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산골 한옥마을을 산책하며 서울의 일상을 보다

남산골 한옥마을을 산책하며 서울의 일상을 보다

2016.01.26. 오후 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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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산골 한옥마을을 산책하며 서울의 일상을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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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은 정말 볼 것 없는 도시다. 관광을 즐길만한 거리가 없다. 서울시민의 태도가 스스로 증명하지 않나. 오죽하면 도심 한가운데에 인공 개천 하나 팠다고, 고궁을 야간에 개관했다는 이유로 사람들이 열광하고 몰려들겠는가”

누군가 이런 말을 했다.

반박하기 어렵다. 이미 서울은 일상이 돼 버려, 뭔가 새로운 볼거리를 찾기 어렵다.

그런데 바꿔 생각해보면, 서울에서 새로움을 찾기 어렵다는 건 이미 서울이 일상이 돼 버렸기 때문일 수도 있겠다.

남산골 한옥마을을 산책하며 서울의 일상을 보다

갑자기 무슨 '개똥철학'이냐고? 남산골 한옥마을을 한 바퀴 둘러보고 나오니 문득 그런 생각이 들어서 말이다.

지금 볼 수 있는 한옥마을의 가옥들은 사실 수 백 년 전부터 그 자리를 지키던 집들이 아니다.

남산골 한옥마을을 산책하며 서울의 일상을 보다

남산골 한옥마을이 완공된 건 1998년이다. 한옥들도 그 자리가 아닌 다른 위치에 있던 집들인데, 그나마도 그대로 옮겨온 것보다 복원한 집들이 많단다. 시골에 있는 어지간한 농가들보다도 나이가 어린 셈이다. 뭔가 힘이 빠진다.

남산골 한옥마을을 산책하며 서울의 일상을 보다

하지만 지나친 욕심을 내려놓고, 마음을 비운 채 돌아보면 나쁘지 않다. 진품이든 복원품이든 어떠랴. 도심 한가운데에서 한옥 사이를 거닐 수 있다는 데 의미를 두자... 이렇게 생각하면 썩 괜찮은 산책 장소다.

남산골 한옥마을을 산책하며 서울의 일상을 보다

한옥이 옹기종기 모여있는 곳을 벗어나면, 공원도 나온다. 정자가 있고 연못이 있다. 언덕배기를 돌다 보면, ‘거리 미술관’이라는 게 있어서 예술 작품도 접할 수 있다. 400년 후의 후손들에게 20세기 말 대한민국의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만들었다는 타임캡슐 매립지까지 올라갔다 내려오면 기분이 상쾌해진다. 하긴, 거기서 길 하나만 건너면 바로 남산이다.

남산골 한옥마을을 산책하며 서울의 일상을 보다

입장료 같은 걸 낼 필요조차 없이 이 좋은 산책로를 거닐 수 있다고 생각하니 나쁘지 않다. 실제로 한옥마을은 충무로 인근 직장인들이 점심식사 후, 가볍게 산책하는 코스로 사랑받는다고 한다.

남산골 한옥마을을 산책하며 서울의 일상을 보다

한옥마을엔 외국인이 자주 보인다. 연신 휴대전화를 들고 ‘셀카’를 찍어대느라 바쁘다. 문득 궁금해진다. “무엇을 보겠다고 여기까지 왔을까. 산책로로는 몰라도 여행지로 괜찮은 곳인지는 잘 모르겠는데”

남산골 한옥마을을 산책하며 서울의 일상을 보다

의외로 답은 빠르게 찾을 수 있었다. 어쩌면 그들이 궁금해하는 건 한국인의 ‘일상’일 수도 있겠다는 것.

남산골 한옥마을을 산책하며 서울의 일상을 보다

비둘기에게 모이를 주는 한 무리의 외국인 관광객을 보았다. 우리나라에서 비둘기에게 모이를 주는 행위는 과거 너무나도 당연하고 일상적인 모습이었다. 이들 때문에 비둘기는 ‘닭둘기’가 돼 버렸다는 우스갯소리가 나오기 시작했고, 이제 이들의 배설물이 도시 미관을 해친다는 이유로 비둘기 모이주기는 금지되기까지 했다. 어쨌든 그 정도로 흔한 일이었다는 거다.

남산골 한옥마을을 산책하며 서울의 일상을 보다

그런데 이들은 비둘기에게 모이를 주는 행위에 진심으로 푹 빠져있는 모습이었다. 우리에게 너무나도 당연한 일상이, 그들에게는 신기한 체험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대한민국 서울도 그렇게 나쁘지만은 않은 관광 도시일지도 모르겠다.

남산골 한옥마을을 산책하며 서울의 일상을 보다

한옥마을을 나와 잠깐 들른 ‘한국의 집’에서는 전통 혼례식이 진행되고 있었다.

삼촌 또는 이모의 결혼식에 따라온 듯한 한 무리의 꼬마들은 제기를 가지고 노느라 정신이 없다. 발로 차면서 놀게 돼 있는 제기를 손으로 던지고 놀면서, 아이들은 신난 표정이다.

언제부턴가 아이들이 야외에서 뛰어노는 모습을 보기 어려워졌다. 일상이었던 모습이 어느 새 희귀해져 버렸다.

그렇다고 이제 와서 “내 일상은 소중한 것이였어!”라며 글을 맺기도 좀 그렇다. 글쎄. 한국인의 일상을 궁금해 하는 외국인들이, 수 십 년 후 어른이 될 아이들이, 400년 후 타임캡슐을 개봉할 우리 후손들이 평가해주려나.

트레블라이프=유상석 everywhere@travellife.co.kr

TRAVEL TIP : 남산과 바로 붙어있으니, 남산과 함께 둘러보면 좋다. 큰 길로 나오면 남산순환버스가 수시로 운행하며, 본문에서 언급한 것처럼 타입캡슐 매립 장소에서 길 하나만 건너면 남산 산책로가 나오니 걸어보는 것도 괜찮다. 단, 버스를 타고 가려면 05번보다는 02번을 타자. 05번은 청구역으로 둘러서 간다.

맛집은.... 워낙 인터넷에 정보가 많으니 생략. 여기에 소개하면 또 하나의 정보 홍수가 될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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