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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재원 / 부산가톨릭대 교수, 양지열 / 변호사, 백현주 / 동아방송예술대 교수, 백기종/ 前 수서경찰서 강력팀장
[앵커]
여러분 잘 아시는 무기로비스트 린다 김 씨요. 최근 필로폰 투약 혐의로 구속됐다 이런 말씀 드린 적이 있죠. 그런데 여기에 폭행, 협박, 사기, 모욕죄까지 추가가 돼서 재판을 받게 됐다고 하는데 이건 전에 소송 걸린 것하고 같이 병합심리한다는 거죠?
[인터뷰]
충남지방경찰청에서 마약류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으로 신병 구속했거든요. 그런데 작년 12월15일 인천카지노호텔에서 투숙하고 있다가 지인, 32세 된 피해자에게 5000만 원을 빌립니다. 카지노 도박 자금으로 사용한 것이죠.
그런데 또다시 빌려달라고 했는데 그 부분에 대해서 무릎을 꿇고 빌어라 얘기가 왜 나왔냐면 빌려줄 수 없다고 하니까 뺨을 때리면서 이 부분이 사기죄 그다음 욕설한 모욕죄, 폭행, 협박죄가 수사 중이었는데 결국에는 구속이 됐기 때문에 홍성지청에 이송을 해서 거기에서 구속된 피의자를 합심해서 이송해서 한꺼번에 재판을 받도록 하는 그런 조처입니다.
[앵커]
물론 린다 김 씨 주장은 다른 측면도 있습니다마는 제가 이걸 보면서 말이에요. 백 교수님, 린다 김 씨가 생애가 굉장히 파란만장했잖아요. 그런데 예전에 배우도 하고 가수도 했고 그랬죠?
[인터뷰]
글쎄요. 스타로까지 활약을 전혀 한 적은 없고요. 그런데 일단 이분이 밝힌 바로는 70년대 고등학교 2학년 때 스카우트가 돼서 연기자 생활을 시작했다. 광고모델까지 해서.
[앵커]
지금 이게 포스터죠.
[인터뷰]
과거에 했던 건데 일단 김아라라는 말도 있고 김아영이라는 말도 있는데 그 연기자 예명으로 활동을 하면서 영화 같은 경우 한 두 편 정도 70년에 데뷔해서 찍었었고 그다음에 태평양 화장품이라고 예전에 있었거든요. 1기 전속모델로 활동했는데 그때 당시흥행이 많이 안 돼서 이슈, 요즘 말로 해서 이슈가 많이 안 됐다고 해서 연예계 생활의 맥을 이어가지 못했다 이렇게 전해지고 있는데요.
그렇게 많이 활동을 하셨으면 열심히 그쪽으로 매진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개인적으로 들어요. 연기 열심히 배우고.
[앵커]
그런데 친구 소개로 로비스트가 됐다라고 하는데 무기 로비스트로는 그래도 나름대로 꽤 성공한 거 아니겠습니까.
[인터뷰]
그렇죠. 미국에 건너가서 무기판매업자하고 개인적으로 친했다고 해요. 그래서 아마 이스라엘쪽과 무기거래도 하면서 아마 무기 조달하는 쪽으로 상당히 수완이 많이 늘게 됐는데 문민정부가 들어서고 나서, 김영삼 정부가 들어서고 나서 본격적으로 한국의 군수시장에 진출한 거죠.
당시 국방부 장관인 이양호 국방부 장관 또 앞에 금진호 상공부 장관 이런 고위직들하고 개인적인 연을 맺으면서 상당히 우리나라의 무기중개업계에 영향력을 미치고 문제는 그 영향력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일종의 뇌물을 주면서 군수 조달을 하는 과정에서 상당한 부정을 저지르게 되고 그 때문에 구속까지 되는 그런 상당한 파란만장한 삶을 살아왔던 거죠.
[인터뷰]
저는 일단 린다 김 씨 같은 경우는 글쎄 성공한 로비스트로 남는다는 말이 약간 어불성설이라는 생각이 들고요.
[앵커]
우리나라는 로비스트가 금지지만 외국 같은 경우에는 합법이니까.
[인터뷰]
왜냐하면 이분 같은 경우는 저희가 알고 있는 실체적인 부분이 거의 없었고 이미지적인 부분만 이렇다 이렇다 했지 사실 실체를 명확하게 알고 있는 사람은 없지 않습니까? 이렇게 문제가 되기 전에도 린다 김이 뜻밖에 돈이 많지가 않다. 지금 현재 갖고 있는 재정 상태가 그다지 좋지 않다 등등 왜냐하면 시행사와 관련된 사업을 하다가 돈이 풀리지 않아서 어려움이 있다더라 이런 이야기가 있는 가운데 간간이 방송 출연을 하기도 했고 근황을 알리기도 했거든요.
아무튼 끝에 필로폰 투약으로 구속되고 이러다 보니까 우리가 미디어를 통해서 보고 있는 이미지라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해서 새삼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만드는 그런 인물이 아닌가 생각을 합니다.
[앵커]
그런데 백 교수님, 질문이 하나 있는데 화장품 광고의 모델 정도로 발탁될 정도면 상당히 나름대로 주목받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그런 거 아니겠어요?
[인터뷰]
그때 70년대도 마찬가지고 80년대, 90년대 지금도 마찬가지고 가장 총망받는 신인급 혹은 아주 스타성이 있는 스타급이 아니고서는 그 모델을 할 수 없거든요. 일단 70년대, 아까 잠시 무기로비스트로 활동했을 때 그 모습 뉴스에 나왔던 모습도 보셨지만 미모가 있었던 건 분명하고요.
70년대도 예뻤으니까 연예계에 진출했겠죠. 그런데 물론 연예계 진출해서 성공한 것이 인생을 잘 사느냐, 못 사느냐 가늠할 수 있는 척도는 될 수 없었겠지만 그래도 이분이 뭔가 보여주는 것만 중심으로 살지 않았더라면 지금의 결말이 이렇게는 안 났을 텐데 하는 아쉬움은 많이 남습니다.
[인터뷰]
초반에 너무 화려한 연예계로 배우로 데뷔해 로비스트까지 가는 화려한 인생을 살다가 김영삼 정부 때 사건 이후로는 쇠락의 길을 걸었다고 볼 수밖에 없습니다. 그동안 화려하다고는 했는데 이번에 다른 게 아니라 사기 사건으로 기소된 게 5000만 원을 빌렸는데 빌릴 때부터 갚을 생각도 없고 갚을 능력이 없다는 거거든요. 검찰에서는 그래서 사기로 기소한 것 아니겠습니까.
물론 법원의 재판이 남아 있지만 검찰이 그렇게 판단했다는 것은 5000만 원이 적은 돈은 아니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린다 김이 5000만 원을 못 갚아서 사기죄로 기소돼? 그러면 우리가 잘못 알고 있었던 거고 그동안 과장됐다는 건데….
이분이 그 사람에게 돈을 빌리고 안 갚는 과정에서 폭행하고 욕설할 때 한 얘기가 뭐냐하면 "너 옛날 같으면 죽었다. 너 군인이었으면 당장 죽일 수 있다"에요. 아직도 그러니까 그때 한때의 영화에 머물러 있는 거죠. 그러다 보니까 아마도 그런 걸 스스로 견디지 못해서 결국 마약까지 하는 그런 삶이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인터뷰]
방송이지만 제가 린다 김 씨하고 직접 대화를 했던 사람이고요, 강남권에서 근무하면서. 그런데 아까 백현주 교수가 잠깐 말씀하셨지만 서초동 쪽에 큰 시행사 빌딩을 짓다가 그게 안 된 상황입니다.
그리고 그 이후에 상당히 어려움이 있는 그런 부분인데 사실 린다 김 이분도 아마 옛날에 그 영화로움에 상당히 심리적으로 생각을 많이 하면서 정체되어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이야기도 많이 듣고 있거든요.
사실 그 당시 상당히 실력자와 미국의 산타바바라의 모닝커피의 추억이라는 연서가 밝혀지기도 하면서 세간에 굉장히 회자됐던 부분들을 저도 기억하는데. 사실 이렇게 몰락하는 부분, 사실 몰락이라는 표현이 맞거든요. 나이도 63세인데 상당히 안타까운 그런 모습을 보여서 조금 그렇습니다.
[앵커]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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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여러분 잘 아시는 무기로비스트 린다 김 씨요. 최근 필로폰 투약 혐의로 구속됐다 이런 말씀 드린 적이 있죠. 그런데 여기에 폭행, 협박, 사기, 모욕죄까지 추가가 돼서 재판을 받게 됐다고 하는데 이건 전에 소송 걸린 것하고 같이 병합심리한다는 거죠?
[인터뷰]
충남지방경찰청에서 마약류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으로 신병 구속했거든요. 그런데 작년 12월15일 인천카지노호텔에서 투숙하고 있다가 지인, 32세 된 피해자에게 5000만 원을 빌립니다. 카지노 도박 자금으로 사용한 것이죠.
그런데 또다시 빌려달라고 했는데 그 부분에 대해서 무릎을 꿇고 빌어라 얘기가 왜 나왔냐면 빌려줄 수 없다고 하니까 뺨을 때리면서 이 부분이 사기죄 그다음 욕설한 모욕죄, 폭행, 협박죄가 수사 중이었는데 결국에는 구속이 됐기 때문에 홍성지청에 이송을 해서 거기에서 구속된 피의자를 합심해서 이송해서 한꺼번에 재판을 받도록 하는 그런 조처입니다.
[앵커]
물론 린다 김 씨 주장은 다른 측면도 있습니다마는 제가 이걸 보면서 말이에요. 백 교수님, 린다 김 씨가 생애가 굉장히 파란만장했잖아요. 그런데 예전에 배우도 하고 가수도 했고 그랬죠?
[인터뷰]
글쎄요. 스타로까지 활약을 전혀 한 적은 없고요. 그런데 일단 이분이 밝힌 바로는 70년대 고등학교 2학년 때 스카우트가 돼서 연기자 생활을 시작했다. 광고모델까지 해서.
[앵커]
지금 이게 포스터죠.
[인터뷰]
과거에 했던 건데 일단 김아라라는 말도 있고 김아영이라는 말도 있는데 그 연기자 예명으로 활동을 하면서 영화 같은 경우 한 두 편 정도 70년에 데뷔해서 찍었었고 그다음에 태평양 화장품이라고 예전에 있었거든요. 1기 전속모델로 활동했는데 그때 당시흥행이 많이 안 돼서 이슈, 요즘 말로 해서 이슈가 많이 안 됐다고 해서 연예계 생활의 맥을 이어가지 못했다 이렇게 전해지고 있는데요.
그렇게 많이 활동을 하셨으면 열심히 그쪽으로 매진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개인적으로 들어요. 연기 열심히 배우고.
[앵커]
그런데 친구 소개로 로비스트가 됐다라고 하는데 무기 로비스트로는 그래도 나름대로 꽤 성공한 거 아니겠습니까.
[인터뷰]
그렇죠. 미국에 건너가서 무기판매업자하고 개인적으로 친했다고 해요. 그래서 아마 이스라엘쪽과 무기거래도 하면서 아마 무기 조달하는 쪽으로 상당히 수완이 많이 늘게 됐는데 문민정부가 들어서고 나서, 김영삼 정부가 들어서고 나서 본격적으로 한국의 군수시장에 진출한 거죠.
당시 국방부 장관인 이양호 국방부 장관 또 앞에 금진호 상공부 장관 이런 고위직들하고 개인적인 연을 맺으면서 상당히 우리나라의 무기중개업계에 영향력을 미치고 문제는 그 영향력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일종의 뇌물을 주면서 군수 조달을 하는 과정에서 상당한 부정을 저지르게 되고 그 때문에 구속까지 되는 그런 상당한 파란만장한 삶을 살아왔던 거죠.
[인터뷰]
저는 일단 린다 김 씨 같은 경우는 글쎄 성공한 로비스트로 남는다는 말이 약간 어불성설이라는 생각이 들고요.
[앵커]
우리나라는 로비스트가 금지지만 외국 같은 경우에는 합법이니까.
[인터뷰]
왜냐하면 이분 같은 경우는 저희가 알고 있는 실체적인 부분이 거의 없었고 이미지적인 부분만 이렇다 이렇다 했지 사실 실체를 명확하게 알고 있는 사람은 없지 않습니까? 이렇게 문제가 되기 전에도 린다 김이 뜻밖에 돈이 많지가 않다. 지금 현재 갖고 있는 재정 상태가 그다지 좋지 않다 등등 왜냐하면 시행사와 관련된 사업을 하다가 돈이 풀리지 않아서 어려움이 있다더라 이런 이야기가 있는 가운데 간간이 방송 출연을 하기도 했고 근황을 알리기도 했거든요.
아무튼 끝에 필로폰 투약으로 구속되고 이러다 보니까 우리가 미디어를 통해서 보고 있는 이미지라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해서 새삼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만드는 그런 인물이 아닌가 생각을 합니다.
[앵커]
그런데 백 교수님, 질문이 하나 있는데 화장품 광고의 모델 정도로 발탁될 정도면 상당히 나름대로 주목받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그런 거 아니겠어요?
[인터뷰]
그때 70년대도 마찬가지고 80년대, 90년대 지금도 마찬가지고 가장 총망받는 신인급 혹은 아주 스타성이 있는 스타급이 아니고서는 그 모델을 할 수 없거든요. 일단 70년대, 아까 잠시 무기로비스트로 활동했을 때 그 모습 뉴스에 나왔던 모습도 보셨지만 미모가 있었던 건 분명하고요.
70년대도 예뻤으니까 연예계에 진출했겠죠. 그런데 물론 연예계 진출해서 성공한 것이 인생을 잘 사느냐, 못 사느냐 가늠할 수 있는 척도는 될 수 없었겠지만 그래도 이분이 뭔가 보여주는 것만 중심으로 살지 않았더라면 지금의 결말이 이렇게는 안 났을 텐데 하는 아쉬움은 많이 남습니다.
[인터뷰]
초반에 너무 화려한 연예계로 배우로 데뷔해 로비스트까지 가는 화려한 인생을 살다가 김영삼 정부 때 사건 이후로는 쇠락의 길을 걸었다고 볼 수밖에 없습니다. 그동안 화려하다고는 했는데 이번에 다른 게 아니라 사기 사건으로 기소된 게 5000만 원을 빌렸는데 빌릴 때부터 갚을 생각도 없고 갚을 능력이 없다는 거거든요. 검찰에서는 그래서 사기로 기소한 것 아니겠습니까.
물론 법원의 재판이 남아 있지만 검찰이 그렇게 판단했다는 것은 5000만 원이 적은 돈은 아니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린다 김이 5000만 원을 못 갚아서 사기죄로 기소돼? 그러면 우리가 잘못 알고 있었던 거고 그동안 과장됐다는 건데….
이분이 그 사람에게 돈을 빌리고 안 갚는 과정에서 폭행하고 욕설할 때 한 얘기가 뭐냐하면 "너 옛날 같으면 죽었다. 너 군인이었으면 당장 죽일 수 있다"에요. 아직도 그러니까 그때 한때의 영화에 머물러 있는 거죠. 그러다 보니까 아마도 그런 걸 스스로 견디지 못해서 결국 마약까지 하는 그런 삶이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인터뷰]
방송이지만 제가 린다 김 씨하고 직접 대화를 했던 사람이고요, 강남권에서 근무하면서. 그런데 아까 백현주 교수가 잠깐 말씀하셨지만 서초동 쪽에 큰 시행사 빌딩을 짓다가 그게 안 된 상황입니다.
그리고 그 이후에 상당히 어려움이 있는 그런 부분인데 사실 린다 김 이분도 아마 옛날에 그 영화로움에 상당히 심리적으로 생각을 많이 하면서 정체되어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이야기도 많이 듣고 있거든요.
사실 그 당시 상당히 실력자와 미국의 산타바바라의 모닝커피의 추억이라는 연서가 밝혀지기도 하면서 세간에 굉장히 회자됐던 부분들을 저도 기억하는데. 사실 이렇게 몰락하는 부분, 사실 몰락이라는 표현이 맞거든요. 나이도 63세인데 상당히 안타까운 그런 모습을 보여서 조금 그렇습니다.
[앵커]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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