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
[앵커]
국민 배우에서 정치인이었다가 7년 만에 다시 배우로 돌아왔습니다.
유인촌 전 장관 초대했습니다.
어서 오십시오.
[인터뷰]
안녕하십니까?
반갑습니다.
[앵커]
장관이라는 게 사실은 큰 권력이지 않습니까?
산하단체도 많고 직원들도 많고... 어쨌든 권력의 최고점에 있다가 그걸 내려놨을 때 후련합니까, 아니면 좀 아쉽고 서운합니까?
[인터뷰]
아쉽고 서운한 것보다는 어떤 큰 책임에서 벗어났다는 그런 편안함이라고 할까요.
아무래도 그런 게 더 크죠.
[앵커]
서운한 건 전혀 없으시고요?
[인터뷰]
서운한 건 별로 없습니다.
[앵커]
저희가 아까 조금 전에 정치으로 했었다가 돌아왔다고 소개했는데 엄밀히 말하면 장관이 정치인인가, 퀘스천마크를 달 수도 있고요.
정치를 하셨다고 생각하셨습니까, 그 당시에?
[인터뷰]
아무래도 행정적인 부분이 좀 크고요.
그렇지만 정무적으로 저희들은 다 임명이 된 사람들이고 아무래도 장관의 일이라는 것 자체가 정치를 완전히 떠나서는 일 자체가 성립은 잘 안 된다고 생각을 해요.
[앵커]
지금 보기에도 저때 모습하고 지금 모습하고 저는 솔직히 지금 모습이 더 보기 좋아 보이거든요.
더 편안해 보이기도 하고요.
좀 자유로워 보이기도 하고요.
머리는 원래 하얀 머리인가요?
[인터뷰]
한 10년 된 것 같아요.
머리가 변색이 된 것이...
그런데 그전에는 염색을 하고 아무래도 그렇게 지냈는데 요즘은 조금 굳이 염색을 할 필요까지 안 느껴서... 또 염색을 하면서 눈이 많이 안 좋아지는 것 같아요, 실제로.
[앵커]
그렇다고들 하더라고요.
[인터뷰]
그래서 지금은 그냥 자연스럽게 그냥 나이가 먹고 세월이 가는 대로 맡겨 두는 게 좋겠다 싶어서 놔둡니다.
[앵커]
주위에서 뭐라고 하나요?
저는 보기 좋아 보이는데...
[인터뷰]
글쎄요, 젊은 사람들은 좋다고 하는 것 같고 또 나이가 드신 분들은 염색하라고 이렇게 얘기를 하시던데요.
[앵커]
아직 머리 하얄 나이가 아니다.
[인터뷰]
모르겠어요.
[앵커]
장관님이 1951년생이시죠?
[인터뷰]
우리 나이로 63세.
[앵커]
벌써 그렇군요, 그런데 청년같아 보입니다.
[인터뷰]
감사합니다.
[앵커]
저희가 아까 처음에 오프닝 때 장관실이 더 편한가, 무대가 더 편한가.
그 얘기를 잠깐 하면서 소개를 했었거든요.
장관실이 더 편합니까?
무대가 더 편합니까?
[인터뷰]
저한테는 왜냐하면... 저는 평생을 한 거잖아요.
그런데 장관이라는 일은 3년에 불과하지만 아무래도 무대가 훨씬 편하고... 또 많이 흥분되고 또 계속 새로운 어떤 그런 새로움을 많이 느끼는 그런 곳이거든요.
그래서 무대가 훨씬 안성맞춤이죠.
[앵커]
연극은 7년 만에 하시는 거라면서요?
[인터뷰]
그렇죠.
거의 8년.
[앵커]
8년이군요.
연극무대를 특별히 TV나 영화가 아니라 선택하신 이유가 있습니까?
[인터뷰]
그런데 연극은 아무래도 특히나 산업화되지 않은 연극, 이런 경우에는 순수예술이고 기초예술이라고도 하고 무대는 한정되고 좁은 공간이지만 그 안에서 오히려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많은 것들을 창조해낸다고 하죠.
그래서 전혀 예기치않고 상상할 수 없는 그런 것들을 만들어내는, 공간을 굉장히 늘릴 수 있는 거죠.
그래서 그런 의미를 저는 무대를 굉장히 좋아하는 거죠.
[앵커]
그 무대 진짜 오래간만에 돌아가시니까 마음이 막 설레고 전과는 다르게 느껴지고 그러시던가요?
[인터뷰]
아무래도 그렇죠.
그리고 특히 무대는 오랫동안의 훈련과 저는 수련이다 이렇게 얘기를 하는데, 그런 과정을 밟지 않으면 금방 하기가 어렵거든요.
그러니까 우리가 요즘은 길거리캐스팅, 이런 걸 얘기 많이 하잖아요.
그런데 연극 무대에서 과연 길거리캐스팅을 해서 바로 작품을 무대에 올릴 수 있는 일은 거의 없다고 봐요.
상당한 기간의 훈련과 과정이 필요하거든요.
그래서 그런 면에서 저는 그러니까 제가 TV나 영상에서 다 못 보여드린 것들을 무대에서는 훨씬 더 많이 보여드릴 수 있다라고 저는 생각을 합니다.
[앵커]
그러면 앞으로 TV나 영화도 또 하실 계획은 있으신 거죠?
[인터뷰]
물론 그런 생각은 있는데요.
지금 당장은 사실은 그래도 나라 살림을 3년이나 하다 나왔잖아요.
그러니까 조금 그런 게 안 좋은 점, 이렇게 할 수 있는지는 모르겠는데 아무거나 막 하기도 어렵고... 또 바로 제가 돈버는 일에 바로 나서서 그렇게 하기도 어렵고 그래서 당분간은 정말 우리 국가나 사회에 또는 우리 국민들한테 봉사하는 일을 우선적으로 하고 그다음에 연극은 어차피 연극 자체가 많이 어렵고 또 그 과정이 힘들기 때문에 힘든 과정을 통해서 저를 다시 재발견한다고 할까요, 하여간 그런 어떤 수련을 하는 그런 과정이라고 보시면 되겠습니다.
[앵커]
그럼 이제 연극은 파우스트를 하시고, 앞으로 배우로서 조금 시간이 지나서라도 이런 역할은 내가 해 보고 싶다라는 꿈꾸시는 게 있습니까?
[인터뷰]
저는 조금 개인적으로의 취향은 아무래도 고전, 그러니까 인간에 관련된... 그러니까 주로 이렇게 작품들을 보면 우리 사람들이 어떻게 살고 어떻게 죽고 또는 인간성을 어떻게 발견하고 사실은 그런 쪽에 훨씬 더 많은 관심을 두고 있거든요, 작품은.
그래서 아무래도 그런 쪽 작품을 많이 하고 싶어하죠.
[앵커]
인간에 대한 탐구를 한다는 측면에서 보면 밖에 나와서 외도를 하시고 장관하고 거의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한 게큰 어떤 배우로서도 수업일 수 있겠는데요?
[인터뷰]
그렇죠, 굉장히 많은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을 합니다.
[앵커]
제일 절실하게 느끼신 건 뭡니까, 거기서 배워오신 것은?
[인터뷰]
그러니까 배워왔다기보다는 실제로 연기를 한다고 그러면 정말이 아니잖아요.
그렇죠?
그러니까 내가 만들어낸 가짜로 하는 거잖아요.
그런데 연기를 가짜로 하면 보는 사람은 정말 봐줄 수가 없죠.
그게 가짜라는 걸 알면... 그러니까 우리는 만들어진 가짜로 만들어진 이야기를 진짜로 하는 사람들이거든요.
그런데 현실은 진짜잖아요.
우리가 사는 세상은 가짜는 아니잖아요.
그런데 되게 가짜로 많이 살거든요.
그래서 그런 걸 많이 좀 익혔다고 할까요, 아니면 아, 이런 차이가 있구나.
그래서 훨씬 더 진짜를 찾아내는 데 많은 도움이 될 것 같아요.
[앵커]
좀 거칠었죠?
기자들도 특히 그전에 문화부 기자들하고 접근방식도 다르고... 기자들한테도 한번 거친 말씀 하셨다가 구설수에 오르고 그러셨잖아요, 국회에서.
[인터뷰]
국회에서는 그런 일이 굉장히 많았죠.
아무래도 제가 경험부족이고 또 미숙했다고 봐야겠죠.
그런데 사실은 그게 어떤 본질은 그렇게 남한테 뭘 나쁘게 하려고 하는 건 아니었는데 좀 확대해석되고 또 과장되고 이런 게 많은 거죠.
[앵커]
전반적으로 보면 그래도 한번 내가 갔다온 것이 잘했다 싶으십니까?
아니면 가지 말걸, 괜히 갔었네... 어느 쪽입니까?
[인터뷰]
가지 말걸 이런 생각은 지금 해 봐야 쓸데도 없고요.
이미 저한테 어떤 과정이 됐든 주어졌던 일이고 또 사실은 그 과정에서 저는 개인적으로는 아주 최선을 다해서 정말 열심히 일을 했습니다.
거의 모든 시간을 개인적인 시간을 쓰지 않고. 그래서 할 만큼 많이 했다라고 생각을 해요.
그래서 이 일을 한 것에 대한 과거에 대해서 후회는 하지 않고요.
오히려 그런 과정을 통해서 제가 아마 배우로 다시 거듭나는 것 자체가 아마 더 훨씬 풍성해질 거다.
그래서 앞으로 저를 더 풍성해진 저를 보고 싶으면 이제 무대에서. 그래서 요새 정치얘기 많이 하시는데 저는 무대 오시면 그런 걸 더 많이 볼 수 있다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앵커]
거기서 더 숙성된 모습의 유인촌을 볼 수 있는 거군요.
파우스트죠.
[인터뷰]
그렇습니다.
이건 지역에 가서 공연을 했던 것 같은데요.
[앵커]
그리고 12월 13일부터는 유시어터.
[인터뷰]
청담동에 있는... 제가 만든 작은 공연장입니다.
[앵커]
적자인데도 계속 고집스럽게 운영을 하신다면서요, 소극장을?
[인터뷰]
지금 10년이 넘었는데요.
물론 제가 그런 경제적인 계산을 잘 못 하기 때문에 시작을 했는지는 몰라도 어차피 제 일이 이렇게 경제적으로 계산해서 되는 일이 아니거든요.
그러니까 그런 것과 관계없이작은 공간이지만 그곳에서 사람을 키우고 또 좋은 작품을 새롭게 만들어내고 그래서 그동안 과정에서 경제적으로는 잃어버렸을지는 몰라도 정말 많은 사람이 남았고... 또 실제로 그 남아있는 사람들이 각 여러 파트에서 자기 나름의 역량을 갖고 아주 활발하게 활동을 하고 있기 때문에 크게 나쁘지 않았다, 이렇게 생각을 해요.
[앵커]
기계차하고 포클레인 면허를 따셨다고 하던데 왜 따신 건가요?
[인터뷰]
사실은 왜냐하면 예전 같았으면 방송도 하고 많은 광고도 찍고 이러면서 수입도 굉장히 많았었고 또 그러면서 충분히 제가 연극도 하고 할 수 있는 그런 게 있었는데, 지금은 이제 이렇게 장관을 하고 나니까 돈벌이할 수 있는 길이 막막해요, 사실은.
또 제가 이제 부터 정말 연극을 해 봐야 되겠다.
그렇게 생각을 해 보니까 제가 기술이 없어요.
오로지 갖고 있는 기술이라는 게 연기하는 거밖에 없잖아요.
그래서 이렇게 하면 나중에 어떻게 될지를 모르겠다.
그래서 뭔가 자격증을 좀 갖고 있어야 되겠다 해서...
[앵커]
생계 차원에서요?
[인터뷰]
그럴 수도 있고 또 사람이 어떻게 될지를 모르니까.
[앵커]
전에 재산공개하실 때 보니까 재산은 그래도 꽤 풍족하게 있으신 것 같은데...
[인터뷰]
그런데 그런 것하고는 조금 다른 문제죠.
[앵커]
5년 동안 못 버셨으니까요.
[인터뷰]
그리고 앞으로도 그런 수입은 별로 없을 거라고 보기 때문에 또 충분히 계속 그런 돈이 쓰여지겠죠.
그래서 여러 가지... 하여간 그런 것들을 준비를 해야 되겠다 싶어서 포클레인도 따고 또 지게차도 면허를 따고... 그래서 앞으로 계획은 목수일도 좀 배우고 도배도 배우고 그럴 생각입니다.
[앵커]
면허 따는 게 쉽지는 않죠.
[인터뷰]
열심히 노력했습니다.
필기도 공부 열심히 해야 되고요.
실기도 되게 어렵더라고요.
[앵커]
그럼 실제로 지금 지게차 모실 수 있습니까?
[인터뷰]
그렇습니다.
지금 언제라도 저는 취업이 가능합니다.
[앵커]
여러 선택이 있겠군요.
앞으로 도배도 배우시고 그러면... 예술타운 건립을 위해서 이걸 취득하셨다고 저희 작가는 알고 있는데 겸사겸사.
[인터뷰]
그런 생각 갖고 있고요.
왜냐하면 아무래도 사회가 발달할수록 힐링이 필요하다고 요즘 많이 얘기하잖아요.
그래서 또 어차피 제가 지역 자체가 문화적으로는 굉장히 많이 모자라잖아요, 지금 현재.
그래서 예전에 제가 강원도 봉평에 벌써 10년이 넘었습니다.
폐교에다가 공연장도 만들고 거기서 셰익스피어도 하고 많이 했었습니다. 그런 걸... 그런데 오히려 공직을 하는 동안에 한4, 5년 사실은 거의 문을 닫아놓다시피 했어요.
그래서 지역에 있는 분들한테도 참 미안하고 그랬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곳에 조금 문화적으로 많이 부족한 지역에 그런 문화적인 전시장, 공연장1또는 스튜디오 내지는 사람들이 와서 힐링할 수 있는 그런 것들을 앞으로 좀 아주 장기적인 플랜을 가지고 조금씩 조금씩 에너지도 쓰지 않고 아주 원시적인, 하여간 그런 힐링할 수 있는 문화공간을 만들어보고 싶은 꿈도 가지고 있습니다.
[앵커]
메밀꽃이 피는 봉평에... 이명박 전 대통령은 요즘 자주 만나십니까?
[인터뷰]
자주 뵙죠.
한 달에 한 2번, 3번씩.
[앵커]
자주 뵈네요.
[인터뷰]
그렇습니다.
[앵커]
최측근이시군요?
[인터뷰]
그런 걸 떠나서요.
어쨌든 저희들 때 같이 일했던 많은 분들이 있잖아요.
그분들도 다 우리 모임 있으니까 그렇게 해서 식사하는 기회도 생기고 또 찾아뵙는 게 도리죠, 저희들 입장에서는.
[앵커]
무슨 얘기 나누십니까, 만나시면.
[인터뷰]
저하고 만나실 때는 주로 문화쪽 얘이를 많이 하죠.
공연하는 문제 또는 그동안에 사실제가 일을 하고 있을 때 문화적인 어떤 인프라를 굉장히 많이 했거든요.
그런데 지금 국립현대미술관이라든지 근현대사 박물관한글박물관 또는 올림픽공원에 있는 콘서트홀, 태권도 공연장... 하여간 저는 그런 문화적인 인프라 구성을 많이 해 놓은 게 있어서 그런 부분 많이 물어보시고 그래요.
왜냐하면 테이프는 저희들 때 못 끊었으니까.
[앵커]
문화에 관심이 많군요, 이명박 전 대통령께서.
[인터뷰]
실제로 그런 미술관 정말 많은 예술가들의 소망이었거든요.
우리 경복궁 옆의 옛날 수도통합병원자리.
그런데 그게 잘 안 됐어요.
어려움이 많았는데... 그래도 그당시에 대통령께서 확실하게 결정을 하셔서 미술관을 유치할 수 있도록 힘을 밀어주신 거죠.
[앵커]
이명박 정부의 초대 문화부 장관이셨고 그때 산하기관장들.
그러니까 그전 노무현 정부에서 임기가 이어졌었던 기관장들에 대해서 나가는 게 옳다라고 해서 그때 좀파문이 있었고 지금 또 5년 지나서 공공기관장들 바꾸는게 맞냐, 지금도 또 논란이 있고... 다시 돌아간다 해도 그것이 맞다고 생각하시는지. 그때 특히 좌우이념이 갈라지고 그런 부분에 대해서 문화계가 양분되고... 그게 장관님 때문에 더 그렇게 됐다저쪽에서는 그렇게 비판하고 그런 부분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합니까?
[인터뷰]
그게 너무 그렇게 갈라서 대립적으로 얘기를 하고 또 그렇지 않은 부분도 다른 것으로 포장해서 더 키우고 계속 그랬기 때문에 사실은 더 많이 커진 거죠.
특히나 우리 같은 경우에는 말하자면 정부가 완전히 다르게 바뀐 것이기 때문에 아무래도 그런 부작용은 더 있을 수밖에 없었는데, 저는 다른 부분보다는 그냥 정무적으로 정치적인 이념을 같이 한 분들 경우에는 대통령께서 물러나시면 퇴임을 하면 같이 물러나는 게 옳다는 지금도 생각을 해요.
그건 이미 같은 목적을 갖고 일을 했던 분들이기 때문에. 또 새로운 정보가 들어오면 그 목적에 맞춰서 또 같은 뜻을 가진 분들이 일을 해야 국가나 국민들한테 훨씬 도움이 되는 것이지.
그런데 그게... 아니면 본인이 뭔가 이 뜻을 동참해서 그동안에 우리가 다르게 했지만 이제부터는 거기에 맞춰서 같이 가자 이렇게 하면 아무 문제 없는 거죠, 사실은.
그런데 대개는 그게 잘 안 되죠.
그러니까 일하는 입장에서 보면 그런 어려움이 생기고... 그러니까 어떻게 보면 소모적인 논란이고 진짜 국가와 국민들을 위해서는 정말 쓸데없는 싸움입니다.
[앵커]
앞으로 또 기회가 오면 정치를 또 하실 생각도 있습니까?
[인터뷰]
그럴 일은 없죠.
[앵커]
그러면 앞으로 인간 유인촌의 목표.
나는 이게 되고 싶다라든지 아니면 이런 삶을 살고 싶다라든지 그런 건 어떤 것인가요?
[인터뷰]
이제는 정말 좋은 삶이라고 해야 될까요, 올바른 삶이라고 해야 되나요?
좋은 얘기만 하면서 살고 싶고 정말 좋은 친구를 만나면서 살고 싶고 또 정말 우리 사회, 국가를 위해서 정말 좋은 일만 하면서 살고 싶다라는 생각만 해요.
[앵커]
지금 배우로서는 저도 어릴 때 사실은 배우 유인촌을 좋아했었던 사람 중 한 사람이거든요.
배우로서 완성도는 본인이 100점 만점이라면 지금 몇 점 정도 올라와있다고 생각을 하십니까?
[인터뷰]
원래 예술가가 다 그런 생각을 가질 거예요.
왜냐하면 예술가가 본인한테 점수 주는 경우가 극히 짜다고 할까요.
[앵커]
인색하고...
[인터뷰]
그렇죠, 모자라죠.
아주 엄격하고, 사실 파우스트가 그런 작품이거든요.
파우스트 박사가 모든 걸 다 갖추고 학문이고 모든 걸 하여간 인간이 누릴 수 있는 건 모든 것을 갖고 있는데도 끊임없이 방황하고 갈등하고 더 좋은 뭔가를 찾고 있는 거거든요.
그러니까 예술가와 비슷한 게죠.
그래서 결국 결핍이 있기 때문에 예술을 하는 거거든요.
그래서 저는 지금도 저 자신에 대해서 절대 만족하지 못하죠.
그러니까 끊임없이 그걸 채우려고 노력은 엄청 하는데 못 채우고 죽는 거죠, 결국은.
[앵커]
알겠습니다.
예술가로 마침내 돌아온 유인촌 전 장관 만나봤습니다.
잘 들었고 여러 가지 저한테도 교훈이 됐습니다.
[인터뷰]
저는 오늘 또 이런 인터뷰가 우리 언론도 많이 편 갈라서 그러잖아요.
그러니까 저쪽에서는 좋다고 하고 또 어느 쪽에서는 이러는 게 좋아졌으면 좋겠다.
그래서 제 인터뷰로도 오해하지 않으셨으면 좋겠다.
[앵커]
오늘 인터뷰 괜찮았죠?
[인터뷰]
그렇습니다.
[앵커]
고맙습니다.
[인터뷰]
감사합니다.
[저작권자(c) YTN 무단전재, 재배포 및 AI 데이터 활용 금지]
국민 배우에서 정치인이었다가 7년 만에 다시 배우로 돌아왔습니다.
유인촌 전 장관 초대했습니다.
어서 오십시오.
[인터뷰]
안녕하십니까?
반갑습니다.
[앵커]
장관이라는 게 사실은 큰 권력이지 않습니까?
산하단체도 많고 직원들도 많고... 어쨌든 권력의 최고점에 있다가 그걸 내려놨을 때 후련합니까, 아니면 좀 아쉽고 서운합니까?
[인터뷰]
아쉽고 서운한 것보다는 어떤 큰 책임에서 벗어났다는 그런 편안함이라고 할까요.
아무래도 그런 게 더 크죠.
[앵커]
서운한 건 전혀 없으시고요?
[인터뷰]
서운한 건 별로 없습니다.
[앵커]
저희가 아까 조금 전에 정치으로 했었다가 돌아왔다고 소개했는데 엄밀히 말하면 장관이 정치인인가, 퀘스천마크를 달 수도 있고요.
정치를 하셨다고 생각하셨습니까, 그 당시에?
[인터뷰]
아무래도 행정적인 부분이 좀 크고요.
그렇지만 정무적으로 저희들은 다 임명이 된 사람들이고 아무래도 장관의 일이라는 것 자체가 정치를 완전히 떠나서는 일 자체가 성립은 잘 안 된다고 생각을 해요.
[앵커]
지금 보기에도 저때 모습하고 지금 모습하고 저는 솔직히 지금 모습이 더 보기 좋아 보이거든요.
더 편안해 보이기도 하고요.
좀 자유로워 보이기도 하고요.
머리는 원래 하얀 머리인가요?
[인터뷰]
한 10년 된 것 같아요.
머리가 변색이 된 것이...
그런데 그전에는 염색을 하고 아무래도 그렇게 지냈는데 요즘은 조금 굳이 염색을 할 필요까지 안 느껴서... 또 염색을 하면서 눈이 많이 안 좋아지는 것 같아요, 실제로.
[앵커]
그렇다고들 하더라고요.
[인터뷰]
그래서 지금은 그냥 자연스럽게 그냥 나이가 먹고 세월이 가는 대로 맡겨 두는 게 좋겠다 싶어서 놔둡니다.
[앵커]
주위에서 뭐라고 하나요?
저는 보기 좋아 보이는데...
[인터뷰]
글쎄요, 젊은 사람들은 좋다고 하는 것 같고 또 나이가 드신 분들은 염색하라고 이렇게 얘기를 하시던데요.
[앵커]
아직 머리 하얄 나이가 아니다.
[인터뷰]
모르겠어요.
[앵커]
장관님이 1951년생이시죠?
[인터뷰]
우리 나이로 63세.
[앵커]
벌써 그렇군요, 그런데 청년같아 보입니다.
[인터뷰]
감사합니다.
[앵커]
저희가 아까 처음에 오프닝 때 장관실이 더 편한가, 무대가 더 편한가.
그 얘기를 잠깐 하면서 소개를 했었거든요.
장관실이 더 편합니까?
무대가 더 편합니까?
[인터뷰]
저한테는 왜냐하면... 저는 평생을 한 거잖아요.
그런데 장관이라는 일은 3년에 불과하지만 아무래도 무대가 훨씬 편하고... 또 많이 흥분되고 또 계속 새로운 어떤 그런 새로움을 많이 느끼는 그런 곳이거든요.
그래서 무대가 훨씬 안성맞춤이죠.
[앵커]
연극은 7년 만에 하시는 거라면서요?
[인터뷰]
그렇죠.
거의 8년.
[앵커]
8년이군요.
연극무대를 특별히 TV나 영화가 아니라 선택하신 이유가 있습니까?
[인터뷰]
그런데 연극은 아무래도 특히나 산업화되지 않은 연극, 이런 경우에는 순수예술이고 기초예술이라고도 하고 무대는 한정되고 좁은 공간이지만 그 안에서 오히려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많은 것들을 창조해낸다고 하죠.
그래서 전혀 예기치않고 상상할 수 없는 그런 것들을 만들어내는, 공간을 굉장히 늘릴 수 있는 거죠.
그래서 그런 의미를 저는 무대를 굉장히 좋아하는 거죠.
[앵커]
그 무대 진짜 오래간만에 돌아가시니까 마음이 막 설레고 전과는 다르게 느껴지고 그러시던가요?
[인터뷰]
아무래도 그렇죠.
그리고 특히 무대는 오랫동안의 훈련과 저는 수련이다 이렇게 얘기를 하는데, 그런 과정을 밟지 않으면 금방 하기가 어렵거든요.
그러니까 우리가 요즘은 길거리캐스팅, 이런 걸 얘기 많이 하잖아요.
그런데 연극 무대에서 과연 길거리캐스팅을 해서 바로 작품을 무대에 올릴 수 있는 일은 거의 없다고 봐요.
상당한 기간의 훈련과 과정이 필요하거든요.
그래서 그런 면에서 저는 그러니까 제가 TV나 영상에서 다 못 보여드린 것들을 무대에서는 훨씬 더 많이 보여드릴 수 있다라고 저는 생각을 합니다.
[앵커]
그러면 앞으로 TV나 영화도 또 하실 계획은 있으신 거죠?
[인터뷰]
물론 그런 생각은 있는데요.
지금 당장은 사실은 그래도 나라 살림을 3년이나 하다 나왔잖아요.
그러니까 조금 그런 게 안 좋은 점, 이렇게 할 수 있는지는 모르겠는데 아무거나 막 하기도 어렵고... 또 바로 제가 돈버는 일에 바로 나서서 그렇게 하기도 어렵고 그래서 당분간은 정말 우리 국가나 사회에 또는 우리 국민들한테 봉사하는 일을 우선적으로 하고 그다음에 연극은 어차피 연극 자체가 많이 어렵고 또 그 과정이 힘들기 때문에 힘든 과정을 통해서 저를 다시 재발견한다고 할까요, 하여간 그런 어떤 수련을 하는 그런 과정이라고 보시면 되겠습니다.
[앵커]
그럼 이제 연극은 파우스트를 하시고, 앞으로 배우로서 조금 시간이 지나서라도 이런 역할은 내가 해 보고 싶다라는 꿈꾸시는 게 있습니까?
[인터뷰]
저는 조금 개인적으로의 취향은 아무래도 고전, 그러니까 인간에 관련된... 그러니까 주로 이렇게 작품들을 보면 우리 사람들이 어떻게 살고 어떻게 죽고 또는 인간성을 어떻게 발견하고 사실은 그런 쪽에 훨씬 더 많은 관심을 두고 있거든요, 작품은.
그래서 아무래도 그런 쪽 작품을 많이 하고 싶어하죠.
[앵커]
인간에 대한 탐구를 한다는 측면에서 보면 밖에 나와서 외도를 하시고 장관하고 거의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한 게큰 어떤 배우로서도 수업일 수 있겠는데요?
[인터뷰]
그렇죠, 굉장히 많은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을 합니다.
[앵커]
제일 절실하게 느끼신 건 뭡니까, 거기서 배워오신 것은?
[인터뷰]
그러니까 배워왔다기보다는 실제로 연기를 한다고 그러면 정말이 아니잖아요.
그렇죠?
그러니까 내가 만들어낸 가짜로 하는 거잖아요.
그런데 연기를 가짜로 하면 보는 사람은 정말 봐줄 수가 없죠.
그게 가짜라는 걸 알면... 그러니까 우리는 만들어진 가짜로 만들어진 이야기를 진짜로 하는 사람들이거든요.
그런데 현실은 진짜잖아요.
우리가 사는 세상은 가짜는 아니잖아요.
그런데 되게 가짜로 많이 살거든요.
그래서 그런 걸 많이 좀 익혔다고 할까요, 아니면 아, 이런 차이가 있구나.
그래서 훨씬 더 진짜를 찾아내는 데 많은 도움이 될 것 같아요.
[앵커]
좀 거칠었죠?
기자들도 특히 그전에 문화부 기자들하고 접근방식도 다르고... 기자들한테도 한번 거친 말씀 하셨다가 구설수에 오르고 그러셨잖아요, 국회에서.
[인터뷰]
국회에서는 그런 일이 굉장히 많았죠.
아무래도 제가 경험부족이고 또 미숙했다고 봐야겠죠.
그런데 사실은 그게 어떤 본질은 그렇게 남한테 뭘 나쁘게 하려고 하는 건 아니었는데 좀 확대해석되고 또 과장되고 이런 게 많은 거죠.
[앵커]
전반적으로 보면 그래도 한번 내가 갔다온 것이 잘했다 싶으십니까?
아니면 가지 말걸, 괜히 갔었네... 어느 쪽입니까?
[인터뷰]
가지 말걸 이런 생각은 지금 해 봐야 쓸데도 없고요.
이미 저한테 어떤 과정이 됐든 주어졌던 일이고 또 사실은 그 과정에서 저는 개인적으로는 아주 최선을 다해서 정말 열심히 일을 했습니다.
거의 모든 시간을 개인적인 시간을 쓰지 않고. 그래서 할 만큼 많이 했다라고 생각을 해요.
그래서 이 일을 한 것에 대한 과거에 대해서 후회는 하지 않고요.
오히려 그런 과정을 통해서 제가 아마 배우로 다시 거듭나는 것 자체가 아마 더 훨씬 풍성해질 거다.
그래서 앞으로 저를 더 풍성해진 저를 보고 싶으면 이제 무대에서. 그래서 요새 정치얘기 많이 하시는데 저는 무대 오시면 그런 걸 더 많이 볼 수 있다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앵커]
거기서 더 숙성된 모습의 유인촌을 볼 수 있는 거군요.
파우스트죠.
[인터뷰]
그렇습니다.
이건 지역에 가서 공연을 했던 것 같은데요.
[앵커]
그리고 12월 13일부터는 유시어터.
[인터뷰]
청담동에 있는... 제가 만든 작은 공연장입니다.
[앵커]
적자인데도 계속 고집스럽게 운영을 하신다면서요, 소극장을?
[인터뷰]
지금 10년이 넘었는데요.
물론 제가 그런 경제적인 계산을 잘 못 하기 때문에 시작을 했는지는 몰라도 어차피 제 일이 이렇게 경제적으로 계산해서 되는 일이 아니거든요.
그러니까 그런 것과 관계없이작은 공간이지만 그곳에서 사람을 키우고 또 좋은 작품을 새롭게 만들어내고 그래서 그동안 과정에서 경제적으로는 잃어버렸을지는 몰라도 정말 많은 사람이 남았고... 또 실제로 그 남아있는 사람들이 각 여러 파트에서 자기 나름의 역량을 갖고 아주 활발하게 활동을 하고 있기 때문에 크게 나쁘지 않았다, 이렇게 생각을 해요.
[앵커]
기계차하고 포클레인 면허를 따셨다고 하던데 왜 따신 건가요?
[인터뷰]
사실은 왜냐하면 예전 같았으면 방송도 하고 많은 광고도 찍고 이러면서 수입도 굉장히 많았었고 또 그러면서 충분히 제가 연극도 하고 할 수 있는 그런 게 있었는데, 지금은 이제 이렇게 장관을 하고 나니까 돈벌이할 수 있는 길이 막막해요, 사실은.
또 제가 이제 부터 정말 연극을 해 봐야 되겠다.
그렇게 생각을 해 보니까 제가 기술이 없어요.
오로지 갖고 있는 기술이라는 게 연기하는 거밖에 없잖아요.
그래서 이렇게 하면 나중에 어떻게 될지를 모르겠다.
그래서 뭔가 자격증을 좀 갖고 있어야 되겠다 해서...
[앵커]
생계 차원에서요?
[인터뷰]
그럴 수도 있고 또 사람이 어떻게 될지를 모르니까.
[앵커]
전에 재산공개하실 때 보니까 재산은 그래도 꽤 풍족하게 있으신 것 같은데...
[인터뷰]
그런데 그런 것하고는 조금 다른 문제죠.
[앵커]
5년 동안 못 버셨으니까요.
[인터뷰]
그리고 앞으로도 그런 수입은 별로 없을 거라고 보기 때문에 또 충분히 계속 그런 돈이 쓰여지겠죠.
그래서 여러 가지... 하여간 그런 것들을 준비를 해야 되겠다 싶어서 포클레인도 따고 또 지게차도 면허를 따고... 그래서 앞으로 계획은 목수일도 좀 배우고 도배도 배우고 그럴 생각입니다.
[앵커]
면허 따는 게 쉽지는 않죠.
[인터뷰]
열심히 노력했습니다.
필기도 공부 열심히 해야 되고요.
실기도 되게 어렵더라고요.
[앵커]
그럼 실제로 지금 지게차 모실 수 있습니까?
[인터뷰]
그렇습니다.
지금 언제라도 저는 취업이 가능합니다.
[앵커]
여러 선택이 있겠군요.
앞으로 도배도 배우시고 그러면... 예술타운 건립을 위해서 이걸 취득하셨다고 저희 작가는 알고 있는데 겸사겸사.
[인터뷰]
그런 생각 갖고 있고요.
왜냐하면 아무래도 사회가 발달할수록 힐링이 필요하다고 요즘 많이 얘기하잖아요.
그래서 또 어차피 제가 지역 자체가 문화적으로는 굉장히 많이 모자라잖아요, 지금 현재.
그래서 예전에 제가 강원도 봉평에 벌써 10년이 넘었습니다.
폐교에다가 공연장도 만들고 거기서 셰익스피어도 하고 많이 했었습니다. 그런 걸... 그런데 오히려 공직을 하는 동안에 한4, 5년 사실은 거의 문을 닫아놓다시피 했어요.
그래서 지역에 있는 분들한테도 참 미안하고 그랬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곳에 조금 문화적으로 많이 부족한 지역에 그런 문화적인 전시장, 공연장1또는 스튜디오 내지는 사람들이 와서 힐링할 수 있는 그런 것들을 앞으로 좀 아주 장기적인 플랜을 가지고 조금씩 조금씩 에너지도 쓰지 않고 아주 원시적인, 하여간 그런 힐링할 수 있는 문화공간을 만들어보고 싶은 꿈도 가지고 있습니다.
[앵커]
메밀꽃이 피는 봉평에... 이명박 전 대통령은 요즘 자주 만나십니까?
[인터뷰]
자주 뵙죠.
한 달에 한 2번, 3번씩.
[앵커]
자주 뵈네요.
[인터뷰]
그렇습니다.
[앵커]
최측근이시군요?
[인터뷰]
그런 걸 떠나서요.
어쨌든 저희들 때 같이 일했던 많은 분들이 있잖아요.
그분들도 다 우리 모임 있으니까 그렇게 해서 식사하는 기회도 생기고 또 찾아뵙는 게 도리죠, 저희들 입장에서는.
[앵커]
무슨 얘기 나누십니까, 만나시면.
[인터뷰]
저하고 만나실 때는 주로 문화쪽 얘이를 많이 하죠.
공연하는 문제 또는 그동안에 사실제가 일을 하고 있을 때 문화적인 어떤 인프라를 굉장히 많이 했거든요.
그런데 지금 국립현대미술관이라든지 근현대사 박물관한글박물관 또는 올림픽공원에 있는 콘서트홀, 태권도 공연장... 하여간 저는 그런 문화적인 인프라 구성을 많이 해 놓은 게 있어서 그런 부분 많이 물어보시고 그래요.
왜냐하면 테이프는 저희들 때 못 끊었으니까.
[앵커]
문화에 관심이 많군요, 이명박 전 대통령께서.
[인터뷰]
실제로 그런 미술관 정말 많은 예술가들의 소망이었거든요.
우리 경복궁 옆의 옛날 수도통합병원자리.
그런데 그게 잘 안 됐어요.
어려움이 많았는데... 그래도 그당시에 대통령께서 확실하게 결정을 하셔서 미술관을 유치할 수 있도록 힘을 밀어주신 거죠.
[앵커]
이명박 정부의 초대 문화부 장관이셨고 그때 산하기관장들.
그러니까 그전 노무현 정부에서 임기가 이어졌었던 기관장들에 대해서 나가는 게 옳다라고 해서 그때 좀파문이 있었고 지금 또 5년 지나서 공공기관장들 바꾸는게 맞냐, 지금도 또 논란이 있고... 다시 돌아간다 해도 그것이 맞다고 생각하시는지. 그때 특히 좌우이념이 갈라지고 그런 부분에 대해서 문화계가 양분되고... 그게 장관님 때문에 더 그렇게 됐다저쪽에서는 그렇게 비판하고 그런 부분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합니까?
[인터뷰]
그게 너무 그렇게 갈라서 대립적으로 얘기를 하고 또 그렇지 않은 부분도 다른 것으로 포장해서 더 키우고 계속 그랬기 때문에 사실은 더 많이 커진 거죠.
특히나 우리 같은 경우에는 말하자면 정부가 완전히 다르게 바뀐 것이기 때문에 아무래도 그런 부작용은 더 있을 수밖에 없었는데, 저는 다른 부분보다는 그냥 정무적으로 정치적인 이념을 같이 한 분들 경우에는 대통령께서 물러나시면 퇴임을 하면 같이 물러나는 게 옳다는 지금도 생각을 해요.
그건 이미 같은 목적을 갖고 일을 했던 분들이기 때문에. 또 새로운 정보가 들어오면 그 목적에 맞춰서 또 같은 뜻을 가진 분들이 일을 해야 국가나 국민들한테 훨씬 도움이 되는 것이지.
그런데 그게... 아니면 본인이 뭔가 이 뜻을 동참해서 그동안에 우리가 다르게 했지만 이제부터는 거기에 맞춰서 같이 가자 이렇게 하면 아무 문제 없는 거죠, 사실은.
그런데 대개는 그게 잘 안 되죠.
그러니까 일하는 입장에서 보면 그런 어려움이 생기고... 그러니까 어떻게 보면 소모적인 논란이고 진짜 국가와 국민들을 위해서는 정말 쓸데없는 싸움입니다.
[앵커]
앞으로 또 기회가 오면 정치를 또 하실 생각도 있습니까?
[인터뷰]
그럴 일은 없죠.
[앵커]
그러면 앞으로 인간 유인촌의 목표.
나는 이게 되고 싶다라든지 아니면 이런 삶을 살고 싶다라든지 그런 건 어떤 것인가요?
[인터뷰]
이제는 정말 좋은 삶이라고 해야 될까요, 올바른 삶이라고 해야 되나요?
좋은 얘기만 하면서 살고 싶고 정말 좋은 친구를 만나면서 살고 싶고 또 정말 우리 사회, 국가를 위해서 정말 좋은 일만 하면서 살고 싶다라는 생각만 해요.
[앵커]
지금 배우로서는 저도 어릴 때 사실은 배우 유인촌을 좋아했었던 사람 중 한 사람이거든요.
배우로서 완성도는 본인이 100점 만점이라면 지금 몇 점 정도 올라와있다고 생각을 하십니까?
[인터뷰]
원래 예술가가 다 그런 생각을 가질 거예요.
왜냐하면 예술가가 본인한테 점수 주는 경우가 극히 짜다고 할까요.
[앵커]
인색하고...
[인터뷰]
그렇죠, 모자라죠.
아주 엄격하고, 사실 파우스트가 그런 작품이거든요.
파우스트 박사가 모든 걸 다 갖추고 학문이고 모든 걸 하여간 인간이 누릴 수 있는 건 모든 것을 갖고 있는데도 끊임없이 방황하고 갈등하고 더 좋은 뭔가를 찾고 있는 거거든요.
그러니까 예술가와 비슷한 게죠.
그래서 결국 결핍이 있기 때문에 예술을 하는 거거든요.
그래서 저는 지금도 저 자신에 대해서 절대 만족하지 못하죠.
그러니까 끊임없이 그걸 채우려고 노력은 엄청 하는데 못 채우고 죽는 거죠, 결국은.
[앵커]
알겠습니다.
예술가로 마침내 돌아온 유인촌 전 장관 만나봤습니다.
잘 들었고 여러 가지 저한테도 교훈이 됐습니다.
[인터뷰]
저는 오늘 또 이런 인터뷰가 우리 언론도 많이 편 갈라서 그러잖아요.
그러니까 저쪽에서는 좋다고 하고 또 어느 쪽에서는 이러는 게 좋아졌으면 좋겠다.
그래서 제 인터뷰로도 오해하지 않으셨으면 좋겠다.
[앵커]
오늘 인터뷰 괜찮았죠?
[인터뷰]
그렇습니다.
[앵커]
고맙습니다.
[인터뷰]
감사합니다.
[저작권자(c) YTN 무단전재, 재배포 및 AI 데이터 활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