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뉴스 더콕] 정치인의 단식, 무엇을 걸었고 무엇을 얻었나?

[더뉴스 더콕] 정치인의 단식, 무엇을 걸었고 무엇을 얻었나?

2019.11.21. 오후 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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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지소미아 유지, 공수처 반대, 선거법 합의를 요구하며 단식에 들어갔습니다.

스스로는 절체절명의 위기에 맞서는 필사즉생의 투쟁이라고 하고 다른 정당에서는 엉뚱하다는 시각이 우세합니다.

정치인들의 단식, 무엇을 걸었고 무엇을 얻었는지, 더콕에서 돌아보겠습니다.

군사정권이 독재로 통치하던 시절, 야당 정치인들의 단식투쟁은 민주화를 위한 최후 수단의 성격이 강했고, 정치 방향성을 제시하는 선이 굵은 명분을 걸었습니다.

전두환 집권기 야권의 대표 정치인으로 가택연금 상태였던 김영삼 전 신민당 총재는 광주항쟁 3주년인 1983년 5월 18일부터 대통령 직선제, 언론 자유 등을 요구하며 23일 동안 단식투쟁을 벌였습니다.

그의 단식은 요구조건을 관철하지 못한 채 극심한 건강 악화로 중단됐지만 혹독하게 탄압받던 민주화 세력을 결집시켰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노태우 집권기인 1990년 김대중 당시 평화민주당 총재의 단식투쟁이 있었습니다.

1987년 6월 항쟁 때 집권세력이 약속하고 헌법에도 반영된 지방자치제를 실행하라고 요구했습니다.

단식 13일째, 결국 지방자치제 실시 약속을 받아냈고 이듬해 3월 기초의원, 6월 광역의원 선거가 실시됐습니다.

비교적 최근에 이뤄진 단식은 매우 구체적인 사안이 계기였습니다.

2014년 문재인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세월호 특별법을 요구하며 한 달 이상 단식하던 세월호 유가족, 김영오 씨의 단식을 만류하고 그의 요구를 지지하는 차원에서 이뤄졌습니다.

김씨가 건강 악화로 46일만에 단식을 중단할 때 문의원의 단식도 10일만에 끝났습니다.

이 단식은 여야 협상을 압박했고 단식 중단 이후 약 한달 뒤 특별법이 본회의를 통과했습니다.

민주당원 인터넷 여론조작 사건, 이른바 '드루킹 사건'으로 여야가 줄다리기를 하던 지난해 5월, 김성태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는 특검을 요구하며 단식에 나섰습니다.

9일째 되던 날, 건강 문제로 단식은 중단됐지만 그로부터 열흘 뒤 특검법이 통과됐습니다.

지금으로부터 약 1년 전에도 단식이 있었습니다.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요구한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의 단식입니다.

이 단식을 계기로 여야 5당 원내대표가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 등을 포함한 선거제도 개편 논의에 나서겠다고 합의를 하면서 10일 간 이어진 단식이 중단됐습니다.

성과 없이 끝난 단식 사례도 몇가지 살펴보겠습니다.

2007년 한미 FTA 협상이 진행되던 때, 문성현 민주노동당 대표는 협상 중단을 요구하며 단식에 돌입했습니다.

26일, 한달 가까이 단식을 벌였지만 결국 한미 FTA 협상이 타결되며 단식도 중단됐습니다.

새누리당이 여당이던 2016년 9월, 이정현 당 대표는 정세균 국회의장의 사퇴를 내건 단식에 들어갔습니다.

정 의장이 여야 합의가 안 된 상황에서 김재수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해임건의안을 상정한 데 대한 반발이었습니다.

사퇴 요구를 관철시키지 못했고 스스로 7일만에 단식을 중단했습니다.

황교안 대표의 단식.

일단 요구 사안들이 구체적인 일정과 연계돼 있기 때문에 중단의 계기는 미리 예상해 볼수 있습니다.

다만 선거법과 공수처법 등의 처리 가능 시점까지 상당한 시일이 남아있기 때문에 단식 장기화에 따른 변수는 미리 짐작할 수 없습니다.

평가가 극명하게 엇갈리는 가운데 황대표의 단식이 어떤 결과로 이어질지 주목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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