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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승민 전 새누리당 원내대표의 부친, 유수호 전 국회의원이 별세했습니다.
빈소에는 서청원 새누리당 최고위원과 이종걸 새정치민주연합 원내대표 등 여야를 가리지 않고 정치인들의 조문 행렬이 이어졌습니다.
유수호 전 의원은 법조인 출신 정치인입니다.
1956년 고시 사법과에 합격해, 대구지법과 대구고법 판사, 부산지법 부장판사 등을 거쳤습니다.
1973년 '사법 파동'으로 법복을 벗은 이후, 공천을 받아 민정당과 민자당 소속으로 13, 14대 국회의원을 지냈습니다.
특히, YS와는 정치적 악연이 깊습니다.
1992년 민자당 대선 후보 경선 파동에서 김영삼이 아니라, 이종찬 후보 진영에 섰다가 민자당을 탈당해 이종찬 후보와 함께 정주영 후보의 국민당에 합류합니다.
'우리가 남이가'로 잘 알려진 초원 복집 사건에서는 정주영 후보의 국민당 쪽 고발인으로 활동했습니다.
유승민 전 원내대표는 유수호 전 의원의 막내아들입니다.
유 전 원내대표는 아버지를 '나의 하늘'이라 칭할 정도로 많이 존경했습니다.
쏙 닮은 외모처럼, 두 사람의 행보도 '부전자전'인데요.
대구 명문 경북고 선후배로, 대구를 기반으로 같은 정치인의 길을 걷게 됐습니다.
'국회법 개정안'을 놓고 청와대와 갈등을 빚다 원내대표 자리에서 물러난 유승민 의원.
'미스터 쓴소리'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소신과 주장이 강한 정치인입니다.
이러한 기질 역시, 아버지에게 물려받았다는 얘기가 나옵니다.
유수호 전 의원은 판사로 활동하면서, 외압을 거부하는 소신 판결로 유명했는데요.
1971년 대선에서 박정희 후보 득표율을 조작해 발표한 윤동수 전 울산시장에 대해 실형을 선고하고, 유신 반대 시위를 주도한 학생을 석방했습니다.
1973년 판사 재임용에서 탈락했을 때는 정권에 '밉보였다'는 뒷말이 무성했지만 1978년에는 집권당인 공화당 공천을 신청했다 탈락하기도 했습니다.
원내대표 사퇴로 한바탕 정치적 위기를 겪은 유승민 의원은 부친상으로 또 한 번 아픔을 겪게 됐습니다.
하지만 슬픔은 나누면 반이 되는 법!
친박계 인사를 비롯해 많은 정치인들이 한때의 갈등을 뒤로한 채 빈소를 찾아 고인을 조문하고 그를 위로했습니다.
[저작권자(c) YTN 무단전재, 재배포 및 AI 데이터 활용 금지]
빈소에는 서청원 새누리당 최고위원과 이종걸 새정치민주연합 원내대표 등 여야를 가리지 않고 정치인들의 조문 행렬이 이어졌습니다.
유수호 전 의원은 법조인 출신 정치인입니다.
1956년 고시 사법과에 합격해, 대구지법과 대구고법 판사, 부산지법 부장판사 등을 거쳤습니다.
1973년 '사법 파동'으로 법복을 벗은 이후, 공천을 받아 민정당과 민자당 소속으로 13, 14대 국회의원을 지냈습니다.
특히, YS와는 정치적 악연이 깊습니다.
1992년 민자당 대선 후보 경선 파동에서 김영삼이 아니라, 이종찬 후보 진영에 섰다가 민자당을 탈당해 이종찬 후보와 함께 정주영 후보의 국민당에 합류합니다.
'우리가 남이가'로 잘 알려진 초원 복집 사건에서는 정주영 후보의 국민당 쪽 고발인으로 활동했습니다.
유승민 전 원내대표는 유수호 전 의원의 막내아들입니다.
유 전 원내대표는 아버지를 '나의 하늘'이라 칭할 정도로 많이 존경했습니다.
쏙 닮은 외모처럼, 두 사람의 행보도 '부전자전'인데요.
대구 명문 경북고 선후배로, 대구를 기반으로 같은 정치인의 길을 걷게 됐습니다.
'국회법 개정안'을 놓고 청와대와 갈등을 빚다 원내대표 자리에서 물러난 유승민 의원.
'미스터 쓴소리'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소신과 주장이 강한 정치인입니다.
이러한 기질 역시, 아버지에게 물려받았다는 얘기가 나옵니다.
유수호 전 의원은 판사로 활동하면서, 외압을 거부하는 소신 판결로 유명했는데요.
1971년 대선에서 박정희 후보 득표율을 조작해 발표한 윤동수 전 울산시장에 대해 실형을 선고하고, 유신 반대 시위를 주도한 학생을 석방했습니다.
1973년 판사 재임용에서 탈락했을 때는 정권에 '밉보였다'는 뒷말이 무성했지만 1978년에는 집권당인 공화당 공천을 신청했다 탈락하기도 했습니다.
원내대표 사퇴로 한바탕 정치적 위기를 겪은 유승민 의원은 부친상으로 또 한 번 아픔을 겪게 됐습니다.
하지만 슬픔은 나누면 반이 되는 법!
친박계 인사를 비롯해 많은 정치인들이 한때의 갈등을 뒤로한 채 빈소를 찾아 고인을 조문하고 그를 위로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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