숭례문 일제 수난사진 첫 공개

숭례문 일제 수난사진 첫 공개

2008.02.14. 오후 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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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멘트]

남대문은 민족의 상징인 만큼 일제강점기에도 많은 수난을 겪어 온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일본이 남대문 옆에 신사참배 석등까지 설치했었던 사실을 보여주는 옛 사진이 처음으로 공개됐습니다.

이양희 기자가 보도합니다.

[리포트]

남대문 옆으로 천황신궁참배를 유도하는 석등이 높게 설치돼 있습니다.

한자로는 조선신궁참도, 즉 조선인이 남산에 세워졌던 신궁으로 참배하러 가는 길이라는 뜻입니다.

임금에 대한 예를 숭배하기위해 통과하는 문이라는 숭례문의 의미를 왜곡하기위해 일본인이 숭례문 통로 옆에 설치했던 것으로 처음 밝혀졌습니다.

[녹취:정성길, 개인소장가]
"숭례문은 예를 숭배하러 가는 문이죠 , 즉 당시 이문을 통해 성으로 들어가 조선 왕에게 존경을 표한다는 뜻이죠."

민족의 자긍심을 꺾기위한 일제의 숭례문 훼손은 여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1905년까지만 해도 가운데 홍예문으로 전차가 지나 다니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달구지와 전차가 접촉사고를 일으키기도합니다.

언더우드 선교사가 찍은 숭례문 주변은 칠패거리와 옹기 전 등 도성의 출입구로서 분위기도 활기찹니다.

하지만 1907년 순종 즉위식때 일본 왕세자가 오게 되면서 숭례문은 원래보다 지표가 높아지고 성벽을 잃게됩니다.

조선에 온 일본 왕세자가 조선왕을 숭배하러 들어가는 문으로 통과할 수 없다는 일본인들의 뜻대로 숭례문 우측 성벽 일부를 헐고 중앙에 흙을 쌓아올린 것입니다.

친일단체인 일진회는 성벽을 허무는 것에서 모자라 대대적인 환영 구조물까지 만들었습니다.

결국 일본은 우리민족의 상징인 숭례문의 성벽을 전차길을 낸다는 명분으로 완전히 헐어버려 숭례문을 현재의 불안한 모습으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이번에 공개된 사진들은 30여년 동안 세계 각지를 돌며 우리 옛사진을 수집해온 개인소장가의 노력으로 조선인의 긍지로 여겨졌던 만큼 고된 역사을 겪었던 숭례문의 수난을 한눈에 보여주고 있습니다.

YTN 이양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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