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국수 사랑 각별...내가 기억하는 YS는?

칼국수 사랑 각별...내가 기억하는 YS는?

2015.11.23. 오후 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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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동열, 'YS 칼국숫집' 소호정 대표

[앵커]
김영삼 전 대통령 상징하는 음식 칼국수입니다. 서민정치를 뜻하는 것이기도 하죠. 그런데 막상 대통령이 돼서 청와대 들어갔더니 청와대 조리사들이 칼국수 맛을 제대로 못 낸다라고 해서 원래 잘 다니던 단골집. 압구정동에 있는 안동국시라는 집인데 그곳의 김남숙 여사를 청와대로 초청을 해서 석달 동안 그 칼국수 맛 내는 법을 가르치게 했다라는 일화가 유명합니다.

그 김 여사는 2008년, 7년 전에 별세를 하셨고요. 그 가업을 이은 아들, 그리고 바로 청와대 칼국수 교습, 그때도 현장을 지켰던 임동열 소호정 대표를 오늘 저희가 초대해서 김영삼 전 대통령을 회고하려고 합니다. 만나보겠습니다. 안녕하십니까? 어서오십시오. 오늘 아마 칼국수 좀 찾으시는 분들이 많지 않을까 싶은데요.

[인터뷰]
저희 집에 대통령께서 오셔서 국수를 드실 때 항상 손님들하고 꼭 같이 손 잡고 악수도 하시고 하셔서 그 추억이 많으신 분들이 아마 대통령님 비보를 듣고 그 추억에 많이들다녀가신 것으로 기억이 됩니다.

[앵커]
아마 일반 국민들도 오늘 칼국수 생각 많이 하셨을 것 같습니다. 처음에 어제 소식 들으시고요. 어떤 생각을 하셨습니까?

[인터뷰]
제일 먼저 한동안 안 오셔 가지고 건강이 그동안 안 좋아지셨구나. 그러면서 문뜩 떠오르는 것이 올해 연초에 연하장을 받고 아, 이 연하장이 마지막 연하장인가, 이런 느낌을 제가 받았습니다.

[앵커]
그러셨군요, 그런 느낌이 있으셨군요. 올해 마지막 받은 연하장이 어떤 것입니까?

[인터뷰]
여기 가지고 왔습니다.

[앵커]
한번 보여주시죠. 매년 연하장을 받으셨는데 올해가 마지막이 될 수 있겠다 싶었던...

[인터뷰]
항상 처음에는 글, 사자성어로 그 해 좋은 글귀를 보내주시다가 근래에는 이렇게 사진을 보내주셨어요. 그래서 항상 건강한 모습으로.

[앵커]
시청자 여러분들께 보여주십시오.

[인터뷰]
건강한 모습을 연초에 보여드리고 했는데.

[앵커]
이게 마지막에 받으신 연하장이 되었습니다. 두 분이 같이 찍으신 사진을 이렇게 표지에 담고 뒤에는. 계속 보여드릴까요. 여기는 인쇄된 문구인데요. 제가 읽어봐야 되겠습니다.

기쁜 성탄과 새해를 맞이하여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이 언제나 가득하시기를 기도합니다하고 김영삼, 손명순 이렇게 직함은 안 쓰시고 이름만 써서 마지막 연하장이 됐습니다. 최근 오신 것은 언제였습니까?

[인터뷰]
최근 마지막 오신 건 제가 기억하기로는 2012년. 어제 한번 확인을 해 봤습니다. 9월 27일날 마지막 다녀가셨더라고요.

[앵커]
2012년 9월 27일이었군요. 저희가 지금 속보로 전해드리고 있는데 박근혜 대통령은 오늘 1시 반쯤 빈소를 다녀갔고 그리고 이희호 여사, 필생의 라이벌이자 또 협력자였던 김대중 전 대통령의 부인 이희호 여사가 조금 전에 조문을 하기 위해서 현장 빈소에 도착했다는 소식입니다. 처음에 김영삼 대통령께서 처음에 오시게 된 것은 어떻게 오신 겁니까?

[인터뷰]
저도 그건 제가 그 당시는 제가 어머님이 창업을 하셔가지고 어머님한테 직접 들었던 이야기인데 저도 궁금해서 대통령님이 어떻게 오셨느냐라고 물으니까 글쎄, 나도 보니까 어느 날 김종필, 그 당시에 의원님과 국수를 좋아하신다고 해서 그렇게 해서 아마 안내를, 김종필 씨가 대통령님을 모시고 첫번째 다녀가셨다, 이렇게 저는 기억하고 있습니다.

[앵커]
그게 90년대 초반이라면서요.

[인터뷰]
90년대 초반이죠. 80년대 후 90년대 초반으로 기억합니다.

[앵커]
3당 합당 하기 전 80년대 후반이군요?

[인터뷰]
그렇죠. 대통령이 되기 전입니다.

[앵커]
대통령 되시기 전이고 서로 다른 당을 이끌고 있었을 때, 두 분 다 야당 지도자로 그때였던 것 같습니다. 김종필 전 총리는 어떻게 아시고 처음에 오셨을까요?

[인터뷰]
글쎄요. 저희 집 모친이 하여튼 그 당시에 음식에, 저희가 음식장사 해 본 경험도 없는데 항상 집에서 하던 음식을 그대로 일반 사람들한테 끄집어냈는데 그것이 많은 사람들한테 대통령님만 오신 게 아니고 김종필 씨 등 그밖에 연예인들 많은 분들이 다녀가시더라고요. 그러더니 어느 날 소문이 났는지 오신 걸로 기억이 납니다.

[앵커]
선친께서 원래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셨고 어머님께서도 원래 그냥 가정주부셨는데 몰래 그걸 내셨다면서요, 칼국수집을.

[인터뷰]
그렇습니다. 오늘 참 당혹스러운 질문을 하시는데. 그 시절에 저희 아버님께서는 대학교수로 서울대학을 마치시고 집에 그냥 공부하시고 하실 때인데 모친께서 저희 6남매 다 결혼시킨 후에 뭔가 맛있는 음식을 가지고 내가 한번 이렇게 나가면 어떻겠느냐 해서 그걸 제가 말렸습니다.

집안이 다 알면 어떻게 하려고 장사를 시작하느냐. 그 시절에는... 그랬더니 나랑 둘이서 모르게, 몰래 하자 이렇게 해서 시작이 된 가게가 됐습니다.

[앵커]
그래서 93년도에 김영삼 대통령께서 청와대 들어가신 다음에 그때 가서 칼국수 만드는 법을 가르쳐주실 때 그때 같이 계셨다면서요?

[인터뷰]
제가 그건 92년도에 김영삼 대통령께서 대통령으로 당선이 되시고 93년에 2월 25일날 아마 청와대 입성을 하시고 26일 전화가 왔습니다. 의전실장한테 전화가 와서 내일 칼국수를 국무회의 때, 장관 회의때 내려고 하는데 와서 해 주실 수 있느냐. 그래서 저희 모친이 그 당시에 흔쾌히 이런 영광을 제가 해 드려야지, 그걸 어떻게 , 제가 들어가겠습니다. 그 자리에서 흔쾌히 하고 그 다음 날 준비를 해서 아침에 일찍 들어갈 때 제가 모시고 들어갔습니다.

[앵커]
그러면 재료 같은 것도 다 싸가지고 들어가셨나요?

[인터뷰]
그렇죠. 그날 밤은 퇴근을 안 하고 밤새도록 떡을 밀고 치대고 해서 딱 준비된 마지막 칼만 썰어 들어갈 정도로 준비를 완벽하게 했었죠, 청와대에 들어가려고.

[앵커]
청와대에서 무슨 특별한 주문 사항은 없었습니까, 어떻게 해달라고?

[인터뷰]
아마 그때는 처음 주방팀들도 좀 당혹스러웠을 것 같아요. 왜냐하면 문민정부 처음 시작에, 첫 각료회의인데 느닷없이 칼국수를 하라니까. 아는 사람이 없으니까 우리가 외부에서 들어가게 된 거죠. 그래서 특별한 요구, 아는 게 없으니까. 저희 모친이 들어가서 준비를 하는 동안에 이런저런 대화를 하면서 언제부터 드셨느냐, 이 음식을. 이런 대화도 나누고 한 걸로 기억합니다.

[앵커]
저게 정말, 화면을 보니까 국무회의 회의장에서 그 자리에서 칼국수를 드시는 군요.

[인터뷰]
네.

[앵커]
식당을 따로 가시는 게 아니라 회의하고 그 자리에서 칼국수를 드시는 그런 모습이었습니다. 그러면 어떻습니까? 밖에서 어쨌든 재료도 다 가지고 들어갔고 거기서 만든 건데. 누가 먼저 혹시 무슨 문제가 있지 않을까, 옛날에 기미상궁처럼 맛을 보는 게 있었습니까?

[인터뷰]
물론 그 전에는 저희가 검식관이 해서 음식에 대한 검식을. 밤새도록 저희가 치대서 막바로 들어갔기 때문에 사실 그것이 나중에는 얘깃거리가 됐습니다. 어떻게 외부에서 음식을 갖고 들어와서 하는 게 얼마나 위험한 일이냐. 그래서 제가 알고 있는 건 그 이후에 전무후무한 외부에서 음식을 만든 그 일반 음식 아니었나 이런 기억을 합니다.

[앵커]
지금 화면 나온 것을 보니까 양이 그렇게 아주 작지는 않아 보이는데 어쨌든 저거 먹고서 배가 고파서 그다음에 또 나가서 뭘 드시는 분들도 있다고 했는데 양이 적었나요?

[인터뷰]
보통 일반적인 양이라서 그 당시에 한 에피소드가 되겠습니다마는 그 국수를 풀 때, 저희 어머님이 대통령 국수를 풀 때 정량을 푸지만 이 국수 푸는 게 쉬운 일이 아닙니다.

뭐 미끄럽고 하니까 주방팀들 옆에서 도운다고 도왔는데 아마 양이 적게 들어간, 아마 모자랐던 양이 아닌가.

[앵커]
배식에 실패했군요, 일부에서.

[인터뷰]
숙달이 안 된 음식을 푸다 보니까 아마 그런 결과가 있지 않았나 생각을 합니다.

[앵커]
그 당시에는 식당 이름이 안동국시였고 나중에 소호정으로 바꾸셨는데

[인터뷰]
맞습니다.

[앵커]
거기에서 수육 같은 것도 유명하다면서요?

[인터뷰]
네.

[앵커]
칼국수하고 곁들여서 내지는 않고 그냥 칼국수만 내신 겁니까?

[인터뷰]
아닙니다. 청와대에서 낼 때는 준비를 했습니다. 수육하고 했는데 그날 메뉴나 칼국수 하나로 준비를 하셨던 모양이에요.

[앵커]
청와대에서 그렇게 결정했다는 말씀이시죠.

[인터뷰]
네. 저희는 나름대로 항상 수육도 있고 하니까 저희 음식을 준비했고. 들어가서는 칼국수 하나로 했는데 아마 제 기억으로는 그때 문민정부의 시작이 서민적이고 아주 부담없는 그런 새출발의 의미가 서민의 시작이 아니었나 이런 기억을 제가 또 한번 돌이켜봅니다.

[앵커]
김 전 대통령이 거제 출신이시니까 국물은 멸치로 내십니까, 어떻게 하십니까?

[인터뷰]
멸치로 내는 안동국시가 있고 저희는 양지머리라고 살코기물로만 우려냅니다. 그러니까 전혀 기름기 없이 살코기로 해서 그 물을 하고서 국수를 말아서 드시는 그런 국수가 되겠습니다.

[앵커]
김 전 대통령께서 왜 특히 이 안동국시의 칼국수를 좋아하셨을까요, 어떤 것 때문에?

[인터뷰]
글쎄요. 제가 지금 모친이 살아계셨으면 더 정확한 표현을 했을 텐데 제가 알기로는 저희 모친께서 음식 솜씨가 좀 있으셨어요.

그 음식에 들어간 정성이 살아계셨으면 아마 대통령님하고 거의 연배가 비슷하시고 하니까 아마 그런 정성이 들어간 음식에 또 거기에 건강하고 맛까지 아마 겸비해서 음식을 좋아하시지 않았나 이런 기억을 합니다.

[앵커]
조금 전 화면을 보니까 그 옆에 밑반찬으로 깻잎무침이 나오는데 깻잎무침에 대해서도 하실 이야기가 있다면서요.

[인터뷰]
깻잎무침은 사실 칼국수에. 저희 어머니도 모친도 맞는지 몰랐어요. 그런데 문을 열고 나서 어느 날 식구들이 깻잎을 먹는데 그 깻잎도 먹어보자는 손님이 있어서 시작을 했는데 그 깻잎무침이 하기가 굉장히 힘든 음식입니다, 반찬이. 한 장, 한 장, 한 장. 대통령님께서 그걸 한번 드시더니 아주 만족해하셔서 그래서 상에 완전히. 요새 칼국수 집에는 깻잎이 당연히 들어가는 걸로 바뀌었더라고요.

[앵커]
손명순 여사께서도 나중에 퇴임 후에도 오면 저걸 싸가지고 가고 그러셨다면서요.

[인터뷰]
네. 저희 모친께서는 워낙 가깝게 하시다 보니 집에 가서 한끼라도 더 맛있게 밥에다 얹어서 싸서 드시라고 항상 챙겨드린 걸로 기억합니다.

[앵커]
손명순 여사는 어떤 분이셨습니까, 어떤 기억으로 남아 있습니까?

[인터뷰]
제 기억은 아마 대통령님 내외분 오실 때 항상 조용하셨고 그리고 일하시는 분들을 좀 관심있게 식사가 다 끝나고 하실 때는 과일이라도 좀, 일하시는 분들 애쓴 것에 대해서 과일값이라도 드시라 이렇게 놓고 가신 자상하고 따뜻한 영부인이 아니셨나라고 기억을 합니다.

[앵커]
사람을 두루두루 챙기시는 분이셨군요.

[인터뷰]
네. 그러니까 앞에 보다는 뒤에서 애쓰는 아주머니들한테 아마 신경을 좀 많이 쓰고 일하시는 분들. 이런 기억이 납니다.

[앵커]
김영삼 전 대통령은 어떻습니까, 김 전 대통령도 직접 만나보시니까 어떤 사람이라고 생각을 하셨습니까?

[인터뷰]
저도 항상 민주화 투쟁에 앞장을 서셨던 분이니까 단호하고 결단력 있으셨던 분이지만 분이셨지만 저희 집에, 가게에 오셔서 식사를 하러 오실 때는 주방에서 일하시는 분들 나오면 한 사람, 한 사람 손 다 잡아주시고 정말 인정이 많고 그리고 먼 발치에서 인사를 하시는 분들도 그냥 소홀하지 않게 손을 흔들어서 눈을 마주치고 그러니까 정이 많고 따뜻한 그런 대통령님이라고 저는 기억을 하고 있습니다.

[앵커]
정치인이라서 그런 게 몸에 배서 그런 거 아닐까요?

[인터뷰]
그런 느낌은 제가 가게 오셨을 때는... 왜냐하면 저희 집에는 항상 가족, 김현철 씨 내외하고 또 손자들이 오니까 여느 가장과 할아버지같이 아주 따뜻한 이런 분위기, 그냥 소탈한 그런 느낌으로 저는 항상 가깝게 뵀습니다.

[앵커]
약주, 반주는 안 하십니까?

[인터뷰]
반주는 거의 안 하시는 것으로 제가 기억합니다.

[앵커]
그렇군요.

[인터뷰]
가족들이니까. 항상.

[앵커]
나중에 퇴임하고 오신 후에는 좀 입맛이 바뀌었거나 뭐가 달라졌거나 그런 거 없었습니까?

[인터뷰]
아니, 그러지 않았습니다. 그러니까 편하게 오셔서 그런지 가족들과 더 즐거운 시간을 나누는 듯한 그런 분위기였던 걸로 기억을 하고 있습니다.

[앵커]
주로 칼국수 드시고. 그때는 수육 같은 것을 드셔도 되지 않나요, 퇴임후니까.

[인터뷰]
수육도 드시고 식구들 오면 저희 집 묵도 좋아하셔서 묵도 드시고. 그리고 마지막 과일까지 다 잘 드시고 마지막으로 저희 모친하고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시면서 저희 모친이 이런 좋은 음식을 제가 애써서 대통령님한테 음식에 대한 훈장 하나 주셔야 됩니다라는 이런 말씀을 한 그런 추억도 있습니다.

[앵커]
모친께서 먼저 2008년에 별세를 하셨는데 대통령님께서 애석해 하셨겠는데요?

[인터뷰]
저는 참 알릴 수도 없고. 그런데 어느 날, 돌아가신 날 보니까 역시 대통령님한테 청와대 칼국수를 해서 그런지 청와대 칼국수 할머니 돌아가셨다고. 그래서 가까운 주변분들이 대통령님한테 이야기를 해서 아셨는지. 돌아가신 다음에 오셨을 때 얘기 알고 있다고, 어머니 돌아가신 것 참. 잘 모셨냐고. 잘했습니다라고 인사드린 적도 없고 또 격려도 앞으로 잘 어머니 때와 같이 잘 끌고 가서 좋은 음식해서 해라. 그런 격려도 받고 했습니다.

[앵커]
대표님, 사진을 한 장 가지고 오셨던데 이거 좀 보여드리겠습니다. 액자로 되어 있어서요. 이게 어떤 사진인가요?

[인터뷰]
이게 처음에 아까 아나운서 말씀 대로 압구정동에서 양재동으로 소호정이라는 이름으로 옮겨왔을 때 처음에 왔을 때 방명록을 어머님께서 하나 부탁을 드린겁니다.

[앵커]
언제쯤이죠, 이게?

[인터뷰]
이게, 여기로 이사온 것이 95년에 이사를 왔어요.

[앵커]
95년이면 다시 재임시절이네요?

[인터뷰]
네, 그렇죠.

[앵커]
그렇군요.

[인터뷰]
그래서 95년 10월달에 오셨을 때 이 방명록을 쓰시면서 가족들, 여기 영부인님 계시고 그 뒤에 현철 씨 계시고요. 저도 그때 젊었습니다.

[앵커]
아, 이분이 대표님입니까?

[인터뷰]
그때는 많이 젊었습니다.

[앵커]
어머님이시고요.

[인터뷰]
어머님이시고. 글 쓰는 걸 보고 계시고.

[앵커]
옆에는 경호인입니까?

[인터뷰]
경호부장님 하셨던 분이고.

[앵커]
95년 대통령 재임 시절에 직접 찾아와서. 얼마나 아끼셨으면...

[인터뷰]
정말 항상 저희 어머님도 참 감사한 마음에. 그래서 모든 열과 성을 다해서 음식에 대해서 자긍심도 가지시고 그렇게 음식을 해낸 걸로.

[앵커]
워낙 정성스럽게 하셨겠지만 이렇게 또 대통령님이 아껴주시니까 더 정성스럽게 하셨겠죠.

[인터뷰]
그렇죠.

[앵커]
다른 손님들한테도. 그래서 방명록.

[인터뷰]
이때 쓰실 때, 이 방명록이 쓰시던 장면이 방명록 이 글씨입니다. 여기 있는. 여기 보면.

[앵커]
저희가 보여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인터뷰]
그때 글 쓰실 때. 대도무문, 95년.

[앵커]
날짜가 써있군요. 1995년 10월 3일.

[인터뷰]
개천절날이었어요.

[앵커]
대통령 김영삼.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이거 써주시면서 뭐라고 설명을 하시거나 그런 거 있으셨습니까?

[인터뷰]
그런 말씀은 없으셨는데. 항상 큰 길에 당당하게 가시는 분이니까 말씀 안 하더라도 저희가 그 뜻을 충분히 알아들었었습니다.

[앵커]
김종필 총리도 그 뒤에도 또 오셨나요?

[인터뷰]
아니에요. 처음에 모시고 와서는.

[앵커]
그때만 오시고.

[인터뷰]
그리고 나서 저는 기억이 없어서 모르는데 모친은 아마 기억을 하실 겁니다. 저는 그 당시에 얘기만 들었고 어머님한테 이야기만 듣고 그 이후에는 또 제 생활이 있어서.

[앵커]
저희가 역사의 헌장들, 지켰던 분들의 증언을 듣고 있고 그 중의 한 분이 물론 같이 정치를 하고 같이 내각을 이끌고 그랬었던 분들도 있지만 인간으로서의 그런 면모, 어떤 사람이었는지. 그것을 알려드릴 수 있는 그런 분 중의 한 분으로 저희가 지금 임동열 소호정 대표, 이른바 YS칼국수집이라고 알려져 있는 그 식당의 대표를 저희가 모셔서 이야기를 듣고 있습니다.

다음에 이름을 소호정으로 이름을 바꾸셨는데 그 소자가 알고 보니까 웃을 소자에다가 호걸호자, 정자정자. 호걸 중에는 김영삼 대통령, 거산도 포함돼 있습니까?

[인터뷰]
이름을 지으실 때 저희 모친이 지으실 때 고민을 많이 하셨는데 소호정 해서 투가 중국 뭐 하는 느낌입니다 하는 그랬더니 뜻이 호걸들의 웃음이 있는 집으로 가야 되지 않냐. 그래서 이름을 소호정이라고 지었는데 물론 대통령 호걸의 표시도 나지만 그런 뜻을 어머님께서 상당히 의미를 두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앵커]
오늘 바쁘신 시간인데 이렇게 나와 주셔서, 회고해 주셔서 감사하고요. 대통령께서도 당부를 하셨던 것처럼 앞으로도 좋은 음식, 건강한 음식으로 또 국민들을 건강하게 해 주시는 것이 남겨진 사명일 것 같습니다.

[인터뷰]
네, 저도 그렇게 마음을 다지고 좋은 음식 끝까지 잘 음식을 끌고 가겠습니다.

[앵커]
오늘 말씀 잘들었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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