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사찰여행] 고창 선운사, 잡힐 듯 잡히지 않는 모든 것들

[여름 사찰여행] 고창 선운사, 잡힐 듯 잡히지 않는 모든 것들

2016.08.18. 오후 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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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사찰여행] 고창 선운사, 잡힐 듯 잡히지 않는 모든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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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운사를 가면서 이곳엔 무조건 1박을 하리라 작정했다.

불볕더위에 여름 휴가 기간이 겹쳐 숙소를 구하기 어려울 것이란 예상과는 달리 절 이름을 따온 오래된 관광호텔은 손님이 많지 않았다.

깜빡 잠에서 깨어나 초저녁 어스름이 내려앉는 선운사를 걸어 올라갔다.

매표소 직원은 시계를 바라보더니 내일 다시 오더라도 입장료를 받지 않겠다고 한다.

◆ 숨길 수 없는 선운사 사랑

[여름 사찰여행] 고창 선운사, 잡힐 듯 잡히지 않는 모든 것들

선운사는 조용한 어둠속으로 들어갈 준비를 마친 듯 했다.

생각해보면 이곳에 이끌리듯 오게 된 것은 어디선가 무수히 본 듯한 혹은 들은 듯한 기시감이다.

그 기시감이 증폭되니 마치 선운사를 언젠가 와본 듯한 착각마저 들 정도다.

가장 궁금증을 자아낸 건 윤대녕.

에세이부터 소설 ‘상춘곡’에 이르기까지 작가의 선운사 사랑은 도처에 숨길 수가 없다.

◆ 동백꽃과 꽃 무릇, 선운사의 두 얼굴

[여름 사찰여행] 고창 선운사, 잡힐 듯 잡히지 않는 모든 것들

“선운사에 가신 적이 있나요?

바람 불어 설운 날에 말이에요.

동백꽃을 보신 적이 있나요.

눈물처럼 후두둑 지는 꽃 말이에요”

송창식 ‘선운사’



선운사를 노래하는 이들의 한결같은 대상은 동백꽃이다.

시인 최영미도 김용택도 마찬가지다.

미당 서정주 선생마저 멋진 시 한 수 선운사에 헌사 한 바 있다.

이쯤 되면 구름 속에서 참선한다는 선운사는 문인들의 성지라 부를 만하지 않은가.

그런데 그들의 노래는 한결같이 허무하고, 아리고, 쓸쓸하다.

동백꽃이 원래 그런 이미지인가.

아니면 문인들이 선운사의 동백꽃이란 공통 소재로 암묵적인 릴레이 연작을 하는 것일까.

[여름 사찰여행] 고창 선운사, 잡힐 듯 잡히지 않는 모든 것들

여자에게 버림받고

살얼음 낀 선운사 도랑물을

맨발로 건너며

발이 아리는 시린 물에

이 악물고

그까짓 사랑 때문에

그까짓 여자 때문에

다시는 울지 말자

다시는 울지 말자

눈물을

감추다가

동백꽃 붉게 터지는

선운사 뒤안에 가서

엉엉 울었다

김용택 ‘선운사 동백꽃’

[여름 사찰여행] 고창 선운사, 잡힐 듯 잡히지 않는 모든 것들

하지만 이 기록적인 폭염의 여름엔 동백꽃 같은 건 없다.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이 꽃을 볼 수 있는 건 당연히 봄.

선운사의 또 하나의 자랑인 꽃무릇은 가을이다.

매해 9월말 꽃무릇 축제가 열리니 가을 선운사 여행을 생각한다면

달력에 표시해 두는게 좋을 것 같다.

◆ 목탁 소리만 남은 불당

[여름 사찰여행] 고창 선운사, 잡힐 듯 잡히지 않는 모든 것들

관광객들이 모두 떠난 시각, 불당마다 스님들이 외는 불경소리만 가득하다.

한참동안 마당을 서성이며 깨우침을 갈구하는 스님들의 생각을 더듬어봤지만,

메마르고 텅 빈 의식에 그런 게 잡혀올리 만무하다.

[여름 사찰여행] 고창 선운사, 잡힐 듯 잡히지 않는 모든 것들

공기를 가르는 목탁소리가 고독하게 들리지만 정작 고독한건 그렇게 느끼는 사람일뿐.

시간이 흘러가지만 불경소리는 쉬 그칠 것 같지 않다.

마음이 서늘해져 조용히 길을 따라 내려왔다.

트레블라이프=양혁진 anywhere@travellif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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