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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이른바 최순실 국정농단이 드러나며 정권 몰락의 위기까지 맞았지만 박근혜 정권이 흔들리게 된 것은 국민과의 불통 때문이었다는 분석이 지배적입니다.
국민과의 소통을 외면한 지난 4년을 홍상희 기자가 정리했습니다.
[기자]
2014년 10월 29일 국회 본청 앞은 세월호 유가족들의 절규로 가득 찼습니다.
박 대통령이 시정연설을 위해 국회로 들어가는 동안 바로 앞의 유가족을 두고 단 한 번도 눈길을 주지 않았기 때문이었는데요.
시정연설이 끝나고 나올 때도 대통령은 끝끝내 귀를 닫았습니다.
[국회 세월호 유가족들 시위 : 대통령님 여기 좀 봐주세요. 대통령님! 대통령님!]
자식을 허망하게 잃은 이들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말입니다.
대통령이 듣지 않은 것은 세월호 유가족의 절규 뿐 만이 아니었습니다.
중국과 러시아의 우려 속에서 강행한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사드의 경북 성주 배치가 최종 결정되기까지 성주 지역주민은 물론 국민 대다수가 강하게 반발했지만 역시 통하지 않았습니다.
['사드 반대' 성주군민 대규모 상격 집회 : 사드배치 결사반대! 결사반대! 결사반대!]
그리고, 또 다른 불통이 불러온 분노.
우리에겐 해결되지 않은 아픈 역사가 있습니다.
아직도 전쟁 속에 살고 있는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
그런 할머니들에게 2015년 12월 28일은 악몽 같았습니다.
이른바 12.28 한일 위안부 합의.
생존자 39명만이 남아있는 위안부 할머니 피해 당사자의 동의 없이 일본 정부로부터 10억 엔을 받기로 하고 일방적으로 결정한 겁니다.
[이옥선 할머니 : 그 합의가 완전히 잘못된 합의지. 합의 그렇게 하는 합의가 어디 있어. 원래는 정부에서 우린 모른다, 가라.. 피해자한테 가라.. 그래야 원칙이고 옳지. 돈 받아먹고 할머니들 팔아먹은 거지 피해자가 철저히 배제된 합의로 국민들의 공분을 샀습니다.]
박 대통령이 탄핵 정국 속에서 35일 만의 외출로 이목을 집중시켰던 대구 서문시장.
정치적 고향이었던 대구, 그 중에서도 정치적 위기 때마다 든든한 지원군이 돼 줬던 건 서문시장 상인들이었습니다.
화마가 휩쓸고 간 서문시장 상인들에게 이번엔 대통령이 위로해줄 차례였습니다.
그러나, 결과는 위로 방문이 아닌 10분 방문.
[영상 자료 : 우리 화재민들의 고충을 알고 대화를 들어보고 뭘 도와줄 것이냐 이야기를 한번은 하고 가셔야 하는것 아닙니까. 대화 한마디 안하시고 시찰입니까 이게.]
그렇다면, 대통령이 전 국민에게 국정을 설명하는 통로였던 기자회견은 어땠을까, 대통령에 취임한 이후 316일 만인 2014년 1월 6일 첫 기자회견이 열리고 지금까지 공식 기자회견은 신년기자회견 두 차례였습니다.
2016년 10월, 최순실 국정농단 사실이 세상에 드러난 이후 다시 세 차례 대국민 담화를 발표했지만 기자들의 질문조차 받지 않았습니다.
[박근혜 대통령 (3차 대국민 담화 발표) : (대통령님, 질문있습니다.) 가까운 시일 안에 여러 가지 경위에 대해서 소상히 말씀 드리겠고…]
얼마 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후보 청문회가 열린 국회에서는 깜짝 놀랄 만한 발언이 논란이 됐습니다.
부처 장관 18명은 물론 정무수석 마저 지난 임기동안 대통령을 만나 대면보고 하지 못했고
[조윤선 / 문체부 장관 : 독대한 적은 없습니다. 전화 통화를 한 적은 있어도 독대를 한 적은 없는 것으로…]
국민과 소통하지 않았던 대통령은 국정을 운영하는 데 가장 긴밀히 접촉해야 했던 국무위원과의 소통 스스로 차단했던 겁니다.
[청와대 박근혜 대통령 2015 신년 기자회견 : 사실은 옛날에는 대면보고만 해야 되지 않습니까? 전화도 없고, e-메일도 없고, 지금은 여러 가지 그런 것이 있어서 그렇게 중요하다고 생각하시면 대면보고를 조금 더 늘려나가는 방향으로 하겠습니다마는 그게 필요하다고 생각하세요? ]
국무위원과의 대면보고를 기피하는 대통령. 과연 국정 운영에는 문제가 없는 걸까.
[송민순 / 전 외교통상부 장관 : 장관 또 수석비서관 이런 보좌관들과 충분한 대화를 갖는 것이 국정운영의 기본이고요. 그렇게 해야 의사 결정 과정이나 신속대응 하는데 있어서 탄력성이 생깁니다. 외교안보사항을 한 번 보십시오. 한번 결정하면 돌이킬 수 가 없습니다. 이건 굉장히 신중하게 결정해야 되거든요. 국민의 동참이나 지지가 없는 외교는 강대국에 둘러쌓여 있는 한국으로서는 더 힘을 못 내는 거거든요. 그런 면에서 소통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대면보고를 기피했던 대통령은 세월호 참사 당일에도 개인 공간인 청와대 관저에 머물렀고, 본관 집무 실로 출근한 것도 임기의 절반에 그쳤다는 진술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그런 대통령이 유일하게 소통했 던 사람이 있기는 했습니다.
바로 국정농단의 장본인인 최순실 씨.
대통령은 40년 지기인 최 씨와 국정 정책 자료와 각종 연설문을 공유하고 조언을 듣고, 그의 말을 따른 것으로 밝혀지고 있습니다.
서울 광화문광장에 촛불이 켜졌습니다.
2만개로 시작한 촛불은 광화문을 채워나갔고, 청와대 100미터 앞까지 거대한 물결을 이루며 다가섰습니다.
광장으로 나온 국민들은 불통(不通)의 상징인 차벽을 꽃 벽으로 바꿔 놓고 대통령과의 마지막 소통을 기대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 청와대 답변 : 최순실과 친분이 있다는 이유로 최순실의 행위에 대한 모든 책임을 피청구인의 헌법상 책임으로 구성하는 것은 헌법상 연좌제 금지 조항 정신과 자기 책임 원칙에 위배]
그러나 탄핵심판을 앞둔 대통령은 여전히 국민의 외침은 외면한 채 자신만의 생각과 논리로 맞서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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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바 최순실 국정농단이 드러나며 정권 몰락의 위기까지 맞았지만 박근혜 정권이 흔들리게 된 것은 국민과의 불통 때문이었다는 분석이 지배적입니다.
국민과의 소통을 외면한 지난 4년을 홍상희 기자가 정리했습니다.
[기자]
2014년 10월 29일 국회 본청 앞은 세월호 유가족들의 절규로 가득 찼습니다.
박 대통령이 시정연설을 위해 국회로 들어가는 동안 바로 앞의 유가족을 두고 단 한 번도 눈길을 주지 않았기 때문이었는데요.
시정연설이 끝나고 나올 때도 대통령은 끝끝내 귀를 닫았습니다.
[국회 세월호 유가족들 시위 : 대통령님 여기 좀 봐주세요. 대통령님! 대통령님!]
자식을 허망하게 잃은 이들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말입니다.
대통령이 듣지 않은 것은 세월호 유가족의 절규 뿐 만이 아니었습니다.
중국과 러시아의 우려 속에서 강행한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사드의 경북 성주 배치가 최종 결정되기까지 성주 지역주민은 물론 국민 대다수가 강하게 반발했지만 역시 통하지 않았습니다.
['사드 반대' 성주군민 대규모 상격 집회 : 사드배치 결사반대! 결사반대! 결사반대!]
그리고, 또 다른 불통이 불러온 분노.
우리에겐 해결되지 않은 아픈 역사가 있습니다.
아직도 전쟁 속에 살고 있는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
그런 할머니들에게 2015년 12월 28일은 악몽 같았습니다.
이른바 12.28 한일 위안부 합의.
생존자 39명만이 남아있는 위안부 할머니 피해 당사자의 동의 없이 일본 정부로부터 10억 엔을 받기로 하고 일방적으로 결정한 겁니다.
[이옥선 할머니 : 그 합의가 완전히 잘못된 합의지. 합의 그렇게 하는 합의가 어디 있어. 원래는 정부에서 우린 모른다, 가라.. 피해자한테 가라.. 그래야 원칙이고 옳지. 돈 받아먹고 할머니들 팔아먹은 거지 피해자가 철저히 배제된 합의로 국민들의 공분을 샀습니다.]
박 대통령이 탄핵 정국 속에서 35일 만의 외출로 이목을 집중시켰던 대구 서문시장.
정치적 고향이었던 대구, 그 중에서도 정치적 위기 때마다 든든한 지원군이 돼 줬던 건 서문시장 상인들이었습니다.
화마가 휩쓸고 간 서문시장 상인들에게 이번엔 대통령이 위로해줄 차례였습니다.
그러나, 결과는 위로 방문이 아닌 10분 방문.
[영상 자료 : 우리 화재민들의 고충을 알고 대화를 들어보고 뭘 도와줄 것이냐 이야기를 한번은 하고 가셔야 하는것 아닙니까. 대화 한마디 안하시고 시찰입니까 이게.]
그렇다면, 대통령이 전 국민에게 국정을 설명하는 통로였던 기자회견은 어땠을까, 대통령에 취임한 이후 316일 만인 2014년 1월 6일 첫 기자회견이 열리고 지금까지 공식 기자회견은 신년기자회견 두 차례였습니다.
2016년 10월, 최순실 국정농단 사실이 세상에 드러난 이후 다시 세 차례 대국민 담화를 발표했지만 기자들의 질문조차 받지 않았습니다.
[박근혜 대통령 (3차 대국민 담화 발표) : (대통령님, 질문있습니다.) 가까운 시일 안에 여러 가지 경위에 대해서 소상히 말씀 드리겠고…]
얼마 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후보 청문회가 열린 국회에서는 깜짝 놀랄 만한 발언이 논란이 됐습니다.
부처 장관 18명은 물론 정무수석 마저 지난 임기동안 대통령을 만나 대면보고 하지 못했고
[조윤선 / 문체부 장관 : 독대한 적은 없습니다. 전화 통화를 한 적은 있어도 독대를 한 적은 없는 것으로…]
국민과 소통하지 않았던 대통령은 국정을 운영하는 데 가장 긴밀히 접촉해야 했던 국무위원과의 소통 스스로 차단했던 겁니다.
[청와대 박근혜 대통령 2015 신년 기자회견 : 사실은 옛날에는 대면보고만 해야 되지 않습니까? 전화도 없고, e-메일도 없고, 지금은 여러 가지 그런 것이 있어서 그렇게 중요하다고 생각하시면 대면보고를 조금 더 늘려나가는 방향으로 하겠습니다마는 그게 필요하다고 생각하세요? ]
국무위원과의 대면보고를 기피하는 대통령. 과연 국정 운영에는 문제가 없는 걸까.
[송민순 / 전 외교통상부 장관 : 장관 또 수석비서관 이런 보좌관들과 충분한 대화를 갖는 것이 국정운영의 기본이고요. 그렇게 해야 의사 결정 과정이나 신속대응 하는데 있어서 탄력성이 생깁니다. 외교안보사항을 한 번 보십시오. 한번 결정하면 돌이킬 수 가 없습니다. 이건 굉장히 신중하게 결정해야 되거든요. 국민의 동참이나 지지가 없는 외교는 강대국에 둘러쌓여 있는 한국으로서는 더 힘을 못 내는 거거든요. 그런 면에서 소통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대면보고를 기피했던 대통령은 세월호 참사 당일에도 개인 공간인 청와대 관저에 머물렀고, 본관 집무 실로 출근한 것도 임기의 절반에 그쳤다는 진술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그런 대통령이 유일하게 소통했 던 사람이 있기는 했습니다.
바로 국정농단의 장본인인 최순실 씨.
대통령은 40년 지기인 최 씨와 국정 정책 자료와 각종 연설문을 공유하고 조언을 듣고, 그의 말을 따른 것으로 밝혀지고 있습니다.
서울 광화문광장에 촛불이 켜졌습니다.
2만개로 시작한 촛불은 광화문을 채워나갔고, 청와대 100미터 앞까지 거대한 물결을 이루며 다가섰습니다.
광장으로 나온 국민들은 불통(不通)의 상징인 차벽을 꽃 벽으로 바꿔 놓고 대통령과의 마지막 소통을 기대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 청와대 답변 : 최순실과 친분이 있다는 이유로 최순실의 행위에 대한 모든 책임을 피청구인의 헌법상 책임으로 구성하는 것은 헌법상 연좌제 금지 조항 정신과 자기 책임 원칙에 위배]
그러나 탄핵심판을 앞둔 대통령은 여전히 국민의 외침은 외면한 채 자신만의 생각과 논리로 맞서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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