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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TN 라디오 ‘이동형의 뉴스 정면승부’]
■ 방송 : FM 94.5 (18:10~20:00)
■ 방송일 : 2019년 8월 14일 (수요일)
■ 대담 : 서부원 광주 살레시오 고등학교 선생님
* 아래 텍스트는 실제 방송 내용과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보다 정확한 내용은 방송으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도쿄 한복판서 1인 시위해보니 “일본 사람들 반응은...”
◇ 앵커 이동형(이하 이동형)> 일본의 경제보복에 맞서 자발적인 일본제품 불매운동이 확산되고, 예약해두었던 일본 여행도 취소하는 경우가 많아졌는데요. 이런 시기에 일본에서 1인 시위 여행을 다녀온 분이 계십니다. 일본에서도 ‘혐한 발언’ 등 혐한 분위기가 이어지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어떻게 1인 시위를 생각하셨을까요. 오늘 스튜디오에 직접 모셔서 말씀 나눠보겠습니다. 광주 살레시오 고등학교의 서부원 선생님 나오셨습니다. 어서 오십시오.
◆ 서부원 광주 살레시오 고등학교 선생님(이하 서부원)> 네, 반갑습니다.
◇ 이동형> 역사 선생님이시네요?
◆ 서부원> 네, 한국사 가르치고 있습니다.
◇ 이동형> 그래서 더 아마 한 번 가봐야겠다는 생각을 하셨을까요?
◆ 서부원> 그런 것보다요. 올해가 뜻깊은 해잖아요. 3·1운동 100주년이고,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이고. 또 우리가 조금은 간과하는데, 의열단이라고 있잖아요. 무장 항거 단체. 의열단도 100주년입니다. 그래서 뜻깊은 해여서 진작 계획은 하고 있었어요. 일찌감치 항공권도 예약을 해놨고, 또 겸사겸사 도쿄에 제 제자가 취직해서 거기서 생활하고 있는데, 걔도 만날 겸 쉽게 취소를 못 하겠더라고요. 그래서 가서 뜻깊게 그 기간 있어보자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 이동형> 도쿄에서 1인 시위 하신 겁니까?
◆ 서부원> 도쿄에서 8일간 전혀 움직이지 않고요. 그냥 도쿄에서만 있었는데, 1인 시위를 계속 8일 동안 하지는 못 했고요. 주말에 두 시간 했고, 그다음에 주중에 두 시간을 했습니다.
◇ 이동형> 어디서 하셨어요?
◆ 서부원> 신오쿠보역이라고 되게 유명한 곳이에요. 도쿄에 지하철이 순환선이 있는데, 우리 서울 2호선처럼요. 그 야마노테선이라고 하는데, 그 안을 말하자면 도쿄 도성이라고 할 수 있죠.
◇ 이동형> 신오쿠보역이면 코리안 타운이 가까운 곳이죠.
◆ 서부원> 네, 지금도 거기 역에서 나오면 한류 백화점, 이런 게 되게 많더라고요. 그런데 신오쿠보는 우리한테 또 각별한 의미가 있어서 거기서 해야겠다는 생각을 고민하다가 했죠.
◇ 이동형> 신오쿠보역 앞에서 하신 거예요?
◆ 서부원> 네, 그 안에서는 못 하게 하더라고요.
◇ 이동형> 밖에 장소가 협소한데, 사람도 많이 왔다 갔다 하고.
◆ 서부원> 네. 되게 협소하고, 거기 출입구가 하나밖에 없어 가지고 정말 사람이 그렇게 많을 줄은 몰랐어요. 안에서 원래는 하려고 했는데, 안에 이수현 씨라고 2001년도에 선로에 떨어진 일본인 구하고, 목숨을 잃은 사람인데요. 일본 사람들한테도 꽤 유명하더라고요. 아직도. 그래서 거기가 나름대로 상징적인 의미가 있다는 생각에서 거기로 정했는데, 안에서는 못 하게 하더라고요. 철도영업법인가? 거기가 아무래도 민영화되어서 그 회사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고 해서 미처 그 안에서는 못 하고, 밖에서 했는데 정말 사람 많더라고요.
◇ 이동형> 피켓을 들고 하셨어요?
◆ 서부원> 네.
◇ 이동형> 어떤 내용이었습니까?
◆ 서부원> 사실 제가 일본어를 한 마디도 못 하거든요. ‘아리가또,’ 이거 하고, ‘스미마셍,’ 그거밖에는 못 하거든요. 그래서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데, 제가 그렇다고 해서 번역기로 할 수도 없고. 그런데 제자가 도쿄에 살고 있었는데, 그 제자한테 부탁을 했습니다. 하나만 만들어 달라고 했더니 되게 우려를 하더라고요. 왜냐하면 나랑 연루가 되면, 저 취업 비자 연장 안 돼요, 이러면서 안 돼요, 선생님. 정말 비밀로 할 테니까 너 근처에 오라는 얘기 안 할 테니까 만들어서 나한테 건네기만 해라, 라고 해서 간첩 접선하듯이 받았는데요. 꽁꽁 포장해서 신문지, 비닐에 포장해서 저한테 건네더라고요. 하드보드지 같은 거 있잖아요. 그 크기로 해서 이렇게 적었어요. 조금 심하게 쓰려다가 겁도 나더라고요. 그래서 그냥 “아베 정부의 대한국 경제 보복에 대해서 반대합니다.” 이렇게 써놓고 밑에는 “한국인과 일본인은 공존과 번영, 정의와 평화를 위해 함께 손 맞아야 할 친구입니다.” 이렇게. 이렇게 해서 위에는 일본어 쓰고, 밑에는 한국어 쓰고. 글자가 다 들어가더라고요. 그렇게 내용을 써서 했죠.
◇ 이동형> 그러면 1인 시위하면서 혹시 응원의 말이라든가, 아니면 욕설이라든가, 이런 것은 들으셨어요?
◆ 서부원> 사실 되게 사람들이 그냥 살짝 보고 가지, 이것을 가지고 의미를 두는 일본인은 없는 것 같더라고요. 조금 연세 드신 두세 분이 저 앞에 와서 막 욕설을 하면서, 이렇게 고성을 지르면서 하시더라고요. 그런데 저는 별로 겁나지 않았어요. 왜냐하면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듣잖아요. 만약에 제가 그 말을 알아들었다면, 되게 위협도 느끼고 그랬을 건데, 막 큰소리로 뭐라고는 하시는데, 전혀 그게 무슨 뜻인지 모르니까, 또 오로지 걱정은 그거 하나였어요. 뭐냐면 혹시 이분이 어렵사리 만든 저 피켓을 파손하면 어쩌지? 그러니까 저를 때리는 건 괜찮은데, 그것을 파손하면 다음 날에 못 하잖아요. 그래서 그거만 계속 걱정했지, 다른 것은 별로 신경 쓰이지 않더라고요. 시위에 가장 큰 방해꾼은 있기는 있었죠. 더위요. 너무 더웠어요. 습하기도 하고, 그러니까 두 시간 밖에 서 있는데, 정말.
◇ 이동형> 일본의 더위가 살인적이니까.
◆ 서부원> 온도는 여기하고 비슷한 거 같기는 한데, 습해요. 그래서 땀이 쭉 흐르는 게 정말 못 견디겠더라고요. 만약에 날씨만 좋았다면 저는 한 네 시간, 다섯 시간 이거 할 자신이 있었거든요.
◇ 이동형> 혹시 우리 교포들이나 유학생들이나 그런 분들은 응원해주신 분 안 계셨나요?
◆ 서부원> 안타깝게 못 만났고요. 독일분이 와서 이게 무슨 내용이냐고 묻더라고요. 그래서 띄엄띄엄 영어로 시위 도중에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는데, 부인으로 보이는 그분이 저한테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 주시더라고요. 그게 유일한 격려였고요. 사실 일본인들은 별로 반응이 없더라고요. 주말은 정말 사람이 많아서 저 피켓 들고 있는 앞을 가리는 젊은이들도 있더라고요. 그래도 시위를 하고 있는데 이렇게 가리면 예의상 안 되는 거잖아요. 제가 뭐라고 하니까 화를 내고, 그런 경우는 있었는데요. 그래서 제가 주중 출근시간에 나가서 했거든요. 7시부터 9시까지 했는데, 그때는 꽤 사람들이 와서 읽어주고, 특히나 학생들. 많이 읽더라고요. 그때 일본의 방송사인지, 유튜버인지는 알 수 없지만, 막 찍어가기도 했어요. 제가 어차피 그거는 바라던 바니까 그게 어떻게 올라갔는지는 제가 확인할 수 없었죠. 제자한테 카톡을 보내서 혹시나 봤냐고 하니까 그런 것은 잘 모르겠다고.
◇ 이동형> 일본에 방문한 이유 중 하나가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의 자취를 찾아보려는 뜻도 있었다, 이렇게 말씀하신 것 같은데, 설명을 해주세요.
◆ 서부원> 아까도 말씀드렸듯이 3·1운동하고, 임정하고 의열단. 이게 사실 같이 다 볼 수 있는 곳이 도쿄라고 봤거든요. 중국에 있는 독립운동 유적지도 둘러봤고요. 그래서 이번에는, 또 100주년이고 해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서 갔는데, 막상 그것을 다 찾아서 돌아보려면 하루, 이틀 가지고는 안 될 정도로 많습니다. 예를 들어서 일왕이 사는 왕궁만 해도 우리는 그냥 거기 가서 단체 사진만 찍고 오더라고요. 그런데 그런 곳이 아니거든요. 의열단 입구에 니주바시라고, 니주바시가 이중교라는 뜻이거든요. 거기는 의열단원 김지석 의사가 폭탄을 던진 곳이고요. 그리고 거기서 5분 정도만 왼쪽 편으로 돌아가면 사쿠라다몬이라는 문이 있어요. 거기는 방향으로 보면 남문에 속하는데, 거기는 일본에서도 굉장히 유명한 유적지입니다. 사쿠라다몬의 변이라고 해서 역사 교과서에도 많이 실려 있는 곳이거든요. 거기는 에도 막부 마지막 대로, 그러니까 쇼군 다음 권력자라고 볼 수 있는 이이 나오스케라는 그 사람이 미국과 강제 개항을 하는데, 그 미국과 개항을 하면서 막부의 권력을 유지하려고 했던 사건이었는데요. 그 이이 나오스케를 현재 가고시마 쪽 낭인이 와서 암살을 했던 사건인데, 그게 1860년에 벌어지거든요. 그런데 그 사건은 메이지 유신의 시작점이다, 이렇게 평가를 하고 있더라고요. 그런데 또 사쿠라다몬의 변, 이렇게 치면 그 사건도 있지만, 1932년에 우리나라 사람이면 다 알죠. 이봉창. 이봉창 의사가 군사훈련, 제식훈련을 보고 온 일왕 히로히토에게 폭탄을 던진 곳이 똑같은 곳이거든요. 그것도 사쿠라다몬의 변이라고 하는데, 그런 곳인데 우리나라 관광객들이 그곳을 가는 경우는 거의 없는 것 같더라고요. 또 그것뿐이 아니라 히비야 공원. 여기는 안중근 의사가 저격한 이토 히로부미의 장례식을 치렀던 곳이기도 하고, 또 2.8 독립선언. 3·1운동의 배경이 됐던 2.8 독립선언이 이루어졌던 곳. 이렇게 따져보면 정말 많은데, 그런데 우리나라 시중에 나와 있는 여행 안내서에 보면 그런 곳이 언급된 책이 거의 없습니다. 그래서 사실 이런 욕심도 시골 교사인 저한테 맡길 일은 없겠지만, 그런 욕심도 있었습니다. 아예 새로운 도쿄 안내서를 만들어볼까? 이런 생각도 있었습니다. 그런 곳이 정말 많으니까요.
◇ 이동형> 그런데 야스쿠니 신사는 왜 방문하셨습니까?
◆ 서부원> 사실 거기서 하려고 했거든요.
◇ 이동형> 1인 시위를요?
◆ 서부원> 네.
◇ 이동형> 그것도 좋은 생각이네요.
◆ 서부원> 거기가 굉장히 상징적인 의미가 있어서 거기서 하려고 했는데, 저도 겁이 나더라고요. 사실 너무 겁이 나고요. 또 거기는 제가 가기 전에 듣자 하니까 거기는 욱일기, 전범기 있잖아요. 그 욱일기 가지고 군복이고, 이렇게 행진하는 그런 극우단체들이 많다고 하더라고요. 그런 이야기를 들어서 겁이 난 거죠. 그랬는데 한 번 확인해볼 겸 갔습니다. 갔는데, 물론 가서 그런 분들도 봤어요. 욱일기 들고, 총 들고, 거기서 고함지르는 그런 사람들도 봤는데, 거기 야스쿠니 신사. 우리가 신사에 참배할 것은 아니잖아요. 그런데 그 신사를 저는 한국 관광객들이면, 굳이 도쿄에 갔다면, 한 번 가도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왜냐하면 그 야스쿠니 신사가 문제가 아니라 야스쿠니 신사 옆에 가면 우슈칸이라고 해서 한국어로 유치관 정도 될 것 같은데, 우슈칸이라는 우리로 치면 전쟁기념관 같은 게 있거든요. 그 전쟁기념관을 가보면 지금 일본의 극우세력들이 어떤 생각, 어떤 논리를 가지고 있는가를 그냥. 일본어를 몰라도 됩니다. 한 번 전시관을 둘러보면 그들의 속마음을 다 알 수 있을 것 같아요. 그 논리를 꿸 수 있을 것 같아서 거기는 한 번 가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고, 또 분노가 끓습니다.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그런데 거기 더 충격적이었던 것은 우슈칸 제일 마지막에 방명록을 적는 공간이 있는데, 그 방명록을 제 제자와 같이 가서 거기 두툼하게 있는 것을 해석을 시켜봤습니다. 쭉 했는데, 들으니까 화가 나는 거예요. 그런 방명록 내용을 이들은 여기를 거쳐서 일본 사람들은 그렇게 느끼는구나. 또 놀라운 것은 그 우슈칸에 서양인 관광객들도 정말 많습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그들이 거기를 둘러서, 거기는 영어하고 일본어로만 되어 있는데, 그것을 보면 이게 마치 사실처럼 느낄 것 아닙니까? 그래서 이거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서 정말 너무 끓어오르더라고요. 그들에게 진짜로 대항하려면, 논리적으로 어쨌든 대항하려면, 한 번 꼭 들러보는 것도 좋겠다,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 이동형> 그런 생각을 하면서 야스쿠니에 가보셨군요. 알겠습니다. 우리 제작진에서 신오쿠보역에서 시위하시는 사진을 저한테 보내줬는데, 좋은 곳에서 하셨네요. 사람들 왔다 갔다 하는 곳에서요. 많은 사람들이 봤으리라고 생각이 듭니다. 주말에 두 시간?
◆ 서부원> 주말에 두 시간. 월요일 출근 시간에 두 시간 했는데, 계획대로 하면 그게 피켓 만든 정성이 아깝잖아요. 그래서 사실은 계속 하려고 했거든요. 그런데 솔직히 너무 덥더라고요. 너무 더워서 계속 땀 닦고, 얼음 하고 그랬거든요. 애국심이 조금 부족했나?
◇ 이동형> 마지막으로 요즘 한일관계가 거의 최악인데, 역사 선생님이시니까 어떤 해법을 찾아야 한다고 보십니까?
◆ 서부원> 저는 일단 국내적으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는 건데요. 이번 기회로 친일 잔재 청산, 이런 거 있지 않습니까? 우리가 진짜 친일 청산에 대해서 내부적인 친일 청산이 들어가야 한다는 이런 생각. 그러기 위해서는 특히 제가 교사라서 그런지 자라는 아이들에게 현대사 교육은 정말 중요하겠다. 일본 애들이 왜 저러나 봤더니 이구동성 다 이야기하는 게 일본에서는 현대사를 전혀 배우지 않거든요. 그러니까 그런 의미에서 현대사 교육이 강화되어야겠다, 이런 생각을 하고요. 또 하나는 이거는 제가 진짜로 언론에 부탁하고 싶은 겁니다. 여기도 언론사죠. 언론사가 중계, 경마 보도 식으로 이런 현실만을 중계할 게 아니라 일본에 가서 정말 일본에서도, 이를테면 오늘이 위안부 기림의 날이지 않습니까. 도쿄에서도 들어보니까 거기도 집회가 있었다고 하더라고요. 그런 집회를 주도하는 양심적인 시민단체들이 정말 많거든요. 많습니다. 그들을 발굴해주고, 후원도 유도해주고, 이런 것이 필요하지 않겠나.
◇ 이동형> 언론이 그런 일을 해야 한다?
◆ 서부원> 네, 그런 생각도 하게 됩니다.
◇ 이동형> YTN은 그렇게 합니다. 그래서 저희가 이따가 일본의 양심 있는 이야기를 들어보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 서부원> 저도 듣고 가도록 하겠습니다.
◇ 이동형> 오늘 선생님 말씀 감사합니다.
◆ 서부원> 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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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송 : FM 94.5 (18:10~20:00)
■ 방송일 : 2019년 8월 14일 (수요일)
■ 대담 : 서부원 광주 살레시오 고등학교 선생님
* 아래 텍스트는 실제 방송 내용과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보다 정확한 내용은 방송으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도쿄 한복판서 1인 시위해보니 “일본 사람들 반응은...”
◇ 앵커 이동형(이하 이동형)> 일본의 경제보복에 맞서 자발적인 일본제품 불매운동이 확산되고, 예약해두었던 일본 여행도 취소하는 경우가 많아졌는데요. 이런 시기에 일본에서 1인 시위 여행을 다녀온 분이 계십니다. 일본에서도 ‘혐한 발언’ 등 혐한 분위기가 이어지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어떻게 1인 시위를 생각하셨을까요. 오늘 스튜디오에 직접 모셔서 말씀 나눠보겠습니다. 광주 살레시오 고등학교의 서부원 선생님 나오셨습니다. 어서 오십시오.
◆ 서부원 광주 살레시오 고등학교 선생님(이하 서부원)> 네, 반갑습니다.
◇ 이동형> 역사 선생님이시네요?
◆ 서부원> 네, 한국사 가르치고 있습니다.
◇ 이동형> 그래서 더 아마 한 번 가봐야겠다는 생각을 하셨을까요?
◆ 서부원> 그런 것보다요. 올해가 뜻깊은 해잖아요. 3·1운동 100주년이고,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이고. 또 우리가 조금은 간과하는데, 의열단이라고 있잖아요. 무장 항거 단체. 의열단도 100주년입니다. 그래서 뜻깊은 해여서 진작 계획은 하고 있었어요. 일찌감치 항공권도 예약을 해놨고, 또 겸사겸사 도쿄에 제 제자가 취직해서 거기서 생활하고 있는데, 걔도 만날 겸 쉽게 취소를 못 하겠더라고요. 그래서 가서 뜻깊게 그 기간 있어보자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 이동형> 도쿄에서 1인 시위 하신 겁니까?
◆ 서부원> 도쿄에서 8일간 전혀 움직이지 않고요. 그냥 도쿄에서만 있었는데, 1인 시위를 계속 8일 동안 하지는 못 했고요. 주말에 두 시간 했고, 그다음에 주중에 두 시간을 했습니다.
◇ 이동형> 어디서 하셨어요?
◆ 서부원> 신오쿠보역이라고 되게 유명한 곳이에요. 도쿄에 지하철이 순환선이 있는데, 우리 서울 2호선처럼요. 그 야마노테선이라고 하는데, 그 안을 말하자면 도쿄 도성이라고 할 수 있죠.
◇ 이동형> 신오쿠보역이면 코리안 타운이 가까운 곳이죠.
◆ 서부원> 네, 지금도 거기 역에서 나오면 한류 백화점, 이런 게 되게 많더라고요. 그런데 신오쿠보는 우리한테 또 각별한 의미가 있어서 거기서 해야겠다는 생각을 고민하다가 했죠.
◇ 이동형> 신오쿠보역 앞에서 하신 거예요?
◆ 서부원> 네, 그 안에서는 못 하게 하더라고요.
◇ 이동형> 밖에 장소가 협소한데, 사람도 많이 왔다 갔다 하고.
◆ 서부원> 네. 되게 협소하고, 거기 출입구가 하나밖에 없어 가지고 정말 사람이 그렇게 많을 줄은 몰랐어요. 안에서 원래는 하려고 했는데, 안에 이수현 씨라고 2001년도에 선로에 떨어진 일본인 구하고, 목숨을 잃은 사람인데요. 일본 사람들한테도 꽤 유명하더라고요. 아직도. 그래서 거기가 나름대로 상징적인 의미가 있다는 생각에서 거기로 정했는데, 안에서는 못 하게 하더라고요. 철도영업법인가? 거기가 아무래도 민영화되어서 그 회사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고 해서 미처 그 안에서는 못 하고, 밖에서 했는데 정말 사람 많더라고요.
◇ 이동형> 피켓을 들고 하셨어요?
◆ 서부원> 네.
◇ 이동형> 어떤 내용이었습니까?
◆ 서부원> 사실 제가 일본어를 한 마디도 못 하거든요. ‘아리가또,’ 이거 하고, ‘스미마셍,’ 그거밖에는 못 하거든요. 그래서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데, 제가 그렇다고 해서 번역기로 할 수도 없고. 그런데 제자가 도쿄에 살고 있었는데, 그 제자한테 부탁을 했습니다. 하나만 만들어 달라고 했더니 되게 우려를 하더라고요. 왜냐하면 나랑 연루가 되면, 저 취업 비자 연장 안 돼요, 이러면서 안 돼요, 선생님. 정말 비밀로 할 테니까 너 근처에 오라는 얘기 안 할 테니까 만들어서 나한테 건네기만 해라, 라고 해서 간첩 접선하듯이 받았는데요. 꽁꽁 포장해서 신문지, 비닐에 포장해서 저한테 건네더라고요. 하드보드지 같은 거 있잖아요. 그 크기로 해서 이렇게 적었어요. 조금 심하게 쓰려다가 겁도 나더라고요. 그래서 그냥 “아베 정부의 대한국 경제 보복에 대해서 반대합니다.” 이렇게 써놓고 밑에는 “한국인과 일본인은 공존과 번영, 정의와 평화를 위해 함께 손 맞아야 할 친구입니다.” 이렇게. 이렇게 해서 위에는 일본어 쓰고, 밑에는 한국어 쓰고. 글자가 다 들어가더라고요. 그렇게 내용을 써서 했죠.
◇ 이동형> 그러면 1인 시위하면서 혹시 응원의 말이라든가, 아니면 욕설이라든가, 이런 것은 들으셨어요?
◆ 서부원> 사실 되게 사람들이 그냥 살짝 보고 가지, 이것을 가지고 의미를 두는 일본인은 없는 것 같더라고요. 조금 연세 드신 두세 분이 저 앞에 와서 막 욕설을 하면서, 이렇게 고성을 지르면서 하시더라고요. 그런데 저는 별로 겁나지 않았어요. 왜냐하면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듣잖아요. 만약에 제가 그 말을 알아들었다면, 되게 위협도 느끼고 그랬을 건데, 막 큰소리로 뭐라고는 하시는데, 전혀 그게 무슨 뜻인지 모르니까, 또 오로지 걱정은 그거 하나였어요. 뭐냐면 혹시 이분이 어렵사리 만든 저 피켓을 파손하면 어쩌지? 그러니까 저를 때리는 건 괜찮은데, 그것을 파손하면 다음 날에 못 하잖아요. 그래서 그거만 계속 걱정했지, 다른 것은 별로 신경 쓰이지 않더라고요. 시위에 가장 큰 방해꾼은 있기는 있었죠. 더위요. 너무 더웠어요. 습하기도 하고, 그러니까 두 시간 밖에 서 있는데, 정말.
◇ 이동형> 일본의 더위가 살인적이니까.
◆ 서부원> 온도는 여기하고 비슷한 거 같기는 한데, 습해요. 그래서 땀이 쭉 흐르는 게 정말 못 견디겠더라고요. 만약에 날씨만 좋았다면 저는 한 네 시간, 다섯 시간 이거 할 자신이 있었거든요.
◇ 이동형> 혹시 우리 교포들이나 유학생들이나 그런 분들은 응원해주신 분 안 계셨나요?
◆ 서부원> 안타깝게 못 만났고요. 독일분이 와서 이게 무슨 내용이냐고 묻더라고요. 그래서 띄엄띄엄 영어로 시위 도중에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는데, 부인으로 보이는 그분이 저한테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 주시더라고요. 그게 유일한 격려였고요. 사실 일본인들은 별로 반응이 없더라고요. 주말은 정말 사람이 많아서 저 피켓 들고 있는 앞을 가리는 젊은이들도 있더라고요. 그래도 시위를 하고 있는데 이렇게 가리면 예의상 안 되는 거잖아요. 제가 뭐라고 하니까 화를 내고, 그런 경우는 있었는데요. 그래서 제가 주중 출근시간에 나가서 했거든요. 7시부터 9시까지 했는데, 그때는 꽤 사람들이 와서 읽어주고, 특히나 학생들. 많이 읽더라고요. 그때 일본의 방송사인지, 유튜버인지는 알 수 없지만, 막 찍어가기도 했어요. 제가 어차피 그거는 바라던 바니까 그게 어떻게 올라갔는지는 제가 확인할 수 없었죠. 제자한테 카톡을 보내서 혹시나 봤냐고 하니까 그런 것은 잘 모르겠다고.
◇ 이동형> 일본에 방문한 이유 중 하나가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의 자취를 찾아보려는 뜻도 있었다, 이렇게 말씀하신 것 같은데, 설명을 해주세요.
◆ 서부원> 아까도 말씀드렸듯이 3·1운동하고, 임정하고 의열단. 이게 사실 같이 다 볼 수 있는 곳이 도쿄라고 봤거든요. 중국에 있는 독립운동 유적지도 둘러봤고요. 그래서 이번에는, 또 100주년이고 해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서 갔는데, 막상 그것을 다 찾아서 돌아보려면 하루, 이틀 가지고는 안 될 정도로 많습니다. 예를 들어서 일왕이 사는 왕궁만 해도 우리는 그냥 거기 가서 단체 사진만 찍고 오더라고요. 그런데 그런 곳이 아니거든요. 의열단 입구에 니주바시라고, 니주바시가 이중교라는 뜻이거든요. 거기는 의열단원 김지석 의사가 폭탄을 던진 곳이고요. 그리고 거기서 5분 정도만 왼쪽 편으로 돌아가면 사쿠라다몬이라는 문이 있어요. 거기는 방향으로 보면 남문에 속하는데, 거기는 일본에서도 굉장히 유명한 유적지입니다. 사쿠라다몬의 변이라고 해서 역사 교과서에도 많이 실려 있는 곳이거든요. 거기는 에도 막부 마지막 대로, 그러니까 쇼군 다음 권력자라고 볼 수 있는 이이 나오스케라는 그 사람이 미국과 강제 개항을 하는데, 그 미국과 개항을 하면서 막부의 권력을 유지하려고 했던 사건이었는데요. 그 이이 나오스케를 현재 가고시마 쪽 낭인이 와서 암살을 했던 사건인데, 그게 1860년에 벌어지거든요. 그런데 그 사건은 메이지 유신의 시작점이다, 이렇게 평가를 하고 있더라고요. 그런데 또 사쿠라다몬의 변, 이렇게 치면 그 사건도 있지만, 1932년에 우리나라 사람이면 다 알죠. 이봉창. 이봉창 의사가 군사훈련, 제식훈련을 보고 온 일왕 히로히토에게 폭탄을 던진 곳이 똑같은 곳이거든요. 그것도 사쿠라다몬의 변이라고 하는데, 그런 곳인데 우리나라 관광객들이 그곳을 가는 경우는 거의 없는 것 같더라고요. 또 그것뿐이 아니라 히비야 공원. 여기는 안중근 의사가 저격한 이토 히로부미의 장례식을 치렀던 곳이기도 하고, 또 2.8 독립선언. 3·1운동의 배경이 됐던 2.8 독립선언이 이루어졌던 곳. 이렇게 따져보면 정말 많은데, 그런데 우리나라 시중에 나와 있는 여행 안내서에 보면 그런 곳이 언급된 책이 거의 없습니다. 그래서 사실 이런 욕심도 시골 교사인 저한테 맡길 일은 없겠지만, 그런 욕심도 있었습니다. 아예 새로운 도쿄 안내서를 만들어볼까? 이런 생각도 있었습니다. 그런 곳이 정말 많으니까요.
◇ 이동형> 그런데 야스쿠니 신사는 왜 방문하셨습니까?
◆ 서부원> 사실 거기서 하려고 했거든요.
◇ 이동형> 1인 시위를요?
◆ 서부원> 네.
◇ 이동형> 그것도 좋은 생각이네요.
◆ 서부원> 거기가 굉장히 상징적인 의미가 있어서 거기서 하려고 했는데, 저도 겁이 나더라고요. 사실 너무 겁이 나고요. 또 거기는 제가 가기 전에 듣자 하니까 거기는 욱일기, 전범기 있잖아요. 그 욱일기 가지고 군복이고, 이렇게 행진하는 그런 극우단체들이 많다고 하더라고요. 그런 이야기를 들어서 겁이 난 거죠. 그랬는데 한 번 확인해볼 겸 갔습니다. 갔는데, 물론 가서 그런 분들도 봤어요. 욱일기 들고, 총 들고, 거기서 고함지르는 그런 사람들도 봤는데, 거기 야스쿠니 신사. 우리가 신사에 참배할 것은 아니잖아요. 그런데 그 신사를 저는 한국 관광객들이면, 굳이 도쿄에 갔다면, 한 번 가도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왜냐하면 그 야스쿠니 신사가 문제가 아니라 야스쿠니 신사 옆에 가면 우슈칸이라고 해서 한국어로 유치관 정도 될 것 같은데, 우슈칸이라는 우리로 치면 전쟁기념관 같은 게 있거든요. 그 전쟁기념관을 가보면 지금 일본의 극우세력들이 어떤 생각, 어떤 논리를 가지고 있는가를 그냥. 일본어를 몰라도 됩니다. 한 번 전시관을 둘러보면 그들의 속마음을 다 알 수 있을 것 같아요. 그 논리를 꿸 수 있을 것 같아서 거기는 한 번 가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고, 또 분노가 끓습니다.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그런데 거기 더 충격적이었던 것은 우슈칸 제일 마지막에 방명록을 적는 공간이 있는데, 그 방명록을 제 제자와 같이 가서 거기 두툼하게 있는 것을 해석을 시켜봤습니다. 쭉 했는데, 들으니까 화가 나는 거예요. 그런 방명록 내용을 이들은 여기를 거쳐서 일본 사람들은 그렇게 느끼는구나. 또 놀라운 것은 그 우슈칸에 서양인 관광객들도 정말 많습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그들이 거기를 둘러서, 거기는 영어하고 일본어로만 되어 있는데, 그것을 보면 이게 마치 사실처럼 느낄 것 아닙니까? 그래서 이거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서 정말 너무 끓어오르더라고요. 그들에게 진짜로 대항하려면, 논리적으로 어쨌든 대항하려면, 한 번 꼭 들러보는 것도 좋겠다,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 이동형> 그런 생각을 하면서 야스쿠니에 가보셨군요. 알겠습니다. 우리 제작진에서 신오쿠보역에서 시위하시는 사진을 저한테 보내줬는데, 좋은 곳에서 하셨네요. 사람들 왔다 갔다 하는 곳에서요. 많은 사람들이 봤으리라고 생각이 듭니다. 주말에 두 시간?
◆ 서부원> 주말에 두 시간. 월요일 출근 시간에 두 시간 했는데, 계획대로 하면 그게 피켓 만든 정성이 아깝잖아요. 그래서 사실은 계속 하려고 했거든요. 그런데 솔직히 너무 덥더라고요. 너무 더워서 계속 땀 닦고, 얼음 하고 그랬거든요. 애국심이 조금 부족했나?
◇ 이동형> 마지막으로 요즘 한일관계가 거의 최악인데, 역사 선생님이시니까 어떤 해법을 찾아야 한다고 보십니까?
◆ 서부원> 저는 일단 국내적으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는 건데요. 이번 기회로 친일 잔재 청산, 이런 거 있지 않습니까? 우리가 진짜 친일 청산에 대해서 내부적인 친일 청산이 들어가야 한다는 이런 생각. 그러기 위해서는 특히 제가 교사라서 그런지 자라는 아이들에게 현대사 교육은 정말 중요하겠다. 일본 애들이 왜 저러나 봤더니 이구동성 다 이야기하는 게 일본에서는 현대사를 전혀 배우지 않거든요. 그러니까 그런 의미에서 현대사 교육이 강화되어야겠다, 이런 생각을 하고요. 또 하나는 이거는 제가 진짜로 언론에 부탁하고 싶은 겁니다. 여기도 언론사죠. 언론사가 중계, 경마 보도 식으로 이런 현실만을 중계할 게 아니라 일본에 가서 정말 일본에서도, 이를테면 오늘이 위안부 기림의 날이지 않습니까. 도쿄에서도 들어보니까 거기도 집회가 있었다고 하더라고요. 그런 집회를 주도하는 양심적인 시민단체들이 정말 많거든요. 많습니다. 그들을 발굴해주고, 후원도 유도해주고, 이런 것이 필요하지 않겠나.
◇ 이동형> 언론이 그런 일을 해야 한다?
◆ 서부원> 네, 그런 생각도 하게 됩니다.
◇ 이동형> YTN은 그렇게 합니다. 그래서 저희가 이따가 일본의 양심 있는 이야기를 들어보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 서부원> 저도 듣고 가도록 하겠습니다.
◇ 이동형> 오늘 선생님 말씀 감사합니다.
◆ 서부원> 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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