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영건설이 쏘아 올린 부실 PF 71조 시대...진짜 위험한 '21조'

태영건설이 쏘아 올린 부실 PF 71조 시대...진짜 위험한 '21조'

2024.01.10. 오전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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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영건설이 쏘아 올린 부실 PF 71조 시대...진짜 위험한 '21조'
사진출처 = YT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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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실 PF 규모 71조…"대출 상환 본격화하면 부도 직면"

무려 130조 원. 지난해 말 기준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규모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이 최근 발간한 동향 보고서를 통해 드러났다. 130조 원 가운데 브릿지론이 30조 원, 본PF는 100조 원에 이른다.

이 가운데 실제 부실 규모는 어느 정도일까? 여기서 중요한 게 바로 PF의 만기 연장 비율이다. 건산연 보고서에 따르면 만기 연장 비율은 브릿지론이 70%, 본PF는 50%가량 된다. 단순 계산하면 부실 규모는 브릿지론이 21조 원, 본PF는 50조 원으로 모두 71조 원에 이른다.

시기와 해당 취급 기관도 중요하다. 대출이 연장된 시기는 미국발 금리 인상이 한창이던 지난해 상반기이고 취급 기관은 제1금융권인 은행이 아닌 보험사와 증권사, 카드사, 새마을금고 등 제2금융권이다. 일각에서 '부실의 연장'이자 '폭탄 돌리기'라고 비판하는 이유다.

보고서를 작성한 김정주 연구위원은 "대출상환 청구가 본격화될 경우 다수의 건설사가 부도 상황에 직면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이렇게 되면 여러 사업장이 연쇄적으로 부실화하면서 많은 금융기관이 동반 부실화할 가능성이 있다. PF 만기 연장이 이뤄진 사업장이 분양 또는 매각이 안 되면 사업성 확보도 쉽지 않게 된다. 단순 계산이라 부실 규모 수치가 정확하게 일치하지 않을 수 있지만 방향성만은 유의미해 보인다.
사진출처 = 신일건설 홈페이지

가장 위험한 브릿지론 21조…'착공 전부터 부실'

부실 PF 71조 원 가운데 특히 위험한 건 바로 브릿지론이다. 전체 PF 가운데 30조 원이 브릿지론인데 이 가운데 만기 연장된 70%가량인 21조 원이 이에 해당한다. 착공 이후 1금융권인 은행에서 받는 본PF 부실보다 더 위험하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먼저 브릿지론은 본PF와 달리 부동산 개발 사업이 착공되기 전에 끌어들인 자금을 말한다. 대부분 은행이 아닌 제2금융권에서 받게 된다. 시행사는 이 자금을 토지 매입과 사업 인허가, 시공사 보증금 등에 투입한다. 본PF로 넘어가는 연결 다리 역할을 한다고 해서 브릿지론으로 불린다.

대출 기간도 대부분 짧다. 본PF는 보통 2년 이상인데 브릿지론은 1년 이내다. 부동산 사업의 실물이 없는 상황이니 고금리로 갈 수밖에 없는 구조다. 사업 타당성이 불확실하고 담보까지 부족하니 위험성이 클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 만기 연장된 브릿지론 규모만 21조 원에 이른다는 것이다.

사업 중단이 결정되면 이미 나간 브릿지론은 회수할 수 없게 된다. 이렇게 되면 금융권 부실로 확산할 수 있다. 이를 막기 위해 정부가 개입해 대출 만기 연장을 해주면 사업성은 여전히 불확실한 상황에서 위험성을 그대로 안고 가야 한다. 태영건설의 경우만 봐도 브릿지 보증 규모는 1조 2,193억 원에 이른다. 여기에 분양률이 75% 미만인 본PF 규모 1조 3,066억 원을 합하면 위험성이 큰 보증 규모는 2조 5,259억 원에 이른다. 정부나 시장에서 태영건설 위기를 심상치 않게 보는 이유다.
사진출처 = 연합뉴스

일단 '태영건설 일병' 구하기…연착륙 희망하는 정부

태영건설은 PF 부실의 본격적인 신호탄이다. 정부 입장에선 첫 단추부터 잘 끼워야 한다. 검사 출신인 이복현 금융감독원장과 강석훈 산업은행 회장, 한덕수 국무총리, 그리고 대통령실까지 나서 태영그룹을 잇따라 압박했다. 뉘앙스도 비슷했다. '자금 돌리지 말고 낼 수 있는 돈 다 내놓으라'는 얘기다.

정부는 태영그룹으로선 절대 놓고 싶지 않은 알짜 자산인 SBS 담보는 물론 그 지분을 팔아서라도 이번 위기를 넘기라는 신호를 계속해서 보냈다. 이는 태영건설뿐 아니라 다음 차례가 될 수 있는 다른 대형 건설사에 대한 간접적 압박 신호이기도 하다.

이렇게 적극 나선 이유는 정부로선 부동산 PF 문제의 경착륙만큼은 반드시 막아야 하기 때문이다. 총선이 다가올수록 더욱 절박해질 수밖에 없다. 정부는 추가적인 부실을 막기 위해 85조 원의 유동성 공급 방침까지 세웠다. 이 자금은 태영건설에만 투입되는 건 아니고 전체 건설·금융 시장 안정을 위해 쓰이게 된다.

최상목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전체 회의에서 이렇게 말했다. "유동성을 넘어 시장 전체의 신용 문제인 만큼 구조조정 등 본질적인 시장 개선을 위해서도 노력하겠다." 이른바 '질서 있는 구조조정'을 희망한다. 구조조정을 미루려 한다는 지적을 강하게 부인하며 연착륙 방안을 고민한다는 얘기다. 일단 태영건설 위기는 넘기고 보자는 인식이 강해 보인다.

부동산 PF 부실은 가계부채와 함께 현 정부가 안고 있는 최대 금융 현안이다. 태영건설 위기를 어설프게 덮고 간다면 과거 잘못된 구조조정 때처럼 시장 불안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질 수밖에 없다. 애초 총선 이후 손들고 나올 것으로 예상했던 태영건설의 시계가 석 달 정도 빨라진 배경이기도 하다. 이미 시장에선 '총선 전까지 부동산 PF 부실이 터지지 않고 관리될 것'이라는 믿음이 깨졌다. 부실 PF '71조 시대'는 이제 시작이다. 초기 주목을 많이 받는 태영건설이 어찌 보면 운이 좋은 편일 수도 있다.

YTN 이대건 (dglee@yt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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