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정원의 건축가 인터뷰〕내가 건축을 하는 근본적 이유는 인간을 존중하고 이해하는데 있어2

〔안정원의 건축가 인터뷰〕내가 건축을 하는 근본적 이유는 인간을 존중하고 이해하는데 있어2

2018.04.17. 오전 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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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멋진 세상 속 건축가와의 만남_ 정진국 한양대학교 건축학부 교수 인터뷰 2. 세계로 근접하는 관문인 교육이 사회적 기제로 작동되어야, 사회를 이롭게 하는 사회 체계로서의 건축의 중요성을 강조해… 인간성 회복을 위한 도시의 최소 단위가 바로 건축, 건축을 디자인으로 보질 않고 질서와 구축과 구조로 건축을 이해해야 해… 내가 건축을 하는 근본적 이유는 인간을 존중하고 이해하는 데에 있어

서울시 공공건축가로서 수행한 가락과 둔촌 주택재건축정비사업 프로젝트…, 공동의 주거 공간, 건축의 눈으로 재건축을 바라보고자

둔촌주거단지_ 정진국

정진국 교수는 최근에 서울시 공공건축가로서 가락과 둔촌 프로젝트에 참여여 과제를 성실히 수행했다. 하나는 ‘가락시영아파트 주택재건축정비사업’(9,510세대, 2012년 12월에 착수, 2013년 5월에 서울시건축위원회 심의, 이하 가락, 그림 1.)이고, 다른 하나는 ‘둔촌주공아파트 주택재건축정비사업’(11,106세대, 2013년 5월에 착수, 2014년 5월 현재 서울시건축위원회 심의, 이하 둔촌, 그림 2.)이다. 이들은 최초 정비구역지정 이후 각각 10년 정도와 8년 정도가 경과한 상태였고 조합원, 설계사무실, 건설사 등 많은 관계자들은 조속히 처리되기를 기대하고 있었다.
공공건축가는 자문의 형식으로 과제를 수행해야 하지만, 신설 제도의 적용에 있어서 공공건축가 자신들을 비롯해서 이해 당사자들의 적잖은 오해들이 있었다. 최초의 대상인 가락의 경우, 아무것도 정해진 바가 없었기 때문에 작업에 있어서의 시행착오는 당연했다. 특별건축구역으로 정해야 하는지, 아니면 기존의 법제도를 준수해야 하는지. 과연 아파트에 관한 고정관념을 얼마나 변화시킬 수 있는지. 도시계획위원회 심의를 위해 도서를 작성한 설계사무소는 서울시의 요청에 의한 공공건축가와의 협업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많은 고민이 있었지만 성공적이라고 자평하며, 이는 가락과 둔촌을 담당한 설계사무소의 열정과 수고의 덕분으로 생각한다.
고민도 많았지만 이러한 작업을 통해서 개인적으로 많은 것을 알았고 배웠고 깨달았다. 진짜 고민은 자문 이후의 상황에 있다. 서울시건축위원회 심의를 완료하고 나서도 설계사무소의 실시설계, 건설사의 계산과 시공, 해당 자치구의 심의 및 허가 등 한참을 더 가야하는데, 그러는 동안 변형의 가능성이 다분하기 때문이다. 공공건축가의 참여를 통한 결과물이 마지막까지 잘 유지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 특히 이러한 대규모 단지는 도시 구조를 재편할 만큼의 영향력을 가지기 때문에 사적 이해관계로 인한 작은 변형이 공적으로 엄청나게 큰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건축과 도시가 사람들의 안전과 행복을 위해서 봉사하는 전문 분야인 이상 전문가인 공공건축가로서의 권한과 책임을 분명히 해야 함은 두말할 나위 없다. 앞으로 공공건축가 제도가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지 예측하기 어렵다. 임기응변적 정책으로 추후 비판의 대상이 되지 않기를 동료 공공건축가 및 서울시 관계자 여러분께 진심으로 바란다.
정진국 교수로부터 서울시 공공건축가 제도를 통한 두 번의 경험을 구체적으로 들을 수 있었는데, 이에 대해서는 둔촌 주민이었던 이인규 씨가 작년에 펴낸 책 ‘안녕, 둔촌주공아파트, 두 번째 이야기’에 실렸던 대담에 잘 나와 있어서 부분적으로 인용하기로 한다.

둔촌주거단지_ 정진국

『한국 사회에서 아파트는 매우 특이한 현상 중의 하나이나, 아파트도 아파트이기 이전에 하나의 건축이다. 건축의 영역에서 아파트를 바라보고 생각하여야 한다. 다른 건축물의 경우도 마찬가지만 특히 대규모 공동주거 단지는 디자인이나 재산증식의 방식으로 다루어질 대상이 아니다. 아파트가 이런 방식으로 인식될 수밖에 데는 없었던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 아파트가 삶의 문제로 돌아와야 한다.
서울시 공공건축가 제도가 도입되기 이전에도 경관건축가 제도가 있었다. 서울시에서 주거 공간을 중심으로 도시의 환경을 정비하고자 건축가에게 비중 있는 책임을 부여했던 제도인데 건설 주체의 첨예한 이해관계와 부동산 위주의 건설 논리에 묻혀 큰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건축가는 도시를 구성하는 기초 단위라고 볼 수 있는 건축물을 설계하는 전문가이다. 그러나 도시가 건축물의 총합으로 설명되어서는 안 된다. 도시는 대규모의 공동체이고 자체의 질서를 가지는 거대 공간이다. 우리의 상상, 희망, 정서 혹은 지식의 원천은 바로 도시다. 인간이 발명한 최고의 성과가 도시라고도 하는데, 이렇게 인위적으로 구축된 도시에서 건축가의 역할과 책임은 매우 중요하다. 건축가의 창의성과 혁신성이 개인을 위한 사적 영역에 머물지 않고 지역 문화가 바탕이 되는 공적 영역에서 펼쳐져야 함께 하고 나누고 꿈을 꾸는 도시, 즉 요즈음 이야기하는 경쟁력을 가진 도시를 만들 수 있다. 여기서 주거의 중요성은 말할 나위 없다.

물론 이러한 문제를 서울시는 알고 있었고, 그래서 공공건축가 제도를 실행에 옮겼다고 생각한다. 도시와 특히 주거에 대해 서울시가 오랫동안 고민해왔던 만큼 공공건축가 제도가 잘 정착되어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성과를 내기를 개인적으로 간절히 바란다. 서울시는 여기에 대해 기본 방침을 정해 놓았고 필요에 따라 공공건축가에게 임무를 부여한다. 건축물을 건설하는 데에는 까다로운 행정적 절차가 있으며 대상 부지에 거주하는 주민 혹은 조합, 건설사, 설계사무소, 관공소 등의 협의와 조율 역시, 결코 풀기 쉬운 문제가 아니다. 공공건축가는 계획안 작성에만 참여하는 게 아니고 서울시 건축위원회에서 직접 설명해서 사업허가 획득을 위해 노력하고 나아가서 계획안이 제대로 실현되도록 지속적으로 주의를 기울여 관찰한다. 예전에 비해 이해 당사자 간 대화를 많이 나눌 수 있는 분위기가 된 것임은 틀림없다.

가락주거단지_정진국

대규모 공동주거 재건축에 실제로 공공건축가가 참여하기 시작한건 지극히 최근의 일이고 서울시 건축위원회 심의 조건으로 공공건축가 제도가 시행된 최초의 사례가 가락이다. 십 년 이상 추진되어 온 사업은 모두가 만족할만한 방향으로 계획안이 수립되었고 많은 분들의 헌신으로 지난 5월 초에 심의가 통과됐다. 이 사업의 책임 공공건축가로서 성공적인 결과를 낳을 수 있었음에 자부심을 가진다. 그리고 관계자 여러 분께 항상 감사한다. 공공건축가의 참여는 간단하지 않다. 기존의 계획안을 전반적으로 점검하고 경우에 따라 그 계획안을 작성한 건축설계회사와 협업해서 총체적으로 수정한다. 협업은 자문회의 수준 정도가 아니며 자르고 만들고 그리는 일, 즉 건축가가 하는 본연의 노동과 수고가 그대로 공공건축가에게 요구된다. 최초의 사례가 긍정적으로 평가되면서 공공건축가를 바라보는 전문가들과 일반인들의 태도나 기대가 달라졌고, 개포, 반포 등 다른 대규모 공동주거 재건축에 공공건축가 제도의 실행이 활성화되는 계기가 되었다. 둔촌도 이러한 경우 중의 하나이며, 서울시로부터 5월 말에 담당 공공건축가로 임명되어 현재 삼우컨소시엄과 함께 열심히 계획안을 작성하고 있다.
서울시가 공동주거 재건축에서 바라는 내용은 세 가지로 요약된다. 사업성, 개방성, 공공성이다. 건축가의 상상과 이상이 이러한 현실적 문제와 만나면서 단지의 방향이 결정된다.

사업성은 효율성, 경제성 등을 따져서 집을 합리적으로 공급하는 방안을 모색하는 것이다. 쉽게 말해 분양이 잘되는 것, 싸게 잘 짓는 것으로 합리적인 공급 방안을 찾아내는 것이다. 건축위원회 심의를 거치기 전 도시계획위원회에서 세대수와 부대시설 규모 등을 정하는데, 둔촌은 도시계획위원회에서 1, 2, 3단지를 3종 250% 용적률, 4단지를 2종 286% 용적률을 적용하도록 규정됐다. 현재가 100% 정도인데 2.5배 이상 용적률을 높여야 한다. 자연히 밀도가 높아지고 층수가 많아진다. 그러나 무작정 층수를 늘릴 수 없고 3종을 기준으로 35층까지 층수 제한을 받는다. 물론 둔촌은 이러한 제반 규정을 존중하면서 최대한의 물량을 만들어 내야 하는 고밀도 단지다. 양적 측면 때문만 때문만이 아니라 매매에 유리한 집에 대한 대중적 통념이 존재하기 때문에 혁신적 건축 형태를 만들어 내기는 무척 어렵다는 점을 말하고 싶은 것이다.
가락주거단지_ 정진국

개방성은 쉽게 말해서 주동의 배치에 관한 문제이다. 하나의 주동은 한 층에 몇 개의 주호로 구성되는 하나의 층이 수직적으로 반복적으로 쌓여 이루어진다. 주호가 일렬로 늘어서느냐 주호가 모여 뭉쳐지느냐에 따라 건축형태는 판상형과 탑상형으로 구별된다. 물론 수많은 변형을 생각해볼 수 있다. 말했지만 우리나라에서 주동의 건축형태는 거의 정해져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표현이 자유롭지 못한 것이다. 이렇게 단조로운 건축형태를 가지고 통일성과 다양성을 갖춘 단지를 만들어 내야 한다. 또한 단지가 주변의 도시 공간과 비타협적이지 않도록 형태적으로도 공간적으로도 개방을 해야 한다. 둔촌의 대지 규모는 어마어마하다. 가로 팔백 미터 세로 팔백 미터이다. 개방성은 비단 공동주거의 건축물에 제한되지 않는다. 모든 건축물은 공유의 환경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공공성은 단지 주민 혹은 지역 주민이 이용하는 소통의 공간, 즉 커뮤니티를 말한다. 이것은 단지의 개방성과 직접적으로 연관을 가진다. 커뮤니티는 주거 생활에 필요한 여러 가지 편의시설인데 연령, 성별, 기능, 범위 등에 따라 적소에 배치된다. 영업 위주인 상가는 별개지만 전반적 건축설계의 범위에 포함된다. 대규모 단지는 처음부터 공유의 공간일 수밖에 없다. 단지 주민을 위한 편의시설이 최우선적으로 고려되어야 하지만 동시에 지역 주민을 위한 편의시설로서도 손색이 없어야 한다. 커뮤니티를 통한 소통은 대단히 중요하다. 개인적으로 소통의 가능성을 높임으로써 단지의 가치가 높아진다고 확신한다. 둔촌은 서울시가 정한 커뮤니티 면적의 세 배에 가깝다. 다양하고 편리한 편의시설을 이용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공공성의 핵심은 가로이다. 가로에서 이웃을 만나고 교감을 나눈다. 아니 그래야 한다. 가로의 활성화는 바로 삶의 활성화로 이어진다. 둔촌의 새로운 가로는 이러한 생각에서 만들어졌고 커뮤니티가 이러한 가로와 함께 펼쳐지기 때문에 공공성의 효과는 극대화된다. 더욱이 가로와 커뮤니티가 자연 지형을 보존한 상태에서 설치되었다면 더할 나위 없다.

사실 새로운 둔촌은 자연을 보존하는 방향에서 계획이 수립되었다. 대지의 남동에 위치한 생태보존 지역을 살리고 이러한 힘이 단지 전체에 영향을 미쳐야 하는 것이다. 대지 전체의 단면을 보면 생태보전 지역으로 서서히 높아진다. 건축가는 이러한 경사를 고려하여 공간적으로 흥미로운 해결책을 내놓아야 한다. 전체 대지는 높이를 달리하는 세 개 대지로 구분되었고 그들 사이에 주요 가로와 커뮤니티가 형성된다. 지하는 주차장으로 활용되는데 충분한 자연광을 확보하면서도 넓은 지하 공간에서 쉽게 주차 자리를 인식하도록 하는 방안이 마련되었다. 3단지와 4단지 사이를 지나가는 명일로에서 특별히 재미있는 경험을 했다. 만일 명일로가 서울시가 바라는 대로 차로가 된다면 단지는 두 가지를 한꺼번에 놓치게 된다. 하나는 보행자를 위한 가로가 되는 일, 다른 하나는 단지의 연결성이다. 많은 고심을 했다. 단지 전체를 연결하면서도 가로로 남아있어야 한다는 서로 상반된 문제가 제기됐기 때문이다. 물론 잘 해결했다. 입체적으로 공간을 구분해서 지상과 지하를 모두 이어주면서 가로는 가로대로 살려내었다. 여기에 덧붙여 주민설명회에서 명일로를 달리는 자동차 소음에 대한 주민의 걱정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것도 모두가 만족할만한 방법으로 해결했다.
건축설계는 많은 창의적 상상력 못지않게 많은 전문가들의 협업이 중요하다. 완성도 높은 결과는 협업에 참여하는 전문가들의 성실한 노력에서 비롯된다. 단지 전체의 건축형태는 근대 건축의 이념에 따라 단순하겠지만 그것이 만들어내는 분위기는 결코 단순하지 않을 것이다. 인간과 인간, 인간과 자연, 자연과 자연, 즉 인간과 자연이 건축에 의해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낼 것이다. 이것이 건축을 통해 실현하고자 하는 건축가로서의 개인적 목표라고 말할 수 있다.

곤지암주택_ 정진국

이런 대규모 계획안을 수립하기 위해서 건축설계 이외 해결해야 할 행정적 법률적 절차들이 즐비하다. 진행 과정에서 협의해야 하는 주체가 오십 군데가 넘는다. 관공서, 개인, 조합, 건설사, 개별 전문 회사, 구청, 소방서 등등 수많은 관련 부서와 접촉하고 협의하여야 한다. 건축은 체계이다. 부분이 바뀌면 전체가 바뀐다. 사소한 변경이라도 중대한 변경으로 이어진다. 그에 따라 인력과 비용이 늘어난다. 건축설계 작업은 만들어놓은 부품을 조립하는 생산 공정과는 거리가 멀다. 건축설계는 단계마다 창조적으로 대처해야 하는 인내의 작업이다. 밤을 새운다고 다 해결되지 않는다. 재건축을 위한 일정에 돌입한 지 적지 않은 시간이 흘렀다. 조속한 마무리를 위해 열심히 준비하고 있다.
아파트 단지 재건축에서 중요한 것은, 이를 부동산의 금전적 관점으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도시와 건축, 예술, 생활 등 보다 폭넓은 문화적 관점으로 바라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완전히 이상적 방법을 현실에서 구현하기는 어렵지만 이상으로 접근하는 현실적 대안에 대해서는 고민해야한다. 그리고 건축의 영역 안에서 공간에 대한 바람직한 것들을 제안할 수 있어야 한다. 실상을 무시하고 예술이기만을 바라는 것도 옳지 않다는 말이다. 앞으로 둔촌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는 두고 봐야 알겠지만, 조금 앞서 마무리한 가락의 경우 건축가로서 품었던 생각을 주민이 동일하게 느끼게 되었다는 말을 듣고 무척 기뻤다. 말하자면 예전의 계획안은 살고 싶은 집과 피하고 싶은 집이 명확하게 구분이 되어있었지만, 새로운 계획안에서는 주호와 주동의 위치에 상관없이 모두 나름의 장점을 가지고 있어 좋고 나쁜 경계가 없다고 한다. 이것이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평등과 균형과 공유이다. 누구에게나 어디에서나 사는 사람들이 가지는 행복감은 동일해야 한다고 믿는다. 아파트가 재산 가치로 평가되기 이전에 건축물이고 이것은 잠깐 쓰고 버리는 물건이 아니다. 적어도 한 장소에서 움직이지 않고 몇 십 년 동안은 지속될 구조물이다. 오랫동안 사람들이 살아갈 집에 개방성과 공공성이 더해져서 공간적 매력이 높아지면 오히려 재산으로서의 가치, 즉 사업성은 자동적으로 오른다.

경주주말주택_ 정진국

따질 필요 없이 남향과 통풍과 녹지는 삶의 기본 요건이다. 근대 건축도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고자 탄생되었다. 어떻게 생각하면 오늘날에도 현실적 조건과 함께 근대 건축에 관한 이해가 절실해지는 것이다. 집의 면적이나 장식이 삶의 질을 보장해주지 않는다. 가락도 그렇지만 둔촌을 연구하면서 염려하는 바는 부분과 전체를 세밀하게 조율하여 탄생한 주호, 주동, 단지가 어떠한 힘에 의해 변형되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는 대규모 사업에 있어서 결과물이 자칫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갈 수도 있으며 그 누구도 책임지지 않게 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서울시도 공공건축가가 참여한 사업은 지극히 경미한 사항이라도 변경이 있다면 반드시 해당 공공건축가와 협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계획안에 충실하게 실현된다면 단지의 주민 모두가 행복해지리라 확신한다.
산 속에 동떨어져 짓는 개인 주택이 아닌 이상, 둔촌과 같은 대규모 공동주거 단지의 원초적 선행 조건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도시 공간이다. 도시 공간이란 공공의 영역이고 단지는 이러한 공공의 영역에 막대한 영향을 미친다. 말하자면 도시 공간이 단지로 인해 재구성되는 것이다. 서울시 아니 우리나라에서는 박물관이나 도서관 혹은 관공서 등의 공공시설을 뒤로 하고 아파트로 대표되는 단지가 기념물로서의 기능을 가진지 오래다. 우리나라에서 낯선 땅을 밟더라도 가장 눈에 잘 띄는 건축물이 바로 아파트이다. 아파트가 일반적 공공시설, 즉 관청, 박물관, 공연장 등이 가져야 하는 기념비성보다 더한 기념비성을 가지게 된 것이다. 당연히 국가 전체의 경관은 기형적으로 변해간다. 아파트는 도시 공동체의 시각에서 바라봐야 한다. 다시 말하지만 부동산과 투자의 논리로서는 아름다운 도시 공동체를 만들 수 없다. 함께 하고 열리고 나누는 사회적 기제에 따른 단지가 도시 공간에 활력을 불어넣고 동시에 개인적 삶의 질을 보장한다.
다수가 이용하는 도시에 대한 관심을 단지를 통해서 이끌어낼 수 있다. 청계천과 서울광장이 만들어지면서 일반 시민들이 도시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대규모 공동주거 단지 역시 마찬가지다. 새로운 단지를 통해 도시를 새롭게 발견하는 것이다. 개별적으로 진행되는 공공건축가의 경험이 하나의 일화에 그치지 않고 다수의 경험 자체를 공유함으로써 더 나은 서울의 미래를 집단적으로 구상해보는 것도 의미 있다. 개인적으로는 공공건축가 제도의 도입이 도시와 건축에 관한 관점의 변화를 야기하는 촉진제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이인규 씨의 ‘안녕, 둔촌주공아파트’라는 책을 보면서 많이 놀랐고 또한 많이 생각했다. 계획에 의한 단조로운 건축, 정확하게는 근대 건축을 비판하는 많은 논자들에게 이 책을 권한다. ‘성냥갑’이라고 비난 받아온 그 아파트에서 사실은 수많은 사람들이 어울리고 추억을 쌓아간다. 그러나 둔촌에서의 삶은 단지 추억으로만 남아 있지 않다. 그것은 개인의 의식을 형성하는데 결정적 역할을 했고 그것을 바탕으로 긍정적 상상력이 작동되며 나아가 건강하고 생산적으로 공동체를 구축하게 만들었다. 이제 건축가로서 평소에 생각해 오던 좋은 건축에 대한 정의를 내릴 수 있겠다. 함께 살면서 자연스런 소통을 이끌어 내는 것이 바로 좋은 건축이다. 좋은 건축은 크기나 값에 무관하다. 좋은 건축은 건축으로 인해 그 곳에 사는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즐겁게 생산적 활동을 하게 유도하는 건축이다. 나쁜 건축은 아무리 화려하더라도 만들어짐과 동시에 끝이 난다. 하지만 좋은 건축은 또 다른 시대를 열고 또 다른 문화를 연다. 좋은 건축은 만들어짐과 동시에 시작이다. 언제나 열려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건축에 대한 입장이기도 하다. 18세기에 저술된 이중환의 ‘택리지’가 머리에 스친다. 그는 살기 좋은 땅의 조건 중 하나로 특이하게도 사람들의 마음씨, 즉 인심을 들었다. 정말 핵심적 문제를 짚었던 것이라 생각한다. 내가 아는 한, 세계의 어떤 이론에서도 인심을 거론한 적이 없다. 좋은 건축은 좋은 인심을 만들어내고 좋은 인심이 있는 곳이 살기 좋은 땅이다. 둔촌은 지금까지도 그랬지만 앞으로도 살기 좋은 땅이 될 것이다. 이웃들이 함께 하는 그런 문화를 가졌던 둔촌 사람들이라면 새롭게 지어질 그 곳에서도 다시금 함께 하며 살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정말 그렇게 될 수 있기를 바란다.』

헤이리갤러리 작업실_ 정진국

건축을 하는 근본적 이유는 인간을 이해하는 데에 있어, 지면과 공간의 연속성을 존중하는 건축을 통해 한국건축가협회상 2회 수상, 건축설계를 통해 르 코르뷔지에의 미완성 작품인 ‘기적의 상자’에 대해 연구해 나가

오랜 유학생활을 끝내고 한국으로 돌아와 교수와 건축가로 활동한 지 어언 20년을 넘겼지만 사실 지금까지 많은 작품을 하지 못했다. 처음부터 설계사무실이 아닌 대학 연구실에서 작업을 했기 때문일 것이다. 건축가로서 받은 상으로 따진다면 한국건축가협회상 2회 정도이고 국제현상설계에서의 수상도 2회라고 이내 겸손을 내비친다. 전체 작업의 분량을 놓고 볼 때 그렇게 나쁜 수상 실적은 아니다 하더라도 수상이 작업의 목표일 수는 없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한국건축가협회상 수상은 ‘평창동 주택’(1996)과 ‘곤지암 주택’(2005)을 통해서였다. 기본적으로 그에게는 자연이 만든 지면과 이것에 따라 전개되는 공간이 중요하다. 둘 다 연속적인데 적어도 건축물이라는 인공적 건조물이 개입하기 전까지는 그러한 셈이다. 여기에 인간의 개입이 불가피하다 하더라도 지면과 공간의 연속성을 파괴하지 않아야 한다. 하지만 건축을 하는 근본적 이유는 다른 학문 분야와 마찬가지로 인간을 이해하는 데에 있다고 정진국 교수는 강조한다.
‘토포하우스’(2005)를 설계하면서 정진국 교수는 르 코르뷔지에의 미완성 작품인 ‘기적의 상자’에 대해 연구하기 시작했다. 지금도 연구하는 주제인 기적의 상자는 배타적 형태를 통해서 관대한 정신을 표현한 상호 참조적 기호이다. 또한, 그에게 재료, 색채, 도로, 광선, 표면 등에 관한 고민을 안겨주었던 의미 있는 작업이었다. 헤이리 예술마을의 ‘소금항아리’ 또한 의미 있는 작업으로 다가온다. 이것은 시간과 공간과의 연속적 관계를 생각할 수 있었던 기회였다. 건축가로서의 행복은 설계한 집이 행복했을 때인데, ‘소금항아리’가 그런 경우라고 정진국 교수는 밝힌다. 훌륭한 주인을 두어 세월이 갈수록 집이 품위를 더해간다는 이유에서다. ‘경주 주말주택’(2008)과 ‘고기동 주택’(2010)을 통해서 경관과 대지와 형상을 실험할 수 있었다.
“모든 것을 다 보고 다 알 수 없습니다. 판단과 선택은 개인의 역량에 달렸고, 개인의 역량은 생각의 힘에 달렸습니다. 핵심은 바로 사유입니다. 르 코르뷔지에도 자신의 삶을 마감하기 직전에 “전해지는 것은 사유뿐이다”라고 말했다. 3차원의 현실 공간을 매개로 인간의 거주에 대해 사유하는 일, 그것이 건축을 하는 사람만이 할 수 있고 누릴 수 있는 일이라고 그는 생각한다.
매번 건축 작업을 진행하는 어떤 순간에서도 건축적 감흥의 원천에 대한 질문을 빠뜨리지 않는다고 밝히는 정진국 교수의 말은 우리가 어떤 식으로 건축을 해야 하는지를 잘 말해주고 있다. 인간을 존중하고 이해하고자 하는 따뜻하고 사려 깊은 그의 건축 언어는 우리가 왜 건축을 해야 하는 지를 진솔히 투영해주고 있기에 더없이 그의 건축 행보의 기대치를 높인다. >>인터뷰_ 정진국 한양대학교 건축학부 교수, 자료 건축도시학제간 설계연구소, 기사 출처_ 에이앤뉴스 AN NEWS(ANN NEWS CENTER) 제공

인터뷰어_ 안정원(비비안안 Vivian AN) 에이앤뉴스 발행인 겸 대표이사, 한양대학교 실내건축디자인학과 겸임교수 annews@naver.com
제공_ 에이앤뉴스그룹 ANN(에이앤뉴스_ 건축디자인 대표 신문사 ‧ 에이앤프레스_건설지, 건설백서 전문출판사)

정진국 Jin Kouk Jeong 정진국 교수는 한양대학교와 파리벨빌건축대학(지도교수: 앙리 시리아니)에서 건축을 전공하고 파리고등사회과학원(지도교수: 위베르 다미쉬)에서 예술사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1996년과 2005년에 한국건축가협회상을 수상했고, 작품으로는 ‘평창동 주택’, ‘곤지암 주택, 토포하우스’, ‘경주 주말주택’, ‘고기동 주택’, ‘소금항아리’ 등이 있다. 주요 저서로는 ‘르 코르뷔지에가 선택한 색채들’, ‘상자의 재구성’, ‘프레시지옹’(역), ‘르 코르뷔지에의 사유’(역)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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