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갑에서 호미곶으로...'땅 이름 되찾기'

장기갑에서 호미곶으로...'땅 이름 되찾기'

2019.08.14. 오전 0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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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포항 '호미곶'은 호랑이 모습을 한 한반도의 꼬리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그런데 일제는 민족 혼이 담긴 지명을 지우고, '장기갑'이라는 이름을 갖다 붙였습니다.

이렇게 일제의 잔재가 남은 땅 이름을 되돌려 민족의 정기를 되살리자는 시도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박희재 기자가 보도합니다.

[기자]
한반도에서 가장 먼저 해가 뜨는 것으로 알려져 매년 수많은 사람이 해돋이를 보러 찾는 곳.

경상북도 포항의 호미곶입니다.

과거 선조들은 한반도가 만주를 향해 포효하는 호랑이로 보고, 우리나라 동쪽 끝에 있는 이곳을 호랑이 꼬리, '호미'라고 불렀습니다.

하지만 일제는 한반도를 호랑이 대신 겁이 많은 동물이라며 토끼에 비유하기도 했는데, 결국, 말의 갈기에서 따온 '장기'라는 지명에 일본식 행정명칭인 '갑'을 더해 '장기갑'이라는 이름으로 바꿔버렸습니다.

해방 이후 50년 넘게 '장기갑'으로 불린 이곳은 지난 2001년 호미곶이란 이름을 되찾았습니다.

[호미곶면 행정복지센터 관계자 : 장기갑이 일본식 표현이라서 이걸 호미곶으로 변경했다고 그렇게 나오네요.]

일제가 교묘하게 바꾼 한자어를 원상 복구한 경우도 있습니다.

제 뒤로 보이는 인왕산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일제강점기에 쓰인 표기를 지난 1995년이 되어서야 바로 잡았습니다.

인왕산의 가운데 글자인 '임금 왕(王)'자를 지우려고 '왕성할 왕(旺)'자로 바꿔 쓰던 것을 원래 지명으로 되돌린 겁니다.

[성아영 / 서울 상도동 : 일제 잔재가 남아있는 지명이란 사실에 너무 놀랐어요. 많이 알려주고 사람들의 공감을 구하면서 점차 우리 정서에 맞게 지명을 바꾸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지명에 남은 일제의 흔적을 본격적으로 지우기 시작한 건 1987년.

32년 동안 60여 곳이 과거의 이름을 되찾았습니다.

[박은희 / 대구경북연구원 연구위원 : 2006년에도 일제강점기에 왜곡되거나 지역 주민들이 사용하기 불편한 행정구역 명칭에 대한 일체 정비를 추진하게 됩니다. 강원도 강릉의 왕산을 끝으로 8년여 동안 14곳의 명칭을 변경했는데요.]

최근에는 일본의 경제보복이 이어지면서 기차역 이름을 바꾸자는 움직임도 일고 있습니다.

경북 칠곡군에 있는 왜관읍은 조선 시대 일본인들이 머물며 활동하던 장소의 명칭이 지명으로 굳은 경우입니다.

주민들은 지명은 물론, 기차역 등 주요 시설에도 쓰이는 왜관이라는 이름을 지우자며 'NO 왜관' 운동을 펼치고 있습니다.

[김창규 / 칠곡군역사바로세우기 추진위원장 : 습관적으로 생활하다 보면 정체성을 잃고 지배당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일제 잔재 지명을 우리 생활 속에서 영원히 지워버려야 정말 진정한 청산이 아닌가….]

물론 이미 굳어진 지명을 바꾸는 일이 쉽진 않습니다.

[칠곡문화원 관계자 : 왜관이란 이름 자체는 좋은 이름은 아니기에 뜻있는 그런 이름으로 바꾸는 것은 좋되, 세계적으로 이름난 왜관이라는 지명을 함부로 바꾸긴 어려우니까….]

하지만 최근 일본의 적반하장을 보며 그동안 지나쳤던 일제 강점기 때 지명을 바꾸자는 목소리는 점점 더 힘을 받을 것으로 보입니다.

YTN 박희재[parkhj0221@ytn.co.kr]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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