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석춘, 전태일 왜곡해 박정희 미화
전태일 열사 월급 64년 1,500원 → 67년 15,000원
류석춘 "임금은 생산성 비례 지급…착취 없었다"
전태일 열사 월급 64년 1,500원 → 67년 15,000원
류석춘 "임금은 생산성 비례 지급…착취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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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전태일은 착취당하지 않았다"
'위안부는 매춘'이라는 망언을 한 연세대학교 류석춘 교수의 주장입니다.
60, 70년대 노동 환경을 정당화하는 이 주장은, 결국, 박정희 시대를 미화하기 위한 작업이죠.
그러나 당시 시대상은 물론 기본적인 통계마저 왜곡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습니다.
팩트와이, 홍성욱 기자입니다.
[기자]
1970년 11월 13일.
평화시장 노동자 23살 전태일은 최소한의 법적 보호도 못 받고 저임금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는 현실을 죽음으로 알렸습니다.
▲ 전태일, 3년간 월급 10배 올랐다?
"전태일 월급이 3년간 10배 올랐는데, 착취라고 말할 수 있을까?"
류석춘 교수 주장입니다.
'전태일 평전'에 따르면 1964년 1,500원에서 1967년 15,000원으로 10배 오른 것, 맞습니다.
그러나 10배라는 상승 폭이 아닌, 절대 금액을 보면 얘기는 다릅니다.
64년과 67년 전태일 월급을, 물가 상승률을 적용해 현재 가치로 환산하면 5만5천 원과 46만 원입니다.
어느 쪽이든 최소한의 생계가 어려운 저임금입니다.
10배 올라도 절대 빈곤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는 사실을, 류 교수는 전혀 언급하지 않습니다.
[임현재 / 전태일 열사 동료 : 아무 얘기 못 하고, 반항 못 하고 따질 수 없는 시다나 보조, 나이 어린 여공들은 정말로 착취를 많이 당했고 힘들었습니다.]
▲ 1인당 GDP 3배 벌었으니 착취 아니다?
류 교수는 또, 1970년 전태일 연봉이 당시 1인당 국내총생산의 3.2배였으니, 착취가 아니라고도 주장합니다.
그러나 애초 국내총생산과 임금은 비교 대상이 아닙니다.
1인당 GDP는 임금 노동자뿐만 아니라, 아이, 노인, 주부, 군인 등을 모두 합친 국민 한 사람의 평균 생산액을 말하기 때문에, 비교해서 임금이 많다 적다 평가하기 어렵습니다.
특히, 류 교수는 전태일 임금의 적정성을 얘기하면서도 정작 임금 산정의 핵심 변수인 노동 시간은 계산법에 넣지 않았습니다.
당시 청계천 봉제공장 노동자들은 하루 12시간 넘게 일했고, 일요일에도 잔업을 해야 했습니다.
[김유선 /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이사장 : 일주일 7일 정도 하루 15시간 일했던 경우도 비일비재했고요. 80년대까지만 해도 한 달에 격주로 일요일 이틀 정도만 쉬는 경우가 상당히 많았거든요.]
▲ 박정희는 노동자 착취하지 않았다?
류 교수의 전태일 부정은 결국, 박정희 시대의 무조건적인 정당화로 이어집니다.
70년대 고도성장기, 임금은 생산성에 비례해 지급됐고, 그래서 착취는 없었다는 논리입니다.
그런데, 핵심 근거인 '한계 노동생산성' 개념은 학계에서 널리 받아들이는 일반적인 이론이 아닙니다.
[정성진 / 경상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 요즘 주류 경제학 내부에서도 저임금 노동자들에게 임금을 많이 지급하면 생산성이 오른다는 '효율성 임금 이론'도 나오거든요. 한계노동생산성으로 임금을 설명하려고 하는 이론 자체가 굉장히 비현실적이고 설명력이 없습니다.]
박정희 시대, 국가 주도 경제 전략이 고도성장의 배경이었던 건 맞지만, 그렇다고 해서, 당시 노동자들의 희생과 그들의 권리를 찾기 위한 노력이 부정되는 건 아닙니다.
YTN 홍성욱입니다.
취재기자: 홍성욱 [hsw0504@ytn.co.kr]
인턴기자: 김미화 [3gracepeac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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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태일은 착취당하지 않았다"
'위안부는 매춘'이라는 망언을 한 연세대학교 류석춘 교수의 주장입니다.
60, 70년대 노동 환경을 정당화하는 이 주장은, 결국, 박정희 시대를 미화하기 위한 작업이죠.
그러나 당시 시대상은 물론 기본적인 통계마저 왜곡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습니다.
팩트와이, 홍성욱 기자입니다.
[기자]
1970년 11월 13일.
평화시장 노동자 23살 전태일은 최소한의 법적 보호도 못 받고 저임금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는 현실을 죽음으로 알렸습니다.
▲ 전태일, 3년간 월급 10배 올랐다?
"전태일 월급이 3년간 10배 올랐는데, 착취라고 말할 수 있을까?"
류석춘 교수 주장입니다.
'전태일 평전'에 따르면 1964년 1,500원에서 1967년 15,000원으로 10배 오른 것, 맞습니다.
그러나 10배라는 상승 폭이 아닌, 절대 금액을 보면 얘기는 다릅니다.
64년과 67년 전태일 월급을, 물가 상승률을 적용해 현재 가치로 환산하면 5만5천 원과 46만 원입니다.
어느 쪽이든 최소한의 생계가 어려운 저임금입니다.
10배 올라도 절대 빈곤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는 사실을, 류 교수는 전혀 언급하지 않습니다.
[임현재 / 전태일 열사 동료 : 아무 얘기 못 하고, 반항 못 하고 따질 수 없는 시다나 보조, 나이 어린 여공들은 정말로 착취를 많이 당했고 힘들었습니다.]
▲ 1인당 GDP 3배 벌었으니 착취 아니다?
류 교수는 또, 1970년 전태일 연봉이 당시 1인당 국내총생산의 3.2배였으니, 착취가 아니라고도 주장합니다.
그러나 애초 국내총생산과 임금은 비교 대상이 아닙니다.
1인당 GDP는 임금 노동자뿐만 아니라, 아이, 노인, 주부, 군인 등을 모두 합친 국민 한 사람의 평균 생산액을 말하기 때문에, 비교해서 임금이 많다 적다 평가하기 어렵습니다.
특히, 류 교수는 전태일 임금의 적정성을 얘기하면서도 정작 임금 산정의 핵심 변수인 노동 시간은 계산법에 넣지 않았습니다.
당시 청계천 봉제공장 노동자들은 하루 12시간 넘게 일했고, 일요일에도 잔업을 해야 했습니다.
[김유선 /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이사장 : 일주일 7일 정도 하루 15시간 일했던 경우도 비일비재했고요. 80년대까지만 해도 한 달에 격주로 일요일 이틀 정도만 쉬는 경우가 상당히 많았거든요.]
▲ 박정희는 노동자 착취하지 않았다?
류 교수의 전태일 부정은 결국, 박정희 시대의 무조건적인 정당화로 이어집니다.
70년대 고도성장기, 임금은 생산성에 비례해 지급됐고, 그래서 착취는 없었다는 논리입니다.
그런데, 핵심 근거인 '한계 노동생산성' 개념은 학계에서 널리 받아들이는 일반적인 이론이 아닙니다.
[정성진 / 경상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 요즘 주류 경제학 내부에서도 저임금 노동자들에게 임금을 많이 지급하면 생산성이 오른다는 '효율성 임금 이론'도 나오거든요. 한계노동생산성으로 임금을 설명하려고 하는 이론 자체가 굉장히 비현실적이고 설명력이 없습니다.]
박정희 시대, 국가 주도 경제 전략이 고도성장의 배경이었던 건 맞지만, 그렇다고 해서, 당시 노동자들의 희생과 그들의 권리를 찾기 위한 노력이 부정되는 건 아닙니다.
YTN 홍성욱입니다.
취재기자: 홍성욱 [hsw0504@ytn.co.kr]
인턴기자: 김미화 [3gracepeac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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