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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불리는 지금의 비선 실세 논란은 1972년 불거진 미국의 워터게이트 사건을 떠올리게 합니다. 워터게이트 사건이란 1972년 6월 미국의 닉슨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하기 위해 상대편인 민주당 전국위원회 본부에 도청장치를 설치한 후 이를 회수하려다 발각된 사건입니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워터게이트 사건 자체는 1972년에 불거졌지만 닉슨 대통령은 1974년에 사임했고, 2년이라는 시간 동안 여러 주체가 진실을 밝히기 위해 노력했다는 점입니다.
혼란한 시국에 살고 있는 지금, 미국 워터게이트 사건을 통해 앞으로 흘러갈 방향을 가늠해볼 수 있을 겁니다.
워터게이트 사건과의 평행이론
1. 처음엔 누구나 이 일이 '단순절도' 사건이라 생각했다. 이 사건에 대한 수사가 진행되는 중에도 닉슨 대통령은 압도적 지지로 재선에 성공했다. 하지만 의심은 계속됐다. 급기야 워싱턴포스트(WP)는 "닉슨의 재선을 위해 대규모 스파이작전을 펼친 정황이 포착됐다"는 보도를 냈다.
한겨레, JTBC, 티비조선 등의 보도로 인해 최순실 씨의 단순비리 의혹은 국정농단이란 타이틀을 얻었다. 2014년 처음 '문고리 3인방'에 대한 보도가 있은 직후 여러 언론이 매달린 성과였다.
2. 거물급 변호사들이 단순절도범들을 변호했다. 괴한의 수첩에는 백악관 보좌관의 전화번호가 적혀있었다. 수사과정에서 이들은 CIA 요원이었고 이미 설치했던 도청장치를 교체하려고 침입했던 것이 밝혀졌다. 각종 의혹이 일자 백악관 비서진은 '자기들이 저지른 일'이라며 꼬리 자르기에 나섰다.
20년 전 공안검사로 활동한 이경재 변호사가 최순실 씨의 변호를 맡았다. 태블릿PC에 저장된 다수의 대외비 문건 작성자 ID는 정호성 전 비서관의 것이었다. 검찰에 구속된 안종범 전 수석은 "자신이 대통령 잘못 보필한 책임을 모두 지겠다"고 전했다.
3. 백악관측은 사건을 맡은 특별검사를 해임시키기 위해 법무부 장차관을 압박했다. 또한 대화 녹음자료를 제출하라는 청문회의 요구를 '국가안보'를 이유로 거절했다. 닉슨 대통령은 기자회견을 열어 "자신은 사기꾼이 아니다"라고 말했지만 전국민적인 패러디만 낳았다.
정유라 씨의 승마대회를 둘러싼 시비를 조사했던 진재수 전 체육정책과장은 박근혜 대통령이 '나쁜 사람'이라고 지칭해 좌천됐다. 청와대는 압수수색을 거부하며 임의로 자료를 제출했다. 지난 4일 있었던 박근혜 대통령의 담화는 다량의 패러디를 양산 중이다.
'ㅇㅇㅇ게이트'를 해결하려는 우리의 자세
2년간 미국 워터게이트사건 해결에 여러 주체가 참여했습니다. 시민들은 시위 등을 통해 꾸준한 관심을 드러냈습니다. 미 상원에선 특별위원회를 설치해 1년여간 청문회를 진행했고 하원 법사위원회에선 탄핵소추안을 가결했습니다.
익명의 제보자였던 'deep throat'를 비롯한 여러 내부고발자가 나타나는 한편 대법원이 '대통령의 권한과 특권이 국민의 알 권리보다 우위에 있을 수 없다'는 판례를 남겼습니다.
또한 워터게이트 '이후'를 준비하는 자세도 잊지 않았습니다. 국회는 회계공개법(Financial Disclosure Act)을 제정해 대통령을 포함한 백악관 관계자들이 의무적으로 자금 이용내역을 공개하게 만들었습니다.
현재 검찰청의 내부규정으로 연방항소법원의 추천을 받아 검찰총장이 특별검사를 임명해 대통령에 대한 수사를 진행하는 체계가 형성된 상태입니다.
지난 토요일(5일) 광화문에는 10만이 넘는 인파가 몰렸습니다. 어느 때보다도 시민들의 분노가 두드러진 주말이었습니다. '워터게이트 사건'에서 알 수 있듯 정치적 부정부패 스캔들은 결코 쉬이 해결되지 않습니다. '지금'만큼이나 '앞으로'가 중요합니다.
한 네티즌의 말처럼 우리는 '한국 민주주의라는 시험' 앞에 서있는지도 모릅니다. '미국식 민주주의를 확립'했다고 평가받는 워터게이트 사건의 결말처럼 앞으로의 검찰 수사와 국회의 대처, 시민들의 관심과 언론의 노력도 필요한 부분입니다.
YTN PLUS 김지윤 모바일 PD
(kimjy827@ytnplus.co.kr)
[사진 출처 = AP, Facebook, 헤럴드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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