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념90초] '호모 루덴스'의 명절

[개념90초] '호모 루덴스'의 명절

2015.02.22. 오전 0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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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모 루덴스(Homo Ludens) '노는 인간', '놀이하는 인간'이란 뜻입니다.

요한 하위징아(Johan Huizinga, 1872~1945)는 1938년에 출간한 '호모 루덴스(Homo Ludens)'에서 '놀이는 문화의 한 요소가 아니라 문화 그 자체'라고 역설한바 있습니다.

일정한 목적 달성을 위해 제약된 상황 아래 놓이는 활동은 '일'입니다.

놀이는 일상의 이해관계를 떠나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목적 없는 활동으로서 즐거움과 흥겨움을 동반하는 가장 자유롭고 해방된 인간활동입니다.

이는 육체적·정신적 활동을 전제로 하며, 특정 집단의 정서적 공감대와 그 안에서의 만족감을 이끌어내야 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놀이를 좋아합니다.

즐거움을 주기 때문이죠.

놀이의 즐거움을 이루는 요소는 다양한데요, 우선 겨루는 행위는 사람들의 적극성을 표출하게 합니다.

이는 평소에 발휘될 수 없던 자신만의 장기를 드러냄으로써 성취감은 물론, 소속집단에 자기를 인정받는 만족감을 얻게 해줍니다.

이것이 개인에서 집단으로 확대되면 사람들을 한데 아우르는 신명이 되고, 이 신명은 사람들의 공동체의식을 높여 단합을 이끌어 냅니다.

놀이는 또한 결과를 예측할 수 없는 우연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나이의 다소, 능력의 정도, 남녀의 구분 등 모든 사회적 기준을 뛰어넘어 기계적으로 평등한 상태에서 순전히 우연성의 법칙과 그 결과에 따라 성취가 주어지기 때문에, 사회적 제약과 속박으로부터 진정한 해방감을 맛보고 혹여 있을지 모를 열등의식을 보상받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듯 놀이는 개인을 넘어 참여하는 모든 이의 공감을 불러일으키고, 모든 속박으로부터의 자유이며, 일상의 이해득실을 따지지 않게 합니다.

이는 더 나아가 다시 돌아가게 될 내일의 삶을 풍요롭고 단단하게 해주는 힘이 되지요.

따라서 물질적 보상을 바라는 도박이나, 주체적 행위 없이 단순히 쉬면서 보고 즐기는 휴식은 진정한 의미에서의 놀이라 할 수 없습니다.

연휴의 끝자락입니다.

모두들 설 명절 잘 쇠셨는지요.

명절은 조상의 음덕을 기리는 것 뿐 아니라, 나와 우리를 위해 노는 날, 놀이하는 날입니다.

이를 통해 일상에서 받았던 스트레스를 풀고, 가족구성원 간의 공동체의식을 높여, 앞으로의 삶을 건실히 잇기 위한 힘을 얻게 됩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현실은 그렇지 않은 것 같습니다.

'명절증후군', '명절후유증'이라는 말이 생길 정도로 일상보다 무거운 짐이 되고, 가족의 단합이 아닌 갈등과 파국을 가져오기도 하며, 그로 인해 모두가 아닌 각자를 위한 휴식시간으로 전락해 버렸습니다.

명절의 존재 의미가 사라져버린 것입니다.

조흥윤교수는 그의 저서 '한국문화론'에서 '한국인은 전형적인 호모 루덴스다. 우리의 놀이는 일과 대비되거나 구분되는 개념으로서의 놀이가 아니다. 그것은 일과 여가와 신앙 속에서 그것들과 함께 얽히고 어우러져 즐겨지던 삶의 표현이다. 한국 민중은 놀이를 그렇게 삶의 율동으로서 익히고 생리로 가다듬어 왔다. 그것을 일러 민중의 호흡이라 하여도 좋을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우린 역사의 굴곡을 신명으로 풀어낼 줄 아는 민족이었습니다.

이 흥을 공동체의 힘으로 승화시킬 줄 아는 민족이었죠.

'호모 루덴스'의 명절, 놀이하는 우리 모두의 명절이었습니다.

지금은 어떨까요?

여러분의 명절은 어떠셨습니까?

이상엽 [sylee24@yt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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