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통] 미쓰비시 피해자 승소, 배상까진 험로?

[뉴스통] 미쓰비시 피해자 승소, 배상까진 험로?

2018.11.29. 오후 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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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행 : 이광연 앵커
■ 출연 : 강신업 변호사

[앵커]
대법원이 일제강점기 전범기업인 미쓰비시중공업에게 근로정신대 피해자와 강제징용 피해자에게 피해자들에게 배상을 하라고 판결을 확정했습니다. 기쁘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다. 피해자들은 승소 이후 많은 의미를 담은 이런 말을 남기기도 했는데요.

이 말처럼 결과는 반길 만하지만 손해배상을 실제로 받기까지는 남아 있는 과제도 많이 있습니다. 관련 내용 강신업 변호사와 함께 짚어보도록 하겠습니다. 변호사님.

[강신업]
안녕하십니까?

[앵커]
오늘 나온 판결이 두 가지 갈래가 있잖아요. 먼저 근로정신대 피해 소송, 이 사건도 지난 2008년에 일본에서는 패소했던 사건이었고 국내에서도 대법원에 왔다가 다시 또 파기환송되기도 하고. 내용을 정리해 주세요.

[강신업]
오늘 두 가지 판결이 났는데 그중의 하나가 근로정신대 판결이죠. 이건 위안부 판결하고는 다른 겁니다. 일본에 1944년에 전범기업인 미쓰비시 중공업, 이 미쓰비시 중공업이 제로전투기라고 해서 일본 정부의 전투기를 만들어서 납품을 했습니다.

그런 기업에 강제로 동원이 돼서 한 푼도 월급을 받지 못하고 일을 했다고 하는 것 때문에 문제가 된 겁니다.

[앵커]
학교에 보내주겠다 이렇게 속여서 갔다 그러더라고요.

[강신업]
그렇죠. 1999년에 그거에 대해서 양금덕 할머니 등 7명이 일본 정부와 미쓰비시 중공업을 상대로 소송을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2008년에 도쿄 최고재판소, 일본은 최고재판소라고 얘기합니다, 대법원을. 여기에서 최종 패소를 했습니다.

그러니까 일본에서는 대법원에서 패소한 거죠. 그래서 우리나라에서 2012년에 다시 광주지법에 소송을 제기했고요. 여기에서 원고 일부 승소가 됐습니다. 그다음에 2심에서도 금액에 조금 줄기는 했지만 승소를 했습니다.

그래서 대법원에 올라갔는데 미쓰비시가 상고를 했기 때문에 올라갔죠. 그랬는데 2015년부터 3년 동안 지금까지 대법원에서 판결이 안 났던 겁니다. 그 판결이 이번에 나게 됐다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앵커]
사실 앞서 리포트 보셨겠지만 피해 할머니 일부는 세상을 떠나셨고 남은 분들은 지금 병상에서 판결을 기다리고 계시고 오늘 나오신 분은 김성주 할머니 한 분이셨어요. 말씀하기도 힘드셨던 것 같았는데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또 법조인으로서 어떻게 지켜보셨어요?

[강신업]
이것이 근로정신대라고 하지만 많은 사람들의 오해 때문에, 그래서 또 마음놓고 얘기를 못한 부분도 있고요. 굉장히 가슴 아픈 세월을 보냈는데요.

오늘 받게 된 것은 사실은 위자료 청구 부분입니다. 엄밀히 말하면 그 당시에 일을 하지 못했던 임금이라든가 이런 재산적 손해가 아니고 위자료 청구를 했던 것이고 약 1억 2000 정도 또 8000만 원 정도 이렇게 받았는데 이렇게 말할 수 있겠습니다.

지연된 정의, 정의가 지연됐다. 하지만 정의가 회복됐다. 회복된 정의. 그래서 지연된 정의라는 점에서는 안타깝지만 그래도 오랜 세월이 흘렀지만 정의가 일부 회복됐다는 점에서는 다행이고 그래서 근로정신대분들의 한이 조금이라도 풀렸다는 점에서 다행으로 생각합니다.

[앵커]
지연된 정의, 회복된 정의. 하지만 완성되기까지, 거기까지 가야 될 길이 또 있다고 생각이 듭니다. 일반 국민 입장에서는 이런 판결이 나올 때마다 왜 아까도 나왔지만 일본에서는 패소하고 우리나라에서는 승소하고. 왜 나라에 따라서 법의 해석이 다를까, 이렇게 의아하거든요.

[강신업]
맞습니다. 원래는 일본에 먼저 소송을 제기한 것은 일본 기업이 피고이기 때문이죠. 그리고 거기에서 문제가 벌어졌던 것이고. 두 가지 이유를 들었어요. 일본에서는 1965년에 있었던 한일청구권협정이라는 것 있지 않습니까?

거기에서 모든 것이 이미 해결된 것이라는 것이 일본 기업, 일본 정부의 입장입니다. 또 하나는 이것이 1944년에 있었던 일인데 소멸시효라고 하는 것이 있지 않습니까, 10년이라고 하는 것. 이미 그것이 지났다는 것이 미쓰비시와 일본 정부의 입장이었습니다. 그래서 일본 도쿄재판소에서 최종 패소를 했던 것이죠.

[앵커]
알겠습니다. 법리적인 문제는 잠시 뒤에 여쭤보기로 하고 지금 앞서 김성주 할머니가 피해자이신 부분은 근로정신대 부분이고 또 다른 하나는 강제징용 피해자들 부분에 대한 판결입니다.

그 피해자 다섯 분 중 한 분이신 고 박창환 씨의 아드님, 박재훈 씨를 전화로 연결해서 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안녕하십니까?

[박재훈]
네.

[앵커]
오늘 판결 잘 지켜봤고 긴 세월 고생 많으셨습니다. 아버님 돌아가신 지 몇 년 만에 이루어낸 결과죠?

[박재훈]
2001년도에 돌아가셨는데요. 그러니까 17년 가까이 된 거죠.

[앵커]
아버님 돌아가신 지 17년 만에 이런 대법원 판결까지 받으셨는데 혹시 돌아가실 당시에 아프고 슬픈 기억입니다마는 당시 아버님께서 혹시 남기신 유언이나 이런 말씀이 있으실까요?

[박재훈]
유언도 못 남기고 돌아가셨어요. 갑자기 돌아가시는 바람에.

[앵커]
갑자기 돌아가셨군요. 그러면 평소에 유지라고 해야 될까요? 평소에 어떤 말씀을 많이 하셨어요?

[박재훈]
말씀은 자녀분들한테는 별로 안 해 주시고요. 거기에만 신경을 쓰시다, 돌아가실 때까지도. 주무시다 갑자기 돌아가셨죠.

[앵커]
아무래도 부모로서 자식한테 감추고 싶은 아픔도 있었을 거고 아마 조심스러우셨을 것 같아요. 제가 듣기로는 일본 기업을 상대로 한 피해자들 소송 가운데 가장 먼저 시작했다고 들었습니다. 이 소송이 언제부터 시작이 된 거죠?

[박재훈]
그게 97년도 그 정도에 아마 했을 거예요. 저도 잘 생각이 안 나네요, 하도 오래돼서.

[앵커]
1999년 3월에 일본 정부 상대로 소송을 내셨고 아무튼 일본 기업을 상대로 한 소송 가운데 가장 먼저 시작을 하셨습니다. 오랜 시간 많이 힘드셨을 텐데 지금까지의 재판 과정에서 가장 힘드셨던 고비는 언제였을까요?

[박재훈]
힘든 고비는 말도 못하게 많죠. 재판이 부산고등법원에서 계속 패배하고 하다 보니까 여기에서 사람들 모시고 다니고 했는데 지고 나면 허탈했죠.

[앵커]
혹시 도중에 포기하고 싶으시거나 그럴 때는 없으셨어요?

[박재훈]
많죠. 그렇게 돌아올 때는 포기하고 싶은 생각도 많고 변호사들한테 그만둬야 되겠다 소리도 하고 별 말 다 했던 사람이에요.

[앵커]
저희가 듣기로는 변호사분들 중에 한 분이 현재 문재인 대통령이 변호사 시절에 소송을 대리하셨다고 들었어요. 그때 해 주실 얘기는 특별히 없으시고요?

[박재훈]
그렇죠. 대통령한테 하고 싶은 얘기는 정부에서 이렇게 됐으니까 서둘러서 피해자들한테 하루속히 빨리 국가 차원에서 서둘러줬으면 하는 얘기죠.

[앵커]
국가 차원에서 어떤 점을 서두르셨으면 하세요, 구체적으로?

[박재훈]
일본 정부의 사과 같은 것도 받아내시고 보상 같은 것도 좀 해결해 주셨으면 하는 거죠, 저희 바람은.

[앵커]
일본 정부에게 정부가 나서서 사과라든지 이런 우리 대법원의 판결과는 별도로 일본 정부로부터 우리 정부가 나서서 해 줬으면 좋겠다, 이런 말씀이시군요?

아마 정부에 대한 원망이 쌓인 데는 앞서 저희도 전했습니다마는 박근혜 정부, 지난 정부 당시 사법농단 사건의 희생 사건이기 때문에 아마 더 그런 말을 하시지 않을까 생각이 되는데 그런 뉴스 보실 때는 어떤 생각 드셨어요?

[박재훈]
어떤 생각이나 마나 속상하죠. 말도 못하죠.

[앵커]
알겠습니다. 하고 싶으신 말씀은 많으실 텐데 저희가 남은 시간 전하도록 하겠고요. 오늘 아마 정신도 없으시고 바쁘셨을 텐데 인터뷰 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박재훈]
고맙습니다.

[앵커]
오늘 저녁 시간 잘 쉬시기 바랍니다. 피해자분 중 한 분이신 고 박창환 씨 아드님 박재훈 씨 연결해서 들어봤습니다. 아무래도 사법농단 부분에 대한 원망도 아직 남아 계신 것 같고 시간이 오래 걸렸는데 왜 이렇게 시간이 오래 걸렸나요?

[강신업]
이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이건 강제징용이죠, 남성분들 말이에요. 그래서 징용이 돼서 강제로 노동을 하게 됐다, 이런 것인데요. 저번에 신일본제철 있죠. 그건 이미 판결이 나지 않았습니까? 그것과 궤를 같이하는 것입니다.

여기는 피고가 미쓰비시 중공업이라는 것만 다른 것이죠. 이것도 일본에 먼저 소를 제기했었습니다마는 일본 도쿄재판소에서 최종 판결을 합니다, 마찬가지로. 그래서 우리나라에서 다시 소를 제기했는데요.
이거는 우리나라에서도 1심과 2심을 모두 패소했습니다, 사실은. 그래서 2007년에 1심을, 2009년에 2심을 패소했는데 2012년에 대법원에서 승소 취지로 파기환송을 합니다. 부산고등법원에 말이죠.

[앵커]
다시 2심에서 해라 이런 얘기라는 거잖아요.

[강신업]
그렇죠. 승소 취지로. 그래서 부산고법으로 내려갔는데 부산고법에서는 대법원이 하라는 대로 그대로 판결을 했습니다.

그래서 다시 미쓰비시가 상고를 해서 다시 대법원으로 올라갔거든요. 이걸 재상고라고 합니다. 이때가 2013년입니다. 그런데 그때부터 사법농단이라고 하는 것 때문에 5년이 넘도록 재판을 안 한 겁니다. 그래서 이렇게 오래 걸렸습니다. 2013년 8월에 대법원에 접수가 됐습니다마는 이제 2018년 11월이 돼서야 최종적으로 판결이 나게 된 것이죠.

[앵커]
지난번 신일철주금 얘기할 때도 제가 드렸던 질문인데 그때 당시 대법원 판결이 지연되는 것에 대해서 법조계에서는 어떤 얘기가 나왔어요, 그 당시 시점에서?

[강신업]
그 당시도 부산고등법원에서 올려보냈잖아요. 그런데 그건 대법원에서 하라는 대로 해서 올려보낸 거니까 그렇게 되면 시간이 오래 안 걸리는 겁니다. 파기환송심이 대법원에서 승소 취지로 파기환송을 했으니까 부산고법에서 그대로 승소해서 올려보냈거든요.

그러면 적어도 많이 걸려야 1년이고 6개월 안에 끝납니다. 그런데 계속해서 재판이 판결을 안 하니까 뭔가 이상하다고 하는 생각이 있었던 것이죠. 그랬는데 아니나 다를까 이번에 밝혀진 것이 결국은 일본과의 외교니 이런 얘기를 하면서 청와대와의 거래를 통해서 결국 대법원에서 재판을 고의적으로 지연했다고 하는 것이 밝혀진 것이고 그로 인해서 많은 분들이 사법부가 과연 이렇게 할 수 있는 것이냐.

아까 앵커님 말씀하셨는데. 이것이 지연된 정의, 회복된 정의. 또 완성된 정의가 중요한데 결국은 정의를 지연시키고 또 정의 회복을 가로막고 또 정의 완성을 결국은 방해한 것밖에 안 되는 것이죠.

[앵커]
오늘 뉴스 중에 아마 미쓰시비라는 단어가 많이 나왔는데 우리 국민들도 낯선 기업은 아니에요. 여러 번 들었던 기업이고 제가 또 오프닝 때는 군함도를 통해서 소개하기도 했는데 어떤 기업인가요?

[강신업]
미쓰비시는 이렇게 생각하면 됩니다. 미쓰비시 가문이 있어요. 그 가문의 기업이었는데 20세기 들어서 일본의 성장과 함께한 기업, 이렇게 얘기하면 되고요. 그다음에 미쓰비시가 큰 것은 전쟁 때 컸습니다.

비행기라고 하는, 쉽게 말하면 비행기를 만들어서 납품을 합니다. 그때 컸기 때문에 그래서 전범기업이라고 하는 것이고요. 그래서 미쓰비시 자동차가 나오고 있고요. 미쓰비시 보험사라든지 이런 것들이 있는 재벌 그룹이다, 이렇게 얘기하면 되겠습니다.

[앵커]
그렇군요. 일단 이 기업을 통해서 이제 남은 단계는 미쓰비시를 상대로 우리 대법원에서 판결이 나왔기 때문에 배상을 받아내야 되지 않겠습니까? 그 과정은 순탄할까요?

[강신업]
지금 미쓰비시 중공업이라든지 일본 정부가 강력하게 반발을 하고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이렇게 판결이 나면 돈을 지급하는 걸 임의지급이라고 합니다. 판결에 따라서 그걸 내가 주겠다 이렇게 주면 되는데 안 주면 그걸 강제할 수밖에 없는 거잖아요.

그런데 강제를 하려면 우리나라에 미쓰비시의 재산이 있으면 강제집행이라는 말 들어봤잖아요, 우리가. 그것이 쉬운데 일본에만 지금 재산이 있고 우리나라에는 별로 없다는, 사실 별로 없는 걸로 얘기되고 있어요.

[앵커]
지난번 신일본제철 같은 경우는 있다는 얘기도 나오지 않았습니까?

[강신업]
거기도 일부 있다는 얘기가 있지만 알아봐야 되는데요. 만약에 그러면 재산이 여기에 있으면 이걸 압류하고 또 강제집행을 통해서 완성된 정의, 정의를 완성하는 것이 가능하겠습니다마는 없다면 일본에 가서 강제집행을 해야 되는데 그렇게 되면 일본의 외교부라든지 일본 정부의 도움이 필요하거든요.

그런데 지금 상황에서는 해 주겠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정의를 완성하는 데 어려움이 클 것으로 생각되고.

[앵커]
앞서 박재훈 씨도 정부가 나서달라는 얘기를 했는데 그러면 법적인 차원에서 정부가 도와줄 수 있는 여지가 있습니까?

[강신업]
결국은 정부가 일본 정부하고 협상을 계속해야 될 것이고요. 또 경우에 따라서 우리나라에 과연 미쓰비시의 재산이 있는지를 샅샅이 뒤져보는 자세도 필요할 것이고요. 그다음에 또 이건 어쩔 수 없다면, 만약에 계속해서.

그렇다면 정부가 일부 유가족들에 대해서 먼저 지급을 하고 나중에 일본에 구상을 하는 방법도 가능한데 그것은 물론 논의가 있어야 되겠습니다마는 최종적으로 그런 것까지도 고려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앵커]
사실 오늘 판결 같은 경우도 지난달 30일에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 이후 영향을 받았다고 할 수 있고 또 오늘 나온 소식에도 신일철주금과 관련해서 손해배상이 인정이 됐거든요. 이번 같은 경우에는 하급심인데. 계속 이런 식으로 유기적으로 영향을 받겠죠?

[강신업]
그렇죠. 신일철주금이 신일본제철이죠. 그런데 거기 광주고등법원에 두 건이 계류 중이에요. 그래서 하나는 2014년에 제기가 됐고 하나는 2015년에 제기가 돼서 그것이 계류 중인데 궤를 같이하는 것이기 때문에 승소를 할 것으로 보여지는 거죠. 그런데 제2차, 제3차. 또 앞으로도 계속해서 이런 소송이 제기될 수 있는데요.

어쨌든 대법원의 취지에 따라서 이런 소송을 제기한다면 유족들이라든지 피해자들이 승소할 것으로 봅니다.

[앵커]
일제강점기, 그때 나라가 위정자들이 잘못해서 이런 우리 무고한 국민들이 피해를 입고 희생을 당한 것 아니겠습니까? 지금의 나라가 움직이고 도와줄 수 있는 부분이 없는지 지혜를 모았으면 좋겠습니다.

[강신업]
그리고 마지막 하나, 독일의 예를 본받아서 일본이 말이죠. 독일의 예를 본받았으면 좋겠습니다.

[앵커]
끝으로 의미 있는 말씀까지 짚어주셨습니다. 오늘은 강신업 변호사와 함께 알아봤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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