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천 재인폭포, 무더위가 찾아낸 '슬픈 광대'의 전설

연천 재인폭포, 무더위가 찾아낸 '슬픈 광대'의 전설

2016.08.24. 오전 1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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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천 재인폭포, 무더위가 찾아낸 '슬픈 광대'의 전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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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는 사람이 살기는 겨울보다 여름이 낫다고 하지만, 교도소의 우리들은 없이 살기는 더합니다만 차라리 겨울을 택합니다. 왜냐하면 여름 징역의 열 가지 스무 가지 장점을 일시에 무색케 해버리는 결정적인 사실, 여름 징역은 자기의 바로 옆 사람을 증오하게 한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모로 누워 칼잠을 자야 하는 좁은 잠자리는 옆 사람을 단지 37℃의 열덩어리로만 느끼게 합니다. 이것이 옆 사람의 체온으로 추위를 이겨나가는 겨울철의 원시적 우정과는 극명한 대조를 이루는 형벌 중의 형벌입니다.

-신영복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에서-

출발은 그랬다.

너무도 찌는 날씨여서 서울과 가까운 경기도 계곡에 가서 발 좀 적시고 오자고. 문자 그대로 피서 좀 하자고.

은평구에서 차로 30분이면 찾아갈 수 있는 계곡에 도착했지만, 이건 물 반 사람반의 수준이 아니다. 물 10%, 사람 90%로 가득찬 계곡은 보는 것만으로 숨이 막힌다.

이미 평상을 잡고 앉아있는 사람도 그렇게 느꼈을 것이다.

여기서 백숙을 먹느니 차라리 집에서 치킨을 주문하고 세숫대야에 발 담그고 있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

연천 재인폭포, 무더위가 찾아낸 '슬픈 광대'의 전설

하지만 기왕지사 집은 나섰고, 발에 물은 적셔봐야겠고, 예상보다는 동선이 조금 멀어졌지만 재인폭포와의 우연한 만남은 그렇게 이뤄졌다.

아무런 정보도, 심지어 기대도 없었다.

그래, 지금 아니면 언제 이곳에 한번 와보겠나. 이런 상황에서 외우는 주문같은 말을 다시 한번 되풀이 하며 도착했더니...

아, 이거 생각보다 꽤 괜찮다. 아니, 많이 괜찮다.

멀리 갈수록, 힘들게 찾아갈수록 풍경이 멋진 건 만고불변의 진리다.

연천 재인폭포, 무더위가 찾아낸 '슬픈 광대'의 전설

폭포의 전체적인 느낌은 제주의 정방폭포나, 천지연 폭포를 닮았다.

어라, 그러고 보니 발 밑의 돌들이 현무암이다.

아니나 다를까 자료를 뒤적거리니 화산활동으로 분출된 용암이 식으면서 생긴 지형이다. 폭포 주변의 벽은 역시 현무암 주상절리.

너비 30m, 길이 100m의 소(沼)의 색깔마저 제주도의 바다색을 닮은 에메랄드빛. 이건 뭐 제주도가 따로 없다.

연천 재인폭포, 무더위가 찾아낸 '슬픈 광대'의 전설

강수량도 별로 없이 가마솥 더위가 계속되어서인지 폭포수의 물줄기가 그리 힘차 보이지 않지만, 청량감을 주는 시원한 느낌만은 제대로다.

스카이 워크를 통해 공중에서 바라보는 느낌과 계단을 내려가 발 앞에서 보는 시선이 사뭇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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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객들은 당연히 폭포 앞에서 셔터를 눌러대기 바쁘니, 연인들이라면 폭포수가 흐르는 물줄기를 따라 조금 내려가면 더 분위기 좋을 수도.

연천 재인폭포, 무더위가 찾아낸 '슬픈 광대'의 전설

재인 폭포는 옛날 줄을 타는 재인이었던 광대 부부의 슬판 전설을 간직한 곳.

광대의 아내에게 흑심을 품은 원님이 남편을 재인폭포에서 줄을 타게 하고, 남편은 원님이 줄을 끊어버리는 바람에 폭포 아래로 떨어져 죽는다. 원님의 수청을 든 밤에 재인의 아내는 원님의 코를 물어버리고 자결한다. 그후로 사람들은 이 마을을 '코문리'라 부르게 되었고, 현재의 고문리라는 이름으로 정착하게 된 것.

어쩌면 영화 ‘왕의 남자’의 중요한 모티브 중 하나는 재인폭포에서 가져온 전설이 아니었을지.

연천 재인폭포, 무더위가 찾아낸 '슬픈 광대'의 전설

재인 폭포는 스카이 워크에서 한눈에 들어온 풍경에 한번 아찔하고, 높이 18미터에서 외줄을 타던 광대의 심경을 상상해보면 또 한번 아찔해진다.

트레블라이프=양혁진 anywhere@travellif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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