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한 충돌' 약속대련이 아닌 이유…서초동 아닌 '여의도 속성'

'윤·한 충돌' 약속대련이 아닌 이유…서초동 아닌 '여의도 속성'

2024.01.24. 오전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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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한 충돌' 약속대련이 아닌 이유…서초동 아닌 '여의도 속성'
사진출처 = YT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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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가까이 유지된 '끌고 당기는 관계'

흔히 '20년 지기'라고 한다.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관계를 두고 하는 말이다. '자기의 속마음을 참되게 알아주는 친구'를 의미하는 '지기'라는 표현이 안 맞을 수도 있다. 오랜 기간 '위에서 끌고 당기는 관계'가 더 정확해 보인다. 둘의 관계가 강하게 맺어진 건 지난 2006년. 검찰 권력과 수사의 핵심인 대검찰청 중앙수사부란 공간이었다. 이후 끌고 당기는 관계는 20년 가까이 이어졌다.

2016년 '국정농단' 특검팀에서 호흡을 맞췄고 2017년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에는 윤석열 당시 대전고검 검사가 서울중앙지검장에 깜짝 발탁되자 한 위원장은 3차장검사로 역시 깜짝 발탁되었다. 한 위원장은 2019년 검사장으로 승진한 이후 옛 중수부장인 반부패부장에 올라 윤석열 당시 검찰총장을 지근거리에서 엄호하고 보좌했다. 여기까지가 서초동에서 맺어진 인연이다.

재작년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한 위원장은 첫 법무부 장관 자리를 꿰찬다. 대통령이 임명하는 정무직 장관인데 국회 안은 물론 밖에서도 야당, 특히 이재명 민주당 대표를 상대로 적극적인 공방을 벌이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결국 지난해 말 김기현 대표가 물러나고 국민의힘은 한동훈 위원장이 이끌게 되었다. 대검 중수부에서 시작된 인연은 대통령과 집권 여당 대표로 확대되었다.

처음 나온 윤·한 갈등…공천 문제는 '트리거'일 뿐

윤 대통령과 한 위원장 사이에서 파열음이 들려온다. 파장은 해석에 따라 다르다. 여러 말들이 난무한다. 대통령실과 국민의힘 A, B, C 관계자발로 나온 말이 TV와 신문, 인터넷 공간을 통해 전해지고 이를 정치 평론가들이 가공하고 재가공한다. 일단 사실관계부터 정리해 보자.

지난 21일 정오쯤 인터넷매체 쿠키뉴스 보도부터 시작됐다. 보도에 따르면 대통령실과 밀접한 여권 관계자가 "한 비대위원장의 이번 내리꽂기식 김경률 추천으로 당원과 대의원들 사이에 불신이 커지고 있다"며 "공정한 공천혁명, 공정한 선거혁명, 공정한 정치혁명을 기대했던 한 비대위원장에게 지지를 보냈던 윤 대통령도 이번 사태에 큰 실망을 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이 정도면 공천 불만 수준인데 더 구체적인 보도가 바로 이어졌다.

몇 시간 뒤 채널A는 <[단독]대통령 비서실장, 한동훈 만나 ‘사퇴 요구’ 전달…"김건희 여사 대응 지적">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내보냈다. 이 역시 국민의힘 관계자발인데 "이관섭 대통령 비서실장이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을 만나 비대위원장직 사퇴를 요구했다"는 게 핵심이다. "한 위원장에게 김건희 여사의 명품백 의혹에 대한 대응에 섭섭함을 전한 걸로 안다"는 내용도 덧붙여졌다. 보도에 사퇴 요구 이유가 언급됐다.

대통령실과 한동훈 위원장 양쪽 모두 보도 내용을 부인하지 않았다. 팩트인 것이다. 보도 다음 날 한 위원장은 한 발짝 더 나가 "사퇴 요구를 거절했기 때문에 구체적인 내용은 말씀드리지 않겠다"며 "당은 당의 일을 하고 정(부)은 정(부)의 일을 하는 것이 국민을 위한 것"이라고 답했다. 단호했다.

누구도 갈등 자체가 사실이 아니라고 반박하지 않는다. 친윤 핵심인 이철규 의원이 나섰다. 그는 KBS 라디오에서 "소통하는 과정에 조금씩 오해가 있었던 것 같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아주 긍정적으로 잘 수습이 되고 봉합이 되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고 덧붙였다. 갈등 자체는 사실이나 잘 풀릴 것이라는 희망이 담겼다. 사퇴 요구를 했던 당일 이관섭 실장, 한동훈 위원장, 윤재옥 원내대표 등 3명이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는데 이철규 의원은 그 자리에 있지 않았다.

집권 2년 만에 띄워진 '미래 권력'…여의도식 권력의 속성

초유의 갈등은 잠시나마 봉합될 수 있지만 재연될 수도 있다. 분명한 건 이번 일을 계기로 윤 대통령과 한동훈 위원장의 관계가 '현 권력 vs 미래 권력' 구도로 어느 정도 굳어졌다는 점이다. 권력이 구조화되었다는 의미다. 우리 현대 정치사만 놓고 봐도 권력의 1인자와 2인자가 밀고 당기는 수직적 관계만으로 끝까지 유지된 적은 없었다. 독재가 가능했던 서슬 퍼런 군사 정권 시절에도 불가능했던 일이다. 보수든 진보든 정도의 차이지 어느 진영에서나 있기 마련이다.

1인자, 2인자 둘만 있으면 더 오래 유지될 수 있다. 하지만 정치 영역에선 1인자와 2인자 주변 사람들 때문에 불가능하다. 따르는 목적이 다르기 때문이다. 이 목적이 갈리는 게 여의도에선 바로 공천 때문이다. 매일도, 매달도 아닌 4년마다 기회가 오는데 누가 앞장서 희생하고 양보하겠는가, 그게 바로 권력의 속성이다. 원하는 방향이 아니면 상대 주군을 흔들고 자기 주군을 압박할 것이다. 이런 정치적 습성과 양태가 정치 경험이 길지 않은 윤 대통령과 한 위원장에겐 생경할 것이다. 오랜 기간 검사 동일체의 원칙에 익숙 해왔기 때문이다. 여의도에선 오늘의 아군이 내일의 적이고, 그 반대도 당연히 가능하다. 여의도 문법이 그렇다.

둘 사이의 파열음이 예상보다 빠르다는 시각도 있다. 시기가 빠르기보단 더 늦게 나올 수 없는 구조적 이유가 있다. 바로 공천 때문이다. 곧 공천 판이 본격적으로 깔린다. 1인자냐 2인자냐 뒤로 줄을 길게 서야 한다. 각자의 주군을 앞세워 내부 경쟁을 벌여야 한다. 윤 대통령과 한 위원장 둘 사이의 갈등 표출 시기가 빠른 게 아니라 총선 앞두고 대통령 최측근이 여당을 이끌게 되면서 어느 정도 예견됐던 일이다. 그래서 여권 안에선 한 위원장의 등판이 너무 빠르다는 지적도 있었다. 한 위원장 본인은 물론 결국 윤 대통령에게도 큰 부담이 될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었다.

이번 갈등이 '약속대련'이 아닌 이유는 구조적인 권력의 속성에서 비롯됐기 때문이다.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 말대로 공격과 수비를 정해놓고 벌이는 태권도의 약속대련이라면 이번 갈등 이후 뭔가를 내놓아야 한다. 이번 갈등에서 윤 대통령이 이기는 모양새면 국민의힘으로선 4월 총선이 힘들어질 수 있다. 반대로 한 위원장이 이기는 분위기라면 윤 대통령은 총선 전부터 힘이 빠질 수 있다. 어떤 결과를 내놓아도 이미 벌어진 갈등 자체가 근원적으로 희석되거나 긍정적으로 급전환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이게 바로 서초동이 아닌 여의도식 권력의 속성이다.

YTN 이대건 (dglee@yt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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