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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영자 / 롯데장학재단 이사장 : (심경 한 말씀 해 주시죠.) 검찰에 가서 모든 사실을 다 말씀드리겠습니다. (추가적으로 밝히실 건 없으십니까?) 죄송합니다. (국민들께 하실 말씀 없습니까?) 죄송합니다.]
검찰의 칼 끝이 롯데그룹 오너 일가를 정조준 하고 있는 가운데, 신영자 롯데장학재단 이사장이 오늘 오전 검찰에 소환됐습니다.
신 이사장은 현재, 정운호 전 네이처리퍼블릭 대표의 롯데면세점 입점 로비 의혹에 연루된 혐의를 받고 있는데요.
신격호 총괄회장의 맏딸이자 신동빈 회장의 이복 누나.
롯데 오너 일가 중에 첫 번째로 소환된 신영자 이사장은 어떤 인물일까요?
신격호 총괄회장은 지난 1940년 고향인 경북 울주군 삼동면에서 고 노순화 씨를 부인으로 맞아 장녀인 신영자 이사장을 낳았습니다.
그리고 1951년 신 이사장의 어머니인 노순화 씨는 29살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납니다.
신격호 총괄회장은 장녀인 신영자 이사장이 태어나기도 전에 유학차 일본으로 건너갔는데요.
그리고 1948년 롯데그룹의 모태가 되는 일본의 롯데제과를 설립하며 자리를 잡습니다.
일본으로 떠난 아버지와 요절한 어머니.
신 이사장은 어린 시절 할아버지의 손에 자란 것으로 전해지고 있는데요.
때문에, 신 총괄회장은 어린 시절을 함께 하지 못했던 신영자 이사장에 대해 항상 미안하고 애틋한 마음을 가졌다고 전해집니다.
[차재원 / 부산 가톨릭대 교수 : 1960년대 초반에 한국으로 본격적으로 들어오는데 그때 신격호 씨가 금의환향을 하는 거죠. 그때 신격호 씨가 제일 먼저 찾은 게 딸이죠. 딸이 그때, 제가 듣기로는 신영자 씨가 초등학교 5학년, 6학년 때 때 아버지가 돌아왔다고 그럽니다. 그러니까 신격호 씨는 이런 여러 가지 사연들을 생각하면 큰딸에 대한 남다른 애정을 가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죠.]
어린 시절 아픔을 겪은 데 이어 결혼 생활도 순탄치 않았습니다.
1967년에 결혼해 1남 3녀를 뒀지만 1979년 이혼하기에 이르는데요.
개인사는 행복하지 않았던 겁니다.
신 이사장은 30대 때부터 일찌감치 롯데그룹 계열사에서 근무를 시작하게 됩니다.
1973년 롯데호텔에 처음으로 입사했고, 1979년 롯데백화점 설립 당시부터 참여하게 되죠.
1980년대 롯데백화점이 국내 제1의 백화점으로써의 명성을 떨칠 때, 신 이사장은 영업이사를 맡으며 일선 영업을 이끌었습니다.
이후 상품본부장과 총괄 부사장을 거쳐 총괄사장을 맡았는데요.
신세계 등 경쟁사보다 상대적으로 출발이 늦은 롯데가 유통업계 1위 자리에 오르는 데에는 신 이사장의 역할이 컸다고 평가되고 있습니다.
때문에, 신 이사장은 신세계그룹의 이명희 회장과 더불어 유통업계 여걸 혹은 대모로 불리며 주목을 받아왔었습니다.
유통업계의 대모로 불리기까지는 신 이사장의 성격도 한 몫 했다고 하는데요.
별로 말이 없는 편이지만 회사 운영에 관한 한 남자 못지않게 화끈한 스타일로 알려져 있습니다.
롯데그룹 유통의 역사와 함께해온 인물이란 평가를 받는 신 이사장.
신동빈 회장이 주도권을 잡아가던 2012년에는 롯데쇼핑 사장직에서 물러나 롯데복지재단 이사장으로 자리를 옮겼는데요.
그 후 최근까지 사회공헌 활동만 맡고 있었습니다.
신영자 이사장.
경영 전반에서는 물러났지만, 여전히 그룹 경영에 가장 깊숙이 개입돼 영향력을 끼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요.
총괄회장인 아버지 마음을 움직이는 힘을 가졌기 때문이라고 전해집니다.
신 이사장은 지난해 7월부터 지속 되고 있는 롯데그룹 '형제의 경영권 분쟁'에서도 장녀로서 존재감을 드러냈었죠.
지난해 7월 27일 '경영권 분쟁'의 촉발이 됐던 신 총괄회장의 일본행에 동행한 것도 신 이사장이었고, 다음 날 저녁 신 총괄회장과 함께 귀국한 사람도 신 이사장이었습니다.
특히, 이날 밤 귀국길에 취재진이 몰리면서 수많은 질문들이 나올 때 "아버지, 가만 계세요"라고 정리를 하며 이목을 끌기도 했었죠.
때문에, 경영권 분쟁에서 신 총괄회장의 뜻을 결정할 '캐스팅보트'를 신 이사장이 쥐고 있다는 이야기도 흘러나왔었습니다.
신격호 총괄회장의 애틋한 맏딸이자 한때 유통업계 대모였던 신영자 이사장.
지금은 피의자 신분으로 검찰에 소환돼 구속 여부를 걱정해야 하는 처지가 됐습니다.
[저작권자(c) YTN 무단전재, 재배포 및 AI 데이터 활용 금지]
검찰의 칼 끝이 롯데그룹 오너 일가를 정조준 하고 있는 가운데, 신영자 롯데장학재단 이사장이 오늘 오전 검찰에 소환됐습니다.
신 이사장은 현재, 정운호 전 네이처리퍼블릭 대표의 롯데면세점 입점 로비 의혹에 연루된 혐의를 받고 있는데요.
신격호 총괄회장의 맏딸이자 신동빈 회장의 이복 누나.
롯데 오너 일가 중에 첫 번째로 소환된 신영자 이사장은 어떤 인물일까요?
신격호 총괄회장은 지난 1940년 고향인 경북 울주군 삼동면에서 고 노순화 씨를 부인으로 맞아 장녀인 신영자 이사장을 낳았습니다.
그리고 1951년 신 이사장의 어머니인 노순화 씨는 29살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납니다.
신격호 총괄회장은 장녀인 신영자 이사장이 태어나기도 전에 유학차 일본으로 건너갔는데요.
그리고 1948년 롯데그룹의 모태가 되는 일본의 롯데제과를 설립하며 자리를 잡습니다.
일본으로 떠난 아버지와 요절한 어머니.
신 이사장은 어린 시절 할아버지의 손에 자란 것으로 전해지고 있는데요.
때문에, 신 총괄회장은 어린 시절을 함께 하지 못했던 신영자 이사장에 대해 항상 미안하고 애틋한 마음을 가졌다고 전해집니다.
[차재원 / 부산 가톨릭대 교수 : 1960년대 초반에 한국으로 본격적으로 들어오는데 그때 신격호 씨가 금의환향을 하는 거죠. 그때 신격호 씨가 제일 먼저 찾은 게 딸이죠. 딸이 그때, 제가 듣기로는 신영자 씨가 초등학교 5학년, 6학년 때 때 아버지가 돌아왔다고 그럽니다. 그러니까 신격호 씨는 이런 여러 가지 사연들을 생각하면 큰딸에 대한 남다른 애정을 가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죠.]
어린 시절 아픔을 겪은 데 이어 결혼 생활도 순탄치 않았습니다.
1967년에 결혼해 1남 3녀를 뒀지만 1979년 이혼하기에 이르는데요.
개인사는 행복하지 않았던 겁니다.
신 이사장은 30대 때부터 일찌감치 롯데그룹 계열사에서 근무를 시작하게 됩니다.
1973년 롯데호텔에 처음으로 입사했고, 1979년 롯데백화점 설립 당시부터 참여하게 되죠.
1980년대 롯데백화점이 국내 제1의 백화점으로써의 명성을 떨칠 때, 신 이사장은 영업이사를 맡으며 일선 영업을 이끌었습니다.
이후 상품본부장과 총괄 부사장을 거쳐 총괄사장을 맡았는데요.
신세계 등 경쟁사보다 상대적으로 출발이 늦은 롯데가 유통업계 1위 자리에 오르는 데에는 신 이사장의 역할이 컸다고 평가되고 있습니다.
때문에, 신 이사장은 신세계그룹의 이명희 회장과 더불어 유통업계 여걸 혹은 대모로 불리며 주목을 받아왔었습니다.
유통업계의 대모로 불리기까지는 신 이사장의 성격도 한 몫 했다고 하는데요.
별로 말이 없는 편이지만 회사 운영에 관한 한 남자 못지않게 화끈한 스타일로 알려져 있습니다.
롯데그룹 유통의 역사와 함께해온 인물이란 평가를 받는 신 이사장.
신동빈 회장이 주도권을 잡아가던 2012년에는 롯데쇼핑 사장직에서 물러나 롯데복지재단 이사장으로 자리를 옮겼는데요.
그 후 최근까지 사회공헌 활동만 맡고 있었습니다.
신영자 이사장.
경영 전반에서는 물러났지만, 여전히 그룹 경영에 가장 깊숙이 개입돼 영향력을 끼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요.
총괄회장인 아버지 마음을 움직이는 힘을 가졌기 때문이라고 전해집니다.
신 이사장은 지난해 7월부터 지속 되고 있는 롯데그룹 '형제의 경영권 분쟁'에서도 장녀로서 존재감을 드러냈었죠.
지난해 7월 27일 '경영권 분쟁'의 촉발이 됐던 신 총괄회장의 일본행에 동행한 것도 신 이사장이었고, 다음 날 저녁 신 총괄회장과 함께 귀국한 사람도 신 이사장이었습니다.
특히, 이날 밤 귀국길에 취재진이 몰리면서 수많은 질문들이 나올 때 "아버지, 가만 계세요"라고 정리를 하며 이목을 끌기도 했었죠.
때문에, 경영권 분쟁에서 신 총괄회장의 뜻을 결정할 '캐스팅보트'를 신 이사장이 쥐고 있다는 이야기도 흘러나왔었습니다.
신격호 총괄회장의 애틋한 맏딸이자 한때 유통업계 대모였던 신영자 이사장.
지금은 피의자 신분으로 검찰에 소환돼 구속 여부를 걱정해야 하는 처지가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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