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보니 시리즈 71] 어른 돼서 선생님 방문하는 학습지 해보니

[해보니 시리즈 71] 어른 돼서 선생님 방문하는 학습지 해보니

2019.03.09. 오전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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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제가 숙제를 다 했는데 모르고 파쇄기에 갈아버렸어요."

우연히 SNS 피드를 살펴보다 발견한 짤(인터넷상에서 사진이나 그림을 이르는 말)의 내용이다. 처음엔 그저 학생과 선생님의 평범한 대화인 줄 알았으나, 직장인 학생과 학습지 선생님의 대화였다.

'어른이 선생님이 방문하는 학습지라니!' 그런데 회사에만 무려 5분이 학습지를 하고 있었고, 인터넷상에도 어른들의 학습지 후기가 넘쳐났다. 그렇게 어릴 때 밀린 학습지로 괴로워하던 생각은 까맣게 잊고 추억초등학교 이후 처음으로 학습지를 신청했다.



◆신청은 정말 쉬웠다.

학습지 신청은 정말 간단했다. 수많은 학습지 중 최근 성인들이 가장 많이 신청하고 있다는 학습지 홈페이지에 상담 내용을 남겼고, 1시간 이내로 전화가 왔다. 과목에는 성인 학생 제한이 없지만, 이 학습지에서 성인이 할만한 과목으로는 영어, 중국어, 일본어, 한자 정도로 보였다. 4개의 과목 중 기본적인 영어보다는 거의 백지상태인 언어이자 기사 번역에 도움이 되는 언어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해 중국어로 선택했다. 과목을 선택하자 전화로 학습지 회사 측은 레벨을 위해 "중국어는 어느 정도 하세요?"라고 물었고, "전혀요"라고 답하자 "그럼 가장 기초(3A)부터 할게요"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어른이 돼서 처음 만난 학습지 쓰앵님!

지난달 20일 수요일 드디어 첫 수업을 했다. 어렸을 때는 선생님이 집에 오시고 간식도 먹고 했던 기억이 있지만, 집보다는 회사가 심적으로 편할 거 같아 회사 주소로 수업을 신청했다. 선생님께 여쭤보니 대부분 직장인분들은 회사 근처에서 수업을 받고 있다고 했다.

본격 수업 시작 전 선생님이 수업 진행 과정을 설명하시며 "수업은 10분 정도 진행될 거고…"라고 말하자 기자는 화들짝 놀랐다. 분명 어렸을 때는 최소 30분으로 느껴졌기 때문. 이에 대해 선생님은 시간은 변경된 게 없지만, 성인 때는 대부분 한 과목만 하지만 학생 때는 여러 과목을 해서 그렇게 느낄 수 있다고 설명해주셨다.

기초 중국어는 쓰기보다는 회화 위주의 외우기 방식으로 진행됐다. 디지털 시대에 맞게 스마트 펜으로 선생님이 학습지를 클릭하자 해당 단어에 대한 발음이 흘러나왔다. 학습지는 역시 반복이었다. 같은 내용의 문장이 반복되고 또 반복됐다. 끝도 없이 곱셈, 나누기가 적혀 있던 수학 학습지가 생각나던 순간이었다. 첫 번째 수업인 만큼 숙제 검사나 테스트도 없어 빠르게 10분의 수업을 마쳤다. 심지어 기존에 알고 있던 '니 하오'(안녕)와 같은 쉬운 중국어가 있어 당일에는 학습지 풀기를 미룬 채 가벼운 마음으로 학습지를 덮었다.


◆역시 학습지는 벼락치기인가?

1주일이 지나고 수업 하루 전이 되자 마음이 급해졌다. 기본적인 중국어라고 생각해 '2~3일 전에 하면 되겠지'라고 생각했지만, 하루 전까지 초조해만 할 뿐 제대로 학습지를 펼쳐보지 않았다. 회사 일을 핑계로 미루고 미루다 수업 하루 전 유물 같은 MP3를 찾아 중국어 음성 파일을 넣고 듣고 또 들으며 학습지를 풀고, 암기했다.

그리고 2주째 수업, 여러 번 달달 암기한 학습지를 들고 선생님을 만났다. 어렸을 때 선생님처럼 빨간 펜을 들고 요목조목 지적하진 않으셨지만, 이전 학습지를 살펴보시던 선생님은 '안녕이 중국어로 뭐죠?'라고 물었고 기자는 '니 하오', '닌 하오'(안녕하세요) 라고 답하는 등 짧은 회화 테스트를 받았다. 다행히 전날 벼락치기는 효과가 있었다. 발음이 조금 부족했지만, 모두 완벽하게 외워 짧은 테스트를 마쳤고 선생님께 그 어떤 핑계도 대지 않고 무사히 수업을 마무리했다.

◆어렸을 때와 다를 바 없는 학습지 미루기!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학습지 선생님께서는 전부 알았을 테지만, 그때는 정말 모를 거라고 생각해 ‘학교 책상 서랍에 두고 왔어요!’ 또는 ‘잃어버렸어요!’라는 거짓말을 수도 없이 했다. 역시나 어른이 돼서도 일이 바쁘고 할 일이 많아지자 회사 일 등 실제 있는 일이 핑계 아닌 핑계로 떠올랐다.


심지어 2주째에는 제2차 북미정상회담으로 정신없을 시기였기 때문에 학습지는 쳐다보지도 못했다. "파쇄기에 갈아버렸어요"라고 말하던 짤방 속 직장인의 심정이 공감이 가던 순간이었다. 바쁜 일상에도 학습지를 신청해 공부를 하는 직장인 분들이 학습지를 선택한 이유가 궁금했다. 그래서 직장인이자 3개월째 학습지를 하고 있는 박해진(30대) 씨와 인터뷰를 진행했다.

Q. 학생들의 전유물 같은 선생님이 방문하는 학습지를 택한 이유는?
A. 회사에서 일하고 퇴근하면 집에서 빈둥대다 잠자고, 또다시 회사 생활. 새해가 되고 나니 하는 것도 없이 늙어가는 것 같아 허무해져 시작했다. 학원도 알아봤는데 근무 특성상 시간 맞추기가 힘들어 학습지를 택했다.

Q. 어떤 언어를 배우고 있나?
A. 일본어. 일본 여행을 가려고 정보를 찾아보고, 식당도 예약하고 싶은데 일본어를 전혀 모르니 너무 답답했다. 지금은 웬만한 글자들은 읽을 수 있으니 어느 정도 자신이 생겼고 가끔 거리에서 일본어를 읽으면 재미있고 뿌듯하다.

Q. 학습지를 고민하는 어른들에게 조언 또는 팁을 주신다면.
A. 근무 특성상 선생님이랑 시간 맞추기가 힘들기도 하고 민망하기도 하다. 그래서 정기적으로 시간을 맞출 수 있는 사람이 학습지를 하면 좋을 것 같다. 의지가 강한 분들은 혼자서 해도 좋지만 매주 테스트 한다는 압박감이 긴장을 줘서 할 때는 더 집중할 수 있는 것 같다. 때문에 저같은 의지 박약형 인간은 확실히 학습지가 더 효율적일 것 같다. 부담 없이 뭔가를 배우고 싶다면 정말 추천한다.

◆일주일에 30장만 가능했다니…

어렸을 때와는 다르게 학습지 공부에 익숙해지자, 감히 진도를 조금 더 빨리 빼고 싶었다. 일주일에 한 번 수업인 만큼 그사이에 더 많은 양을 공부해 진도를 빨리 빼면 좋겠다는 생각이었다. 물론 가장 기초적인 중국어를 하고 있기에 가능한 얘기였다. (엄마, 아빠와 같은 단어를 배웠다)

그래서 선생님께 "단어 말하기까지 진도 빼기가 가능하냐"고 연락을 드렸지만, 곧장 전화가 와 "일주일 학습지량이 정해져 있다"는 답변을 받았다. 어렸을 때는 너무 많게 느껴져 학습지가 밀리고 밀리니 전혀 몰랐던 정보였다. 기자가 신청한 학습지 회사는 일주일에 30장까지로 공부량이 제한되어 있었던 것. 굳이 원하면 더 많은 양의 학습지를 미리 받을 순 있지만, 추가 금액을 더 내야 했다.

학습지 공부가 3주째에 접어들자, 온라인상에 떠도는 각종 에피소드를 실제로 겪었을 선생님과 수치상으로 얼마나 많은 성인 회원이 학습지를 하고 있는지 알고 있을 학습지 측에도 묻고 싶은 게 많아 인터뷰를 요청했다.


[전형숙 구몬학습 선생님 인터뷰]

Q. 자기소개 부탁드린다.
A. 저는 상암동 지역을 담당하고 있는 구몬 교사다. 구몬학습 교사 생활한 지는 14년 정도 된 거 같다.

Q, 관리 회원 중에 성인 회원은 얼마나 되는지?
A. 관리 회원 84명 중 성인 회원이 52명이다. 수업은 날마다 좀 다르긴 한데, 많게는 20~30명 할 때도 있고 적어도 하루에 3~4명 하고 있다.

Q. 성인회원은 대부분 어디서 수업을 받나?
A. 학생들은 집에서 수업을 많이 하지만, 회사원 분들은 대부분 직장 근처에서 하신다. 집에서 하시는 분들도 있는데, 퇴근 후 수업을 해야 해서 밤늦게 수업을 진행한다.

Q. 수업 시간이 짧긴 하지만 그만큼 회원도 많다. 학생과 성인 회원의 다른 점은?
A. 보통 일주일에 한 번 만나고 한 과목당 10분 정도 수업을 한다.

학생들은 보통 1인당 3과목, 많게는 5~6과목도 한다. 한집에 들어가면 30분에서 한 시간 반 정도의 수업을 하기 때문에 이동시간에 대한 부담이 없다. 그런데 성인분들은 한 과목 또는 두 과목을 하시기 때문에 앉았다 일어나기 바빠서 이동하는데 꽤 많은 시간이 걸린다.

하지만 또 반대로 장소가 제각각 일 경우는 이동 시간이 소요되지만, 직장이 몰려 있어 근처에서 수업하는 분들이 많은 지역은 한곳에서 머무르며 수업을 해 시간 절약이 되는 편이다.

Q. 성인 회원 수업 시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다면?
A. 수업을 거절하는 내용이 학생 회원과 달리 여러 가지다. ‘갑자기 회의가 잡혀서요. 선생님’, ‘갑자기 출장을 가게 생겨서요’ 등의 이유다. 한두 번은 진짜 그렇겠거니 하고 넘어가지만, 빈도수가 많아지는 성인 회원들도 적지 않다. 그리고 성인 회원분들은 정말 한 달 내내 만나기가 쉽지 않다.

그래도 두 번 이상은 만나려고 하는데, 3개월 이후부터는 확연히 횟수가 준다. 또 이전 교재를 안 가져오고 수업만 받겠다는 분들도 있다. 하지만 저 같은 경우에는 학습지가 밀렸더라도 가져오게끔 해 수업 시간에 함께 풀어보도록 하고 있다.

재미있는 에피소드는 아니지만, 보람 있는 에피소드가 생각난다. 저를 일주일에 십분 밖에 안 만나는데 ‘학습효과가 있을까’라는 생각을 했는데, 저와 1년 정도 공부한 남자 성인 회원분이 급수 시험에 도전하고 여행을 가서 회원분 딸이 ‘아빠 그래도 공부한 보람이 있는데?’라는 말을 들었다는 얘기를 들으니 효과가 있구나 라는 생각과 함께 보람을 느꼈다.

Q. 성인 회원 중 할머니분들도 있다고?
A. 60~70대 할머니분들도 학습지를 하신다. 솔직히 학생들보다 더 열정적이고 열심히 하신다. 할머니분들은 영어 또는 한자를 하시는데 주로 영어를 하시려고 한다. 어떤 분들 같은 경우에는 영어 발음을 잘 못 하겠으니 한글로 써달라고 하신다. 그래서 빼곡히 써서 드리는데, 학습지 하는 기간이 길어질수록 읽을 수 있는 영어가 늘어나다 보니까 한글로 써드리는게 점점 줄어든다.

Q. 성인 회원분들에게 말씀해 주실 게 있다면.
A. 시간은 잘 지켜주셨으면 좋겠다. 저를 못 만나더라도 최소한 통화라도 됐으면 좋겠다. 어떤 분들은 통화가 너무 안 돼서 이유도 모르고 교재도 못 주고 수업도 못 하는 경우가 있다. 수업을 못 하거나 교재를 못 풀었어도 전화로 추후에 어떻게 수업을 진행할지 연락이 좀 됐으면 좋겠다. 그만두시는 것도 당일 통보가 아닌 미리 얘기를 좀 해주셨으면 하는 바람이다.


[구몬학습 측 인터뷰]

Q. 구몬학습 성인 회원 수가 궁금하다 (2019년 3월 기준)
A. 약 5만 명 정도의 성인들이 구몬학습을 이용하고 있다.

Q. 선생님을 만나서 하는 성인 학생과 만나지 않고 학습지만 받아서 하는 성인 학생 비율 중 어느 쪽이 더 높은지.
A. 선생님을 만나서 관리받는 성인 회원 비율이 더 높다. 학습지만 받아서 하는 성인 회원은 전체 성인 회원 중 10% 정도다.

Q. 일본어, 중국어, 영어 중 이중 어떤 과목이 성인 회원에게 가장 인기를 얻고 있나?
A. 개인 능력별 학습지이기 때문에 모든 과목이 연령에 상관없이 열려있다. 이중 성인이 가장 많이 공부하고 있는 과목은 일본어이다. 성인의 전체 학습 과목 중 30%의 비중을 차지할 정도다.

Q. 성인 회원들이 왜 일본어를 많이 선택하고 있다고 생각하나.
A. 일본이 지리적으로 한국과 가깝고 교류가 많은 나라다 보니 여행이나 비즈니스 목적으로 시작하시는 분이 많다.

Q. 어릴 때 했던 학습지를 왜 성인들이 다시 찾는다고 생각하나?
A. 어른이라고 공부를 빠르고 어렵게 접근해야 하는 건 아니다. 저렴한 월회비로 외국어를 부담 없이 재미있게 배울 수 있다는 점이 성인 회원들에게 장점으로 꼽힌다. 어렸을 때 학습지 100점의 성취감을 어른이 되어서도 느끼게 되었다거나, 선생님의 학습 독려로 꾸준한 학습에 도움을 받는다는 후기도 많다.

Q. 선생님이 찾아와 수업을 10분 정도 하신다. 어릴 때는 체감상 30분 정도로 느껴졌던 것 같은데, 시간이 준 건가 아니면 원래도 10분이었나?
A. 구몬학습 선생님은 가르치지 않는다. 다만 회원의 학습 상황을 진단하고 진도를 설계한다. 학습 습관이나 진도 방향에 대해 코칭하고 학습을 독려해주시는 역할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시간은 과목당 10분 정도로, 어렸을 때는 여러 과목을 하니 훨씬 길게 느껴졌을 수도 있다.


◆'파쇄기 2탄'의 주인공은 되지 않길....

학습지를 시작한 지 3주째. 사실 학습지를 신청하면서 큰 기대는 없었다. 공부해서 언어 실력을 향상해야겠다는 생각보다는 어릴 적 학습지 하던 때를 떠올리며 학원보다 부담되지 않는 가격이기 때문에 '한 번 해보기나 할까'라는 생각으로 신청한 게 컸다.

꽤 좋은 공부 수단이었다. 빠르게 실력을 올리고 언어 실력이 급한 상황이라면 적합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따로 시간 내기가 어려운 상황에서 틈틈이 언어 실력을 올리기에는 더없이 좋았다.

문제는 습관이었다. 어릴 때 학습지를 밀리고 하루 전에 벼락치기 하는 습관은 어딜 가지 않았다. 온라인상에 화제가 된 학습지 후기들 또한 마찬가지 였다. 6개월 치 학습지를 신청했지만, 3개월 치만 풀었다는 회사 동료는 "어렸을 때나 지금이나 똑같다"라며 "뜯지도 않은 건 중고나라에 올릴 생각"이라는 웃픈(웃을 수도 울 수도 없는) 소감을 전하기도 했다.

적어도 기자가 '파쇄기 2탄'의 주인공이 되지 않길 바라면서, 씨아 호이 짜이 찌앤(下回再见。, 다음에 만나요)!

YTN PLUS 이은비 기자
(eunbi@ytnplu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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