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싶은 것만 보인다! 부주의맹" [YTN FM]

"보고 싶은 것만 보인다! 부주의맹" [YTN FM]

2012.05.02. 오후 7:34.
댓글
글자크기설정
인쇄하기
AD
"보고 싶은 것만 보인다! 부주의맹" - 건국대 범상규 경영학과 교수

[YTN FM 94.5 '생생경제']

경제뉴스 인사이드 오늘은
<소비자를 위한 심리학> 시간입니다.
심리마케팅 칼럼니스트인 건국대 범상규 교수와
함께하겠습니다.

--------------------------------------------

우리 눈에는 단지 ‘보고 싶은 것만 보인다!’


Q: 지하철 안에서 친구와 휴대폰 통화에 열중하다 내려야 할 역을 지나친 경험, 한번쯤은 있을 겁니다. 분명 건망증도 치매초기도 아닌데 말이죠. 이런 일들은 소비자들의 합리적인 구매행동에도 상당한 영향을 준다고 합니다. 그 이유가 뭐죠?


A: 오늘 하루 동안 적어도 수백 건의 크고 작은 광고를 보긴 했지만, 광고 내용은 물론 브랜드조차 기억하기는 참 힘들죠. 그렇다고 집중력 저하를 걱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아마도 치과치료를 예약한 경우라면, 새로운 임플란트 보험이야기 정도는 쉽게 눈에 띄었을 테니까요.

휴대폰 통화나 광고사례처럼 내가 관심 갖고 바라던 것은 눈에 잘 띄지만, 반대로 관심 없는 존재는 좀체 시선을 끌 긴 어렵죠. 우리들은 보고 싶은 것만 보려고 하는 심리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를 부주의맹 혹은 시각적 맹목성이라고 합니다.

완벽하게 잘 보이는 물체인데도 우리의 시선이나 주의가 딴 곳에 쏠려서 정작 봐야할 것을 보지 못하게 만드는 현상을 말합니다.



Q: 부주의맹이라, 상당히 어려운 심리학 용어 같은데요.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방법이 있나요?

A: 먼저 부주의맹이 얼마나 자주 일어나는지 보여주는 기발한 실험 한 가지 소개하죠.

이 실험은 참여자들에게 채 2분이 안 되는 동영상을 보여주는 건데요, 각각 흰색과 검정색 상의를 입은 선수들이 2팀으로 나눠서 서로 농구공을 패스하는 장면이 담겨있습니다. 이때 참여자에게는 ‘흰색 팀이 주고받은 패스’가 총 몇 회인지 세라는 과제가 주어집니다.

동영상이 끝난 후 ‘혹시 이상한 것을 보지 못했느냐?’고 질문하자, 절반이상의 사람들이 농구공 패스 이외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고 합니다. 물론 아까 보았던 동영상을 거꾸로 절반쯤 되돌리기 전까진 그랬죠.

놀랍게도 농구공을 서로 주고받는 선수들 사이로 고릴라 한 마리가 걸어 들어와 가슴을 두 세 번 친 후 유유히 사라지는 장면이 있었는데도 알아차리지 못했던 겁니다.

Q: 조금만 주의를 기울이면 누구나 쉽게 확인 가능한 고릴라를 왜 실험참석자들은 그것도 50%가 넘는 사람들은 보지 못했나요?


A: 방금 말씀하신대로 절반이 넘는 실험참여자들은 농구공의 패스 횟수를 세느라 고릴라의 존재 자체를 알아차리지 못했다고 말합니다. 이러한 착각이 바로 ‘보고 싶은 것만 보인다’는 부주의맹의 주요한 원인이죠.

좀 더 정확히 살펴보면, 우리 뇌는 정보처리용량에 한계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효율적인 의사결정을 위해서는 과제와 무관한 고릴라보다는 주관심 영역인 농구공 패스 장면에 뇌에 할당된 대부분의 시각적 주의를 집중시켰기 때문이죠.



Q: 실제로 우리 일상생활에서도 부주의맹이 종종 발생될 수 있다는 이야기군요.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부주의맹이 일어나는 사례는 뭐가 있을까요?


A: 운전 중 신호등에 신경 쓰다 가로질러 가는 행인을 미처 보지 못하는 경우가 대표적이죠. 또 휴대폰으로 통화하면서 길을 걸어가다가 반대편 사람과 어깨를 부딪치는 경우도 있죠. 이처럼 휴대폰을 이용한 통화 시에는 청각적 자극에 반응하지만, 길거리의 사람을 보는 시각적 자극은 제대로 반응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즉 우리 뇌는 한 번에 한 가지에만 반응하도록 만들어져, 멀티태스킹이 불가능하다는 얘기입니다.


더 짜릿한 경험은 바로 신기한 마술쇼에서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마술사가 절묘하게 관객을 속이는 트릭을 사용한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매번 바로 눈앞에서 당하기 일쑤죠. 마술사의 손짓, 눈길, 현란한 입담이나 과장된 행동은 단순히 쇼맨십이 아니라 관객의 주의를 분산시키기 위한 잘 짜인 각본입니다. 이 때 마술사는 아주 짧은 순간, 그 비어있는 영역에서 트릭을 사용하게 됩니다. 이처럼 부주의맹을 능숙하게 이용하는 마술사는 고도의 심리전문가라고 할 수 있죠.


또 약간 무거운 얘기지만 재미있는 사실은 자폐아들은 일반인들과 달리 사람의 시선은 물론 사진 속 인물의 시선에도 눈을 잘 맞추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래서 자폐아들은 주의를 분산시키기 위한 마술사들의 다양한 노력, 즉 트릭에 잘 반응하지 않게 되고 결과적으로 마술사의 트릭을 쉽게 감지할 수 있습니다. 이런 이유로 전문가들은 마술이 자폐아 증상에 대한 자가진단 역할도 가능하다는 견해를 내놓기도 합니다.

Q: 그렇다면 실제 생활 속에서 경험하게 되는 부주의맹은 소비자들의 소비행동에 어떤 영향을 주나요? 실제 사례가 있습니까?


A: 몇 년 전, LG전자는 유명 연예인인 김태희를 모델로 한 CF를 제작했는데, 이 CF를 이용하여 시선추적장치로 시선 분배 정도를 확인한 결과가 매우 놀랍습니다. 85%의 시선이 제품이나 브랜드가 아닌 모델 얼굴이나 매혹적인 몸매에 집중되었죠. 그리고 단지 10% 정도만 제품이나 브랜드에 집중된다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유명연예인에 의해 부주의맹이 발생되어 광고효과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다는 의미죠.


이와 반대로 최근 국민MC인 송해씨를 모델로 기용한 기업은행 CF의 경우, 광고모델과 메시지에 대한 소비자들의 주의를 적절히 분산시켜 메시지를 효과적으로 전달시킬 수 있었고, 결과적으로 광고효과는 매우 좋았다는 평가입니다. 만약 이 CF에 대중적 인기를 누리는 매력적인 차도남이 나왔다면, 아마도 광고는 성공했을지언정 메시지 전달력은 떨어졌을 것입니다. 그래서 포근한 이웃집 아저씨 같은 송해씨가 고마운 거죠.


또 한 가지 사례로 백화점 세일행사인데요,

평소 스스로를 깐깐한 소비자라 생각하지만 할인행사 전단지 속의 정보에 주의를 집중하다보면 나도 모르게 생각지도 못한 과잉구매를 하기도 합니다. 미끼상품이 부주의맹의 원인인 거죠. 이러한 현상은 유명 브랜드일수록 빈번하다는데 그 심각성이 있습니다. 물론 유명 브랜드일수록 제품보증 역할을 한다는 측면도 있지만, 자칫 다양한 정보를 무시하도록 강요하는 역효과 또한 분명 있습니다.


그 예로, 요즘 인기있는 패스트패션 같은 패선브랜드들은 직접생산보다는 OEM방식의 위탁생산인 경우가 많죠. 동일한 공장에서 동일한 숙련공이 동일한 시설을 이용하여 오전에는 A 브랜드를, 오후에는 B 브랜드를 만들지만 단지 소비자들에게 감지되는 차이는 마지막으로 붙이는 브랜드 태그가 어떤 것이냐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입니다. 결국 브랜드의 유명성 효과는 마술사가 손짓, 눈짓으로 관객들의 시선을 빼앗아 착각을 유도하는 트릭과 별반 다를 게 없죠.
Q: 제품을 구매할 때 가장 손쉬운 판단기준으로 브랜드를 많이 따지는데 부주의맹을 가져올 수 있다는 얘기군요. 그럼 일상생활 속에 존재하고 있는 이런 부주의맹을 탈피하여 합리적인 소비행동을 할 수 있는 방안은 있습니까?


A: 기업들은 소비자들의 부주의맹을 유발시키기 위해 교묘하고도 집요한 마케팅을 전개하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함정 속에서 현명한 의사결정을 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것이 현실입니다.

특히 브랜드 유명세나 화려한 광고이미지 그리고 단기적인 이득을 챙겨주는 이벤트 판촉활동처럼 기업에서 유도하는 부주의맹에 빠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오히려 적극적으로 소비자 스스로 주의를 분산시키라는 것입니다,

한 가지 방법으로 광고효과나 브랜드파워 보다는 감성적인 디자인에서 느껴지는 교감, 가격할인에 대한 상투적인 말보다 판매사원과의 공감대, 주변사람들의 평판에서 정보를 얻을 때, 한 쪽으로 치우쳐 지는 것을 막을 수 있습니다.

또 보고 싶은 것만 보려고 애쓰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광고나 가격이나 브랜드 혹은 입맛 당기는 판촉활동처럼 보고 싶은 것이야 당장에 이득으로 돌아오겠지만, 또 다른 면의 실체를 본 후 판단하라는 겁니다. 예를 들어 사회공헌활동은 하는지, CEO의 리더십은 어떤지, 환경보호나 윤리경영에 대한 의지는 남다른지와 같은 기업의 건전한 영양분에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건강한 기업정신이 좋은 제품과 서비스를 만들기 때문이죠.



Q: 결국 기업의 마케팅활동으로 인한 다양한 부주의맹의 함정을 적극적으로 방어하려는 소비자들의 쇼핑 지혜를 쌓을 때, 합리적인 소비행동에 대한 눈을 갖게 된다는 얘기군요.

A: 네 그렇습니다. 우리가 ‘합리적인 판단’하면 먼저 이성적인 정보가 떠오르시겠지만, 부주의맹의 착각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는 감성의 문을 좀 더 활짝 열어 다양한 주의자극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가격이 싸니까 사고, 광고에 나오는 브랜드니까 사고, 남들이 사니까 나도 사고, 새로 나았으니까 사고, 귀찮으니까 보이는 데로 사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죠. 모두 부주의맹을 유발시킬 목적으로 숨겨놓은 마케팅함정일 수 있다는 점을 상기해야 하겠죠.

감사합니다.

---------------------------------------------

범상규 건국대 교수였습니다.
[YTN FM 94.5 '생생경제']


[저작권자(c) YTN 무단전재, 재배포 및 AI 데이터 활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