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 스테이크 [김지혜의 가족캠핑⑧]

크리스마스 스테이크 [김지혜의 가족캠핑⑧]

2015.12.30. 오전 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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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피소드 #14- 이번에도 트렁크가 가득하다

크리스마스이브, 회사 일로 늦어진다는 남편과는 중간 지점에서 '접선'하기로 하고 혼자서 짐을 꾸리기 시작했다. 나름의 만찬을 준비하느라 몸과 마음이 무척 분주했다. 아무래도 그냥 집에서 보낼걸 그랬다는 생각이 뭉실뭉실 피어오르기 시작하자 이내 스트레스 지수는 최고에 달했다.

현관에 켜켜이 쌓인 짐을 보자 ‘대체 이게 무슨 짓인가’ 싶은 생각이 든다. 하지만 돌이키기에는 이미 너무 늦었다. 게다가 '산타 할아버지'까지 그곳으로 오시라고 편지 보내지 않았는가. 다시 마음을 다잡고 몸을 움직인다. 깜박 할 뻔 했던 침낭까지 겨우 싣고 보니 자동차 뒷 트렁크가 꽉 찼다. 홀로 짐을 옮길 요량으로 짐을 조금 가볍게 한 것은 참으로 현명한 선택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뭔가 중요한 걸 빠뜨리고 갈 경우 이번엔 모조리 내 책임이란 생각에 아드레날린이 매우 활발하게 분비되었는가 보다. 요번에 꼭 챙겨가야 할 물건 목록에서 빠진 물품은 단 한 가지, 곰탕 육수 캡슐뿐이었으니 말이다.

크리스마스 스테이크 [김지혜의 가족캠핑⑧]

캠핑장에 도착하자 역시나 평소 주말보다 많은 사람들로 북적이는 모습이다. 반짝거리는 전구장식과 사람들의 크고 작은 웃음소리가 황량한 겨울밤을 일렁인다. 서둘러 짐을 나르고, 파랑 잠수함을 펼쳐 그 안에 테이블과 의자를 밀어 넣고 화구(火具)를 꾸린다.

크리스마스 만찬. '요리'의 주체가 되어야 하는 나로서는 무척 부담스러운 주제다. 휘황찬란한 식기와 향기로운 와인, 멋진 조명……. 이런 것들을 모두 마련해 간다는 생각은 애초에 접었기 때문이다. 해서 평소보다 조금 더 식재료에 충실하기로 했다.

크리스마스 스테이크 [김지혜의 가족캠핑⑧]

주변의 마켓을 모조리 돌아보고 그나마 나은 식품들을 찾아다닌 결과 가격 대비(1㎏ 구입하는 데 2만 원가량 소요) 훌륭한 부채살을 구할 수 있었다. 절반 정도 되는 6~7 조각을 덜어내어 한 장 한 장 정성스럽게 소금과 후추로 밑간을 하고, 올리브유를 살짝 바른 후 허브(로즈마리나 오레가노, 타임 등 여러가지가 가능하다)를 뿌려뒀다.

이러한 과정도 ‘시즈닝’이라고 부른다. 더치오븐 손질할 때, 그리고 면텐트 길들이기 할 때와 같은 용어다. 장비 다루기와 요리 모두 이 단계를 거친 경우와 그러지 않은 경우의 결과가 크게 다를 수 있으니, ‘시즈닝’과 ‘정성들이기’는 일맥상통하는 이야기다.

고기 밑간을 하는 데 있어 몇 시간 이상이어야 한다는 법은 없으나 가능하면 두세 시간 정도는 간과 향이 고기에 배일 정도로 재우는 편이 좋다. 시각적인 부분과 맛, 그리고 영양을 고려해 파프리카, 브로콜리 등 신선한 야채 몇 가지도 파인애플과 함께 챙겼다.

◆ 에피소드 #15- 만찬이 끝나고 난 후, 아이들이 일어났다

크리스마스 스테이크 [김지혜의 가족캠핑⑧]

저녁도 제대로 먹지 않고 잠이 들었던 아이들이 새벽 네 시 경 일어나 뒤척거린다. 한술 더 떠 텐트 밖에 나갔다오더니 ‘이게 설마 산타할아버지가 선물을 주고 간 것이냐’며 거듭 질문을 되풀이 한다. 침낭에 깊숙이 들어가 이 소란스러움을 모르는 척 하자 포장을 뜯어본 아이들에게서 이내 환호성이 터져 나온다.

의심의 눈초리는 여전하지만 곧 아무려면 어떠냐는 태세다. 그토록 원하던 몇 가지, 게다가 누구에게도 귀띔하지 않았던 아이템을 손에 넣었으니 의외일 뿐더러, 큰 아이 생각에 ‘아무래도 텔레파시가 통했나 보다’며 짐짓 신기한 모양이었다. 여튼 그 새벽부터 아침까지 아이들은 다시 잠들지 않았다. 즐겁게 재잘거리는 소리를 자장가 삼아 더 깊은 잠에 빠져든 어른들과는 대조적으로.

크리스마스 스테이크 [김지혜의 가족캠핑⑧]

축제가 끝나고 난 후, 결국 입이 부르텄다. 상흔은 여전히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겨울 캠핑과 일상을 병행한다는 것은 역시 쉽지 않은 일이다. 놀이와 재미삼아 시작한 이 일을 포함해 세상에 얕잡아볼 일은 하나도 없다는 것을 실감하는 요즈음이다.

크리스마스 스테이크 [김지혜의 가족캠핑⑧]

영하의 기온에 텐트를 펼치고 노지에서 생활을 시작한 지 어느덧 꽉 찬 두 달이 되어 간다. ‘질색’을 하던 이 일에 대해 나는 누구보다도 적극적인 조력자로 거듭났으며, 비움과 가벼움의 가치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겨울 캠핑을 다니면서 참으로 오랜만에 ‘시간의 결’을 느낄 수 있었던 순간들을 종종 마주했다. 그건 무성한 풀숲에 가려 잘 보이지 않던 예쁜 들꽃을 문득 발견했을 때의 반가움과 닮았다. 도시인으로, 중년의 나이에 접어드는 이 시점에 다른 무엇보다도 소중하게 생각하게 된 건 지금 내게 주어진 ‘시간’이다.

이 겨울이 가기 전, 더 많은 깨달음이 찾아오기를.

트레블라이프=김지혜 excellentg@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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