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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춘·우병우 세력 청산, 뿌리는 친일파부터 온 것”
- 분노한 시민들 광장으로 나오는 것, 역사 발전 하는 중
- 역사적으로 좋은 기회 많이 놓쳐, 반성하고 성과 거둬야
- 해방 후 친일 청산 주장하던 분들이 친일파에 거꾸로 청산 당해
- 지난 30년 역사, 축구로 치면 ‘발만 대면되는데 아까운 찬스’ 많이 놓쳐
- 좌절 속에 역사 밀고 나와 여기까지 온 것
- 김기춘·우병우 세력, 뿌리가 친일파에서 왔다는 것 명심하고 청산해야
- 대한민국 가장 큰 문제, 국회와 국민의 뜻이 다른 것
- 대의 민주주의가 잘못돼 대중이 거리로 나오는 것
- 세월호 비극 때는 ‘기레기’, 지금은 ‘언론 부역자’
- 언론이 권력 감시하지 않고, 스스로 권력의 일부가 되려고 해
- 국민이 언론을 제대로 감시해야
- 촛불이 좌파 종북 세력? 이런 공안 세력의 세계관에 반발해 촛불을 든 것
- 촛불, 해방 직후 공안 세력 지배하던 긴 챕터 하나 끝나 가는 증거
[YTN 라디오 ‘최영일의 뉴스 정면승부’]
■ 방송 : FM 94.5 (18:10~20:00)
■ 방송일 : 2016년 12월 1일 (목요일)
■ 대담 :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
◇ 앵커 최영일 시사평론가(이하 최영일)> 대통령의 세 번째 담화 이후 정국은 더 혼란스러운 상황입니다. 그간 역사를 돌이켜보면 어수선하고 혼란한 시기가 있었는데요, 일각에서는 역사를 제대로 청산하지 못한 결과들이 계속 이어지고 있는 것 아니냐 이런 지적도 나오고 있습니다. 자세한 이야기 성공회대 한홍구 교수 연결해 얘기 나눠보겠습니다. 안녕하세요?
◆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이하 한홍구)> 네, 안녕하세요.
◇ 최영일> 지금 정국은 지도자에 대한, 또 사회 지도층에 대한 국민들의 실망감, 절망감이 큰 상황인데요. 과거 역사를 짚어 보면 국민들이 분개하고, 직접 들고 일어날 만큼의 사건이 있지 않았습니까?
◆ 한홍구> 수없이 많았죠, 4월 혁명도 그렇고, 6월 항쟁도 그렇고, 미선이 효선이 사건 때도 그렇고, 탄핵 때도 그렇고, 광우병 때도 그렇고, 분노해서 길거리로 쏟아져 나오고 광장을 메웠습니다. 이것이 꼭 어수선하고 혼란스러운 것만이 아니라, 역사가 이렇게 해서 발전해 나간다고 생각합니다.
◇ 최영일> 그렇게 역사는 발전해왔다. 말씀하신 앞에는 일제강점기 초기에 3.1 운동도 있었죠. 그러면 지금 역사가 발전하는 과정이라고 말씀하셨는데요. 그렇게 보시는 이유나 배경은 어떤 건가요?
◆ 한홍구> 역사에서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좋은 찬스가 많이 오는데, 안타깝게도 좋은 찬스를 살린 경우도 있지만 살리지 못한 경우도 있어요. 4월 혁명이나 6월 항쟁은 일정하게 성과를 거뒀지만, 되치기를 당했고요. 해방 후에도 보면 친일 청산 같은 것들을 당연히 될 거라고 생각했는데 못했지 않았습니까. 좋은 기회를 놓쳤기 때문인데요. 이번에는 역사에서 배워야 할 것이, 좋은 찬스를 왜 놓쳤는가를 반성해서 정말 오랜만에 찾아온 기회를 놓치지 말고, 좋은 성과를 거둬야 합니다.
◇ 최영일> 영화 암살 끝에 잠깐 나오지만, 반민특위의 비애 같은 것도 느껴지는데요. 이번에 최순실 국정 농단 사태처럼 실체를 드러내지 않고 뒤에서 권력을 막강하게 행사했던 존재, 혹시 있었나요?
◆ 한홍구> 글쎄요. 이런 사례는 없었다고 보고요. 그 이전에도 비선실세 이야기가 많이 나왔고, 최순실 얘기가 나왔을 때 그 아버지 최태민 얘기가 나왔지만, 최태민이 그 당시에 대통령의 큰 딸,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하던 박근혜를 업고 여러 가지 못된 짓들을 많이 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권력형 개인 비리의 문제였지 비선실세 국정농단은 아니었습니다. 최태민은 대통령을 좌지우지할 수 없었고요. 그 다음번 사례를 생각해보면 김영삼 대통령 때 소통령이라고 불리는 김현철 씨 사례가 있었죠. 김현철 씨가 소통령이다, 부통령이다, 그런 얘기가 있었지만 어디까지나 아버지의 권한을 대리해서 아버지의 귀 역할을 한 거거든요. 이렇게 대통령을 조정하는 그런 위치는 아니었다고 봅니다. 전대미문인 것 같아요.
◇ 최영일> 전대미문이다. 현재 우리가 겪고 있는 상황을 비롯해 왜 역사적으로 이런 일들이 끊이지 않는 걸까요?
◆ 한홍구> 좋은 기회를 너무 많이 놓쳤습니다. 근원적으로 해방 직후 친일 청산을 해야 했는데, 단순히 친일 청산을 실패한 게 아니라 친일 청산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던 양심을 가진 분들이 친일파에게 거꾸로 청산 당했단 말이죠. 그러면서 엄청난 민간인 학살을 당하고 그렇게 되었는데도 어린 학생들이 들고일어나 4월 혁명을 만들고, 거기서 짓밟혔지만, 박정희가 탱크 몰고 나와 짓밟았지만, 다시 들고 일어나니까 10년 뒤에 다시 탱크 몰고 나온 게 유신입니다. 그런데 거기에 7년 만에 저항을 해서 유신 정권을 끝장냈고, 그렇지만 힘이 약하다 보니까 전두환 등장을 허용했고, 광주에서 처절하게 깨졌지만, 그래도 패배를 딛고 일어나 7년 만에 6월 항쟁을 만들었습니다. 이런 식으로 끊임없이, 우리도 좌절했지만 좌절 속에서 역사를 밀고 나와 여기까지 온 거거든요. 그런데 지난 30년을 돌이켜보면, 축구로 치면 해설자가 발만 대면 되는데, 아깝습니다. 그런 좋은 찬스를 세 번이나 놓친 겁니다. 6월 항쟁 때 놓쳤고, 98년 외환위기가 왔을 때 재벌 지배 체제를 개혁했어야 하는데 놓쳤고요, 2004년 탄핵 때 수구세력을 정리했어야 하는데 그 찬스를 또 놓쳤습니다. 그러다 보니 여기까지 왔는데, 그래도 30년 동안 네 번째 찬스가 오지 않았습니까. 생각보다 역사적 찬스는 자주 오는데, 우리가 얼마나 적극적으로 좋은 기회를 살리느냐에 달려 있다고 생각합니다.
◇ 최영일> 역사 청산의 중요성을 강조해주셨는데요. 최근에도 며칠 전인데, 독일에서는 나치 부역자, 90대가 넘는 노인이 재판에서 징역형을 받더군요. 그래서 독일이 나치 관련해서 역사 청산에 큰 획을 그었다는 사례를 보여주는데요. 어떤 점들을 우리가 주목해야 한다고 보세요?
◆ 한홍구> 그런 사례가 우리로 치면 일제시대 때 친일파와 비슷한 것 아닙니까? 우리는 그 이후에 벌어진 친일 청산, 친일 잔재를 청산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친일파들이 민간인 학살을 했고, 군사 독재를 했고, 공안 조작을 했고, 지금 친일파 본인들은 육체적으로 죽었다고 하더라도 그 계승자들이 이어받고 있단 말입니다. 최태민만 하더라도 일제 순사 출신 아닙니까. 박정희 시대에 반공 내세워 구국을 했고, 그 패턴은 해방 직후와 똑같습니다. 지금 김기춘, 우병우, 매일 TV에 나오지만 공안 세력이고요. 어떻게 청산해내느냐는 거고요. 과거 청산은 멀리 친일파부터 찾을 필요 없다고 봅니다. 지금 현재 이 현상을 잘 정리하는 것과 가까운 데부터 청산을 해야죠. 그러니까 우병우, 김기춘 세력을 청산하는 데 그 뿌리가 친일파에서부터 내려왔다는 것을 명심하면서, 그것들을 잘 정리해나가는 게 필요하다고 봅니다.
◇ 최영일> 가까운 곳부터, 현재 벌어진 일부터. 그러다 보니 정국이 대통령 세 번째 담화 이후에, 축구 중계로 예를 들어 주셨지만, 공이 정치권, 국회로 넘어오지 않았습니까? 상당히 혼란스러운 상황이 벌어지는데요. 공을 받은 정치권, 어떻게 풀어나가야 한다고 보세요?
◆ 한홍구> 우선 박근혜 대통령부터 상황을 꼬이게 만들어 놨는데요. 국회의 결정에 따르겠다고 하는데 대한민국의 가장 큰 문제는 국회와 국민의 뜻이 다르다는 데 있습니다. 대의 정치가 잘못되기 때문에 대중이 거리로 나오는 것 아니겠습니까? 이런 상황에서 국회의 결정이 아니라, 국민의 뜻을 따르겠다고 하면 해답은 자명한 것 아닙니까? 정치권이 자기들 이해관계로 밥그릇 싸움하고 계산하고, 그러지 말고. 국민의 뜻에 겸허하게 따르면 길은 간단하다고 생각합니다.
◇ 최영일> 또 하나의 참여자가 있는데요. 언론입니다. 권력의 감시자 역할을 해야 하는데, 지금 라디오 인터뷰를 하고 계시지만, 언론이 대다수 뒷짐을 졌다는 것 아니냐는 책망과 비난이 국민들로부터 나옵니다. 언론의 역할, 어떻게 볼까요?
◆ 한홍구> 우리가 2년 전 세월호 비극이 있을 때 나온 말이 ‘기레기’입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언론 부역자라는 말도 나왔고, 그렇지만 언제 그랬냐는 듯이 지금 모든 언론이 달려들어서 최순실 가 시시콜콜한 것까지 캐고 있는데요. 이것이 하이에나적인, 그런 게 아니라. 언론이 정말 본연의 기능, 감시 기능을 찾아 가야 하는데요. 언론의 가장 큰 문제는 언론이 권력을 감시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권력의 일부분이 되려고 했던 게 가장 큰 문제인 것 같습니다. 저는 언론이 정말 감시 기능을 제대로 했으면 하고요. 사실 이런 문제가 밝혀지게 된 것도 초기 한겨레나 JTBC, 종편이지만 TV조선도 일정 역할을 했죠. 배경은 복잡하지만. 언론이 제대로 역할을 하면서 이 모든 것이 밝혀진 것 아닙니까? 그래서 언론의 중요성이 다시 한 번 부각되었고요. 국민이 언론을 제대로 감시해야겠다고 봅니다.
◇ 최영일>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도 촛불 집회에 대해서는 새누리당 김종태 의원의 경우, "좌파 종북 세력이 조직적이고 치밀하게 움직이고 있다." 이런 이야기를 했어요. 이 발언은 어떻게 들으셨어요?
◆ 한홍구> 저도 그 발언을 보고 도대체 무엇을 하는 분이기에 저런 말을 하나, 찾아보니까 기무사령관 출신이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이것이 한국 사회의 공안 세력이 가지고 있는 세계관이 반영된 거라고 보는데요.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일어나 스스로 자기들의 권리를 주장한다, 이 생각을 못하는 겁니다. 이 사람들은 우리나라에서 왜 그렇게 간첩이 많았나, 공안 세력들이 무슨 일만 있으면 배후에 틀림없이 불순 세력이 개입했다, 조정했다, 사주했다고 하는 거고요. 그건 지난번 광우병 촛불 때도 이명박 대통령이 말을 남기지 않았습니까. 중국에 출장 갔다가 돌아오는 차 안에서 경찰청장이 보고하니까, 일반적인 상황은 나도 알고 있고, 누가 사주해서, 배후가 누구야. 이런 질문을 했다고 하는데요. 학생들이 사주가 아니라 자발성이다, 그런 팻말을 들고 나왔죠. 공안 세력의 세계관, 이것이 바로 시민들의 거부감을 불러일으켰고, 어떤 큰 세대가 바뀌고, 저는 지금 드는 느낌이, 그리고 또 사명감은, 해방 직후부터, 한국 전쟁이 끝나면서 시작되었던 긴 챕터가 하나 끝나 간다. 공안 세력이 지배했던 그 역사를 끝내고 시민의 시대가 열려야 하지 않나. 그런 생각을 해봅니다. 공안 세력의 마지막 촛불을 끄고 싶어 하는 발악이라고 할까요. 그들의 민낯이 드러난 거라고 봅니다.
◇ 최영일> 세계관까지 돌아봐야 하는 시점이 된 것 같습니다. 오늘 말씀 여기까지 듣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한홍구> 네, 감사합니다.
◇ 최영일> 지금까지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였습니다.
[저작권자(c) YTN 무단전재, 재배포 및 AI 데이터 활용 금지]
- 분노한 시민들 광장으로 나오는 것, 역사 발전 하는 중
- 역사적으로 좋은 기회 많이 놓쳐, 반성하고 성과 거둬야
- 해방 후 친일 청산 주장하던 분들이 친일파에 거꾸로 청산 당해
- 지난 30년 역사, 축구로 치면 ‘발만 대면되는데 아까운 찬스’ 많이 놓쳐
- 좌절 속에 역사 밀고 나와 여기까지 온 것
- 김기춘·우병우 세력, 뿌리가 친일파에서 왔다는 것 명심하고 청산해야
- 대한민국 가장 큰 문제, 국회와 국민의 뜻이 다른 것
- 대의 민주주의가 잘못돼 대중이 거리로 나오는 것
- 세월호 비극 때는 ‘기레기’, 지금은 ‘언론 부역자’
- 언론이 권력 감시하지 않고, 스스로 권력의 일부가 되려고 해
- 국민이 언론을 제대로 감시해야
- 촛불이 좌파 종북 세력? 이런 공안 세력의 세계관에 반발해 촛불을 든 것
- 촛불, 해방 직후 공안 세력 지배하던 긴 챕터 하나 끝나 가는 증거
[YTN 라디오 ‘최영일의 뉴스 정면승부’]
■ 방송 : FM 94.5 (18:10~20:00)
■ 방송일 : 2016년 12월 1일 (목요일)
■ 대담 :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
◇ 앵커 최영일 시사평론가(이하 최영일)> 대통령의 세 번째 담화 이후 정국은 더 혼란스러운 상황입니다. 그간 역사를 돌이켜보면 어수선하고 혼란한 시기가 있었는데요, 일각에서는 역사를 제대로 청산하지 못한 결과들이 계속 이어지고 있는 것 아니냐 이런 지적도 나오고 있습니다. 자세한 이야기 성공회대 한홍구 교수 연결해 얘기 나눠보겠습니다. 안녕하세요?
◆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이하 한홍구)> 네, 안녕하세요.
◇ 최영일> 지금 정국은 지도자에 대한, 또 사회 지도층에 대한 국민들의 실망감, 절망감이 큰 상황인데요. 과거 역사를 짚어 보면 국민들이 분개하고, 직접 들고 일어날 만큼의 사건이 있지 않았습니까?
◆ 한홍구> 수없이 많았죠, 4월 혁명도 그렇고, 6월 항쟁도 그렇고, 미선이 효선이 사건 때도 그렇고, 탄핵 때도 그렇고, 광우병 때도 그렇고, 분노해서 길거리로 쏟아져 나오고 광장을 메웠습니다. 이것이 꼭 어수선하고 혼란스러운 것만이 아니라, 역사가 이렇게 해서 발전해 나간다고 생각합니다.
◇ 최영일> 그렇게 역사는 발전해왔다. 말씀하신 앞에는 일제강점기 초기에 3.1 운동도 있었죠. 그러면 지금 역사가 발전하는 과정이라고 말씀하셨는데요. 그렇게 보시는 이유나 배경은 어떤 건가요?
◆ 한홍구> 역사에서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좋은 찬스가 많이 오는데, 안타깝게도 좋은 찬스를 살린 경우도 있지만 살리지 못한 경우도 있어요. 4월 혁명이나 6월 항쟁은 일정하게 성과를 거뒀지만, 되치기를 당했고요. 해방 후에도 보면 친일 청산 같은 것들을 당연히 될 거라고 생각했는데 못했지 않았습니까. 좋은 기회를 놓쳤기 때문인데요. 이번에는 역사에서 배워야 할 것이, 좋은 찬스를 왜 놓쳤는가를 반성해서 정말 오랜만에 찾아온 기회를 놓치지 말고, 좋은 성과를 거둬야 합니다.
◇ 최영일> 영화 암살 끝에 잠깐 나오지만, 반민특위의 비애 같은 것도 느껴지는데요. 이번에 최순실 국정 농단 사태처럼 실체를 드러내지 않고 뒤에서 권력을 막강하게 행사했던 존재, 혹시 있었나요?
◆ 한홍구> 글쎄요. 이런 사례는 없었다고 보고요. 그 이전에도 비선실세 이야기가 많이 나왔고, 최순실 얘기가 나왔을 때 그 아버지 최태민 얘기가 나왔지만, 최태민이 그 당시에 대통령의 큰 딸,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하던 박근혜를 업고 여러 가지 못된 짓들을 많이 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권력형 개인 비리의 문제였지 비선실세 국정농단은 아니었습니다. 최태민은 대통령을 좌지우지할 수 없었고요. 그 다음번 사례를 생각해보면 김영삼 대통령 때 소통령이라고 불리는 김현철 씨 사례가 있었죠. 김현철 씨가 소통령이다, 부통령이다, 그런 얘기가 있었지만 어디까지나 아버지의 권한을 대리해서 아버지의 귀 역할을 한 거거든요. 이렇게 대통령을 조정하는 그런 위치는 아니었다고 봅니다. 전대미문인 것 같아요.
◇ 최영일> 전대미문이다. 현재 우리가 겪고 있는 상황을 비롯해 왜 역사적으로 이런 일들이 끊이지 않는 걸까요?
◆ 한홍구> 좋은 기회를 너무 많이 놓쳤습니다. 근원적으로 해방 직후 친일 청산을 해야 했는데, 단순히 친일 청산을 실패한 게 아니라 친일 청산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던 양심을 가진 분들이 친일파에게 거꾸로 청산 당했단 말이죠. 그러면서 엄청난 민간인 학살을 당하고 그렇게 되었는데도 어린 학생들이 들고일어나 4월 혁명을 만들고, 거기서 짓밟혔지만, 박정희가 탱크 몰고 나와 짓밟았지만, 다시 들고 일어나니까 10년 뒤에 다시 탱크 몰고 나온 게 유신입니다. 그런데 거기에 7년 만에 저항을 해서 유신 정권을 끝장냈고, 그렇지만 힘이 약하다 보니까 전두환 등장을 허용했고, 광주에서 처절하게 깨졌지만, 그래도 패배를 딛고 일어나 7년 만에 6월 항쟁을 만들었습니다. 이런 식으로 끊임없이, 우리도 좌절했지만 좌절 속에서 역사를 밀고 나와 여기까지 온 거거든요. 그런데 지난 30년을 돌이켜보면, 축구로 치면 해설자가 발만 대면 되는데, 아깝습니다. 그런 좋은 찬스를 세 번이나 놓친 겁니다. 6월 항쟁 때 놓쳤고, 98년 외환위기가 왔을 때 재벌 지배 체제를 개혁했어야 하는데 놓쳤고요, 2004년 탄핵 때 수구세력을 정리했어야 하는데 그 찬스를 또 놓쳤습니다. 그러다 보니 여기까지 왔는데, 그래도 30년 동안 네 번째 찬스가 오지 않았습니까. 생각보다 역사적 찬스는 자주 오는데, 우리가 얼마나 적극적으로 좋은 기회를 살리느냐에 달려 있다고 생각합니다.
◇ 최영일> 역사 청산의 중요성을 강조해주셨는데요. 최근에도 며칠 전인데, 독일에서는 나치 부역자, 90대가 넘는 노인이 재판에서 징역형을 받더군요. 그래서 독일이 나치 관련해서 역사 청산에 큰 획을 그었다는 사례를 보여주는데요. 어떤 점들을 우리가 주목해야 한다고 보세요?
◆ 한홍구> 그런 사례가 우리로 치면 일제시대 때 친일파와 비슷한 것 아닙니까? 우리는 그 이후에 벌어진 친일 청산, 친일 잔재를 청산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친일파들이 민간인 학살을 했고, 군사 독재를 했고, 공안 조작을 했고, 지금 친일파 본인들은 육체적으로 죽었다고 하더라도 그 계승자들이 이어받고 있단 말입니다. 최태민만 하더라도 일제 순사 출신 아닙니까. 박정희 시대에 반공 내세워 구국을 했고, 그 패턴은 해방 직후와 똑같습니다. 지금 김기춘, 우병우, 매일 TV에 나오지만 공안 세력이고요. 어떻게 청산해내느냐는 거고요. 과거 청산은 멀리 친일파부터 찾을 필요 없다고 봅니다. 지금 현재 이 현상을 잘 정리하는 것과 가까운 데부터 청산을 해야죠. 그러니까 우병우, 김기춘 세력을 청산하는 데 그 뿌리가 친일파에서부터 내려왔다는 것을 명심하면서, 그것들을 잘 정리해나가는 게 필요하다고 봅니다.
◇ 최영일> 가까운 곳부터, 현재 벌어진 일부터. 그러다 보니 정국이 대통령 세 번째 담화 이후에, 축구 중계로 예를 들어 주셨지만, 공이 정치권, 국회로 넘어오지 않았습니까? 상당히 혼란스러운 상황이 벌어지는데요. 공을 받은 정치권, 어떻게 풀어나가야 한다고 보세요?
◆ 한홍구> 우선 박근혜 대통령부터 상황을 꼬이게 만들어 놨는데요. 국회의 결정에 따르겠다고 하는데 대한민국의 가장 큰 문제는 국회와 국민의 뜻이 다르다는 데 있습니다. 대의 정치가 잘못되기 때문에 대중이 거리로 나오는 것 아니겠습니까? 이런 상황에서 국회의 결정이 아니라, 국민의 뜻을 따르겠다고 하면 해답은 자명한 것 아닙니까? 정치권이 자기들 이해관계로 밥그릇 싸움하고 계산하고, 그러지 말고. 국민의 뜻에 겸허하게 따르면 길은 간단하다고 생각합니다.
◇ 최영일> 또 하나의 참여자가 있는데요. 언론입니다. 권력의 감시자 역할을 해야 하는데, 지금 라디오 인터뷰를 하고 계시지만, 언론이 대다수 뒷짐을 졌다는 것 아니냐는 책망과 비난이 국민들로부터 나옵니다. 언론의 역할, 어떻게 볼까요?
◆ 한홍구> 우리가 2년 전 세월호 비극이 있을 때 나온 말이 ‘기레기’입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언론 부역자라는 말도 나왔고, 그렇지만 언제 그랬냐는 듯이 지금 모든 언론이 달려들어서 최순실 가 시시콜콜한 것까지 캐고 있는데요. 이것이 하이에나적인, 그런 게 아니라. 언론이 정말 본연의 기능, 감시 기능을 찾아 가야 하는데요. 언론의 가장 큰 문제는 언론이 권력을 감시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권력의 일부분이 되려고 했던 게 가장 큰 문제인 것 같습니다. 저는 언론이 정말 감시 기능을 제대로 했으면 하고요. 사실 이런 문제가 밝혀지게 된 것도 초기 한겨레나 JTBC, 종편이지만 TV조선도 일정 역할을 했죠. 배경은 복잡하지만. 언론이 제대로 역할을 하면서 이 모든 것이 밝혀진 것 아닙니까? 그래서 언론의 중요성이 다시 한 번 부각되었고요. 국민이 언론을 제대로 감시해야겠다고 봅니다.
◇ 최영일>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도 촛불 집회에 대해서는 새누리당 김종태 의원의 경우, "좌파 종북 세력이 조직적이고 치밀하게 움직이고 있다." 이런 이야기를 했어요. 이 발언은 어떻게 들으셨어요?
◆ 한홍구> 저도 그 발언을 보고 도대체 무엇을 하는 분이기에 저런 말을 하나, 찾아보니까 기무사령관 출신이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이것이 한국 사회의 공안 세력이 가지고 있는 세계관이 반영된 거라고 보는데요.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일어나 스스로 자기들의 권리를 주장한다, 이 생각을 못하는 겁니다. 이 사람들은 우리나라에서 왜 그렇게 간첩이 많았나, 공안 세력들이 무슨 일만 있으면 배후에 틀림없이 불순 세력이 개입했다, 조정했다, 사주했다고 하는 거고요. 그건 지난번 광우병 촛불 때도 이명박 대통령이 말을 남기지 않았습니까. 중국에 출장 갔다가 돌아오는 차 안에서 경찰청장이 보고하니까, 일반적인 상황은 나도 알고 있고, 누가 사주해서, 배후가 누구야. 이런 질문을 했다고 하는데요. 학생들이 사주가 아니라 자발성이다, 그런 팻말을 들고 나왔죠. 공안 세력의 세계관, 이것이 바로 시민들의 거부감을 불러일으켰고, 어떤 큰 세대가 바뀌고, 저는 지금 드는 느낌이, 그리고 또 사명감은, 해방 직후부터, 한국 전쟁이 끝나면서 시작되었던 긴 챕터가 하나 끝나 간다. 공안 세력이 지배했던 그 역사를 끝내고 시민의 시대가 열려야 하지 않나. 그런 생각을 해봅니다. 공안 세력의 마지막 촛불을 끄고 싶어 하는 발악이라고 할까요. 그들의 민낯이 드러난 거라고 봅니다.
◇ 최영일> 세계관까지 돌아봐야 하는 시점이 된 것 같습니다. 오늘 말씀 여기까지 듣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한홍구> 네, 감사합니다.
◇ 최영일> 지금까지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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