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참전 비운의 육사 생도 2기를 아시나요?

6·25 참전 비운의 육사 생도 2기를 아시나요?

2023.06.24. 오전 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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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6·25전쟁 당시 육군사관학교 생도, 즉 학생 신분으로 전투에 참가한 비운의 주인공들이 있습니다.

육사 생도 2기들인데요,

꽃다운 나이에 전투에서 절반가량이 전사했지만, 희생에 걸맞은 조명은 받지 못했습니다.

임성재 기자가 생도 2기를 만나고 왔습니다.

[기자]
1950년 6월 25일 새벽 4시, 북한군이 38선 전역을 넘어 남침했습니다.

개전 당일, 입교한 지 25일밖에 되지 않은 육군사관학교 생도 277명은 대대로 편성돼 전투에 투입됐습니다.

'비운의 생도'로 불리는 육사 생도 2기입니다.

당시 이들의 나이는 18살.

군번도 계급도 없이 제식훈련과 총검술, 사격훈련만 받은 채 전선으로 뛰어들었습니다.

[장기호 / 육군사관학교 생도 2기 : 25일 새벽이 됐는데,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데 먼 곳에서 쿵쿵 소리가 나 우리는 처음에 그게 번개가 치는 줄 알았거든….]

전차 등 북한군의 압도적인 화력에 할 수 있는 건 '지연전'뿐.

지금으로 따지면 경기도 포천에서부터 판교 부근까지 10여 일간 치열한 전투를 펼쳤지만, 역부족이었습니다.

[장기호 / 육군사관학교 생도 2기 : 그냥 인민군들이랑 싸우는데, 한두 시간 싸웠나, 어마어마하게 밀고 들어오는 사람들 쏴서 물리치면 또 들어오고, 또 물리치고. 거기서 희생자가 사관생도 희생자가 가장 많이 났지.]

이 기간 85명이 전사했고, 전투가 끝난 뒤에는 곧 소위로 임관했습니다.

3년여 전쟁 중에는 47명이 추가로 산화해 생도 2기 절반가량인 132명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하지만 교육과정을 제대로 마치지 않았다는 이유로 육사 출신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홀대를 받다가 40여 년이 지난 1996년에서야 명예 졸업장을 받습니다.

[장기호 / 육군사관학교 생도 2기 : 우리는 자랑스럽게 여긴다고. 비록 나라에서 생도 2기를 인정하지 않았지만 우리 생도 2기들은 전부 다 우리는 국가가 어려움에 부닥쳤을 때 25일밖에 안 됐지만, M1 소총 들고 나갔다.]

6월만 되면 떠오르는 전우에 대한 기억과 복받치는 설움.

노병은 전투에 나가며 부르던 군가를 부르며 그날을 기억합니다.

[장기호 / 육군사관학교 생도 2기 : 백두산 높은 기상 우리의 포부 동해의 푸른 파도 우리의 맥박!]

YTN 임성재입니다.

촬영기자 : 박진수
영상편집 : 윤용준
그래픽 : 김효진



YTN 임성재 (lsj621@yt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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