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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상원, 변호사·前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 / 신지호, 前 새누리당 의원 / 강훈식, 동국대 언론정보대학원 겸임교수 / 최창호, 심리학 박사·메타포럼 대표
[앵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이달 말에 차녀 결혼식 치른다는 보도가 나왔습니다.
상대는 충북지역에서 중견 건설업체를 운영하는 집안으로, 예비 사위는 경영수업을 받고 있다고 합니다. 김 대표는 그동안 집안 경조사를 철저히 비밀에 부쳐왔습니다.
이번에도 차녀의 결혼 사실을 알리지 않았는데요. 충북 지역에서 소문이 나는 바람에 곤혹스러워하고 있다고 측근들은 전했습니다.
그런데 김 대표의 집안 형제들은화려한 혼맥을 통해 정계, 법조계, 언론계 등으로 인연을 넓혀왔습니다.
먼저 김 대표의 부인 최양옥 교수의 아버지는5선 국회의원인 최치환 전 의원입니다.
최 전 의원은 이승만 정부 공보실장과 경향신문 사장, 그리고 서울시 경찰국장을 지낸 인물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김 대표의 누나의 딸, 조카가바로 현대가의 며느리,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입니다.
혼맥은 현대뿐 아니라,한화와 삼성가까지 뻗어나간다는데, 지금 이야기 나눠보겠습니다.
[앵커]
요새 저는 이건 좋은 풍토라고 생각을 합니다.
주요 정치인들, 김무성 대표도 그렇지만 손학규 전 대표라든지 이런 분들이 경조사를 치를 때 아주 비밀리에 치른다는 것, 저는 이거는 우리나라 정치문화가 바뀌고 있다는 하나의 증거라고 생각을 하는데 지난 번에 김무성 대표가 어머니 돌아가셨을 때 보좌관한테도 알리지 않았다고 하죠?
[인터뷰]
2013년 11월이었습니다. 그런데 누구한테도, 자기 방에 있는 보좌관한테도 알리지 않았고 신문에 부고는 자기 이름으로 절대 안 냈고 장례식장에 보면 망자의 이름 옆에 상주들, 자식들 이름, 사위들 이름 써놓지 않습니까?
우연히 누가 그 병원 장례식장에 왔다가 본인 이름을 발견할까 봐 거기에서도 뺐다고 하는 것이죠. 그래서 참 이건 본받을 만한 사례인데. 제가 국회의원 4년 동안 수없이 많은 동료 선후배들, 국회의원들 결혼식, 장례식 가봤는데요.
조의금, 축의금 안 받는 결혼식 딱 두 번밖에 없었습니다. 나머지 수십 번은 다 받더라고요.
그러니까 이게 다 일종의 준조세를 다 걷는 건데 아예 존재 자체를 알리지 않았다는 것은 김무성 대표가 나름대로 정치문화개선에 일조를 한 셈인데. 오늘 저거는 어떻게 했는지 아마도 혼사라는 것이 양쪽 집안이 다 있다 보니까 김무성 대표쪽에서 흘릴 일은 만무했을 것 같고요.
[앵커]
어떤 분이 그러더라고요. 어떤 결혼식에 갔는데 2층인데 에스컬레이터가 있잖아요. 에스컬레이터가 멈췄대요. 줄이 길어서 에스컬레이터가 계속 돌아가면 이게 계속 사람들이 어떻게 될 수 없잖아요.
그런 모습 그렇게 보기 좋지 않으니까 아마 이렇게 된 것 같은데. 지금 김무성 대표 사돈. 지금 사돈, 사돈도 충청의 재력가라고 그래요.
그래서 관심을 갖게 되는 건데 저희가 판넬을 일단 준비해 봤습니다. 일단은 김무성 대표 같은 경우에는 우선 장인이시죠, 최치환 전 경향신문 사장이요.
[인터뷰]
최치환 사장님이 원래는 5대 때부터시작해서 국회의원을 5선 정도 하셨어요.
5번이나 국회의원을 지내신 분이고. 사실 이승만 대통령 때 비서관까지 하셔서 경향신문 사장도 하셨지만 그것보다도 사실은 공직에, 국회에 오래 있어서 또 다른 한 축으로 김무성 대표의 후견의 어떤 역할을 하지 않았나. 지금까지 그런 역할을 장인이 해 주셨다고 봐야 되는 것이죠.
[앵커]
그러니까 5선 의원이 장인이시고 아버님도 정치를 하셨죠. 그렇죠?
[인터뷰]
아버님은 전남방직 사장하시다가 그때 경상도에는 소위 삼성, 이병철 회장과 거의 연배가 비슷하신 걸로 알려져 있는데요.
그러면서 국회의원을 한번 하셨어요. 국회의원 하셨는데 우리 집안은 절대로 정치를 하지 마라. 자식들을 다 모아놓고. 내가 잠깐 외도를 해 봤는데 이거 문제가 많다.
[앵커]
김무성 대표도 아들한테는 절대로 정치하지 말라고 했다는 것 아니에요.
[인터뷰]
미워하면서도 닮아가는 거죠. 아버지가 5. 16 직후에 잡혀가서 고문을 당하고 나서 나오셔서 한 말씀인데 그럼에도 미워하면서도 닮아가는 게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죠.
[인터뷰]
본인은 나는 우리 집안과 피가 다른가 보다. 하면서 왜 정치를 하냐, 아버님이 반대하는데 하니까 피가 아버지랑 다른가 보다 이렇게 얘기했다고 하는데요.
실제로도 본인이 호남 광주에 방문했을 때 나도 따지고 보면 호남의 자식입니다. 전남방직의 아들이고. 그래서 그렇습니다라고 이야기를 했던 것처럼 아버지에 대한 자신감, 자부심도 있지만 또 아버님으로부터 그런 영향도 받은 것 같습니다.
[앵커]
실제로 고 김용주 회장께서는 호남에서 기업을 일으키지 않았습니까?
그러니까 당연히 김무성 대표의 입장에서는 그런 얘기를 할 수도 있고. 또 하나는 모르시는 분들도 많으실 거예요. 현정은 회장, 현대아산의. 현정은 회장이 그러니까 외삼촌이죠, 김무성 대표가.
[인터뷰]
나이 차이는 별로 없는데요. 김무성 대표와 현정은 회장과 나이차이는 별로 없는데. 항렬은 하나 위인데. 용문학원 전 이사장하고 김무성 대표하고 20살 이상 차이가 날 겁니다.
그러다 보니까 딸인, 조카인 현정은 회장하고 나이 차이가 얼마 없는데 사실 항렬이 하나 위인 셈이죠. 김무성 대표는 여러 가지로 사실 정재계 해서 혼맥으로 따지면 둘째 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상당히 빵빵하죠.
[인터뷰]
여기에는 안 나왔지만 김용주, 아버님의 큰아버지의 혼맥도 대단하죠. 이후락 전 중앙정보부 부장. 그리고 김승연 한화그룹, 또 최태원 SK그룹. 그쪽하고 다 연결이 되어 있기 때문에 김무성 대표의 집안의 혼맥은 화려하다 못해 휘황찬란하죠.
[앵커]
아니요, 그런데 또 한 가지는 뭐냐하면 김무성 대표가 얼마 전 고 이맹희 CJ그룹 회장의 장례식장에 참석을 했는데 여기에서 나온 게 여기에 어떻게 오셨습니까?
기자들이 물었더니 집안끼리 잘 아는 사이다. 이렇게 얘기를 했어요. 삼성가하고도 잘 아는 모양이에요.
[인터뷰]
그렇죠, 본인이 전남방직의 아들이고, 김용주 명예회장이 전남방직 회장인데. 1905년부터 85년까지 사셨는데 그 시기에 소위 영남의 주축인 이병철 회장이 1910년부터 1987까지 사셨는데 영남, 호남의 주축으로 해서 실제로 아버님대부터 인연이 있었고 그리고 김무성 대표의 친형인 김창성 큰형이라고 합니다.
큰형이 경총고문을 하시면서 그 관계까지 이어지고 이번에도 아마 애도사를 제일 먼저 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김창성, 형님되시는 분이.
[앵커]
그분이 이맹희 회장의 애도사를 제일 먼저 하셨다고요.
그러니까 굉장히 화려한 인맥이다. 이렇게 볼 수 있는데 아까 잠깐 말씀하셨지만 5선 의원, 장인어른께서는. 그리고 김용주 회장께서도 정치를 하다 고초를 겪으셨지만 어쨌든 국회의원출신. 그러니까 김무성 대표도 따지고 보면 대표적인 2세 정치인이기는 2세 정치인이에요.
하지만 차이는 있다고 봐요. 뭐냐하면 2세 정치인하면 자칫하면 아버지의 지역구를 물려받은 2세 정치인이 있는데 김무성 대표는 최소한 자력으로 일어난 케이스.
[인터뷰]
그러니까 보통 우리가 2세 정치인 하면 아버지의 후광, 아버지의 지역구를 그대로 이어받는 경우. 이런 것을 2세 정치인이라고 하는데. 법률적으로 2세라는 것은 맞지만 사실상아버지인 고 김용주 전 회장이 정치를 그만두고 나서 상당기간 후에 정치에 입문을 한 거죠. 그리고 부인이 최양옥 여사하고 결혼했을 당시에는 사업을 하고 있었어요.
사업을 하고 있었고 사업을 하다가 YS, 상도동 밑으로 들어가는데 그때 부부간에 갈등이 생깁니다.
왜냐하면 부인인 최양옥 여사는 아버지인 최치환 전 경향신문 사장이 정치 5선하고 뭐하고 너무 너무 정치라고 하면 집안이 거널나고 지긋지긋하고 진절머리가 나는 거예요.
그런데 자기 남편이 정치 분명히 안 한다고 해서 결혼했는데 이 양반이 정치하겠다고 그러는 거예요.
그래서 갈등이 벌어졌고, 그래서 김무성 대표가 나름대로 해결책을 내놓은 게 당신은 당신 길을 가라. 그래서 그때... 따로따로 살자는 게 아니고. 그래서 그때 유학을 떠나고 갔다 와서 대학교수가 되지 않았습니까? 그렇게 하면서 나름대로 극복을 해 왔더라고요.
[인터뷰]
그런데 신 교수님은 2세 정치인 그러시는데 우리나라는 일본에 비해서는 아무것도 아닌 것 같아요.
[앵커]
일본 같은 경우에는 완전히 일종의 계급이라고 부를 정도로 계속 이어지기 때문에 그것과 우리나라는 비교가 안 됩니다.
[인터뷰]
그건 영국도 마찬가지고, 미국도 보면 케네디가 명문, 부시가 명문. 이런 식으로 있는데요.
저는 그게 족벌체계 이런 식으로 북한같은 그런 것 같으면 비난 받아야 하지만 저는 오히려 정치인의 DNA를 받은 사람이 정치를 하는 게 정치에는 맞다.
[앵커]
역으로 따지면 안 받으면 정치할 생각하지 말라?
[인터뷰]
그건 아닌데. 가능하면 어릴 때부터 밥상머리에서 아버지와 정치 얘기 하면서, 아버지가 정치하는 모습을 보면서, 정치는 사실 제가 생각하기에는 아까 경험이라고 하셨잖아요.
정치라는 건 천재가 필요한 게 아니고 타협, 대화, 소통 이런 게 필요한데 그런 모습을 어릴때부터 보고 자란 사람이 정치하는 거랑. 전혀 그런 걸 겪지 않고 명망가로서 어느 날 하루아침에 정치하는 거랑. 정치인으로서의 그릇이 다를 것이다.
그래서 저는 다른 얘기지만 김무성 대표가 2세 정치인, 그 주위에 정치인이 많다는 게 이게 좋은 쪽으로 작용하면 참 장점이 될 것이다,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앵커]
저는요, 지금 할 일이 없어서 아이들이랑 얘기를 많이 하는데. 여 변호사님, 진짜 정치하는 사람은 시간이 없어서 자식들이랑 밥상머리에서 대화 못해요.
아침에 일어나서 아빠 어디 갔어 하면 아빠 나갔어. 그리고 잘 때도 아빠 안 들어와 있어요. 보통 그렇거든요.
[인터뷰]
그게 선진국하고 한국 정치의 현실이 다른 것 같습니다.
[앵커]
그냥 말씀드린 거였습니다.
[인터뷰]
오죽하면 손학규 대표가 저녁이 있는 삶을 주장했겠어요. 본인도 그렇게 못했으니까.
[인터뷰]
그런데 손학규 대표가 저녁이 있는 삶을 주장하니까 전업주부들이 다 싫어하는 거예요. 남편들은 밖에서 밥을 먹고 들어와야 되는데...
[인터뷰]
우리나라 정치인들 너무 바쁘더라고요. 상갓집, 모든 행사에 다 쫓아가야 그 다음 선거를 대비할 수 있으니까.
[앵커]
정치하시던 분들 저녁 어떨 때 두세 번 먹어요.
[인터뷰]
선진국은 그런 게 없지 않습니까. 그런 게 없지 않습니까? 자기의 주의 주장만 잘 펼치고 하면 되는데 어떤 소통이라고 해야 되나요.
[앵커]
그렇죠, 인맥을 만들어야 되고, 지역주민들과 같이 어울려야 하고. 그렇죠.
[인터뷰]
같이 밥 안 먹고 같이 술 한 잔 안 취하면 식구가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것 계속하다 보면 밥도 두세 번 먹고 아침도 두 번씩 먹고 이럴 수밖에 없는 거죠.
[인터뷰]
오바마 대통령이 대통령되기 전 상원의원 할 때 저녁 7시인가요, 되면 무조건 집에 갔대요. 집에 가서 독서하고 기본적으로 저녁은 집에서 먹었다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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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이달 말에 차녀 결혼식 치른다는 보도가 나왔습니다.
상대는 충북지역에서 중견 건설업체를 운영하는 집안으로, 예비 사위는 경영수업을 받고 있다고 합니다. 김 대표는 그동안 집안 경조사를 철저히 비밀에 부쳐왔습니다.
이번에도 차녀의 결혼 사실을 알리지 않았는데요. 충북 지역에서 소문이 나는 바람에 곤혹스러워하고 있다고 측근들은 전했습니다.
그런데 김 대표의 집안 형제들은화려한 혼맥을 통해 정계, 법조계, 언론계 등으로 인연을 넓혀왔습니다.
먼저 김 대표의 부인 최양옥 교수의 아버지는5선 국회의원인 최치환 전 의원입니다.
최 전 의원은 이승만 정부 공보실장과 경향신문 사장, 그리고 서울시 경찰국장을 지낸 인물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김 대표의 누나의 딸, 조카가바로 현대가의 며느리,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입니다.
혼맥은 현대뿐 아니라,한화와 삼성가까지 뻗어나간다는데, 지금 이야기 나눠보겠습니다.
[앵커]
요새 저는 이건 좋은 풍토라고 생각을 합니다.
주요 정치인들, 김무성 대표도 그렇지만 손학규 전 대표라든지 이런 분들이 경조사를 치를 때 아주 비밀리에 치른다는 것, 저는 이거는 우리나라 정치문화가 바뀌고 있다는 하나의 증거라고 생각을 하는데 지난 번에 김무성 대표가 어머니 돌아가셨을 때 보좌관한테도 알리지 않았다고 하죠?
[인터뷰]
2013년 11월이었습니다. 그런데 누구한테도, 자기 방에 있는 보좌관한테도 알리지 않았고 신문에 부고는 자기 이름으로 절대 안 냈고 장례식장에 보면 망자의 이름 옆에 상주들, 자식들 이름, 사위들 이름 써놓지 않습니까?
우연히 누가 그 병원 장례식장에 왔다가 본인 이름을 발견할까 봐 거기에서도 뺐다고 하는 것이죠. 그래서 참 이건 본받을 만한 사례인데. 제가 국회의원 4년 동안 수없이 많은 동료 선후배들, 국회의원들 결혼식, 장례식 가봤는데요.
조의금, 축의금 안 받는 결혼식 딱 두 번밖에 없었습니다. 나머지 수십 번은 다 받더라고요.
그러니까 이게 다 일종의 준조세를 다 걷는 건데 아예 존재 자체를 알리지 않았다는 것은 김무성 대표가 나름대로 정치문화개선에 일조를 한 셈인데. 오늘 저거는 어떻게 했는지 아마도 혼사라는 것이 양쪽 집안이 다 있다 보니까 김무성 대표쪽에서 흘릴 일은 만무했을 것 같고요.
[앵커]
어떤 분이 그러더라고요. 어떤 결혼식에 갔는데 2층인데 에스컬레이터가 있잖아요. 에스컬레이터가 멈췄대요. 줄이 길어서 에스컬레이터가 계속 돌아가면 이게 계속 사람들이 어떻게 될 수 없잖아요.
그런 모습 그렇게 보기 좋지 않으니까 아마 이렇게 된 것 같은데. 지금 김무성 대표 사돈. 지금 사돈, 사돈도 충청의 재력가라고 그래요.
그래서 관심을 갖게 되는 건데 저희가 판넬을 일단 준비해 봤습니다. 일단은 김무성 대표 같은 경우에는 우선 장인이시죠, 최치환 전 경향신문 사장이요.
[인터뷰]
최치환 사장님이 원래는 5대 때부터시작해서 국회의원을 5선 정도 하셨어요.
5번이나 국회의원을 지내신 분이고. 사실 이승만 대통령 때 비서관까지 하셔서 경향신문 사장도 하셨지만 그것보다도 사실은 공직에, 국회에 오래 있어서 또 다른 한 축으로 김무성 대표의 후견의 어떤 역할을 하지 않았나. 지금까지 그런 역할을 장인이 해 주셨다고 봐야 되는 것이죠.
[앵커]
그러니까 5선 의원이 장인이시고 아버님도 정치를 하셨죠. 그렇죠?
[인터뷰]
아버님은 전남방직 사장하시다가 그때 경상도에는 소위 삼성, 이병철 회장과 거의 연배가 비슷하신 걸로 알려져 있는데요.
그러면서 국회의원을 한번 하셨어요. 국회의원 하셨는데 우리 집안은 절대로 정치를 하지 마라. 자식들을 다 모아놓고. 내가 잠깐 외도를 해 봤는데 이거 문제가 많다.
[앵커]
김무성 대표도 아들한테는 절대로 정치하지 말라고 했다는 것 아니에요.
[인터뷰]
미워하면서도 닮아가는 거죠. 아버지가 5. 16 직후에 잡혀가서 고문을 당하고 나서 나오셔서 한 말씀인데 그럼에도 미워하면서도 닮아가는 게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죠.
[인터뷰]
본인은 나는 우리 집안과 피가 다른가 보다. 하면서 왜 정치를 하냐, 아버님이 반대하는데 하니까 피가 아버지랑 다른가 보다 이렇게 얘기했다고 하는데요.
실제로도 본인이 호남 광주에 방문했을 때 나도 따지고 보면 호남의 자식입니다. 전남방직의 아들이고. 그래서 그렇습니다라고 이야기를 했던 것처럼 아버지에 대한 자신감, 자부심도 있지만 또 아버님으로부터 그런 영향도 받은 것 같습니다.
[앵커]
실제로 고 김용주 회장께서는 호남에서 기업을 일으키지 않았습니까?
그러니까 당연히 김무성 대표의 입장에서는 그런 얘기를 할 수도 있고. 또 하나는 모르시는 분들도 많으실 거예요. 현정은 회장, 현대아산의. 현정은 회장이 그러니까 외삼촌이죠, 김무성 대표가.
[인터뷰]
나이 차이는 별로 없는데요. 김무성 대표와 현정은 회장과 나이차이는 별로 없는데. 항렬은 하나 위인데. 용문학원 전 이사장하고 김무성 대표하고 20살 이상 차이가 날 겁니다.
그러다 보니까 딸인, 조카인 현정은 회장하고 나이 차이가 얼마 없는데 사실 항렬이 하나 위인 셈이죠. 김무성 대표는 여러 가지로 사실 정재계 해서 혼맥으로 따지면 둘째 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상당히 빵빵하죠.
[인터뷰]
여기에는 안 나왔지만 김용주, 아버님의 큰아버지의 혼맥도 대단하죠. 이후락 전 중앙정보부 부장. 그리고 김승연 한화그룹, 또 최태원 SK그룹. 그쪽하고 다 연결이 되어 있기 때문에 김무성 대표의 집안의 혼맥은 화려하다 못해 휘황찬란하죠.
[앵커]
아니요, 그런데 또 한 가지는 뭐냐하면 김무성 대표가 얼마 전 고 이맹희 CJ그룹 회장의 장례식장에 참석을 했는데 여기에서 나온 게 여기에 어떻게 오셨습니까?
기자들이 물었더니 집안끼리 잘 아는 사이다. 이렇게 얘기를 했어요. 삼성가하고도 잘 아는 모양이에요.
[인터뷰]
그렇죠, 본인이 전남방직의 아들이고, 김용주 명예회장이 전남방직 회장인데. 1905년부터 85년까지 사셨는데 그 시기에 소위 영남의 주축인 이병철 회장이 1910년부터 1987까지 사셨는데 영남, 호남의 주축으로 해서 실제로 아버님대부터 인연이 있었고 그리고 김무성 대표의 친형인 김창성 큰형이라고 합니다.
큰형이 경총고문을 하시면서 그 관계까지 이어지고 이번에도 아마 애도사를 제일 먼저 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김창성, 형님되시는 분이.
[앵커]
그분이 이맹희 회장의 애도사를 제일 먼저 하셨다고요.
그러니까 굉장히 화려한 인맥이다. 이렇게 볼 수 있는데 아까 잠깐 말씀하셨지만 5선 의원, 장인어른께서는. 그리고 김용주 회장께서도 정치를 하다 고초를 겪으셨지만 어쨌든 국회의원출신. 그러니까 김무성 대표도 따지고 보면 대표적인 2세 정치인이기는 2세 정치인이에요.
하지만 차이는 있다고 봐요. 뭐냐하면 2세 정치인하면 자칫하면 아버지의 지역구를 물려받은 2세 정치인이 있는데 김무성 대표는 최소한 자력으로 일어난 케이스.
[인터뷰]
그러니까 보통 우리가 2세 정치인 하면 아버지의 후광, 아버지의 지역구를 그대로 이어받는 경우. 이런 것을 2세 정치인이라고 하는데. 법률적으로 2세라는 것은 맞지만 사실상아버지인 고 김용주 전 회장이 정치를 그만두고 나서 상당기간 후에 정치에 입문을 한 거죠. 그리고 부인이 최양옥 여사하고 결혼했을 당시에는 사업을 하고 있었어요.
사업을 하고 있었고 사업을 하다가 YS, 상도동 밑으로 들어가는데 그때 부부간에 갈등이 생깁니다.
왜냐하면 부인인 최양옥 여사는 아버지인 최치환 전 경향신문 사장이 정치 5선하고 뭐하고 너무 너무 정치라고 하면 집안이 거널나고 지긋지긋하고 진절머리가 나는 거예요.
그런데 자기 남편이 정치 분명히 안 한다고 해서 결혼했는데 이 양반이 정치하겠다고 그러는 거예요.
그래서 갈등이 벌어졌고, 그래서 김무성 대표가 나름대로 해결책을 내놓은 게 당신은 당신 길을 가라. 그래서 그때... 따로따로 살자는 게 아니고. 그래서 그때 유학을 떠나고 갔다 와서 대학교수가 되지 않았습니까? 그렇게 하면서 나름대로 극복을 해 왔더라고요.
[인터뷰]
그런데 신 교수님은 2세 정치인 그러시는데 우리나라는 일본에 비해서는 아무것도 아닌 것 같아요.
[앵커]
일본 같은 경우에는 완전히 일종의 계급이라고 부를 정도로 계속 이어지기 때문에 그것과 우리나라는 비교가 안 됩니다.
[인터뷰]
그건 영국도 마찬가지고, 미국도 보면 케네디가 명문, 부시가 명문. 이런 식으로 있는데요.
저는 그게 족벌체계 이런 식으로 북한같은 그런 것 같으면 비난 받아야 하지만 저는 오히려 정치인의 DNA를 받은 사람이 정치를 하는 게 정치에는 맞다.
[앵커]
역으로 따지면 안 받으면 정치할 생각하지 말라?
[인터뷰]
그건 아닌데. 가능하면 어릴 때부터 밥상머리에서 아버지와 정치 얘기 하면서, 아버지가 정치하는 모습을 보면서, 정치는 사실 제가 생각하기에는 아까 경험이라고 하셨잖아요.
정치라는 건 천재가 필요한 게 아니고 타협, 대화, 소통 이런 게 필요한데 그런 모습을 어릴때부터 보고 자란 사람이 정치하는 거랑. 전혀 그런 걸 겪지 않고 명망가로서 어느 날 하루아침에 정치하는 거랑. 정치인으로서의 그릇이 다를 것이다.
그래서 저는 다른 얘기지만 김무성 대표가 2세 정치인, 그 주위에 정치인이 많다는 게 이게 좋은 쪽으로 작용하면 참 장점이 될 것이다,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앵커]
저는요, 지금 할 일이 없어서 아이들이랑 얘기를 많이 하는데. 여 변호사님, 진짜 정치하는 사람은 시간이 없어서 자식들이랑 밥상머리에서 대화 못해요.
아침에 일어나서 아빠 어디 갔어 하면 아빠 나갔어. 그리고 잘 때도 아빠 안 들어와 있어요. 보통 그렇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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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선진국하고 한국 정치의 현실이 다른 것 같습니다.
[앵커]
그냥 말씀드린 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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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죽하면 손학규 대표가 저녁이 있는 삶을 주장했겠어요. 본인도 그렇게 못했으니까.
[인터뷰]
그런데 손학규 대표가 저녁이 있는 삶을 주장하니까 전업주부들이 다 싫어하는 거예요. 남편들은 밖에서 밥을 먹고 들어와야 되는데...
[인터뷰]
우리나라 정치인들 너무 바쁘더라고요. 상갓집, 모든 행사에 다 쫓아가야 그 다음 선거를 대비할 수 있으니까.
[앵커]
정치하시던 분들 저녁 어떨 때 두세 번 먹어요.
[인터뷰]
선진국은 그런 게 없지 않습니까. 그런 게 없지 않습니까? 자기의 주의 주장만 잘 펼치고 하면 되는데 어떤 소통이라고 해야 되나요.
[앵커]
그렇죠, 인맥을 만들어야 되고, 지역주민들과 같이 어울려야 하고. 그렇죠.
[인터뷰]
같이 밥 안 먹고 같이 술 한 잔 안 취하면 식구가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것 계속하다 보면 밥도 두세 번 먹고 아침도 두 번씩 먹고 이럴 수밖에 없는 거죠.
[인터뷰]
오바마 대통령이 대통령되기 전 상원의원 할 때 저녁 7시인가요, 되면 무조건 집에 갔대요. 집에 가서 독서하고 기본적으로 저녁은 집에서 먹었다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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