여건에서 공부를 하는 상황인데 이런 엄청난 큰 강진으로 인해서 많은 피해가 일어나고 사고가 일어나고 많은 인명사고가 일어나고 그러는데 하여튼 이럴 때일수록 우리 학생 여러분들 항상 자신감과 용기를 가지고 파이팅하시기 바랍니다. 저도 마음속으로 많이 기원할게요.

또 히말라야 신이 다 보살펴 주실 것으로 생각하고 세계 많은 여러 국가에서 많이 동참해 주시고 많이 온정의 손길을 보내고 구호의 손길을 보내니까 하여튼 파이팅 하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제가 곧 네팔에 가니까 그때 가서 여러분들을 뵙겠습니다.

[앵커]
아마 1950년에 6.25 전쟁이 있었을 때 못 살던 우리나라의 그 아이들을 보는 그때 도와줬었던 세계인들이 많았고요. 그러면서 이 나라가 이렇게 될 줄은 생각 못했을 겁니다.

[인터뷰]
네, 맞습니다.

[앵커]
네팔이 지금 이런 곤경을 겪고 있지만 우리가 또 돕고 한마음으로 느끼고 그래서 그 사람들이 세계를 이끌어가는 그 아이들이 그런 인재로 자랄지 누가 알겠습니까?

[인터뷰]
맞습니다. 네팔이 앞으로 경제발전하는 데 큰 일꾼이 됐으면 하는 바람이죠.

[앵커]
한마음으로 응원하고 또 어려운 순간들을 잘 이겨낼 수 있도록 그렇게 성원을 했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엄 대장님, 고맙습니다.

[인터뷰]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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