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파일] "해보기나 했어?" 정주영이 남긴 말말말

[인물파일] "해보기나 했어?" 정주영이 남긴 말말말

2015.11.25. 오후 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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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국제시장' 속 한 장면, 함께 보셨습니다.

'커다란 배를 만들겠다!' 당시로선 꽤 허무맹랑한 얘기였는데요.

이 청년은 훗날 그 원대한 꿈을 이뤘습니다.

소 판 돈 70원을 들고 세계 굴지의 기업을 일군 현대그룹 창업주, 고 정주영 명예회장의 얘기입니다.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난 정주영 회장은 사업 초기, 숱한 실패를 겪었습니다.

22살에 서울 신당동에 쌀가게 경일상회를 차렸지만, 일제가 쌀 배급제를 실시하는 통에 2년 만에 문을 닫아야 했습니다.

1940년 인수한 자동차 수리소는 한 달 만에 큰불로 공장이 다 타버렸고, 이후 일제의 기업 정비령으로 강제합병됐습니다.

1992년에는 대통령에 도전했지만 낙마했습니다.

이후 현대는 한동안 기업 전체가 휘청거릴 정도의 세무조사에 시달리기도 했습니다.

수많은 장애물을 만날 때마다 정주영 회장은 좌절하지 않았습니다.

기회의 밑거름으로 삼았습니다.

이런 칠전팔기 정신이 오늘날의 현대를 일궜습니다.

1984년 서산 간척 사업은 서산 앞바다의 험한 물살로 난관에 봉착했습니다.

기술자들도 쩔쩔매고 있을 때 정주영 회장은 급류를 대형 유조선으로 막는 아이디어를 냈습니다.

공사 기간은 36개월이나 줄었고, 비용 290억 원을 아낄 수 있었습니다.

1998년 6월, 황소 500마리를 실은 트럭 50대가 군사분계선을 넘어 북한으로 갔습니다.

역시 정주영 회장이 벌인 일이었습니다.

이후 남북 교류는 급물살을 탔고, 같은 해 11월 금강산 관광이 시작됐습니다.

아무도 해보지 못한 일, 감히 상상도 못 할 일을 정주영 회장은 해냈습니다.

"해보기나 했어?" 새로운 일을 시도할 때마다 난색을 표하는 직원들에게 정 회장은 입버릇처럼 이런 질문을 던졌습니다.

그의 앞에 '안 되는 일'이란 없었습니다.

"시련은 있지만 실패는 없다", "이봐, 해보기나 했어?"

정주영 회장의 불굴의 도전 정신을 잘 표현해주는 어록들입니다.

안팎으로 어려움에 처한 한국 경제에, 희망을 잃은 대한민국의 청년들에게, 정주영 회장은 오뚝이처럼 일어서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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