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상사', '무소유'와 시간을 거스르는 '사랑'(上)

'길상사', '무소유'와 시간을 거스르는 '사랑'(上)

2016.05.10. 오전 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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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상사', '무소유'와 시간을 거스르는 '사랑'(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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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한번 부딪힌 한순간의 섬광이 바로 두 사람의 영원한 사랑의 시작이었다. 아무리 세월이 흘러가도 매듭이 없는 슬픈 사랑의 실타래는 이미 그때부터 풀려가고 있었다"

서울 성북구에 위치한 길상사는 스토리가 꼬리를 무는 절이다.
사찰로서는 이제 불과 20여년의 연혁.

하지만 길상사 창건에 둘러싼 이야기를 따라가다보면 모든 이야기들이
하나의 소실점을 찾게 된다.

바로 '버리고 버리고 버려서 기억된 사람들'의 이야기인 것이다.

가을빛이 깊어지는 요즘 길상사를 찾아 그들의 이야기에 귀기울여 봄은 어떨까.

'길상사', '무소유'와 시간을 거스르는 '사랑'(上)

길상사는 원래 대원각이라는 70년대 장안의 유명한 요정이 있던 자리다. 이곳의 주인은 본명이 김영한이었던 한 여인.

그녀는 1916년 일제 강점기에 태어나 생활고 때문에 기생에 입문한 신여성이었다.

그런 그가 22살 되던해 천재시인으로 불렸던 백석(본명 백기행)을 함흥에서 만나 대번에 사랑에 빠지게 된다. 당시 윤동주 시인이 백석의 시집을 갖고 싶어 안달했었다는 일화가 전해질만큼 시인으로서 그의 명성은 대단했다.

짧은 동거생활이 이어지지만 일본 유학까지 한 엘리트였으며, 기자와 영어교사로 일하며 시를 썼던 백석과 그녀의 사랑은 이루어질수 없는 운명이었다.

일제 막바지로 치닫고 있는 상황에서 부모의 강요로 결혼생활을 이어가던 백석은 그녀에게 만주로 같이 떠나자고 제안하지만, 그녀는 백석과 그의 부모를 위해서 같이 가지 않고 영원한 이별을 하게 된다.

'길상사', '무소유'와 시간을 거스르는 '사랑'(上)

백석에게 자야 라는 애칭으로 불리었던 이 여인의 그후 삶의 과정은 파란만장하다.

남한으로 내려와 백석을 따라 영문학을 전공했으며, 대원각을 통해 거부가 되었고, 어렵게 일군 자산을 1980년대 후반 '무소유' 법정스님의 설법에 감동하여 당시 싯가 천억짜리 건물과 땅을 시주하고 나섰다.

70년대 밀실정치의 상징인 요정이 향기로운 사찰로 변신하는 순간이다.

'길상사', '무소유'와 시간을 거스르는 '사랑'(上)

연꽃은 진흙에서 피어나지만 그 꽃은 진흙이 전혀 묻어있지 않는다는 명제와 부합되는 절묘한 이야기다.

이쯤되면 이것이 실화가 아니라 소설이었다면 개연성이 없다고 독자에게 버려졌을만한 이야기다.

'길상사', '무소유'와 시간을 거스르는 '사랑'(上)

20대에 짧게 만난 사랑이 평생을 지배한다는 스토리를 요즘 시대에 누가 믿을만 하겠는가.

게다가 그들은 1939년 헤어진후 만나기는 커녕 소식을 들은 적도 없다. 백석은 월북작가라는 멍에 아래 1988년 해금전까지 그에 대한 연구는 커녕 소식조차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었다.

하지만 백석은 월북작가가 아니다, 그의 고향이 북한이었을 뿐이다.

(2편으로 이어집니다.)

트레블라이프=양혁진 anywhere@travel-lif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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