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주호, '푸른 안개'에 파묻힌 광활한 땅위의 바다

충주호, '푸른 안개'에 파묻힌 광활한 땅위의 바다

2017.08.16. 오전 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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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주호, '푸른 안개'에 파묻힌 광활한 땅위의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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널 처음 만났을 때 넌 세상에 무서운 게 없는 사람이었다.
너무나 자유로와서 두려움이 뭔지도 모르는 어린애였어.
난 널 만나 철딱서니 없는 어린애가 됐는데
넌 날 만나 어른이 된 것 같구나.

-드라마 ‘푸른 안개’ 에서-


짙고 넓은 안개가 마치 청색 필터를 끼운 듯이 푸르다. 선착장에선 그렇게 심하지 않았는데 호수의 중심으로 가면 갈수록 더욱 그렇다.

그러고 보니 그런 드라마가 있었다. 중년 남자와 상처를 가진 20대 여자의 불륜을 다뤄 화제가 되었던 ‘푸른 안개’

내면의 꿈틀거리는 욕망은 안개에 갇혀 있고, 선만 그어놓은 듯한 능선은 모호하다. 충주호의 바람은 시원하지 않았고, 끈적거리는 습기로 가득 차 있다.

충주호, '푸른 안개'에 파묻힌 광활한 땅위의 바다

충주호로 다시 발길을 돌린 건 오기 때문이다.

지난번 뜻하지 않은 사고로 아쉽게 발길을 돌린 적이 있기에 피서 여행에 나서면서도 행선지에 대한 고민 같은 건 없었다.

충주호, '푸른 안개'에 파묻힌 광활한 땅위의 바다

가는 길에 화담 숲을 들러볼 생각을 했지만, 숨이 턱턱 막히는 여름에 도저히 산길을 오르내릴 자신이 없어 발길을 돌린다.

그래, 숲은 역시 단풍이 들어야 제 맛 아니겠는가. 위안이라고 스스로에게 속삭여 댄다.

충주호, '푸른 안개'에 파묻힌 광활한 땅위의 바다

서울에서 출발해 곤지암에서 소머리 국밥을 한 그릇 먹으니 그제 서야 집을 나선 느낌이 제대로 들어온다.

한번쯤은 일부러라도 찾아가서 먹을 만하다.

아, 감수성이 나날이 무뎌져 간다. 새로운 무언가를 보는 것보다 평소 먹지 않던 무언가가 입에 들어오면 그게 더 신선한 느낌이다.

충주호, '푸른 안개'에 파묻힌 광활한 땅위의 바다

바다에 면하지 않은 유일한 내륙인 충북은 대신 충주호를 가졌다.

저수량을 기준으로 춘천의 소양호가 으뜸이라고 하지만 둘 다 가본 입장에서 동의하기 어렵다. 물론 저수량은 면적뿐만 아니라 깊이도 중요한 지표가 되므로 사람의 눈으로 판단하는 건 불가능하지만 시선에 잡혀오는 풍경은 충주호가 훨씬 더 광활하다.

충주호를 보았지만, 충주호를 안다고 할 수 없을 정도다.

충주호, '푸른 안개'에 파묻힌 광활한 땅위의 바다

이처럼 ‘내륙의 바다’라 불릴 정도로 규모가 큰 충주호는 이름만 충주호 일뿐 충주, 단양, 제천 3개 지자체에 걸쳐 있다.

유람선도 코스가 한두 개가 아니다. 지난번에 예약을 하고서 가지 못한 곳은 장회나루, 이번에 간 곳은 충주나루다. 그외도 몇개의 나루들이 더 있다.

이번 충주나루에서 유람선을 타고 대략 한 시간에 걸쳐 돌아본 곳은 충주호 전체의 반의 반도 안 될 것 같다. 이처럼 충주호 유람선을 타려면 어느 나루에서 어떤 코스를 탈 것인가를 확실하게 결정해야 한다.

또한 배편이 시간상으로 꽤나 떨어져 있어 시간표도 확인해야 한다. 두어 시간 비어버리면 어딜 다녀오기에도 애매한 붕 뜨는 상황이 될 수 있다.

기회가 된다면 다음엔 장회나루로 다시 한번 충주호 답사를 떠나야 하는 숙제를 안게 됐다.

충주호, '푸른 안개'에 파묻힌 광활한 땅위의 바다

선내는 냉방이 잘되어 있지만, 이런 배에서 실내에 머무를 수는 없다. 일단의 젊은이들을 태운 바나나 보트가 돌고래 마냥 유람선을 따라 다닌다.

10년만 젊었다면 이 유람선 대신 저 바나나보트를 타고 있을까. 튀는 물방울에 몸을 좀 적시면 충주호를 느꼈다고 할 수 있을까.

시간이 지나면 안개는 걷히게 마련이다.

하지만 지독한 안개속을 헤매이더라도 사람이 사람을 사랑할 수 있다는 건 어쨌거나 좋은 것이다. 길건 짧았건 사랑하는 시간 조차도 모든 게 다 스치고 지나가는 한때다.

그리고 그 시간이 가장 인간적인 것이 아닌가...

충주호의 안개는 그런 밑도 끝도 없는 상념속으로 나를 몰아넣는다.

트레블라이프=양혁진 anywhere@travellif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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