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웃음을 찾아 떠나는 길 '김광석 거리'

그의 웃음을 찾아 떠나는 길 '김광석 거리'

2016.06.22. 오후 3:01
댓글
글자크기설정
인쇄하기
그의 웃음을 찾아 떠나는 길 '김광석 거리'
AD
답답한 현실과 암담한 미래, 하지만 노래가사마냥 '그대를 바라볼수 있는 것만으로' 행복했던 20대 시절.

김광석은 지금 40대의 청춘을 기타 하나의 선율로 기억에 아로새긴 아이콘이었다. 낯선 세상과 처음 대면하던 두려움, 연인과의 슬픈 이별과 그리움도 그가 깔아주던 배경음악이 없이는 기억이 선명해지지 않는다.

'다시 부르기 1,2'가 발매된게 20년전인 1993, 1995년.
당시 '내 텅빈 방안에'는 술을 먹건 잠을 자건, 뒹굴거리건 낡은 레코드가 토해내는 '다시 부르기'가 무한반복되고 있었다.

테이프가 늘어져 새로 사온 테이프로 갈아끼우고도 다시 무한반복이었다. 적어도 방문자가 방을 잘못 찾는 일은 없었다. 문밖에서도 그의 노래는 들려나왔다.

당시 그의 노래는 다그침 없는 가르침이었고,주체할수 없는 울분을 가라앉히는 사람좋은 선배의 소주 한잔이었으며, 굳은 살 하나 없는 연약한 심장 상처에 뿌리는 대체할 수 없는 만병통치 빨간약이었다.

◆ 대학로가 아닌 대구 대봉동?

그의 웃음을 찾아 떠나는 길 '김광석 거리'

‘김광석 거리’의 정확한 명칭은 ‘김광석 다시 그리기 길’이며, 대구 신천대로 둑길 아래 방천시장 끝자락의 300여미터가 조금 넘는 골목이다. 이곳은 예전엔 해가 지면 쓰레기 더미가 뒹구는 치안을 걱정해야 할 소외된 길이었다.

그의 웃음을 찾아 떠나는 길 '김광석 거리'

지금 김광석 거리는 도심 한가운데 쇠락해가는 그의 고향 대봉동과 방천시장을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 관광공사가 선정한 한국 관광 100선에 이름을 올려놓게 만든 장본인이지만,처음 김광석 거리가 대구에 조성된다는 얘기를 들었을땐 의아했다.

마지막 1000회 공연을 마친 학전블루 소극장이 있는 대학로가 아니라 그가 태어나고 어린시절을 함께한 대구라고? 물론 학전 블루 앞에는 그의 노래비가 새겨져 있지만, 그가 살아 있어 그 이름을 딴 거리가 고향 대구에 있다는 걸 알면 그의 느낌은 어떠할까.

그의 웃음을 찾아 떠나는 길 '김광석 거리'

이런 갸우뚱은 '거리에서'가 울려나오는 김광석 거리 입구에 서자 주억거림으로 바뀌었다.

아마도 김광석이 뛰어놀던 당시와 크게 차이가 없는 예전 그대로의 방천시장 한켠은 그의 노래를 기억하기에 더할수 없는 장소처럼 느껴진다.

그의 웃음을 찾아 떠나는 길 '김광석 거리'

'뽑기'를 비롯한 평소에는 '추억팔이' 라고 외면할 만한 불량식품을 파는 작은 가게들마저 있어야 할 자리를 제대로 찾은 것처럼 이질감이 없다.

수시로 공연이 열리는 작은 공연장과 카페, 그리고 시장통의 크고 작은 대폿집들은 2010년 행정기관과 상인,그리고 예술가들이 한 마음으로 처음 거리를 조성했듯이 그렇게 어우러져 살아있는 '거리'의 의미를 새삼 되새기게 한다.

그의 웃음을 찾아 떠나는 길 '김광석 거리'

카페 상호마저도 '바하의 선율', '바람이 불어오는 곳', '거리에서' 등 그의 노래 가사 일부이거나 제목이어서 더 반갑다.

그리고 김광석의 노랫말로 형상화시킨 벽화는 그의 다시 부르기 처럼 예술가들의 정성과 땀이 모여 다시 그려진다.
그려지고 박제가 되지 않는 벽화들은 1000회 소극장 공연으로 그야말로 다시 부르고 다시 불렀던 그의 노래에 대한 열정과 맞닿아 있다.

◆ 환하게 웃는 그의 얼굴이 더 큰 울림을 전해준다

그의 웃음을 찾아 떠나는 길 '김광석 거리'

'공연이 중반을 넘어섰고, 다들 축하해 주고, 열심이었다고, 특종이라고 악의 없는 칭찬들이다. 하지만 나의 마음 속에 일고 있는 허전 함은 무엇 때문인가.
나를 치열하게 해준 것은 무엇이었나. 후회도, 보람도 아닌 그저 살아있음에 움직인… 그 움직임이 불쌍하다. 무료 하다. 사람들이, 울고 웃고 박수치는 그 사람이, 사람들이 무료하다.
즐겁지 않은 이유를 모른 채 나는 여전히 즐겁지 않다. 가라앉는 것인가. 무섭구나.'
-1995년 8월 메모-


김광석의 노래에는 치유의 힘, 위로의 마법이 있다고들 말한다. 그것은 한마디로 진정성일 것이다. 토해내듯 절절한 그의 노래는 창법이 아니라 일종의 절규이자 소통하고자 하는 의지였음을 그의 메모는 기록하고 있다.

그의 웃음을 찾아 떠나는 길 '김광석 거리'

아내와 딸 그리고 음악을 가졌지만 그의 마음은 텅 비어 있었고, 그의 노래와 웃음뒤에는 가장 인간적인 감정 '허무함'이 깔려 있었다.

실제로 공연도중 그는 노래 사이사이 수시로 웃으며 관객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 웃음들이 마음속 헛헛함을 감추는 수단이었을 망정 이 거리를 걸으며 새삼 그의 웃음이 그리운 이유는 무엇일까.

허진호 감독이 시한부 남자 주인공을 다룬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를 환하게 웃는 김광석의 영정 사진을 보고 기획한 것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실제로 김광석 거리 벽화중에는 그가 공연도중 얘기한 '40대에 오토바이를 타고 전국 일주를 하고 싶다'는 그의 꿈이 형상화 되어 있기도 하다. 담배 피며 고개 숙인 그의 모습보다 환하게 웃는 벽화가 더 가슴을 저미게 한다.

그의 웃음을 찾아 떠나는 길 '김광석 거리'

'슬프고 아픈 노래 좀 적당히 부르고 인생을 좀 즐기면서 살아갈수는 없었나' 라는 부질없는 생각이 다시금 고개를 쳐들 즈음 그가 남긴 또 다른 메모가 눈에 들어온다.

'스스로 선택한 사랑의 방법이 어렵더라도, 그 누군가 만든 기준에 의해 우리 사랑의 방법을 평가할 것인가.
가장 솔직해야 할 사랑에 대해 우리는 무엇을 기준으로 힘들어하는가. 사랑함, 주저함이 없는 것, 사랑함에 떳떳할 수 있는 것, 굳이 드러내지 않아도 사랑하는 것을,
마음의 평안이나 그저 안일한 평화가 주는 심심함보다, 가슴이 파이고 흐느끼는 밤이 있더라도 사랑하는 쪽을 택하리라.'

김광석 거리는 지금 현재도 '매일 이별하고 살고 있는' 기억속 20대의 내 방과 닮아 있다. 그곳에는 항상 그의 노래가 흘러나온다.

트레블라이프=양혁진 anywhere@travellife.co.kr

그의 웃음을 찾아 떠나는 길 '김광석 거리'

TRAVEL TIP: 김광석 거리는 대구 지하철 2호선 경대병원역 3번 출구로 나와 직진하면 만날수 있다. 출구쪽에 거리를 조성할 당시 기록사진을 모은 모자이크 사진벽도 있으니 놓치지 말것.

시간 여유가 있다면 계산성당을 중심으로 대구 근대골목 투어의 다른 길도 걸어볼만하다.

김광석 거리 메인 도로와 방천시장의 먹을거리도 풍성하지만, 대구의 명물인 동인동 찜갈비 골목과 대구 먹거리의 메카라 불리는 수성구 들안길도 택시 기본 요금 정도로 가깝다.

스토리텔링 중심의 여행 전문 미디어
트레블라이프 www.travellife.co.kr


[저작권자(c) YTN 무단전재, 재배포 및 AI 데이터 활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