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보니 시리즈 36] '민토'가 아직도 있다고?...공간과 추억을 파는 곳

[해보니 시리즈 36] '민토'가 아직도 있다고?...공간과 추억을 파는 곳

2018.06.30. 오전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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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이제는 사라진 추억의 체인점'이라는 게시물을 봤다. 이 게시물에는 90년대 초반 ~ 2000년대 중반까지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었지만, 지금은 찾기 힘들어진 체인점 가게가 나열되어 있었다. 그네와 눈꽃 빙수, 생크림과 토스트 무한리필을 떠올리게 하는 캔모아부터 요거트 아이스크림의 열풍을 일으킨 레드망고, 크라운베이커리까지 이제는 몇 곳 남지 않거나 추억 속으로 사라진 곳들이었다.

그 가운데 가장 많은 추억이 담긴 곳이자 나의 첫 스터디 카페였던 '민들레 영토'가 눈길을 사로잡았다. 일명 '민토'라고 불렸던 민들레영토는 카페지만 공간이 분리돼 세미나실로 사용할 수 있는 공간이었다. 그리고 '문화비' 5천 원을 내면 민토를 대표하는 이슬차를 무한리필로 마시고, 스낵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어 학생들 사이에선 나름 '힙한' 공간으로 꼽혔던 곳이다.

스타벅스와 어깨를 나란히 하며 전국에 수십 개의 체인점이 있던 민토는 어느새 한 자릿수로 서울에는 종로점, 경희대점 2곳이 남아있었다. 그렇게 나는 두 곳 가운데 지금도 예전 운영 방식을 최대한 고수하고 있다는 종로점을 방문해 보기로 했다.

'우리 사랑은 불장난~~'

종로2가 한복판에서 오랜만에 마주한 민토는 왠지 어울리지 않는 걸그룹 '블랙핑크' 음악을 튼 채 굳건히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예전과 너무 그대로인 외관과 같이 내부도 거의 변하지 않은 모습을 그대로 지키고 있었다.

카페 이용 방법이 적혀 있는 안내문과 현재는 스터디룸이라고 불리는 민토의 방들, 카페 한편에 있는 프린터기까지 오랜 시간 눈치 보지 않고 머물던 바로 그 공간이 시간여행 중인 듯 그 자리에 있었다.

하지만 민토 특유의 복장을 하고 손님을 맞던 훈남·훈녀 아르바이트생과 바글바글하던 고등학생·대학생 친구들은 찾아볼 수 없었다. 대신 추억을 안고 이곳을 찾은 것 같은 중년 손님들과 인자한 미소를 머금은 사장님이 나를 반겼다.

"어서 오세요. 예약하셨나요?"

맞다. 민토는 항상 예약해야 했다. 여러 명이 한 공간을 빌려 기본 3시간이라는 시간을 눈치 안 보고 사용할 수 있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다행히 방이 있어 'LOVE'(사랑)라고 적힌 곳에 자리를 잡았다. 메뉴판을 보니 5천 원이었던 문화비는 6천 원으로 바뀌어 있었으며, 여전히 무한 음료와 간식을 제공하고 있었다.

오랜만에 만난 민들레영토이기에 무리하기로 했다. 문화비가 포함된 식사메뉴 중 가장 그리웠던 민토의 치즈 오븐 떡볶이와 사장님이 추천한 치즈 포크커틀렛을 주문했다. 떡국 떡을 한가득 치즈에 품은 치즈 오븐 떡볶이는 민토를 기억하고 있는 사람들의 마음속 1위다웠다. 매콤하고 달고 쫀득하고 스터디랍시고 모였다가, 먹기만 했던 학창시절 그날이 떠오르는 맛이었다.

맛도 모습도 너무 그대로였기에, 민토의 전성기 시절부터 지금까지의 이야기가 너무 궁금했다. 결국, 예전만큼 아르바이트생이 많지 않아 바쁜 사장님을 잠시 모시고 인터뷰를 진행했다.

[민들레영토 종로점 이상호 사장 인터뷰]

- 종로점 민토는 언제부터 운영하셨나?

민토가 94년에 신촌에서 시작했고, 여기 종로는 2002년도에 열었다. 16년째 민토 콘셉트를 유지하고 있는 곳이다. 서울에서 5~6번째로 오픈된 지점이다.

- 과거와 현재 주 고객층이 어떻게 달라졌나?

민토가 북적였던 그 당시 대학생이 지금 중년이 되었다. 그때를 추억하거나 중년 이후에 자아실현을 위해 시나 글 등 취미 생활 하는 분들이 모임 장소로 많이 이용하신다. 10년~20년 전의 고객이 계속 찾아주고 계신 거다. 예전에는 대학생들로 붐비던 이곳을 지금 대학생들은 잘 모른다. 예전 고객들의 예약과 단골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다.

- 민토를 상징하는 아르바이트생들의 옷차림이 있었다. 마치 알프스 소녀 하이디를 연상시키는 레드 원피스에, 웨이터 복장의 남자 직원들 왜 현재는 유지하고 있지 않나?

예전에는 아르바이트생도 많았고, 한 지점에 15~20명이 근무를 했다. 그런데 지금은 2~3명밖에 안 되니까. 유니폼을 엄청나게 부담스러워한다. 눈에 띄는 게 좀 그런 것 같다. 여러 명이 있을 때는 묻어갔는데, 너무 혼자 툭 튀니까 부담스러운 것 같다. 개그 프로에 나오는 복장이라고 생각하기도 하더라.

- 여전히 민토를 훈훈한 아르바이트생이 있는 곳이라고 기억하는 이들이 많다. 소문처럼 민토 아르바이트생 합격 1순위는 외모였나?

예쁘고 잘생긴 알바만 구한 건 아니었다. (대부분 사람들에게) 외모로만 (아르바이트생을) 본다는 생각이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았다. 그 당시에 민토가 대세 아르바이트였기 때문에 그랬던 것 같다. 그땐 승무원 지원 시 민토 아르바이트가 도움이 됐다고도 들었다. 기내와 거의 비슷한 행태로 서비스를 하기 때문에 승무원 지망생들도 꽤 있었다. 또 연예계 진출한 친구들도 있다고 들었다. 민토에 대한 좋은 이미지 때문에 생긴 이야기라고 생각하고 있다.

- 문화비를 내고 3시간의 시간제한을 두는 제도는 같나?

3시간 제한, 추가 요금 등 예전과 같은 제도를 유지하고 있다. 문화비 6천 원을 내면 민토차, 체리 콕을 포함한 다양한 음료가 무한리필로 이용할 수 있다. 가끔 예전 기억 때문에 라면을 찾으시는 분들이 있다. 하지만 지금은 라면을 못 드린다. 라면이 몇천 원대라서 이 가격에 그걸 서비스로 드리기는 어렵다. 대신 간단한 스낵으로 변경한 상태다.

- 여전히 민토 쿠폰도 발급해주시나?

쿠폰도 그때 그 종이에 그대로 하고 있다. 할인 폭만 조금 바뀐 상태다. 재밌는 거는 2000년도에 받은 쿠폰을 최근에 가져온 손님도 계셨다. 정말 감동적이었다. 어떻게 찾았냐고 물으니 책 정리하다가 찾았다고 하더라. 그래서 쿠폰을 찾은 김에 방문하셨다고 했다. 너무너무 귀한 걸 가지고 방문해 주셨다고 생각했다.

- 사장님이 여전히 추천하고 싶은 민토만의 메뉴가 있다면?

추천하고 싶은 메뉴 베스트 1위는 치즈 오븐 떡볶이다. 그리고 볶음밥, 돈가스도 여전히 잘 나간다. 요즘 주 고객인 중년분들이 좋아하는 메뉴는 까르보나라다. 부드럽고 고소하다고 좋아들 하신다. 치즈 오븐 떡볶이를 먹기 위해서 천안, 광주, 제주도에서 올라오는 분들도 있다. 여전히 인기 있는 치즈 오븐 떡볶이, 돈가스, 볶음밥 종류는 20년 전 레시피 그대로다.

- 학창시절 추억 때문에 민토를 찾는 손님들이 많나? 기억에 남는 손님이 있다면?

과거 민토 연인석에서 데이트하시다가 결혼하신 손님이 계셨다. 민토를 잊고 있다가 지나가던 길에 보여서 가게에 들어오셨다더라. 그러면서 애를 데리고 왔더라. ‘우리 딸이에요.’라고 해서 많이 놀랐다. 15~16년 만에 오신 손님이었다.

또 미국에 거주하는 한 손님은 한국에 오실 때마다 들러주신다. 무조건 한 자리만 예약하시는데 그 자리에서 처음 소개팅해서 배우자를 만났고 결혼을 했고 해외에 살지만, 한국에 오면 공항에서 바로 민토에 오신다고 하더라. 정말 감사하다.

- 민토하면 골든 리트리버가 생각난다. 종로 민토에도 있었던 걸로 아는데, 근황을 알 수 있나?

작년에 무지개다리를 건넜다. 18년을 살았다. 노년에는 가게가 아닌 우리 집에서 행복하게 잘 살았다. 집에서 노년까지 제가 안내해 드렸다. 지금은 양평 묘지에 잘 있다.

- 한 블로그에서 종로점에 애견동반이 가능하다는 글을 봤다. 사실인가?

애견 동반이 가능하다. 보시다시피 문을 닫을 수 있으니 강아지, 새 등이 방문했다. 새 같은 경우 완전 난장판을 해놓고 가지만 정리만 하면 되니까 방문할 수 있다. 민토는 문이 있고 자리가 나뉘어 있기 때문에 그런 의미에서 애견 동반이 가능한 거다.

- 점점 추억 속으로 사라져가는 민들레영토를 보면 어떤 생각이 드시나?

새끼들을 잃었을 때 얼마나 아프겠냐. 그래서 저는 운영이 어렵지만 좀 미련 같기도 하지만 이렇게 계속 운영하면서 가치 부여를 어떻게 하느냐가 살아있는 의미인 거 같다는 생각을 했다. 누군 기록으로 남기고 영상으로 남기고 하는데 단순히 추억의 공간이 아니라, 열정을 되살리는 그런 모습들. 과거지향이 아니라 미래를 만지기 위해서 미래를 긍정적으로 오픈해줄 수 있는 게 민토 카페의 장이 아닌가 생각이 든다. 물리적으로 아픔이 컸지만, 대한민국의 카페 문화 한 부분을 남긴 것 같아 의미가 남다르다.

- 잊지 않고 민토를 찾아주는 손님들에게 하고싶은 말씀이 있으신가?

개인적으로 추억 때문에 찾아 주시는 분들이 너무 감사하고 고맙다. 지나가다가 너무 반가워서 들렀다는 분들도 있고, 비행기를 타고 기차를 타고 멀리서 일부러 찾아주시는 분들도 있다. 어떤 손님은 우리 카페를 ‘카페 문화재’라고 칭하기까지 하더라. 비즈니스를 떠나 사명감이 생기는 이유다.

"여기 민들레영토 쿠폰이요"

계산을 하고 나가려는데, 사장님께서 쿠폰 하나를 건넸다. 쿠폰에는 따뜻한 글귀와 함께 사용 방법이 적혀 있었다. 민토의 추억이 담긴 인테리어와 여전한 레시피로 요리되고 있는 치즈오븐떡볶이처럼 그때 그 시절에 머문 쿠폰이었다. “최근에 2000년대 쿠폰을 가지고 방문한 손님도 있었어요”라고 말하는 사장님. 이제는 몇 곳 남지 않은 민토지만, 쿠폰 그리고 음식, 장소가 과거를 추억하고 현재와 이어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과거의 추억을 현재에도 느낄 수 있는 민토. 추억 속으로 사라지기보단, 오랜 시간 우리 곁에 머물길 바란다.

YTN PLUS 이은비 기자
(eunbi@ytnplu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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