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봉남입니다"...친숙한 대중문화인

"김봉남입니다"...친숙한 대중문화인

2010.08.12. 오후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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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멘트]

오늘 75살로 타계한 앙드레 김은 자신이 만든 화려한 옷과는 달리 국민들에게 친숙한 대중문화인이었습니다.

앙드레 김은 김봉남이라는 본명이 드러난 10여 년전 이른바 옷로비 청문회 이후 제2의 전성기를 누렸습니다.

이승은 기자가 보도합니다.

[리포트]

1999년 나라를 떠들썩하게 만든 이른바 옷로비 사건, 당시 앙드레 김은 참고인으로 청문회장에 출석했습니다.

[녹취:1999년 옷로비 청문회]
"앙드레 김입니다. (김봉남 씨죠?) 네, 본명은 김봉남입니다. (본명을 말씀해주세요.)"

구파발 출신에 이름이 김봉남.

화려한 이미지와 딴판인 인적사항이 웃음을 자아냈습니다.

게다가 40년 가까이 톱 디자이너로 이름을 날리면서도 강남의 의상실이 전세라는 점, 국산 원단을 쓰고, 모범 납세자라는 점이 청문회 과정에서 알려면서 사람들은 앙드레 김에 호감을 가지기 시작했습니다.

언제나 하얀 옷에 검정칠한 머리, 진한 화장 등 특이한 외모와 독특한 말투에 대한 거리감은 친숙함으로 바뀌어 패러디가 잇따랐습니다.

대중적 인기를 업고 사업도 확장돼 2003년 강남 의상실 건물을 인수하고 지난해 경기도 기흥에 아틀리에를 열었습니다.

앙드레 김은 친근한 면모와 카리스마를 함께 지녔습니다.

매일 아침 5시 반 일어나 신문 10여 개를 읽고 방송도 빠짐없이 모니터할 정도로 자기 관리가 철저했습니다.

심지어 영국식 영어 발음도 '고품격'을 지향하는 의지의 표현이었습니다.

[녹취:앙드레 김, 1999년 YTN 인터뷰]
"저는 술 담배를 전혀 못하니까요. 예술적인 행사, 클래식 콘서트, 또는 오페라 또는 대중적인 행사에 가끔 가고요."

독신남으로 살며 마흔 일곱이던 1982년 아들 중도 씨를 입양한 앙드레 김, 생전에는 온전한 가정을 이루지 못한 쓸쓸함을 내치비기도 했습니다.

[녹취:앙드레 김, 1999년 YTN 인터뷰]
"작은 조그만 환경의 가정이든 가족 형제가 많은 대가족이든 굉장히 부럽죠. 제자신 가끔 인터뷰 있을 때 행복에 대해 질문하실 때는 가정적인 행복이 가장 소중한 행복이라고 생각한다..."

YTN 이승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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