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 & 미디어] 메르스?…질병 이름은 어떻게 지어지나?

[이슈 & 미디어] 메르스?…질병 이름은 어떻게 지어지나?

2015.05.26. 오후 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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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이번에는 미디어와 관련된 과학 소식을 살펴보고 언론의 과학보도 내용을 비평해보는 <이슈 앤 미디어> 시간입니다.

공공미디어 연구소 이경락 박사, 자리에 나와주셨습니다. 안녕하세요? 오늘은 어떤 내용을 준비해오셨나요?

[인터뷰]
오늘은 질병의 이름 짓기, 즉 질병 명명법에 새로운 권고안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볼 텐데요. 질병을 명명할 때, 불필요하게 지역의 이름이나 사람의 이름, 동물 종이 들어감으로써 과도하게 공포를 확산시키거나 편견을 조장하는 것을 막기 위한 국제보건기구 WHO의 제언을 다루고자 합니다.

[앵커]
먼저 시청자분들이 이해하기 쉽게, 질병 이름과 관련해서 공포심이나 편견이 조장됐던 사례부터 몇 가지만 소개해주시죠.

[인터뷰]
우선 지난해 전 세계를 판데믹 공포로 몰아넣었던 에볼라 바이러스만 하더라도 에볼라 강 유역에서 발병한 것이 병명을 짓는 근거가 되었는데요. 이러한 이름이 확산되면 사람들은 에볼라 강 유역을 공포스럽게 생각하고, 나아가 아프리카에 대한 두려움을 갖게 될 수 있습니다. 실제 우리 정부만 하더라도 국제행사에 에볼라가 발병하고 발병국과 매우 거리가 먼 아프리카 대륙의 다른 나라 국민의 입국마저도 자제해달라고 부탁한 적이 있을 정도니까요. 이와 관련해서는 최근 우리나라에 상륙한 메르스 증후군, 즉 중동 호흡기 증후군과 관련한 내용도 비슷한 양상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 치사율이 40%에 달하는 질병에 대해서 중동 호흡기 증후군이라는 병명을 붙임으로써 중동 지역에 대한 공포심이 유발될 수 있다는 것이죠.

[앵커]
사실 최근에 화제가 되고 있는 메르스도 이름만 들어서는 잘 와 닿지 않는데요, '메르스'라는 이름은 어떻게 지어졌나요?

[인터뷰]
메르스는 영어로 'Middle East Respiratory Syndrome'의 앞 글자를 따서 부르는 말인데요. 박쥐로부터 유래한 베타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한 호흡기 질환이며 '머스'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이 질병의 경우에 2012년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처음 발견된 뒤 중동 지역에서 집중적으로 발생해서 이런 명칭이 붙여졌는데요. 초기에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로 불렸지만, 말씀드린 것처럼 중동 지역에서 집중적으로 발생하면서 메메르스 코로나바이러스로 명명되었습니다. 문제는 이와 같은 작명 등이 해당 지역에 대한 편견을 가져오고, 질병 여부와 관계없이 해당 지역의 방문을 꺼리거나 해당 지역 출신 사람들을 부정적으로 인식하게 된다는 것이죠.

[앵커]
그렇다면 이번에 질병 이름과 관련해서 국제보건기구가 내놓은 새로운 권고안은 어떤 내용을 담고 있나요?

[인터뷰]
이와 관련된 내용은 지난 5월 8일 자 WHO 홈페이지의 미디어 센터에 공개되었는데요. 언론 공지 형태로 제시되었습니다. 그 서문에 따르면 WHO는 과학자, 정부 관료, 미디어 등이 새로운 인간 감염 질병들의 이름 짓기에 있어서 특정 국가, 경제, 국민들에게 부정적인 효과를 최소화하기 위해서 최선의 실천 방안을 따라주길 바란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이 자료에서는 WHO 건강 안보 분야 사무총장 보좌역인 케이지 후쿠다 박사의 말을 인용하고 있는데요. 그에 따르면 "근래에 몇 가지 새로운 인간 감염 질환들이 출현하고 있으며, 돼지 플루나 중동호흡기중후군 같은 이름들은 특정한 사회 공동체나 경제 부문에 오명을 씌움으로써 의도하지 않은 부정적 영향을 끼치곤 한다."라고 밝혔습니다.

[앵커]
구체적으로 특정 질병 이름으로 인해서 어떤 점들이 우려된다고 말한 건가요?

[인터뷰]
후쿠다 박사는 이러한 문제들이 생각보다 큰 문제를 가져오게 된다고 보고 있습니다. 그에 따르면 ”어떤 질병 이름들이 특정한 종교 공동체나 민족 공동체의 일원들에 안 좋은 반감을 불러일으키며 여행, 상업, 교역에 부당한 장애를 만들어내고, 가축 동물의 불필요한 도살을 촉발하는데, 실제로 이것은 사람들의 생활과 생계에 심각한 결과를 초래한다.”고 합니다. 이에 대해서 WHO가 우려를 하는 부분은 이러한 질병들의 명명이 종종 과학계 사람이 아닌 데서 출발한다는 점입니다. 아마도 이는 주로 언론이나 정부 관료를 두고 하는 말일 텐데요. 과학적 고민 없이 선정적으로 이름 지어진 '일상적인 명칭'이 인터넷과 소셜미디어에서 확산되고, 일단 질병 이름이 일단 구축되면, 부적절한 이름이라 해도 그것을 바꾸기는 어렵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WHO는 새롭게 식별된 인간 질환에 관해 처음 보고하는 이는 누구라도 과학적으로 근거가 있으며, 사회적으로 수용 가능한 적절한 이름을 사용해야 한다고 권고하고 있습니다.

[앵커]
그럼 국제보건기구에서는 어떤 방식으로 질병 이름을 지어야 한다고 권고하고 있나요?

[인터뷰]
WHO는 국제질병분류 ICD의 자문 아래, 세계동물보건기구 OIE, 식량농업기구FAO와 협의해 인간 감염질환 명명법을 만들었다고 밝혔습니다. 해당 자료에서는 따라야 할 원칙에 따라서 만들어진 표 A와 피해야 할 리스트들을 담은 표 B를 제시하였는데요. 우선 해당 원칙은 다섯 가지입니다. 우선 '일반 용어로 설명'입니다. 이는 증상에 기반을 두는 것으로 호흡기질환, 간염, 신경성 증후군, 설사 같은 것들입니다. 두 번째로는 '특정 용어 설명'인데요. 질병에 관한 근거 있는 정보가 있을 경우에는 질병 영향을 받는 대상층, 심각성, 계절성을 밝히는 좀 더 세부적인 용어를 사용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 예로 진행성, 아동, 중증, 겨울철 같은 것이 있습니다.

세 번째는 '원인 병원체'입니다. 질병을 일으키는 병원체가 규명된 경우에는 코로나바이러스, 인플루엔자 바이러스, 살모넬라처럼 병원체 명을 질병 이름에 담을 수 있습니다. 네 번째는 이러한 이름이 짧게 지어지고 쉽게 발음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H7N9이나 말라리아 같은 경우입니다. 다섯 번째, 영어의 두문 자어 즉 약어를 만들 때도 앞서 밝힌 방법들이 포함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맥락에서 메르스, 혹은 머스처럼 지역명이 들어간 명명법은 잘못이겠죠. 마지막은 이러한 질병의 이름이 ICD라는 국제질병분류의 레퍼런스 안내와 되도록 일치해야 한다고 권고하였습니다.

[앵커]
새로운 질병의 이름을 지을 때 국제보건기구의 권고에 따라 과학적 근거를 토대로, 사회적으로 수용 가능한 이름을 붙이는 것이 중요할 것 같고요. 한번 지어진 이름이 오랜 기간 사용되는 만큼, 특정 지역과 사람에 대한 편견이나 질병에 대한 지나친 공포심이 확산되지 않도록 주의해야겠습니다.

지금까지 공공미디어 연구소 이경락 박사와 함께 이야기 나눴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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