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리그 심판은 일용직?...'오심 사태'의 씁쓸한 결론

K리그 심판은 일용직?...'오심 사태'의 씁쓸한 결론

2017.10.14. 오후 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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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리그 심판은 일용직?...'오심 사태'의 씁쓸한 결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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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19일 열린 FC서울과 광주 FC의 경기에선 큰 소동이 있었습니다. 후반 16분 울린 주심의 패닐티킥 휘슬때문이었습니다. 당시 FC서울 이상호 선수의 크로스가 광주 FC 박동진의 등에 맞았는데 주심은 팔에 맞은 것으로 판단해 서울의 페널티킥을 선언했습니다. 현재 시행되고 있는 비디오 판독(VAR)이 도입되기 전입니다.

중계화면에 잡힌 느린 그림은 공이 팔이 아닌 등에 맞았다는 것을 명확하게 보여줬습니다. 프로축구연맹은 오심을 인정했습니다. 곧바로 해당 경기 심판진에 대한 징계가 내려졌습니다. 주심에겐 '무기한 배정 정지', 광주 진영쪽에 있던 2부심에겐 '퇴출'이 내려졌습니다. 연맹이 2부심에게 주심보다 무거운 퇴출 징계를 내린 건 거짓말을 했다는 이유였습니다. 2부심이 주심에게 무선 교신을 통해 '공이 손에 맞았다' 말해 놓고 판정이 오심으로 밝혀지자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며 부인하고 있다는 주장이었습니다. 당사자인 2부심은 주심에게 핸드볼이라고 말한 적이 없다며 끝까지 결백을 주장했습니다. 그리고 프로축구연맹이 자신의 주장을 거짓말로 단정하고 배정을 정지한 것은 부당하다며 법원에 효력 정지 가처분 소송을 냈습니다.

▶관련기사: http://c11.kr/p70 <진실게임으로 번진 '오심 사태'…누가 거짓말을 했나?>

K리그 심판은 일용직?...'오심 사태'의 씁쓸한 결론

지난 5월 시작한 가처분 재판은 5개월 만인 어제(10월 13일) 선고가 나왔습니다. 결과는 기각, 2부심이 제기한 '퇴출 징계' 효력정지 신청이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기자에겐 예상하지 못한 결과였습니다. 2부심이 주심에게 손에 맞았다고 말했는지 여부와 별도로 징계 사유나 과정에 문제가 많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의문은 가처분 재판 결정문을 보고 풀렸습니다. 애초 예상했던 진실공방이나 징계 절차의 문제점은 재판의 쟁점이 아니었습니다. 재판부는 K리그 심판과 프로축구연맹의 고용 관계를 판단 근거로 삼았습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재판부는 K리그 심판이 프로축구연맹을 상대로 퇴출(법률상 계약해지) 징계 효력 정지를 요청하는 소송을 제기할 자격이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프로축구연맹과 K리그 심판이 일반적인 고용 관계가 아니라는 이유였습니다. 고용 관계가 성립해야 퇴출 조치의 위법성을 다툴 수 있는데 2부심측의 소명이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한 마디로 K리그 심판은 일용직이라는 얘기입니다.


K리그 심판은 일용직?...'오심 사태'의 씁쓸한 결론

재판부의 판단 근거는 이렇습니다.

-프로축구연맹이 자동화 배정 프로그램에 따라 심판들에게 경기를 배정하더라도 심판은 자신의 일정, 이동 거리에 따른 편익 등을 고려해 심판 업무를 수행할지 여부를 결정한다. 이는 노무자(심판)가 사용자(프로축구연맹)의 지시 복종 관계에 따라 사용자가 지정하는 일시 장소에 노무를 제공할 의무를 부담하는 고용계약과 본질적인 차이에 해당한다.

-2015년 '전담심판제' 도입 이후 프로축구연맹과 위임 계약을 체결하지 않았다. 프로축구연맹의 심판 규정에 의하더라도 심판에게 겸직금지 의무는 부과되어 있지 않은바, 심판은 프로축구연맹 이외 축구단체에서도 자유롭게 심판 업무를 수행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프로축구연맹이 심판에 대한 기본급을 지급하지 않고, 실제 경기에서 심판 업무를 수행한 경우에만 보수를 지급하고 있는 것도 개별적으로 경기가 배정되어 심판 업무를 수행하기 전까지는 심판이 프로축구연맹에 고용된 상태가 아님을 전제로 한 것으로 보인다.

-프로축구연맹이 K리그 심판에게 기본급을 지급하지 않고, 실제 경기에서 심판 업무를 수행한 경우에만 보수를 지급하고 있는 것도 개별적으로 경기가 배정되어 심판 업무를 수행하기 전까지는 고용된 상태가 아님을 전제로 한 것으로 보인다.

재판부는 이와함께 2부심이 프로축구연맹이 운용하는 심판 명단에 포함되어 있다거나 개별 경기의 심판 배정을 받음으로써 개별적인 위임 계약이 성립할 수 있다는 등의 이유만으로는 프로축구연맹의 구성원으로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습니다.


K리그 심판은 일용직?...'오심 사태'의 씁쓸한 결론

재판부의 결정은 프로축구연맹의 주장을 대부분 인정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앞서 프로축구연맹은 가처분 공판에서 2015년부터 심판과 별도 계약을 체결하지 않는 '전담심판제'를 도입해 현재 심판과 아무런 계약관계가 없고 심판이 특정 경기에서 배정된 경우에만 수당이 지급되고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또 현재 계약은 위임 계약에 불과해 민법 제689조 제1항에 따라 언제든 계약 해지가 가능하다고 강조했습니다.

오심 논란과 관련해 누가 거짓말을 했는지는 다퉈보지도 못하고 재판에서 진 2부심은 착잡한 마음을 보였습니다. 매경기 사명감을 갖고 임한 K리그 심판직이 언제든 계약해지가 가능한 신분이라는 사실에 큰 충격을 받은 모습입니다. 2부심은 변호사와 상의해 항고 여부를 결정할 계획입니다. 이와 더불어 전국축구심판협의회를 비롯한 심판 관련 단체와도 대책을 논의할 예정입니다. 아쉽게도 K리그 심판진과는 논의가 어렵습니다. 현재 K리그 클래식과 챌린지를 총괄하는 프로심판협의회 회장이 오심 논란 진실 공방의 또 다른 당사자인 3월 19일 경기의 주심이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무기한 배정 정지를 받았던 해당 주심은 두 달도 지나지 않아 복귀해 꼼수 징계라는 비판을 받았습니다. 관련기사: http://c11.kr/p71 <'오심 심판' 복귀 논란...불신 키운 '고무줄 징계' >


K리그 심판은 일용직?...'오심 사태'의 씁쓸한 결론

앞서 언급한 것처럼 현재 K리그 심판들은 기본급이 없는 100% 수당제입니다. 일용직 노동자와 같은 일당제 구조입니다. 클래식과 챌린지를 합쳐 한 시즌 50명 정도의 심판진을 선발한 뒤 무작위로 경기에 배정합니다. 시즌이 끝나면 시즌 평가 결과를 토대로 다음 시즌 배정 여부를 결정합니다. 경기당 수당을 보면 클래식 기준 주심 200만원, 부심 110만원, 대기심 50만 원이 지급됩니다. 당연히 경기 배정을 못 받거나 비시즌에는 전혀 수입을 올릴 수 없습니다. K리그 심판 중 최고 수령액은 5천만 원 후반, 최저 수령액은 1천만 원 미만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다른 프로 스포츠는 어떨까요? 프로야구와 프로농구 프로배구 모두 기본급을 포함한 연봉제로 심판진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야구의 베테랑 심판들의 경우 연봉이 1억 원을 넘기도 합니다. 월급 형식으로 보수가 지급되다보니 프로축구와 다르게 비시즌에도 심판들의 수입이 보장됩니다.


K리그 심판은 일용직?...'오심 사태'의 씁쓸한 결론

프로축구연맹이 현재의 심판 시스템을 구축한 건 금품 수수 같은 부정 행위를 방지하려는 목적인 큽니다. 하지만 인력시장 일용직처럼 언제든 계약해지가 가능한 지금의 구조에서 심판들에게 공정함과 사명감을 주문할 수 있을지 씁쓸함이 듭니다. 의무를 강요하려면 권리도 보장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퇴출 조치로 경기장에서 쫓겨난 2부심은 현재 물류 배송업에 종사하며 근근이 생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jhkim03@yt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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